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441
440화
-다가오는 운명(1)
“티타니아, 정말 아무도 없는 거예요?”
“전혀요.”
티타니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나진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저항했던 거지?’
텅 비어 버린 마교 본산을 지키기 위해서 마교 외당의 무인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가며 마령관을 지켰단 말인가.
이러한 나진의 의문에 개방 방주 주팔공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우리가 무서워 도망간 거 아니겠소?”
“도망이라구요?”
나진의 반문에 주팔공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믿기지 않소. 하지만 저들이 자신들의 본거지를 놔두고 도망갈 것 같지는 않아서 하는 소리요.”
“거지의 말이 맞소이다. 천산산맥은 마교 놈들의 손바닥 안이니 우리가 오는 것을 보았겠지요. 우리의 위세를 보고 도망친 게 틀림없소이다.”
무당의 장문인 태허자마저도 주팔공의 의견에 맞장구를 쳤다.
소림의 방장 현당은 염주를 굴리며 불호를 나직하게 외울 뿐 의견을 내지 않았다.
나진은 은미환을 돌아보았다.
“은 맹주는 어떻게 생각해요?”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은미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마교 본산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공성지계(空城之計) 즉, 성을 비우고 적을 유인하는 책략일 수도 있어요.”
“어머님의 말씀은 우리가 적의 술수에 놀아나고 있다는 건가요?”
유주의 물음에 은미환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언제라도 매복한 적이 나타날지 모를 일이야.”
그렇게 말하는 은미환은 자신의 애병인 검을 꼭 잡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수긍한 다른 이들도 경계 태세를 높이기 시작했다.
티타니아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헹, 헛수고예요.”
“티타니아?”
티타니아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은미환과 무림맹의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말했잖아요. 여기엔 아무도 없다고.”
티타니아의 짜증스러운 대답에 은미환도 기분이 상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티타니아 공의 신묘한 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에 책임을 지실 수 있나요?”
은미환의 뾰족한 질문에 티타니아는 피식 웃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대답한 이는 나진이었다.
“그녀의 말을 믿으세요.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알아챌 수 있었을 거예요.”
“하오나, 현녀님…….”
“무명객이에요.”
나진은 은미환의 실수를 지적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분석의 안약]을 쓴 제 눈에도 사람이 보이질 않아요. 여기엔 정말 아무도 없는 것 같네요.”
나진마저 그렇게 말하자 은미환도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이들이 의문에 빠졌다.
그럼 대체 마교도들은 어디로 간 것인가?
나진은 자신들 중 유일하게 마교 본산에 와 본 적이 있는 사람을 불렀다.
“소걸개.”
“부르셨습니까.”
소걸개 소찬경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재빨리 달려왔다.
저 재빠른 경공이 바로 그를 마교 본산에 침입한 뒤에도 살아나올 수 있게 해준 능력이었다.
“마교 본산에 원래 사람이 이렇게 없었나요?”
“그럴 리가요.”
소찬경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제가 본 것만 해도 수천 명이 넘었습니다. 천산산맥에 흩어져 있는 마교도들을 모두 모으면 수만 단위가 될 겁니다.”
소찬경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이 단시간에 수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당혹스러운 건 지도부뿐만이 아니었다.
목숨을 건 사투를 각오하고 마령관을 넘어 본산으로 들어온 무림맹의 무인들 역시 적진에 아무도 없는 현 상황에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상황에 가장 속이 타는 이는 나진과 티타니아였다.
“이러고 있는 시간에도 주인님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한심하다는 눈으로 무림맹 무인들을 바라보는 티타니아의 모습에 지도부들이 발끈했지만, 그들이라고 딱히 대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나진이 결정을 내렸다.
“다 태워 버리죠.”
“네?”
나진의 말에 놀란 은미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삼인방 역시 입을 쩍 벌리고 나진을 바라보았다.
나진은 그런 지도부들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옛말에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운다는 말이 있죠. 그 말은 곧 초가삼간을 다 태우면 빈대는 확실하게 죽는다는 소리예요.”
“그건 무명객의 말씀이 맞다만, 그 방법이 과하지 않겠소이까.”
태허자가 당황스럽다는 듯 수염을 잡아당기며 말끝을 흐렸다.
다른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태울 초가삼간은 내 집도 아니에요. 그럼 망설일 게 뭐가 있나요?”
나진의 눈가에 잔혹한 빛이 떠올랐다.
“빈대를 잡을 수 있다면 다 태우는 걸 피할 이유가 없어요.”
“역시 나진 양! 선택 한번 시원하네요.”
당혹스러워하는 지도부와 달리 티타니아는 만족스러운 듯 환하게 웃으며 나진의 팔에 매달렸다.
“이럴 때 보면 꼭 주인님이랑 똑같다니까.”
“어머, 진짜요?”
이현과 같다는 말에 나진 역시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이현은 항상 기발한 방법으로 난국을 타개했다.
그런 이현과 닮은 방법이라니. 나진에게는 자신감이 상승하는 칭찬이었다.
“기왕 태우는 거 화려하게 터뜨리죠?”
“수류탄은 많이 남았어요?”
“숫자는 걱정하지 말아요. [워터게이트]로 또 가져오면 되니까.”
메마른 사막과 돌산으로 이루어진 천산산맥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마교 본산에는 식수원으로 쓰는 샘과 냇가 따위가 여럿 있었다.
그것들을 이용한다면 [워터게이트]를 열어 부족한 물자를 보급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와이트 분들한테 수류탄 투하를 부탁드릴게요.”
“그럴게요.”
나진의 부탁에 티타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이트들이 하늘을 날면서 수류탄을 던지면 폭격기의 폭격도 남부럽지 않을 터였다.
나진은 티타니아에게 지시를 내린 뒤 은미환과 삼인방을 바라보았다.
“무림맹은 다시 마령관으로 물러나요. 곧 이곳에 폭발이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이미 무림맹과 화산을 습격한 마교도들과의 싸움에서 벽력탄의 위력을 본 그들이었다.
휘말리면 자신들만 다친다는 사실을 알기에 철수는 빨랐다.
“모두 마령관으로 후퇴하라!”
“벽력탄이 비처럼 떨어질 것이외다!”
그렇게 무림맹의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몸을 피하고 수류탄을 담은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갈 때였다.
“티타니아?”
나진은 와이트들을 부려 한창 공습을 준비를 하고 있던 티타니아가 석상처럼 멈춰선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요?”
“방금 굉장히 낯이 익은 기운이…….”
허공을 노려보는 티타니아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 떠오른 감정은 아련함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티타니아? 이현이를 찾은 거예요?”
나진이 당황해서 그녀를 부르자 티타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주인님은 아니에요. 아니, 주인님이랑 관계가 있으려나?”
대답하는 티타니아도 당황한 듯 말이 중구난방이었다.
티타니아는 본인도 답답한지 머리를 양손으로 헝클어뜨리고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안 되겠어요. 좀 알아보고 올게요.”
“티타니아?”
갑자기 마교를 공략하다 말고 자리를 이탈하겠다는 티타니아의 말에 나진이 당황해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티타니아의 결심은 단호했다.
“주인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도 있어요. 가능성은 적을지 몰라도 시도는 해봐야겠어요.”
“그런 거라면 알겠어요.”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요. 여기는 부탁할게요.”
말을 마친 티타니아가 날개를 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쓸 만한 원군을 보내 놓을게요!”
“원군이요?”
나진이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티타니아는 대답하지 않고 [워터게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티타니아가 저런 표정 짓는 건 처음 봤어요. 무슨 일이에요, 언니?”
수류탄 투하 준비를 모두 마친 송아가 다가와서 나진에게 물었지만, 그녀라고 알 리가 없었다.
나진은 가볍게 어깨만 으쓱여 보였다.
“티타니아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할 거야. 우리만큼 아니, 어떻게 보면 우리보다 더 이현이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깐.”
“……난 인정 못 해요. 내가 제일 찾고 싶은걸.”
송아가 입을 삐죽이는 모습을 보고 나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래. 내가 제일 이현이를 되찾고 싶다고 생각하는걸.”
“언니라면…… 양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무슨 소리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진의 물음에 송아가 딴청을 피웠다.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음을 지은 나진은 곧 다시 얼굴을 무섭게 굳혔다.
“그러니 얼른 이현이를 찾자. 여기를 모두 폭파시키더라도 말이야.”
“네!”
송아가 힘차게 대답하고는 수류탄 상자로 다가가 [염동력]으로 여러 개의 수류탄을 들어 올렸다.
그녀를 필두로 와이트들 역시 수류탄을 들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대부분은 수류탄에 [사물 빙의]해서 허공으로 떠올랐고, 송아처럼 [염동력]을 쓸 수 있는 와이트들은 수류탄을 들고 날아올랐다.
나진은 그런 와이트들이 편하게 수류탄을 던질 수 있게 커다란 수류탄 상자를 통째로 들고 하늘로 떠올랐다.
“그럼, 지금부터 마교를 전부 폭파시키자구요. 시작해요.”
나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핀이 뽑힌 수류탄들이 일제히 마교 본산의 건물들 위로 떨어져 내렸다.
쾅! 쾅! 쾅! 쾅!
폭발의 비가 마교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날이었다.
* * *
한편, 티타니아는 전속력으로 던전의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몹시도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아버지의 느낌이 나는 거지?”
나진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 아주 희미했지만, 티타니아의 감각에 잡힌 건 ‘규격 외의 힘’이었다.
“이게 어떻게…….”
처음에는 이현이 가진 규격 외의 힘인 줄 알고 기뻐했었다.
이현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 느낌은 이현의 것과 달랐다.
“……이건 아버지 거야.”
이현은 정식으로 규격 외의 힘을 승계했지만, 그가 가진 힘은 티타누스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반신의 격을 갖췄다지만, 규격 외의 힘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그였기에 아직 그가 쓸 수 있는 힘의 범위는 한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티타누스가 전성기 때 사용하던 규격 외의 힘에 비하면 대붕과 참새의 차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런데 방금 티타니아가 느낀 힘은 참새가 아니라 대붕의 그것이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티타누스가 소멸한 건 몇 번의 우주 전이었다.
그는 총관을 구하기 위해 벌레 신에게 한입에 집어 삼켜져 소멸했었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힘의 반절을 잃고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 시기였다.
그리고 그 줄어든 힘의 반절을 또 사용해 티타니아를 창조한 다음의 일이었다.
“아버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티타누스는 자신의 창조물을 진심으로 사랑해주었다.
언제나 티타니아에게 친구를 닮은 날개를 가졌다며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찬해주어서 총관이 ‘딸바보’라며 쓴웃음을 지을 정도였다.
티타니아는 자신을 창조한 아버지를 언제나 사랑했고 따랐었다.
그랬기에 아버지가 소멸한 것을 알았을 때는 말 그대로 우주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우주가 무너지는 것보다 더 충격이었지.’
실제로 우주가 멸망하는 것을 겪어본 티타니아에게 티타누스의 소멸은 그보다 더 큰 슬픔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티타누스의 기운이 느껴진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총관님께 가야 해.”
티타니아는 서둘러 던전 마켓으로 향했다. 그곳을 통하는 게 총관에게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아차, 그 전에 나진 양을 도와줄 친구들을 먼저 불러내야지.”
던전수로 향하기 전, 티타니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고풍스러운 유럽의 공중전화부스 형태를 한 시간 조절 장치, 타이미와이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