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8
37화
-팔랑크스(1)
“아저씨, 일 다 끝나셨어요?”
“응, 여긴 마무리 됐어.”
더운 날씨에 외부에서 작업하는 춘식을 위해 나진이 수건과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었다.
캠핑장 주변에 목책이 생긴 것처럼, 공원 건물 주변에도 여러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현의 부담을 덜어 주자는 나진과 춘식의 의견이었다.
‘사체 조각들은 결국 못 쓰게 됐다니 이런 거라도 도와줘야지.’
던전수가 흡수하기엔 조각난 사체들은 너무 격이 떨어졌었다.
이현은 그래도 쓸 데가 있다고 그를 위로했었다.
하지만 춘식은 또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기만 했다.
“그쪽은 어뗘, 일 다 끝냈어?”
“네. 양이 많지는 않아 금방 끝났어요.”
춘식은 공원에 합류하자마자 자신들을 지킬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적어도 그 친구가 구하러 올 때까지 시간은 벌 수 있어야 하지 않것어?’
그의 의견을 받아들인 공원 사람들은 다 같이 무기 제작에 돌입했다.
캠핑장에서 재성이 만들던 식칼 창처럼 공원 건물 안의 날붙이들이 무기가 되었다.
“잘됐네. 내가 조금 쉬고 나서 교육 시작할 테니 사람들 좀 모아줘.”
“네, 그럴게요.”
새로 만든 무기들로 춘식이 창검술을 가르칠 예정이었다.
이제 남자라곤 춘식밖에 남지 않았지만, 살기 위해선 남녀노소 불문하고 무기를 잡아야 했다.
‘이럴 땐 그 친구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미운 짓만 골라서 하다 쫓겨난 재성이지만, 그래도 건장한 성인 남성이었다.
손 하나가 아쉬운 이 와중에 그가 없다는 게 춘식은 아까웠다.
“아직도 재성이 그 친구는 온 적이 없어?”
“그러네요. 이현 씨 쪽으로도 간 적이 없다고 하던데.”
나진이 고개를 젓자 춘식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모두가 그에게서 등을 돌렸지만, 그래도 캠핑장에서 같이 고생한 춘식은 그가 신경 쓰였다.
“자존심이 너무 세서 탈이여. 나쁜 마음을 먹는 건 아닌지 몰라.”
“그럴 위인은 못 될걸요?”
재성에게 학을 뗐던 나진은 차갑게 비웃었다.
하지만 춘식은 그녀가 혹시 몰라 간단한 식량을 공원 입구 쪽에 두고 온다는 걸 알았다.
사람이 미워도 죽게 놔둘 수 없지 않은가?
‘그런 걸 보면 참 착한 처자야.’
춘식은 나진을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자기 아들이 조금만 결혼을 늦게 했더라면 며느리 삼고 싶었을 정도로.
‘그러고 보니 이현 그 친구가 아직 장가를 안 들었다고 했지?’
춘식이 당사자들의 생각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멋대로 머릿속에서 중매를 서고 있을 때였다.
치지직-.
무전기가 작동했다.
나진의 얼굴이 환해지며 무전을 받았다.
“네, 이현 씨 말씀하세요.”
그 모습을 보며 춘식이 흐뭇해했다.
‘나진 씨도 마음이 없는 건 아니구먼?’
하지만 곧 이어진 이현의 말에 둘의 표정이 굳어졌다.
[헌터들입니다. 건물 안에서 나오지 마세요.]* * *
새로 게이트가 열리고 두 번째 침입이었다.
첫 번째 침입 이후로 4일 만의 침입이기도 했다.
헌터의 침입을 감지한 이현은 무전을 한 후 서둘러 감시 장소인 언덕으로 달려갔다.
“저기 오네요. 무장이 남다른데요?”
이현이 쌍안경을 들어 계곡 건너편을 보았다.
정오의 햇빛을 반사하는 누런 금속 빛이 번쩍였다.
청동으로 된 방패, 투구, 각반을 한 근육질 사우레노르들이 4열 종대로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그리스 병사 같네.”
저번의 전투에서 이현은 사우레노르들의 장비가 꽤 구식이라는 걸 알았다.
돌팔매, 조잡한 활과 창.
그러나 이번에 침입해 온 헌터들은 조금 달랐다.
방패도 통짜 청동으로 되어 있었고 투구와 각반도 청동으로 갖추었다.
거기에 두꺼운 천 갑옷도 장비한 채였다.
‘더 무서운 점은 발을 맞추며 걷고 있다는 거야.’
이현은 훈련소 시절 제식훈련만 일주일을 받았던 게 기억이 났다.
발을 맞추어 걷는다는 건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에겐 몹시 힘든 일이었다.
즉,
“군대인가 본데?”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니라는 소리네요.”
사우레노르 군인들이 갈대밭 앞에서 멈추어 섰다.
“전원 정렬!”
유일하게 투구 양옆에 뿔 장식을 단 사우레노르가 고함을 지르자 다들 그 자리에 정렬했다.
“지휘관인가?”
지휘관까지 갖춘 걸 보면서 이현은 저들이 저쪽 세계의 정식 군대라고 확신했다.
이현은 침착하게 그들의 숫자를 세었다.
‘이길 수 있을까.’
저번의 전투에선 이길 수 있었지만, 훈련된 군인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현은 초조해졌다.
“왜 안 건너오지?”
계곡 건너편의 사우레노르 부대는 대형을 유지한 채로 캠핑장 요새만 노려보고 있었다.
입 모양을 보아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아마 물을 건너기 싫은가 본데요?”
“물? 아……!”
이현은 비어디드 드래곤을 키우던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파충류는 스스로 체온을 높이기 힘들다고.
대신 태양 빛을 받으며 체온을 빨리 올릴 수는 있다고 했었다.
“차가운 물에 들어가기 싫은 거구나.”
계곡을 건너야만 캠핑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저번의 헌터들도 강을 넘지 않고 싸우려 했었다.
‘사우레노르들은 몸이 차가워진 채로 전투에 임하기 싫은 거였어.’
이현은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정오를 조금 넘어있었다.
“아마 가장 더울 때인 2시나 3시쯤에 건너올 거야.”
“어라? 왜요?”
“체온을 올릴 대로 올린 다음에 강을 건너고 싶은 거야. 그리고 그때쯤이면 계곡물도 나름 따뜻해질 거고.”
한여름의 태양에 달궈진 물은 차갑지만은 않다.
그 정도라면 물을 건너도 체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터였다.
“안 건너오고 저기서 전투를 하려고 기다릴 수도 있죠.”
“그럴 거라면 저기서 주춤거리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리고요?”
“아니야, 이건 확실하지 않으니깐.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현은 자신의 짐작이 맞는다면 언데드들의 희생을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잘될지 모르겠네.”
“무슨 작전인데요?”
“혹시 모르니깐 대비하는 보험?”
이현은 쌍안경을 내리고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캠핑장으로 다가갔다.
그의 계획대로 하려면 시간이 얼마 없었다.
* * *
오후 2시.
하늘의 정중앙에서 태양이 한 뼘만큼 빗나가 있었다.
한여름 오후의 날씨는 계곡마저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그리고 몸이 충분히 달아오른 사우레노르 부대가 계곡을 건너기 시작했다.
첨벙첨벙.
무거운 장비를 입은 채로 건너는 병사들 덕분에 요란한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을 싫어하는 사우레노르들이지만, 계곡물이 얕아서 다들 무사히 계곡을 건널 수 있었다.
“크으윽!”
물에 들어가자 몸이 식어 진저리를 치는 병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체온을 올린 상태라서 전원 문제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소대(스티코스) 정렬!!”
16명의 병사로 이루어진 소대를 이끄는 지휘관이 병사들을 모았다.
병사들이 간격을 좁혀 밀집대형을 이루었다.
서로의 신체가 거의 닿을 정도로 밀착해 병사 간의 간격이 없었다.
“우리는 강을 건너지 않고도 싸울 수 있었다!”
퉁!
목소리를 높인 지휘관의 말에 병사들이 창과 방패를 부딪쳐 호응했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적진에서 복수할 것이다!”
퉁! 퉁!
“우리가 용감한 드라콘 이스메이오스의 후손이자 전사이기 때문이다!”
사실 용감함과는 거리가 먼 전술적인 선택이었다.
지휘관은 적들을 갈대밭으로 끌어들여 물을 등지게 한 후 포위해 공격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과 달리 물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지.’
더군다나 적이 네크로트로모스라면 더더욱.
‘게다가 도망치면 추격해서 죽이는 것이 힘들어진다.’
청동 장비는 무거웠다.
아마 천을 여러 번 겹 대어 만든 리넨 토락스 갑옷도 무게가 상당했다.
때문에, 이스메이아의 군대가 가장 자신이 없는 것이 바로 추격전이었다.
‘전장이라면 모를까, 던전에선 적을 모조리 죽여야 해. 추격전으로 가선 안 된다.’
그래서 꺼리는 물을 건너서라도 적의 진지로 보이는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도 있었지만, 겉으로는 사기를 올리는 것 역시 그의 임무였다.
“우리는 저 저주받은 네크로트로모스를 그냥 시체로 만들 것이다! 소대 전진!!”
“에레레레레레레프!”
사기를 고양 시키는 전투의 함성을 지르면서 사우레노르 부대가 진군을 시작했다.
밀착한 채로 한 덩어리가 된 부대가 청동빛을 빛내며 캠핑장으로 향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에레레레레레레프!”
“에레레레레레레프!”
사우레노르 부대가 적의 진지와 계곡 사이의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올라왔다.
그리고 이현이 어설프게나마 건설한 목책 앞에 도착했다.
“아레스여, 이런 끔찍한……!”
목책의 입구 앞에는 배가 갈라진 인간들의 시체와 뼈, 그리고 비늘 달린 살점들이 그득했다.
춘식이 열심히 모아온 사체 조각들이었다.
“치열한 전투가 있었나 보군.”
사체들이 널린 잔혹한 현장을 보고 지휘관도, 병사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어어어!”
요새 안에서도 사우레노르들이 보이자, 워킹데드와 좀비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전원, 준비!”
부대는 적의 진지, 즉 캠핑장 요새의 입구인 좁은 문을 가로막고 섰다.
“하악. 하악.”
사우레노르 병사들의 호흡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전투의 순간이 임박했다.
투웅!
제일 앞 열에 서 있던 지휘관이 자신의 창과 방패를 강하게 맞부딪혔다.
적을 도발하는 그의 스킬이었다.
투웅!
통짜 청동으로 만들어진 호플론 방패가 마치 종처럼 울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흥분한 7명의 좀비가 앞다투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아아악!!”
인간의 시체들이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달려오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모습만으로도 전의를 깎아내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하지만 사우레노르 병사들은 한 명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굳게 버텼다.
“방패벽!!”
지휘관이 소리 지르자 지휘관을 포함한 전열의 병사 4명이 직경 1m의 호플론을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좁은 캠핑장 입구가 청동 방패로 만들어진 벽으로 막혀버렸다.
“온다! 버텨!!
“그르아악!”
좀비들이 괴성을 지르며 전열의 방패에 부딪혀왔다.
평균 60kg 이상인 좀비들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부딪치는 충격이 방패를 통해 전해졌다.
“버텨!”
척!
후열의 병사들이 방패로 전우의 등을 받쳐주며 그 충격을 분산시켰다.
덕분에 전열의 병사들은 충격에 밀리지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후열 거창!”
2열의 병사들이 창을 역수로 쥐고 머리 위로 들었다.
다가오는 적들을 위에서부터 내려찍을 청동 창날이 빛을 반사했다.
“찍어!!”
2열의 창이 좀비들을 향해 찔러졌다.
피가 튀고 사정없이 그들의 몸 곳곳에 구멍이 났다.
하지만 고통을 모르는 좀비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밀어!”
지휘관은 고함을 지르며 자신도 방패를 쥔 왼손에 체중을 실어 강하게 떨쳐냈다.
전열의 병사 모두가 동시에 방패를 떨쳐내자, 좀비들이 방패에 밀려나며 가운데에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으로 전열의 병사들이 창이 내리꽂혔다.
“그르륵!”
“그아악!”
아무리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언데드라지만 거듭된 공격이 이어지자 피해가 속출했다.
방패에 맞아 넘어진 후, 내리꽂히는 창의 세례엔 속수무책이었다.
“효과가 있다! 활 대형!!”
지휘관이 소리치자 4열 4행의 대형이 죽 늘어져 8열 2행의 대형으로 길게 늘어졌다.
그리고 역 아치형으로 가운데 공간을 비워둔 채, 좀비들을 포위하는 진형이 되었다.
쉽게 말해 학익진이었다.
“그아아악!”
좀비들은 갑자기 공간이 넓어지고 상대할 병사들이 많아지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전열 8명, 후열 8명. 총 16명의 사우레노르 병사들은 그들을 가운데 몰아넣고 창을 찔러댔다.
“아레스여, 우리에게 승리를!!”
“찔러!!”
지휘관의 고함과 함께 연이은 공격에 좀비들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