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63
62화
-재회(1)
“전사라고?”
이현은 리코스의 아내 이야기에 흥미가 생겼다.
사우레노르에게 남녀의 신체적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너랑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해?”
유치한 질문이었지만, 리코스의 강함을 훈련을 통해 느꼈던 이현은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글쎄요. 그녀에게 지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이긴다고 장담하긴 힘들겠군요.”
리코스의 아내, 디르케는 이스메이아의 백인 대장이었다.
“백인 대장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100명 단위의 병력을 통솔하는 지휘력도 백인 대장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열 제일 앞에서 적을 도륙할 수 있는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이스메이아에는 20명의 로카고스가 있었고, 그들보다 뛰어난 전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
즉, 디르케는 이스메이아에서 최소 30위 안에 드는 실력을 갖춘 전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디르케와 함께 수련하고 결투로 서로를 성장시켜왔던 리코스는 비슷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전장에서는 그녀가 훨씬 뛰어나지요.”
리코스는 서로의 적성이 다르다는 말로 차이를 설명했다.
“저는 누군가를 지키고 함께 싸울 때 더 강해지지만, 그녀는 누군가를 공격하고 지휘할 때 더 강합니다. 그녀는 천성이 군인이자 전사니까요.”
아내의 자랑을 하는 리코스의 얼굴이 환했다.
하지만 다시 보지 못할 아내를 이야기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는 걸 안 이현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 용에 관한 이야기 좀 더 해줄래?”
“이스메니오스의 드라콘 말씀입니까?”
“응.”
흥미로운 전설이기도 하거니와, 적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나쁘지 않은 정보였다.
‘거기다 아레스라니,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유명한 신의 이름이잖아.’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전신, 아레스.
고대 그리스와 비슷한 문명을 지닌 사우레노르들이 섬기는 신이 그리스 신화의 유명 신과 이름이 같았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공교로웠다.
“전설에 따르면 위대한 드라콘은 죽지 않고 낙원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떠나기 전, 드라콘은 자신의 후손들에게 두 가지 임무를 남겼다.
하나는 자신이 지키던 이스메니오스의 샘을 지킬 것.
다른 하나는 샘 주변에 도시를 세우고 번성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내이자 조화의 여신인 하르모니아와 함께 낙원 엘리시온으로 갔다고 전해져왔다.
“신성하고 위대한 드라콘에게서 태어난 격 높고 고귀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드라콘은 기름진 이스메니오스의 샘 주변의 흙에 자신의 송곳니를 파묻었다.
거기서 5명의 용아병이 태어났다.
“5명의 용아병 에키온, 크토니우스, 히페레노르, 펠로로스, 우다이오스들은 인간을 굴복시키고 도시 이스메이아를 창건했습니다.”
가장 신실했던 크토니우스가 신전을 지어 제사를 올렸다.
가장 공정했던 히페레노르가 백성들을 다스렸다.
가장 손재주가 뛰어났던 펠로로스가 집과 성벽을 지었다.
가장 긍휼했던 우다이오스가 인간 노예들을 데리고 농사를 지어 식량을 마련했다.
그리고 가장 격 높은 에키온이 왕이 되어 모두를 다스렸다.
“그것이 이스메이아를 다스리는 5대 가문의 시작입니다. 그들은 남은 카드모스의 인간 잔당을 해치우고…….”
“잠깐, 카드모스라고?”
“네. 인간들의 우두머리이자 영웅으로 이스메니오스의 샘을 차지하기 위해 드라콘에게 덤빈 어리석은 자이지요.”
“…….”
우연이 한 번 더 겹친 걸까?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용을 물리치고 테베를 건설한 그리스의 영웅 카드모스.
놀라울 정도로 전설이 지구와 비슷했다.
그 결말의 승자가 카드모스가 아니라 용이라는 걸 제외하곤.
지구의 신화에선 용을 물리치고 샘을 아테나에게 바친 카드모스가 여신의 조언을 얻어 용아병, 스파르토이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을 얻어 카드모스는 훗날 테베라 불리는 도시 카드메이아를 건설했다.
‘결과는 정 반대지만, 나머지는 거의 판박이야. 어떻게 된 거지?’
사우레노르가 사는 행성은 지구에서 관측된 적이 없는 아주 먼 우주에 존재했다.
거기다 행성을 지배하는 지적 생명체 역시 판이하게 달랐다.
그런데 그런 곳에 지구와 유사한 신화와 전설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상외의 정보에 이현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왜 그러십니까?”
“우연이라기엔 이상하지만, 지구에도 비슷한, 아니, 거의 같은 전설이 있어.”
이현이 막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찰나였다.
“주인님!”
티타니아가 포로롱 날아올라 이현에게 다가왔다.
“누군가가 게이트를 통해 던전 안으로 들어왔어요!”
이현 역시 외부의 침입을 느꼈기에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몇 번의 전투를 겪었고, 최근에는 그 없이도 헌터들을 상대할 정도로 던전이 강해지긴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헌터의 침입은 항상 그를 긴장하게 했다. 게다가 이번의 침입은 뭔가 이상했다.
“제길, 밤중에 들어오다니 처음 있는 일인데?”
햇볕을 쬐어야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파충류들이 밤에 던전에 들어온 것에 이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이상하군요. 저희는 원래 밤에는 집 밖으로 나오질 않습니다.”
리코스마저도 이현의 이상함에 동의했다.
거기다 이상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반응이 너무 약한데?”
* * *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키타이론산의 중턱.
모든 걸 버리고서 디르케는 던전으로 들어가는 게이트의 앞에 서 있었다.
끔찍이도 싫어하던 아버지에게 소중한 알을 맡기고 올 정도였다.
원치 않게 합류해야 했던 일행을 제외하면 말이다.
“더럽게 춥군. 꼭 이런 시간에 움직여야 하는 겁니까?”
한쪽 눈이 짓뭉개진 애꾸 사우레노르 남성이 투덜댔다.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떠는 그의 몸 이곳저곳은 흉터로 한가득했다.
디르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그의 태도에 잠시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원치 않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도 좋다. 보수는 이미 받았을 텐데?”
“헹!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으리의 의뢰는 당신과 함께 던전에 가는 거였습니다.”
그는 홀로 던전으로 들어가겠다는 그녀에게 아타마스가 황급히 붙여준 용병이었다.
그것도 시시껄렁한 빈민 출신 헌터가 아니라, 귀족 출신에 군 경험도 있는 고급 헌터였다.
‘마코스라고 했던가.’
지금은 군에서 은퇴하고 헌터를 하고 있지만, 5대 가문의 더러운 뒤처리를 주로 맡는 해결사였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자를 딸려 보내신 건지.’
5대 가문 출신인 그녀도 소문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아주 괴팍하고 끔찍한 성격의 소유자로, 그 성격 때문에 군에서도 불명예스럽게 쫓겨났었다.
‘별명이 도살자였던가.’
전장에서 필요 이상으로 적의 시체를 난도질하거나, 눈에 띄는 인간 노예를 잡아다 토막 내어 죽이는 등 악명이 높았다.
광기의 여신에게 미움을 샀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거,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실력 하나는 뛰어나니까.”
마코스가 거대한 나뭇잎 모양의 외날 칼인 코피스의 칼등으로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무게 중심이 불룩 튀어나온 검 끝에 있어, 마치 도끼처럼 상대의 몸을 쪼개어 놓는 무서운 무기였다.
정규 군인들은 잘 쓰지 않는 무기로, 피와 난도질을 좋아하는 그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실력은 확실하지.’
그러지 않았다면, 귀족 출신이면서 문제만 일으키는 그를 5대 가문들이 가만히 내버려 뒀을 리가 없었다.
그의 실력이 아까웠기에 이렇게 살려놓고 그들의 해결사로 쓰는 것이다.
“리코스, 그 친구를 찾으면 되는 겁니까? 전에 한두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살아 있으려나 모르겠군.”
“입조심 해.”
찌릿, 디르케가 노려보자 마코스가 목을 움츠리며 사과했다.
“이런, 미안합니다. 요 입이 방정이라서.”
하지만 건들거리는 그의 가벼운 태도는 전혀 반성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디르케는 이를 악물었다.
‘상종하기도 싫은 녀석이야.’
해결사가 주업이지만 마코스는 던전에도 드나드는 헌터이기도 했다.
주로 5대 가문이 원치 않는 자를 던전에서 처리하려고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그는 리코스와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디르케는 리코스가 그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걸 떠올렸다.
‘인간을 좋아했던 리코스가 인간을 흥미 삼아 썰어대는 이런 쓰레기를 좋아할 리 없지.’
그리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마코스가 던전에 익숙하고 리코스의 얼굴을 아는 실력 있는 용병이 아니었다면, 절대 그녀는 그와 함께 오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코스는 혀를 날름거리며 추위도 잊고 흥분해 있었다.
“이 던전의 몬스터들이 인간이라 들었는데 맞습니까?”
“그래. 정확히는 죽은 인간, 네크로트로모스들이지.”
“죽은 인간들도 써는 맛이 있을까 모르겠네. 손맛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욕망에 젖어 번들거리는 그의 표정은 끔찍할 정도였다.
디르케는 혐오감을 억누르며 그에게 못을 박았다.
“명심해. 리코스를 찾는 것이 우선이야.”
“거, 참. 내 의뢰인도 아니면서 너무 빡빡하십니다?”
디르케의 완강한 태도에 불만을 가진 마코스가 투덜거렸다.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저렇게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디르케의 태도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의 의뢰인은 5대 가문의 수장인 아타마스였지, 그에게 쫓겨난 딸인 디르케가 아니었다.
“내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디르케는 그의 건방진 태도에 두말하지 않고 대답 대신 검을 뽑았다.
스르릉.
뽑혀 나온 디르케의 파라조니온을 보는 마코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비릿한 미소가 그의 입에 걸렸다.
“뭡니까, 이건? 한 판 해보자는 겁니까?”
“네가 리코스를 찾는 데 방해가 된다면 언제든지 이 검이 네 목에 꽂힐 거다.”
“그럴 실력은 있으시고?”
마코스의 도발에 디르케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검을 쥔 손에 힘을 꾹 줄 뿐이었다.
잠시 동안, 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졌다.
결국, 먼저 손을 든 건 마코스였다.
“항복입니다, 항복. 백인 대장 나으리께 저 같은 은퇴 군인 따위가 상대나 되겠습니까?”
마코스는 과장된 몸짓으로 칼을 집어넣고 양손을 번쩍 들어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어필했다.
“의뢰인의 따님이시면 의뢰인이나 마찬가지지. 잘 따를 테니깐 그만 봐주시죠.”
디르케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그를 믿을 수야 없었지만, 여기서 싸워서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작전을 설명했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그들의 본거지를, 넌 반대편을 탐색한다.”
같이 다닐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리코스의 얼굴을 아는 자니 따로 찾는 것이 더 효율이 높았다.
“알겠습니다. 혹시 몬스터들을 만나면…….”
“네 맘대로 하도록. 대신 리코스가 우선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섬뜩한 웃음을 짓는 그를 보며 디르케는 어이가 없었다.
스티코스 단위의 군인들도 전멸한 던전인데 제 쾌락을 채울 욕심에 들떠 있다니.
“그게 실력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이길 빌겠어.”
“들어가서 보여드리죠.”
단순히 피에 미친 정신병자라면 리코스를 찾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게 뻔했다.
디르케는 그를 향해 본능적으로 드는 혐오감을 억누르며 게이트 앞에 섰다.
‘리코스, 살아 있어 줘.’
모든 것을 건 자의 비장한 눈빛이 게이트 너머 던전으로 향했다.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