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46
345화
-사도 정벌(2)
“쿠오오오오!”
에인헤랴르의 분투로 누다르의 화살로부터 자유로워진 리코스는 힘을 모으고 있었다.
화르륵!
드라콘이 된 그의 배 속에 존재하는 화염 주머니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검은 불꽃이 리코스의 입가에 안개처럼 타올랐다.
일반적인 불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불을 태울 산소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도 타오를 리 없었으니까.
검은 불꽃은 일반적인 불을 뛰어넘어 좀 더 개념적인 현상에 가까웠다.
죽음의 속성이 담긴 개념적인 불꽃은 산소 없이도 대상을 태워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왜냐면 리코스가 사룡(死龍)이었으니까.
언데드가 승격해 드라콘이 된 것과 드라콘이 언데드가 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달랐다.
드라콘이 언데드가 되는 것은 격이 하락하는 거지만, 언데드가 승격해 드라콘이 되는 것은 격이 오르는 것.
만약 리코스가 드라콘이 된 후에 죽어 부활했다면, 사룡이 아닌 언데드 드래곤으로 부활했을 터였다.
하지만 리코스는 죽음의 속성을 가진 채 승격을 거듭해 드라콘의 격에 다다를 수 있었다.
리코스는 그 모든 것이 이현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스가 내게 주신 이 몸, 이 힘.’
리코스는 가슴을 한껏 부풀려 화염 주머니 역시 최대한으로 부풀렸다.
‘모두 보스를 위해 쓰리라.’
화르륵!
거대한 검은 불꽃의 기둥이 사도를 향해 내리꽂혔다.
“어이어이, 믿고 있었다구요!”
리코스가 모든 힘을 모아 쏟아부은 검은 불꽃의 기둥에 휩싸인 사도를 보며 티타니아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퀴에에에에엑!”
끊임없이 몸을 재생하던 누다르도 자신의 몸을 불살라 먼지로 만들어 버리는 검은 불꽃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누다르에게 달라붙어서 창을 내찌르던 일부 에인헤랴르들도 검은 불꽃에 휩쓸려 다시 한번 목숨을 잃었지만, 상관없었다.
에인헤랴르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지만 누다르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검은 불꽃에 타들어 간 상처는 샤이 규라흐 때처럼 재생이 극도로 느렸다.
“네 이놈들!”
누다르가 비명을 지르면서도 분노의 고함을 질렀지만, 이현은 비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권속이 없으니까 재생이 한참 느리구만.”
샤이 규라흐는 권속들을 강제로 흡수하는 방식으로 재생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누다르는 그런 시도를 할 수조차 없었다.
이미 권속들을 다 잡아먹은 뒤였으니까.
“브레스가 끝나가요.”
“그래, 마무리를 준비할 때야.”
이현이 도끼에 규격 외의 힘을 불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인헤랴르도 검은 불꽃에 타들어 가는 누다르에게서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이미 여인의 몸은 재가 된 지 오래고 전갈의 몸도 마치 불에 구워진 꼬치처럼 말라비틀어지고 있었다.
이현이 규격 외의 힘으로 마무리만 하면 끝이었다.
‘이렇게 쉽게 끝나는 게 이상한데.’
저번의 전투에서는 권속들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수없이 각성을 반복하며 되살아나는 샤이 규라흐 때문에 전투가 길어졌었다.
그것에 비하면 이번 전투는 싱거울 정도로 짧게 끝나는 편이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전력은 차이가 크지만.’
저번의 전투에서 막바지에야 리코스가 드라콘으로 각성한 것이나 [히로익 에이지]가 없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전력은 차원이 다르게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이현도 사도와의 싸움으로 경험을 많이 쌓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현은 마음속 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찜찜함을 떨치기 어려웠다.
‘이게 과연 행성을 파괴한다는 사도의 실력 전부일까?’
샤이 규라흐와 달리 누다르는 각성을 끝까지 마친 성체였다.
100m가 넘는 거대한 전갈의 몸체나 사기를 다루는 솜씨, 무시무시한 공격 능력 등을 보면 성체인 건 확실했다.
하지만 이현은 그걸로도 행성을 파괴하기엔 모자란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주인님? 뭐해요? 서둘러야죠.”
“……그래.”
이현은 티타니아의 재촉에 고개를 저어 잡념을 떨쳐냈다.
‘일단 눈앞에 약해진 사도가 있다. 거기에 집중하자.’
이현이 갈 길은 멀었다.
눈앞의 사도를 해치우고 그 실적을 인정받아서 총관 세력에게 시간 조절 장치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다른 사도들도 마저 해치워야 지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꾸물거릴 때가 아니야.’
이현은 베디비어를 조작해 잘 구워진 누다르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이현은 규격 외의 힘을 불어넣은 도끼를 높이 치켜들었다.
퍼걱!
이현이 힘껏 내리친 도끼가 바싹하게 구워진 전갈을 내려치자마자 거대한 전갈의 몸이 먼지로 화해 우주 공간으로 흩어졌다.
그 먼지만으로도 거대한 모래 구름이 일어날 정도였다.
뿌옇게 변한 시야에 이현이 눈을 가늘게 떠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티타니아, 알을 찾아봐.”
샤이 규라흐는 몸체를 다 태우고 나니 알이 떨어졌었다.
누다르 역시 사도인 이상 마찬가지일 터.
이현은 힘을 잃고 알로 되돌아갔을 누다르를 찾아 헤맸다.
“없어요.”
“뭐?”
티타니아의 말대로였다.
이현이 내공을 눈으로 돌려 안력을 돋워보아도 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오로지 뿌연 먼지구름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모, 모르겠어요. 이게 없을 리가 없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알의 부재에 당황하는 건 티타니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번쩍!
떠다니는 암석 덩어리 중 하나에서 빛의 기둥이 날아왔다.
그리고 그 빛의 기둥이 향한 곳은.
“쿠오오오오!”
“리코스!”
검은 불꽃을 한계까지 끌어내 지쳐있던 리코스는 빛의 기둥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직격당해 버렸다.
연이어 곳곳에서 빛의 기둥이 날아와 리코스에게 연신 적중했다.
“크오오오오!”
서둘러 리코스가 전투 방패를 펼쳐 보였지만, 빛의 기둥을 이겨내지 못하고 치명상을 입었다.
날개의 반절을 잃고 몸 곳곳이 타들어 간 리코스의 힘 빠진 육체가 이현의 앞으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브레스?”
이현은 빛의 기둥이 날아온 곳으로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그곳엔 브레스를 쏘아낸 거대한 전갈이 암석 덩어리 뒤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원래의 누다르보다 더 작은 크기의 전갈이었다.
“설마 저게 본체인가?”
이현은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방금 자신과 리코스가 끝낸 거대한 전갈은 분신이었고 저것이 본체였던 걸까.
그렇다면 지금껏 헛고생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현이 한 헛고생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잠깐, 브레스가 여러 군데서 날아오지 않았나?’
이현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주인님, 사방에 사도가 있어요!”
다급하게 외치는 티타니아의 경고에 이현이 놀라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가지각색의 크기를 지닌 거대한 전갈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부 이현이 방금 물리친 전갈에 비하면 크기가 작았지만, 수가 어마어마했다.
그동안 행성의 파편인 암석 덩어리 밑에서 숨어 있다가, 이현의 활약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티타니아가 그 모습에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세 자리 아니, 네 자릿수를 넘는 수의 누다르들이 이현에게 적개심을 내비치고 있었다.
“우리의”
“가장 큰 개체.”
“쉽게 죽었다.”
“위험인물.”
“죽인다.”
수천 마리의 누다르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각자의 말이 섞여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점차 정신을 공유라도 한 듯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지고 있었다.
“너희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현이 이를 악물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정확히 들어맞고야 말았다.
분명 아까의 누다르는 강력한 존재였고, 예전의 이현이라면 그 격을 가늠조차 하지 못할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 개체 혼자서는 행성을 파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마치 바퀴가 무리를 지어 살 듯, 개미나 벌이 동족들과 함께 살 듯, 누다르 역시 동족을 만든 것이었다.
“저 정도 숫자라니. 사도가 아니라 권속이었던 걸까요?”
“권속은 없을 거라며?”
“사도가 행성까지 파괴한 다음에 권속을 남기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단 말이에요.”
이현의 항의에 티타니아가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권속?”
“아니다.”
“우리는 모두.”
“누다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전갈들을 보며 이현이 이를 악물었다.
“저것들 전부가 본체야.”
“그렇다면 알은 어디에 있는 거죠?”
“저것 중 한 마리 속에 있겠지.”
사도의 알을 찾으려면 수천 마리에 달하는 전갈들을 모두 일일이 해치워서 시체를 헤집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리코스가 리타이어한 상황에서.
“주인님, [히로익 에이지]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갈수록 태산이네.”
이현이 도끼를 쥔 손에 힘을 꾹 쥐고 있을 때였다.
쿵!
그제야 추락하던 리코스가 이현의 옆에 떨어져 내렸다.
“리코스!”
이현이 놀라서 달려가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가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멈춰라.”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브레스로”
“너희들 모두”
“산산조각 낼 테니.”
농담이 아니라는 듯 무수한 누다르의 입에 브레스가 모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경고, 사격이다.”
거대한 누다르가 쏘던 것에 비하면 크기나 위력은 밑이었다.
하지만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때문에, 이현은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우선은.”
“성가신.”
“용부터.”
“치운다.”
이현을 향했던 무수한 누다르의 브레스가 목표를 바꾸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바로 쓰러진 리코스였다.
검은 불꽃으로 브레스를 상쇄할 수 있으며 가장 큰 개체를 소멸시킨 리코스는 누다르에게 제일 큰 위협이었던 것.
누다르들의 고개가 리코스를 향하자 이현이 고함을 질렀다.
“안 돼!”
하지만 그들이 이현의 말을 들어줄 리 만무, 수천 발의 브레스가 리코스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에인헤랴르!]이현이 규격 외의 힘을 담아 외쳤다.
[목숨을 걸고 막아!]이현은 말 그대로 죽어도 죽어도 부활하는 그들의 몸으로 리코스를 보호하라는 것이었다.
이현의 명령대로 에인헤랴르가 몸을 날려 리코스의 몸 위를 덮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위로 수천 발의 브레스가 꽂히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동서남북 위아래, 온갖 방향에서 쏟아지는 브레스에 에인헤랴르들의 몸이 육편으로 화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금세 부활하는 에인헤랴르의 육체와 끊임없이 쏟아지는 브레스의 끝이 나지 않는 대결이었다.
‘아니, 곧 [히로익 에이지]의 효과가 끝날 거다.’
그래서 이현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압!”
규격 외의 힘이 실린 도끼로 가까운 전갈부터 공격하고 있었다.
콰직!
누다르들의 크기가 워낙 천차만별이었기에 작은 개체는 이현의 키만 한 것도 있었다.
그런 개체는 이현의 도끼질 한 방에 명을 달리하고 으스러졌다.
“여기도 없어요.”
“다음!”
“건너편 암석 덩어리에요.”
이현은 티타니아가 지시하는 대로 베디비어를 움직여 암석 덩어리를 건너뛰었다.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작은 누다르를 도끼로 내려찍었다.
“다음!”
하지만 이현의 그런 노력은 턱도 없었다.
그렇게 일일이 죽이기엔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제길, 티타니아 도끼에 빙의해!”
“그러다간 주인님의 방어력이 약해져요!”
그녀가 빙의를 해제한다면 베디비어는 2.5세대 골렘 나이트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된다면 이현은 고작 증기 기갑을 붙여놓은 우주복에 목숨을 의지해야 했다.
“괜찮아! 지금은 적의 수를 줄이는 게 우선이야!”
“……알겠어요.”
티타니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베디비어에서 빠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이현은 베디비어가 나이트로 돌아가면서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상태에서 누다르의 브레스를 맞으면 이현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누다르의 수를 줄이는 것이 먼저였다.
콰드득!
이현이 날린 대형 투척 도끼가 맹렬히 회전하며 누다르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