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491
490화
-마지막 한 수(4)
위대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존재가 지금 이곳에 강림했다.
지네, 전갈, 말벌, 바퀴벌레, 파리, 나방, 거미, 개미 등 온갖 혐오스러운 곤충들이 뒤섞인 그의 모습은 형언할 수조차 없었다.
그의 육체는 항상 변하고 고정되었으며, 항상 소멸하고 태어나는 불가해한 모습이었다.
“버, 벌레 신!”
“이럴 수가…….”
포뢰선과 청명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십이선에서 가장 오래된 둘인 만큼, 그들은 벌레 신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으윽!”
등장만으로도 우주 전체를 내리누르는 압력.
벌레 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압력과 사기가 얼마나 짙은지 대사도와 싸우느라 약해진 이현의 분체 몇은 그것만으로도 소멸할 정도였다.
“도, 돌아와!”
이현이 서둘러 분체들을 회수했지만, 꽤 많은 수가 소멸해 버렸다.
벌레 신의 압력은 예상치 못한 타격에 비틀대는 이현은 물론이고 같은 편이 분명한 대사도들마저 짓누르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전투는 중단되었다.
아니, 중단되는 줄 알았다.
“네놈이 바로 벌레 신이구나! 마란륵의 원수!”
온몸의 푸른 털을 피로 붉게 물들인 늑대 하나가 벌레 신에게 달려들었다.
“너를 용서할 수 없다! 죽어라!”
“안 돼! 적라! 뒤로 물러나라!”
청명이 사색이 되어 외쳤지만, 반려를 잃은 적라는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상태였다.
콰아앙!
전신의 격을 모두 쏟아부은 채로 적라가 어마어마한 빛을 뿜어내며 벌레 신에게로 달려들었다.
마치 그 힘의 여파로만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하찮군.]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모습은 마치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과도 같았다.
[꺼져라.]“캐애애앵!”
벌레 신이 사마귀처럼 생긴 앞발을 휘두르자 적라의 몸이 조약돌처럼 튕겨 나갔다.
십이선이자 우주적 존재가 전력을 다한 공격이 벌레 신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 것이었다.
“적라!”
우주 멀리 튕겨 나가는 적라의 몸을 청명이 재빨리 날아가 받아냈다.
“케흑, 케흐르륵.”
다행히 목숨은 붙어 있는지 적라의 입에서 희미한 숨소리가 들려왔지만, 당장 소멸해도 이상하지 않을 빈사 상태였다.
‘단순히 앞발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이었다.’
이현은 벌레 신의 진짜 힘을 보고 밀려오는 절망을 견뎌내기 위해 이가 부러져라 악물었다.
얼마나 턱에 힘을 줬는지, 규격 외의 힘으로 새로 만들어진 치아임에도 부러질 것만 같았다.
다른 십이선도 마찬가지였다.
벌레 신을 본 적이 있던 포뢰선과 청명을 제외하곤 손가락 까딱하는 것도 자의로 하지 못할 정도로 모두 굳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사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포함해 전장을 둘러보는 벌레 신의 눈빛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벌레 신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큰 피해라니.]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에 대사도들이 움찔거리며 공포에 떨었다.
벌레 신은 모든 사도를 낳은 자이자 언제라도 그들의 목숨을 회수할 권한을 가진 존재.
우주 곳곳의 신들마저 업신여기는 대사도들도 그들을 낳은 벌레 신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한 존재였다.
[아, 아버지시여……!]흡혈 파리 떼로 이루어진 얼굴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희의 예상보다 적이…….] [시끄럽다.]퍽!
수조 마리에 이르는 흡혈 파리 떼가 벌레 신의 말 한마디에 동시에 터져 나갔다.
허무한 최후였다.
[이븐 자토스가 세운 완벽한 계획을 망쳐놓고서는 하는 말이 예상보다 적이 강하다?]벌레 신은 떠다니는 사도의 알은 무시한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븐 자토스였다면 더 현명하게 움직였겠지. 표사트였다면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고 저 버러지들을 모두 잡아먹었을 거다.]여전히 어떠한 감정도 없는 목소리였지만, 이현은 지금껏 들었던 그 어떤 목소리보다도 끔찍한 공포를 느껴야 했다.
규격 외의 신이 된 이후로 처음 느끼는 공포였다.
벌레 신을 타도해야 할 십이선도 서로 몸을 부둥켜안고 공포에 떨기 바쁠 정도였다.
[우선은 너희에게 벌을 내린 후, 내가 친히 저 버러지들을 잡아먹겠다.] [커헉!]벌레 신이 바라보자 살아남은 대사도 중 하나가 미친 듯이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의 손을 더럽히지 않겠나이다!]자신을 죽이려는 자의 수고를 아끼기 위해 자살을 시도하는 대사도의 모습은 희극에 가까웠다.
하지만 근원적인 공포에서 비롯된 그 모습을 보고 웃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퀴에에엑!]결국, 대사도의 자해는 성공해 사도의 알만 다시 우주를 둥둥 떠다녔다.
이제 남은 대사도는 단 하나였지만, 벌레 신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조차도 알아서 자살을 시도할 게 분명했으니까.
그렇기에 벌레 신은 자신의 대사도가 아닌 십이선을, 그리고 이현을 바라보았다.
“큭!”
“커헉!”
단순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십이선과 이현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껴야 했다.
‘차원이 달라. 그냥 완전히 격이 다른 존재야.’
부하들과 필멸자들을 위해 자신의 격을 대부분 숨기고 있는 총관과는 달랐다.
벌레 신은 그냥 있는 그대로 자신의 힘을 여과 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이현이 그렇게 지키기 위해 애썼던 새로운 지구가 만약 이 자리에 있었다면, 벌레 신의 존재만으로도 가루가 되어 흩어졌을 터였다.
아무리 이현과 십이선이 우주적 존재라지만, 대사도와의 전투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절대적 존재가 내뿜는 힘을 견뎌내는 일은 고문에 가까웠다.
[거기까지 하지 그래, 오라버니?]순식간에 그들을 내리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벌레 신의 압박에서 이현과 십이선을 구해준 이는, 다름 아닌 총관이었다.
“초, 총관님……!”
압력에서 풀려난 청명이 숨을 헐떡이며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파리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청명을 향해 총관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너희가 수고한 덕분에 오랜만에 내 형제의 얼굴을 보게 됐으니까.]총관은 벌레 신을 힐끗 보더니 자신과 함께 강림한 티타니아에게 지시를 내렸다.
[가서 네 주인과 동료들을 도와주도록.]“네, 총관님.”
티타니아의 몸이 8개로 나뉘며 살아남은 십이선과 이현에게로 향했다.
그중 본체는 당연히 이현에게 갔다.
“주인님, 괜찮아요?”
“티타니아, 네 얼굴이 반가울 줄이야.”
“이 와중에 그런 말이 나와요?”
“농담이야, 농담.”
장난을 치는 이현을 보는 티타니아가 도끼눈을 치켜뜨자 이현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티타니아를 와락 껴안았다.
“네가 와줘서 다행이다. 정말이야.”
“……주인님.”
갑작스러운 이현의 포옹에 잠시 당황해 얼굴을 붉힌 티타니아였지만, 그녀 역시 가늘게 몸을 떠는 이현을 마주 안아주었다.
“고생했어요. 이제 다 끝났어요.”
“…….”
생존을 위해 온갖 죽을 위기를 넘겼고 힘을 길러온 이현이었지만, 이번 전투만큼은 차원이 달랐다.
존재만으로도 우주적 공포를 불러오는 대사도들과 싸우느라 죽을 뻔한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겨야 했다.
함께 싸우던 십이선 중에는 실제로 죽은 이도 나왔다.
‘마란륵, 목염, 태경군…… 그리고 적라.’
죽은 십이선과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적라를 보는 이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언제나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퉁명스레 대하던 적라였지만, 반려를 잃고 울부짖던 그의 모습에 이현은 동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만약, 자신도 새로운 지구를 잃거나 티타니아를 잃었으면 저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현의 마음을 읽은 건지 티타니아가 그를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요. 이제 총관님이 해결해 주실 거예요.”
티타니아의 위로에 이현이 고개를 들어 총관을 바라보았다.
절대자가 창조한, 우주에 단 둘뿐인 지고한 존재.
총관과 벌레 신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덤덤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서 오거라, 나의 누이여. 여전히 탐스러운 힘을 지니고 있구나.] [그런 오라버니는 여전히 탐욕스럽군. 적당히 하지 않으면, 그 탐욕이 재앙을 불러올 거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를 기억하는 게 좋을 거야.]서로 평범하게 안부를 묻는 듯한 내용의 대화였지만, 그 안에 숨겨진 뜻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벌레 신은 총관을 집어삼키고 절대자와 같은 위치에 오르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총관은 절대자가 또 다른 절대자의 탄생을 막기 위해 자신들을 창조했음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랜 시간 나타나지 않은 절대자가 직접 나타날 것이기에.
[…….] […….]둘은 서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격과 기운은 마치 새로운 우주가 태어나는 듯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었다.
“……대단하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에 이현은 단 4글자로 이루어진 감탄사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규격 외의 신이 되면서, 우주적 존재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더 올라갈 곳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절대자가 창조한 두 지고한 존재의 대결을 보는 순간, 그들에 비교하면 이현은 자신이 여전히 미물로만 보였다.
처음 총관과 던전에서 만났던 그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저들보다도 더 위의 격이 있는 건가.’
이현이 격의 차이에 허탈해할 수밖에 없었다.
“저 둘이 서로 붙게 되면 그 여파만으로도 우리가 소멸할지도 모르겠네.”
이현의 중얼거림을 들은 티타니아가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총관님과 벌레 신이 맞붙을 일은 없을 테니까요.”
“왜?”
“13번이 넘는 우주의 역사 속에서 총관님과 벌레 신이 서로 맞붙은 건 단 한 번이에요.”
“한 번?”
이현은 생각보다 너무 적은 횟수에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왜 그렇게 적은 거지?”
“그야, 당연한 일이에요.”
티타니아는 질린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이현의 질문에 대답했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저 둘의 힘이 격돌하면, 우주가 멸망해요.”
“뭐?”
“말 그대로의 의미예요. 두 번째 우주는 저 둘이 겨뤘던 일 합의 충격만으로도 소멸했어요.”
우주를 지배하는 이들은 단 일 합의 충격으로 우주를 소멸시킬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현이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워하다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표정을 굳혔다.
“만약 여기서 저 둘이 붙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우주가 정말 멸망하면…….”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기껏 자신이 지키려고 노력했던 새로운 지구도 우주와 함께 소멸할 터였다.
이현의 심각해진 얼굴을 본 티타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 이후로 총관님과 벌레 신은 서로 싸우지 않아요. 우주를 유지하는 게 절대자의 뜻이니까.”
물론, 그 협정이 깨질 뻔한 적도 있었다.
티타누스가 벌레 신에게 죽던 날, 총관은 그 협정을 깨고 벌레 신과 싸울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총관은 벌레 신과 직접 붙을 생각이 없었다.
[이쯤에서 물러나지, 오라버니?] [우습군, 도발은 네 쪽에서 먼저 시작하지 않았는가?] [우리 쪽이라니?]벌레 신의 말에 총관이 불쾌함을 드러내자 그는 총관이 아닌 이현을 바라보며 입을 다시 열었다.
[너와 나의 휴전은 티타누스의 죽음 위에 이루어졌지.] […….]사랑했던 아들의 이름이 그 아들을 잡아먹은 이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총관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벌레 신은 말을 이어나갔다.
총관이 으르렁대며 벌레 신의 억지를 비난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억지든 아니든 상관없다. 나는 너와 싸울 생각이 없으니까.]총관과 싸울 생각이 없다는 벌레 신의 말은 진심이었다.
아직 총관 진영과 벌레 신의 무리의 균형이 완벽하게 기울기 전에 급하게 일어난 대전쟁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 총관을 죽이고 잡아먹는 것은 아무리 벌레 신이라도 무리에 가까웠다.
그 모든 것이 갑자기 나타난 도이현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서 저놈을 죽여야겠다. 그러고 나면 순순히 사라져 주도록 하지.]양 진영의 저울추를 뒤흔들 수 있는 존재.
벌레 신의 목표는 바로 규격 외의 신, 이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