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37
23 화
긴장이 꺼져 버린 후에 찾아온 건 지 독한 통증들이 었다.
엔테과스토처럼 골격이 드러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왼팔의 요골(樓骨,아래팔뼈 중 바깥쪽 뼈)은 부러진 그대로 피부를 뚫고 나와 있었다. 다리는 의식해서 중심을 실어야 한다.
내장들은 화끈거 리다 못해 비틀리거 나 쥐어짜이고 있는 느낌이고.
부쩍 커져 버린 피로감은 어깨를 짓 누르고 있었다.
[ 둠 엔테과스토의 권능 ‘?’이 해제 되었 습니다.]그때부터.
눈알이 터져나가 버린 게 아니고서 야,치유 스킬은 따로 필요 없었다.
튀어나와 있던 뼈들이 제자리를 찾 아간다. 그리고 그 위에 근육이 빠르 게 붙으며 피부를 씌워 나간다.
재생 속도는 빨랐다.
이런 재생력이라면 어지간한 자상이 나 열상 같은 건,입자마자 바로 재생 될 일이다.
당장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 고 있었던 피로감 역시 어느 순간 날 아가 있었다.
몸은 처음처럼 가벼워졌다.
엔테과스토를 확인해 보았다.
놈은 밀쳐진 먼 자리에서 여전히 위 만 올려다보고 있었는데,놈의 작은 상처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 다.
그러나 놈에게는 가장 큰 타격이라
할 수 있었던 목 언저리가 아직도 그 대로였다.
여전히 뼈대만 드러나 있다.
내게 타격을 입기 전까지만 해도 거 긴 본시 살점이 붙어 있었다.
지금 거기가 드러나 버린 건 다시 복 구할 수 없다 쳐도,전투가 끝난 이상 에야 부상은 다스릴 수 있는 일 아닌 가.
하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회복시키지 못하는 어떤 제약이 걸려 있는 모양이 다.
원래도 놈의 갑옷은 온전치 않았었 다.
이번 격돌로 놈의 갑옷에는 더 많은 균열이 생겼다. 부상도 늘어났다.
참가비는 나만 지급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놈의 손해가 더 컸다.
그러니 왜 웃음이 나오지 않겠는가.
쓴웃음이 입가를 스쳤다.
최종적으로 놈이 들고 있던 검 역시 빠르게 사라졌다.
검의 울림으로 나왔던 소리는 이제 실제 놈의 심장에서 울려 댔다.
그때 놈의 고개가 돌려졌다. 분하고 원통한 놈의 눈빛이 꽤 오랫동안 머물 렀다.
그렇지만 어떤 공포감도 전해져 오 지 않았다.
이번엔 놈이 나보다 우위에 있었으 나 다음에는 다를 것이 다.
그때가 되면 놈은 지금같이 부상이 더 누적되어 버린 몸으로 나를 상대해 야할 것이다.
게다가 복기가 끝나 버 린 나를.
이후 놈이 계단 위로 솟구치면서 장 막 너머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응시하던 시선이 잔영처럼 남아 있는 듯했다. 그 느낌마저 사라져 버린 때,루네아 를 비롯해 다른 녀석들이 강제로 끌려
오는 게 느껴졌다.
공간이 벌어지는 게 시작이었다. 그것들이 여기 공간 안으로 쏠려 왔 다.
제일 하층 계단에 루네아가.
그 위층 계단에 카소가.
그리고 마침 전투가 끝난 직후부터 내가 서 있던 위치는 위에서부터 다섯 번째 계단이었다.
마운을 끌어당긴 힘 역시 여기에 형 성되 었다.
마운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는 속 박의 끈은 쇠사슬처럼 엮여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운신하는 게 가능
해서,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얼굴은 가리고 있던 털들은 꽤 그을 려 있었다. 래서 내게 겁을 먹은 얼굴 이 반쯤 드러나 있었다.
전처럼 냉담한 눈빛은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연희의 크시포스처럼 얌전하다.
본인의 직위를 포기한 녀석.
이 녀석을 구슬려 내는 건 다음 일이 다.
화르록! 탓- !
이제는 내 위치가 된 위층 계단으로 뛰어올랐다.
네 번째 계단.
거기는 장막의 바로 아래였다. 둠 엔 테과스토의 위치까지,장막으로 가려 져 있는 저 미지(未知)의 영역까지 한 계단만 남았다.
거기에서 내려다본 아래에서는 하위 군주들이 한눈에 보였다.
잡것에게도 전투의 여파가 남아 있 었다.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해서 비틀거 리며 떠 있다.
잡것은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몰라 하 다가 결국 고개를 숙이기로 결정했던 모양이다.
손바닥으로 내리치면 얼굴뿐만 아니 라 전신 전체가 한꺼번에 터져 버릴, 그 작은 몸체가 꾸벅 였다.
[……어,그러니까……어……그러니까 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축 하……. ]하지만 잡것의 메시지가 띄엄띄엄 나왔던 것은 잠깐이었다.
[ 축하 드립니다아앗앗! 저 루-네아는 진심으로 감동 받았어요. ] [ 둠 마운은 오늘을 기억하고 항상 경외 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부끄러워 할 것도 없어요. 저라도 둠 마운처럼 했을 테니 까요. 잊지 말자고요. 둠 맨 님께서 이토록 강하신 것은 우리 군주들 모두의 홍복이 랍니다. 왜 아니겠어요. 하. 하. 하. 하. 하. 하……. ]
작디작아서 날파리처럼 윙윙거리며.
[(65 6)오이? 존경과 사랑을 담아서,둠 맨 님께. ]
이딴 잡설에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개안,탐험자 등. 어느 영역 하나 반
응 없이 불쑥 들어오는 메시지가 있었 다.
확실히 내게 잔존해 있는 체계와 둠 카오스가 보내오는 목소리 혹은 잡것 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것은 더는 어렵 지 않은 작업이었다.
[ 당신의 주인,둠 카오스가 내렸던지령 이 수정 되었습니다. ] [ 드라고린 ‘레드’를 추가 발건,제거하 라. (지령) ] [ 더 그레이트 레드를 처치하라 (지령)더 그레이트 레드 역시 둠 엔테과스토와
의 전투로 깊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더 그레이트 레드는 오랜 동면에 접어들 어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그레이트 레드를 깨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더 그레이트 레드의 남은 혈족을 제거해서 더 그레이트 레드가 스스로 잠을 깨고 나 오게 만드십시오. 그리고 처치하십시오.
명심하십시오. 더 그레이트 레드가 하위 군주들에게 남겼던 봉인의 힘이 약해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더 그레이트 테드는 지금도 부상에서 회복 되지 않은 것입니 다.
하지만 그런 더 그레이트 레드 일지라도, 당신이 바로 대적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입니다. 그러니 옛 전장의 유물들을 추 가로 확보 하십시오. 그것들을 추출한다면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공: 고유 권능 개방. 상위 군주인 둠 엔 테과스토를 향한 서열 도전권.
(* 서열 도전에 성공할 경우,둠 엔테과 스토가 차지하고 있는 차원들은 당신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
또한 당신의 주인께서 형성 하실 강력한 힘에 의해, 올드 원의 군단이 당신의 본토 를 공격하는 경우는 완전히 차단될 것입 니다.
실패: 당신의 주인께서 매우 크게 실망
하실 것입니다.
(* 당신의 주인께선 둠 엔테과스토의 목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시게 될 것입니 다. 당신은 예상 할 수 없는,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 었다.
[ 당신의 주인,듬 카오스로부터 지령이 추가로 도착했습니다.] [점령 속도를 높여라 (지령)전세가 만족스럽습니 다.
당신의 인간 군단은 강력 했습니다. 당신
의 주인께선 당신의 군단에게서 많은 가 능성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보여 준 것처 럼 말입니다.
점령 속도를 높여 100일 안에 그린우드 대륙 전체를 점령 하거나,다른 대륙으로 전장을 확장시켜 지금 같은 성과를 보이 십시오.
태생적으로 다른 대륙의 종(種)들은 그 린우드의 원주민들보다 강하다는 점을 염 두에 두십시오.
성공: 당신의 주인께서 당신과 당신의 인간 군단을 치하하여,당신이 원하는 지 역에 마왕성(魔또域)을 건립해 주실 것입 니다.
(* 마왕성은 당신의 주인께서 형성하실 강력한 힘에 의해 보호를 받습니다.)
실패: 다른 군주들의 군단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입니다.] [진행 중인지령
1. 더 그레이트 레드를 처치하라.
2. 점 령 속도를 높여 라.]
원래는 엔테과스토에게 더 그레이트 레드를 떠맡길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둠 아루쿠다나 둠 카오스 본
인이 나설 생각이었던 걸까.
어쨌거나 더 그레이트 레드,성(聖) 제이둔은 이제 내 몫이 되었다.
성공 보상은 더 바라는 게 욕심일 정 도로 부족함이 없었다. 미끼처럼 던져 대는 추가 고유 권능 개방 따위를 말 하는 게 아니다.
엔테과스토에게 다시 도전할 수 있 는 기회가 만들어진다는 것.
게다가 우리 본토에 대한 공격을 완 전히 차단시켜 주는 점은 그나마 남아 있던 불안 요소들을 완전히 치워 버리 는 일이다.
물론 실패 패널티에서 우리 본토를
옭아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도 흡족 하다.
보다시피 둠 카오스가 내민 당근은 채찍보다 컸다.
추가로 떨어진 지령에서도 같았는 데,소기의 목적대로 둠 카오스는 직 전의 전투에서 감화를 받았던 게 아닐 까 싶었다.
다시 확인해도 분명했다.
옛 신마대전의 유물들을 추출해서 사용하라고도 명시되어 있다.
더는 상위 군주들의 물건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는 뜻이 내포되 어 있는 것이다.
둠 아루쿠다와 엔테과스토는 반발이 커져 가고 있을 것이나 놈들이라고 무 슨 재량이 있을까.
엔테과스토는 나와 끝을 보기 직전 에 공격을 멈춰야 했었다.
아루쿠다는 사형 집행이 중단된 지 금에도 장막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있 다.
여기는 전일 클럽와 같은 체제로 돌
아가는 공간.
절대 일인의 체제.
그 젠장할 절대자가 나에게 거는 기 대가 커지고,권한도 늘려주고 있는 것에 대해 두 놈이라고 거역할 수가 없을 것이다.
기다려라,엔테과스토.
우리가 다시 붙은 날은 머지않았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의 공기는 무 거 웠다.
위에서는 장막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이 내리깔리고 아래에서는 마
운과 카소의 기죽은 기색이 전해져 온 다.
그래서 그때도 시끄러운 건,잡것 루 네아 그 새끼뿐이 었다.
[ 부럽습니당〜 둠 맨 님. 일전에 알려드 렸던 일은 보탬이 되셨지요? 위험을 무릅 쓰면서 알게 된 정보였답니다. 앞으로 저 루一네아도 둠 맨 님을 본받아 전세에 보 탬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헤헤햇.]“루네아……
작게 중얼거려져 나온 목소리가 잡 것에게도 들린 듯했다.
[ 루네아가 아니라 루一 네아입니다. 루 – 네아. 아니, 그게 뭐 중요할까요. 편할 대로 불러 주세요. 네. 네. 저는 루一 네아 가 아니라 루네아 입니다. ]루네아는 이 공간의 절대자가 데려 다 놓은 녀석이다. 이용 가치가 충분 하다고 여겨서 군주의 지위를 내려 준 것일 터.
가뜩이나 인색툼은 끔찍이 죽어 버 리고 엔테과스토도 부상이 더 누적돼 버린 상태.
제아무리 둠 카오스라도 더 이상의
전력 소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멋대로 저것을 죽여 버리는 건 둠 카오스가 결코 용인하지 않을 일이다.
둠 카오스는 날 파악한 방식대로 패 널티를 가해 올 거다. 예컨대 본토를 가지고 말이다.
당장은 잡것을 어찌할 방법이 없다 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잡것의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들어오는 것 또 한 당장은.
그렇지만 둠 카오스가 내게 힘을 실 어 주고 있는 지금,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여쭈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나의 주 인이시여!”
장막을 향한 외침은 그렇게 터져 나 왔다.
“루네아와 제 사이에는 아직 해결하 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루네아가 말 하길,당신께서 루네아가 ‘죽음의 서 1권’을 소유하는 걸 인가하셨다고 하 였습니다.”
[ 지,지금…… 무,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하지만 죽음의 서 1권은 최종장에 서 바르바 군단과의 휴전의 대가로 인 계받기로 되어 있던 물건이었습니다. 그 휴전 덕분에 바르바 군단은 저로부 터 많은 수가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최종장은 루네아가 저를 대신해서 그것을 넘 겨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급박했었습니 다. 최 종장 이후에는 어땠습니까. 저는 지금 까지 지금의 전세를 만들기 위해 매진 해 왔었습니다.
루네아가 그것을 넘겨받았다면 응당 제게 인계했을 거라고 생각해 왔었고.
루네아가 당신의 직속으로 합류해 온 이후에도 그것에 대해선 아무런 말 이 없었기에 당연히 루네아가 그것을 넘겨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서야 루네아가 감 춰 왔던 사실을 밝히며 당신께서 인가 하신 일이라 하였습니다. 당신께서 인 가하신 일이시라면 그 부분에 대해서 는 수긍하겠습니 다.
그러나 루네아는 제게 큰 죄를 지었 습니다.
저를 기만하였습니 다.
루네아는 제게 사실을 고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를 기 만하며 속으로 비웃어 왔을 것을 생각 하면 도무지 분을 짓누를 수가 없습니 다.
나의 주인이시여!
이 자리에서 루네아는 저를 기만해 온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또한 만일 당신께서 루네아에게 죽 음의 서를 인가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 면,그 죄는 사형(死刑)으로 다스려져 야 할 것입니다.
루네아에게 징벌을 내려 주십시오!”
[ 사,사형이라고요? ( ) 웃기시네요. 아무것도 모르면 좀 가만히 있으세요. 전지전능하신 우리 주인님께서 저 루一네 아의 공로를 인정해 주신 사안이었걸랑 요〜? 저는 주인님의 지령을 완수 했다구 옷!느려 빠진누구하고는다르게. ] [그렇지요? 주인님. ]
루네아의 반박이 곧장 튀어나왔다.
놀랐던 표정이 증발된 자리에는 자 신만만한 기색이 내려앉았다.
그런데 지령이었다니.
하긴 모든 군주들을 통틀어 행동이 자유로운 건 나만이 아니다.
루네아도 있지.
루네아도 지령을 수행하고 있는 중 이다.
어디에서 어떤 지령을 수행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겠다만,죽음의 서를 가져도 좋다는 인가를 받은 것만큼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 었다.
“그렇다고 저를 기만한 죄가 사라지 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루네아는 합류해 왔을 때 사실을 밝혀야 했습니 다.
또한 루네아는 당신의 전령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뜻과는 다르게 루네아가 전달해 오는 목소리는 경박 하기만 합니다.
본래도 그러한데,저를 기만하고도 그 죄를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제게 얼마나 더 무례하고 건방지게 굴 며 또 속이려 들겠습니까.”
[ 경박이라뇨?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 죠.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네요. 오히 려 둠 맨 님이야 말로 쓸데없이 무거운 거 예요.] [ 주인님. 둠 맨은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저를 걸고 넘어지고 있습니다. 말로는 본 인을 기만한 일 때문이라고 하는데, 에 이~ 그게 진심이겠어요? 죽음의 서를 달 라는 거예요. 둠 맨은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닷! ]이 새끼가…… 끝까지.
“저는 지금 네 번째 계단에 섰습니 다. 장막의 바로 지척에서 당신의 아 래에 있습니다.
지금의 위치에 합당한 권위를 세워 주십시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의 위치가 무 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위 군주들은 무엇을 바라고 더 높은 계단에 도전하 고 싶어 하겠습니까.
제 바람은 하나뿐입니다. 저를 기만 한 것에 대한 죄를 묻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 참으라 하시면 참겠습니다. 그러도록 노력하 겠습니다. 다만,제 진심을 알아주셨 으면 합니다.
나의 주인이시여.”
[나 참…… 이랬다 저랬다,그런다고 우 리 주인님께서 눈 깜짝 하실 것 같나요? 억지는 그만 피우시고,이럴 시간에 주인 님의 지령을 어떻게 완수할지 그거나 궁 리하세요.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씀하시고요. 저도 바쁘긴 하지만,여유 가 생기면 도와드릴게요. 아시죠? 지금도 저는 둠 맨 님에게 존경과 사랑을 담고 있 답니다~ᄍ9ᄍ]그런데 잡것에게 둠 카오스의 어떤 목소리가 전해졌던 것 같다.
잡것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잡것의 시선은 나를 지나쳐 더 위쪽으로 꽂혀 있었다.
다급해서 어쩌지 못하는 것은 그 시 선뿐만이 아니었다.
둠 카오스는 저 잡것 따위보다 내 말 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 주인님……! 둠 맨의 주장은 사실이 아 닙니다. 저는 둠 맨을 기만한 적이 없어요. 제발요,네? ]장막의 윤곽은 고요한 호수처럼 잔 잔하고 칠흑처럼 검다.
처음으로 윤곽이 흔들리는 게 보였 다.
일종의 파동같이 윤곽의 흔들림이 거세졌을 때 잡것을 확인해 보았다.
잡것의 얼굴에 두려움이 깃들고 있 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갈피 잃은 눈길 하며,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워 보였던 날갯짓은 순간의 중심을 잡기 위해 더 빠른 속도로 위잉거 린다.
한참 먼 아래 계단에서 일어나는 주
먹보다 작은 것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 지만,잡것이 느끼는 두려움만큼은 하 위 군주 전체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때 잡것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아니,일그러져 버렸다.
시작의 장 인도관들이 둠 카오스의 악의가 드러난 순간에 보였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흉악해진 그 얼굴에서는 잡것 스스 로도 어쩌지 못하는,본능적인 적의가 꿈틀거렸다.
[ 이런다고 변하는 건 없어요. 죽음의 서 는 나! 루-네아의 것이거든욧? ]장막이 한 번 더 흔들렸다.
그제야 알게 된 것인데,장막이 흔들 리는 그 현상은 둠 카오스의 의념이 장막을 뚫고 나올 때 일어나는 현상이 었다.
의념이 내게 닿았다.
둠 카오스의 판결은 직관적으로 내 뇌리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죽음의 서를 회수하라는 판결은 아 니다.
태형(答刑) 과 같다.
잡것의 죄를 다스려도 좋다는 판결. 죽이지 말라는 단서가 붙어 있긴 하
나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
애초 잡것의 입에서 둠 카오스의 지 령이 언급되었던 당시,죽음의 서를 회수하긴 힘들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집 행관은 바로 나였다.
탁.
아래 계단을 밟았다. 마운의 몸이 흠 칫거리며 경직되었다.
탁.
더 아래 계단을 밟았다.
카소는 조금 달랐다. 녀석도 마운처 럼 스산한 공기 속에 잠겨 있는 것 같 지만,우리에게는 밀약이 존재했다. 조심스레 나를 쳐다보는 그 거대한
눈동자에는 기대감 같은 것이 실려 있 었다.
당장 내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걸 기대하는 게 아니다.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잡것을 막 아 달라는 것이 겠지.
그것도 잠시,카소는 황급히 시선을 거뒀다.
날개에 퍼져 있던 화염들이 보다 불 타며 벼락 줄기들이 나를 중심으로 번 뜩거리고 있던 때였다.
탁,
이제 제일 마지막 계단,잡것이 자그 닿게 떠 있는 곳이었다.
[ 우리 한두 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니잖아 요. 전 정말로 둠 맨 님하고 잘해 보고 싶 다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시죠?]
괜히 정신계가 아닌 것이,잡것의 재 주는 실로 놀랍다.
두려움에 멸고 있는 얼굴로 뻔뻔한 메시지를 날리는 게 말이다.
“형을 집행하겠다.”
[아이 무서워라.]“저항할 수 있다면 해봐라.”
[ 미쳤게요? 왜 그러겠어요. 저 루一네아 는 우리 주인님과 상위 군주님들께 순종 한답니다. 그러니 부디,살살 부탁드릴게 요. 저 루-네아는 준비 됐습니당!그래,잡것아. 언제까지 가나 보자.
엔테과스토가 나를 움켜쥐려 했을 때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잡것은 손아귀를 뻗치는 속도에 반 응하지 못했다.
얼굴만 주먹 사이로 빼꼼하게 나온 꼴. 손아귀의 압력에 의해 온몸이 붙 잡혀 있는 상태다.
궁극의 힘을 집중시키면 그 즉시 터 져 버릴 것이다. 폭죽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라 팡 터져 버리듯이,잡것 의 대가리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죽여선 안 된다는 단서가 붙 어 있다.
설령 놈을 죽여도 좋다는 재가가 떨 어졌을지라도 그런 식으로 쉽게 죽일 마음도 없었다.
엔테과스토가 계단에서 내려왔을 때 에도 이런 마음이 었겠지.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비록 우위에 서진 못했지만 대등하 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 고 이 잡것에게 가르침을 내려 줄 수 있는 권한까지 얻었다.
손아귀에 힘을 집중시키는 대신 벼 락 줄기들을 운용했다.
잡것과 같이 작은 크기로 미세하게. 잡것의 전신을 고루고루 찔러 가면 서.
빠찌 직 一
[아흥〜찌역시나 잡것은 비명 소리마저 그렇 게 냈다.
잡것과 잡것의 동족들은 이런 식으 로 나약함을 감춘다.
그러며 동시에 상대의 반응을 즐긴 다.
잡것의 저항인 것이다. 그러니 열 뻗 친 감정을 드러내 봤자 잡것의 기세를 높여 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문득,시간을 역행해 오기 전인 아주 오래전 세월이 생각났다.
당시 대다수의 각성자들은 인성이 파괴되어 있었다.
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진영의 각성자를 붙잡아 고문 하는 것은 예삿일이 었다.
나 역시 고문을 가하는 입장에도 있 어 봤고,고문을 당하는 입장에도 있 어 봤다.
고문.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격히 구분된 것 같지만 그 역시 전투의 연장선이었 다.
짓누르려는 자와 짓눌리지 않으려는 자 간의 전투.
물론 대부분의 전투에선 가해자가 우위에 있었다.
그렇다고 꼭 피해자가 이긴 적이 아
주 없던 것은 아니다.
어렵지만 있었다.
그런 것들은 피떡이 된 채로 끊임없 이 비명을 질러 대다가도 잠깐의 공백 이 생기면 가해자를 도발하기 마련이 었다.
도발할 힘마저 상실하면 그냥 축 늘 어져 버리는 게 다였지만,분명한 건 어떤 고문에서도 그 입이 열리지 않았 다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가해자는 제 분을 이기 지 못해서 피해자를 죽여 버리고 만 다. 그 순간이 바로 피해자가 기다려 왔던 승리의 순간임에도 말이다.
피해자는 죽으면서도 가해자와 그 일당들을 비웃어 버린다.
가해자가 고문을 통해 반드시 끌어 내려 했던 비밀들을 저승까지 가져가 버리며.
디 엔드(The End).
물론 지금은 이 잡것에게 뭔가를 알 아내야 하는 때가 아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다르지 않았다.
잡것은 내가 본인을 죽일 수 없는 처 지라는 걸 알고 있으며 이 형벌이 끝 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벌써부터 잡것은 나를 이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 살살요~ 살살. 아혹. 아프다니까요〜ᄍ ]나도 모르게 잡것을 터트려 죽이지 않으려면 감정을 죽여야 한다. 죽여 버린다면 잡것에게 가하고 있는 징벌 이 내게 떨어질 테니까.
잡것의 의도대로 휩쓸리지 않기 위 해서도 감정을 죽여야 한다.
더 고통스럽고 더 긴 시간을 선사해 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것은 응당 오래전 고문 가해자들 이 가져야 했던 마음가짐이었다. 누구 든 모르지 않았다.
다만 이런 잡것 같은 것들을 상대로 는 그게 어려워서, 승패가 역전되는 일이 생겼던 것이다.
나는 불행 중 다행으로 지금까지 살 아 있지만,이 잡것과 같은 때가 있었 다.
그러니 잡것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왜 모를까.
무시했다.
손아귀 안으로 감각을 집중했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벼락 줄기 하나마 다 잡것이 반응하는 정도를 확인해 나 가는 작업이었다.
잡것은 정신체로서 육신이 없다.
그러나.
1. 잡것과 그 동족들을 구분할 수 없게끔 하나하나가 다 똑같은 ‘형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
2. 궁극으로 치달은 손아귀의 압력이 물 리 영역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
3. 잡것이 벼락 줄기들에 의해 확실히 고 통을 느끼고 있다는 점.
그런 조건들을 가지고 잡것의 내부 구성을 파악해 나갔다.
어떤 과정에서 잡것의 몸부림이 보 다 강렬하게 떨려 나오는지.
어느 순간에 비교적 약해지는지.
살려 달라,그쳐 달라는 소리 한 번 없었다. 잡것은 징글맞았다.
역경자 유지 시간이 끝나기까지 얼 마 남지 않은 무렵이었다.
잡것을 죽일 목적이었다면 역경자가
끝나든 말든 상관없지만,지금은 사형 을 집행하는 순간이 아니 었다.
분이 풀릴 때까지 채찍질을 가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는데,그런 어풀잖 은 태형(答刑)으로 끝을 맺을 마음은 없었다.
잡것은 더 고통스러워해야 한다. 제 발 죽여 달라고 빌어야 한다.
그때도 혈관만큼이나 미세해진 벼락 줄기들로 잡것의 내부를 휘젓고 있었 다.
잡것이 고통스러워하는 부분만 골라 서. 딱 죽지 않을 만큼만.
그러다 한 기점에서였다.
[그……그만…… 으거거거거걱…….]끝이다.
그때부터가 시작이 었다.
잡것의 얼굴은 붙잡힌 순간부터 떨 려 대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내가 의도하는 방향대로의 반응을 보 였다.
움찔거리고 늘어지고 본인도 주체 못 하는 떨림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 그어어어억一 제! 제바아아아알……. ]그러고 직후였다.
[ 바,바치겠습니다아악. 죽.죽…죽음의 서를…… 그,그러니! 멈…… 멈…… 으어어어…… 억! ] [ 죽음의 서를 말입니다아아•아악一 ! ]
25.
조슈아는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게 문 득 느껴졌다.
옛 외모를 되찾은 이후로 노화가 눈 에 될 정도로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었 다.
그가 느끼는 기분은 순전히 초(超)감 각에 의한 것이었지,정작 그에게 작 용 중인 노화 속도만큼은 한없이 느릿
했다.
이제 자신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조 슈아는 자문해 보았다.
오천 년? 일만 년? 이만 년?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어 버리는 숫자들이 떠 오르면서 더 이상 수명을 계산하는 게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수하들은 처지가 달랐다.
각성자들 전체는 시작의 장이 끝난 후부터 민간인들과 썩 다르지 않은 속 도로 나이를 먹고 있었다. 그들의 삶 은 유한하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백 년을 넘지 못 할 것이다.
‘음……
그래서 조슈아는 시작의 장,2막 1장 부터 지금껏 함께해 온 소수의 수하들 이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있는 광경을 보며 안타까움이 들었다.
자신은 이 땅에서 새롭게 태어났으 나 수하들은 시작의 장에서 달고 나온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삶에 여전히 잠 겨 있는 것이었다.
그때 미모의 귀부인이 왕좌에 앉아 있는 조슈아에게 다가왔다.
피부는 혈색 나쁘게 창백하고 눈동 자 속에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불가사 의한 색채를 품고 있는 여자였다.
여자는 공손히 드레스 자락을 양손 에 잡고서 무릎을 굽혔다.
“한곡 추시겠어요? 마이 로드.”
그날은 승전 파티가 있는 날이 었다.
파티는 참석자들로 붐볐다.
하지만 본토 출신은 조슈아와 그의 수하들뿐이었고,그들은 파티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이 없었다.
파티는 각성자 그룹들의 다른 점령 지역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 류의 가곡이나 요리 같은 건 듣거나 찾아볼 수도 없는 전형적인 그린우드
대륙식 파티였다.
그린우드의 악기들이 어우러지고 그 음악에 맞춰 참석자들이 춤을 추고 있 었다. 춤추는 군주들 중에는 조슈아에 게 퇴짜를 맞은 귀부인도 있었다.
조슈아는 왕좌에서 일어나 그의 수 하들이 무리 지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루한가.”
자신의 수하들은 본토에 미련이 없 는 이들이다. 다른 각성자들처럼 돈을 벌고 점령 지역을 확보해 나가는 것에 도 욕심이 없다.
시작의 장에서부터 그래 왔듯이 자
신의 뒤만 따르고 있었다.
차라리 땅과 돈을 원한다면 그들을 위해 해 줄 것은 많았겠지만,그런 것 들이 전무한 이상 본능을 채워 주는 것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조슈아는 수하들에게 여러 곳을 눈 짓으로 가리키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시선이 향한 곳은 흘 중 앙. 춤추는 군중들 쪽. 거기는 뱀파이 어 귀족으로 선택받은 자들과,또 그 들과 똑같은 선택을 받기 위해 입성한 도시민들이 섞여 있었다.
두 번째로 시선이 향한 곳은 홀 외 곽. 전리품으로 잡아들인 성기사와 사
제들이 남녀 구분 없이 발가벗겨진 채 로 구속되어 있었다.
세 번째로 시선이 향한 곳은 의도적 으로 연주에만 집중하고 있는 악사들 쪽이었고.
네 번째로 시선이 향한 곳은 몸을 멸 고 있는 남자와 여자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그들 같은 경우엔 외모가 남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조 슈아가 수하들을 위해 도시에서 각출 시킨 자들이었다.
그러나 꼭 네 번째 무리에서가 아니 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들어가도 좋다. 내키는 대로 골라잡
아라.”
조슈아는 수하들에게 참석자 전부를 지칭해서 말했다. 그러며 그는 박수도 쳤다.
짝,한 번.
그때 악사들이 연주를 멈췄다. 조슈 아가 왕좌로 돌아와 앉은 다음부터 그 의 수하들도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디에선 놀란 듯한 비명 소리가 났 고,또 어디에선 울음이 터져 나오기 도 했다.
그리고 다시 조슈아가 박수를 쳤을 때 연주가 시작되었다.
마지막에 남았던 수하까지 홀을 떠
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조슈아의 얼굴 위로 쓰린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수하들은 홀리나이트 칼도란과 싸울 때 반 이상이 죽었고,칼도란의 도시 를 차지한 이후부터도 계속된 전투로 인해 또 반 이상이 더 죽었다.
이제 수하는 채 오십 명도 남지 않았 다.
조슈아에게는 그들의 빈자리가 너무 도 눈에 띄었다.
파티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재개될 무렵이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전투복 위에 두 개의 문장을 박고 있 는 자였다. 하나는 세계 각성자 협회 의 문장,다른 하나는 고용된 그룹의 문장.
목에는 철제 인식표를 걸고 있어,그 가 각성자가 아니라 일반 용병이라는 사실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조슈아가 그를 대면하며 받 은 이질감의 정체는 다른 게 아니었 다.
각성자가 아니면서도 걸음걸이에 평 범한 수준 이상의 힘이 실려 있었다. 게다가 동공은 한밤의 고양이의 것처 럼 확장되어 있다. 동공의 실핏줄이
뻘겋게 도드라져 있으면서도 정작 흰 자위에는 충혈기가 적었다.
그가 조슈아의 왕좌 아래에서 본인 의 신상을 밝혀 나갔다.
“들여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저는 TTMC 소속의 마르코라 합니다. 오 시리스 님의 점령 지역으로부터 20km 북쪽에서 주둔 중이며…… 용병은 이계의 법칙에 꽤 적응한 자 였다.
하지만 오시리스 앞에 서는 것 외에
도.
모두가 기피하는 뱀파이어 지역에 들어온 것 자체만으로도 용병에게는
몹시 긴장되는 일인 탓에 용병의 동공 은 불안한 움직임을 보였다.
조슈아가 그 실핏줄이 서 있는 눈알 에 대고 물었다. 각성자도 아니면서 각성자같이 뛰어난 능력을 얻을 수 있 었던 까닭에 대해서 였다.
“스파이더 웹입니다.”
용병은 조슈아의 서슬 퍼런 눈빛을 이기지 못했다. 조슈아에게서 어떤 지 시도 없었지만 그는 스스로 알약을 꺼 내 바쳤다.
소속 그룹에서 그것을 지급했을 때 얼마나 비싼 약물인지에 대해서도 설 명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 이후에,용병은 위험을 무릅쓰 고 들어온 진짜 이유를 밝혔다.
“협회 지도부에서 오시리스 님께 보 내온 전갈이 있습니다.”
「오시리스 님께.
이태한입니다. 오시리스 님께서 소용돌 이 대지를 방어해 주고 계신 덕분에 우리 협회는 중부 점령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 다.
노고가 얼마나 크십니까. 이 서신을 빌 려,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마석에 대해 긴히 전달할 사안이 있어……〈하략〉」
순간 조슈아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방어해 주고 계신 덕분에?’
공식적으로 자신은 맡은 임무는 없 었다.
설사 어떤 임무가 떨어져야 한다면 이태한 같은 얼굴마담의 입에서 떨어 진 사안이 아니다. 자신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분,‘그분’ 뿐이다.
그런데 이태한이 보내온 전갈에는 소용돌이 대지에 늘러앉아 있으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한 줄의 문장일 뿐이지만,이태한은 그게 자신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아는 놈이다.
‘그럼에도 이딴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
왜 모를까.
이태한은 본인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갈의 내용대로 자신과 자신의 수 하들이 대륙 곳곳에서 밀려들고 있는 원정대와 성기사단을 상대해 왔던 덕 분에 각성자들이 투입된 전장들은 비 교적 안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소용돌이 대지를 방 어해 왔던 것은 자신의 자의에 의해서 였다. ‘그분’의 전쟁에 보탬이 되고 싶 은 마음에서 말이다.
지난날.
자신이 치르고 있는 전황이 급격해 지고 있었어도 왜 증원을 요청하지 않 았던가. 하루하루 수하들을 잃고 있으 면서도 왜 그러지 않았던가.
그건 궁극적으로 그분이 치르고 있 는 전쟁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태한……
이딴 뻔한 수작을 벌이지 않아도, 자 신은 중부에 펼쳐진 전장에 조력이 되
는 쪽으로 노선을 잡고 있었다.
소용돌이 대지를 방어하는 일이든. 다른 지 역으로의 확장이든. 그게 무엇 이든지 간에.
‘누구 덕분에 네놈이 그 자리에 있는 줄 아느냐. 건방진 놈.’
조슈아는 전갈을 구겨트렸다. 그의 잘생긴 미남형 얼굴도 그때 전갈처럼 구겨졌는데, 그 얼굴은 그리 쉽게 펴 지지 않았다.
“마이 로드. 방금 전의 손님 때문이 신가요? 원하신다면 뒤쫓아 가서…… 좀 예뻐해 줄까요?”
조슈아는 그의 기색을 눈치채고 다
가오는 귀부인을 향해서도 서늘한 눈 빛을 번쩍였다.
그때도 조슈아는 이후에 진행될 상 황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건방진 얼굴마담의 생각이 어떻든지 간에 자신이 자체 군단으로만 외부에 서 들어오는 원정대들을 상대해 주는 게,그분의 전쟁에 보탬이 되는 게 맞 긴했다.
그래야만 각성자들이 중부 점령을 빠르게 끝내고 외부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린우드 대륙이 넓긴 하지만,이만 한 대륙은 이계에 그린우드 하나만 있
는 것이 아니었다. 갈 길이 멀었다. 그 렇기 때문이었다.
건방진 놈의 의도대로 할 수밖에 없 는 상황이 가슴을 더욱 들끓게 만든 다.
‘수하들을 더 잃을 순 없다.’
그러니 병력을 충당할 방법이 문제 다.
뱀파이어 귀족의 수를 늘리는 데에 는 한계가 있고 귀족의 수를 늘리는 것도 꼭 장점만 있는 게 아니 었다.
그렇다고 도시민을 또 각출하여 뱀 파이어 일족으로 만들기에도,지난 전 투들로 인해 죽어 나간 숫자들이 한계
치에 달했다.
남은 도시민을 전부다 뱀파이어 일 족으로 만들어 버리면 누가 생산을 담 당한단 말이냐. 낮에는 꼼짝없이 움직 이지 못하는 것들.
조슈아는 음험한 생각들이 피어오르 기 시작했다.
‘제약을 풀어 줘야 하는가.’
사실 그 일은 다른 각성자 그룹과의 마찰을 염두에 두고 막아 둔 일이긴 하지만 지금도 밤이 되면 종종 벌어지 는 일이긴 했다.
로드인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나, 귀족이나 일반 일족들은 다르다.
그것들에게는 피를 향한 갈증이 숙 명처럼 따른다. 엄벌을 각오하고 도시 민을 물어뜯거나 도시를 넘어 사냥감 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그것들의 목표는 대개 각성 자들의 점령 지역이 었다.
성기사단과 원정대가 운집해 있는 곳보단,각성자가 자리를 비운 그 땅 들이 더 수월한 사냥터였기 때문이었 다.
각성자들의 점령 지역에는 각성자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이 없었다. 점령 지분만 확보하고 용병들을 주둔시킨 채 중부의 다른 전장으로 떠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각성자들의 점령 지역을 사냥 터로 삼는 것은 아무래도 충동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리라.
조슈아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 었다.
각성자들의 점령 지역을 사냥터로 삼는 것보단.
가능하면 락리마 교단과의 전투에서 일족들의 갈증을 해결하고,최대한 생
포하여 노예화시키는 것이 마땅한 일 이기 때문.
오랫동안 저울질하던 무게 추는 점 점 후자로 기울고 있었다.
그깟 각성자들 때문이겠는가. 건방 진 얼굴마담 때문이겠는가. 아니다. 그분이 치르고 있는 전쟁의 끝을 한시 라도 앞당기기 위해서다.
때문에 자신이 위험을 감수한다면, 락리마 교단의 군영에 자신만큼이나 강력하게 줄몰한 그놈을 사전에 제거 해 놓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단순히 방어를 넘어서 다른 지역으로의 진출까지 모색할 수 있다
면 구태여 각성자들의 기존 점령 지역 을 사냥터로 삼을 일도 없을 것이다.
고민은 끝났다. 조슈아는 암습에 나 갈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수하들을 대동할 생각이 없었다. 수하들 대신 죽어도 되는 자 들로 꼽았다.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 귀족들.
창백한 인상의 남녀들이 조슈아의 부름을 받고 그의 침실로 모여들던 그 때.
“조슈아.”
맹렬한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자신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물론 한 분뿐이다. 조슈아는 즉시 한 쪽 무릎을 굽혔다.
“오셨습니까. 마스터.”
조슈아를 따라서 뱀파이어 귀족들도 무릎을 꿇었다.
조슈아의 시야 안으로 한 권의 고서 가 불쑥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조슈아는 고개를 숙이면서 순간적으 로 내려트려진 자신의 긴 금발을 살짝 치워 냈다. 그러고 나자 분명히 보였 다.
그 고서는 자신을 뱀파이어 로드로 만들어 준 [죽음의 서 2권]과 흡사해 보였다.
一 죽은 자들을 일으키거라. 네 노예로.
조슈아의 머리맡으로 그분의 음성이 내려왔다.
(17권끝)
큰 덩 치 때문에 무스(Moose)라는 별 명으로 불리는 용병이었다.
이계에 들어온 지는 근 석 달이 넘어 가고 있었고,그동안 그가 소용돌이 대지에서 보고 들어온 것들은 온통 기 존의 통념을 파괴해 버리는 것들뿐이 었다.
“지난달 25일에 염마왕을 대상으로
청문회가 있었다더군요.”
무스는 어떤 놀라운 일에도 꽤 무뎌 졌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하 가 가지고 들어온 소식은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흡혈귀를 실제로 목격했을 때와 비 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충격.
부하를 도와 트럭에서 보급품을 내 리고 있던 무스는 움찔하며 부하를 쳐 다보았다.
썩은 음식을 먹은 것 같은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무슨 염려를 하시는지는 알겠는데, 지구는 이상 없습니다. 염마왕이 참아
주었던 모양입 니다.”
“염마왕이 참아?”
“저도 듣던 것과 달라서 몇 번이고 확인해 봤습니다.”
부하는 청문회가 열릴 때까지의 경 과를 차분히 들려 주었다. 설명이 끝 날 무렵에는 트럭에 실려 있던 보급품 박스들과 자재들이 모두 땅에 내려져 있었다.
무스는 그중 하나의 박스에 걸터앉 아서 전투복 상의를 풀어 젖혔다.
그의 시선이 무심결에 동쪽으로 향 했다.
거기는 흡혈귀들의 도시가 있는 방
향이었다.
위험 지역.
정확하게 말하자면 각성자들 사이에 서도 공포의 군주로 인식되고 있는 ‘오시리스’가 통치하는 지역으로,소 름 끼치는 소문들은 언제고 그쪽 방향 에서 홀러나왔다.
마을 사람들 중 누구는 걸어 다니는 시체를 봤다고까지 했었다.
“잊그제 흡혈귀를 잡았다.”
무스가 말하자,며칠간 자리를 비웠 던 그의 부하 역시 굴부터 구겼다.
그건 청문회 소식을 들었던 무스와 하등 다를 바 없는 표정 이 었다.
과연,소문은 사실이었다.
흡혈귀에게 아내나 남편을 잃은 자 들의 목격담은 꽤 구체적이었고,그러 한 목격담들은 하나같이 일치해 있었 다.
증거만 없었을 뿐이지 사실상 흡혈 귀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분 위기였다.
“어찐지……못 보던 것이 걸려있더 라니. 저게 흡혈귀였습니까?”
부하가 가리킨 곳에는 백골이 보란 듯이 걸려 있었다. 부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이래서는 수당을 더 청구해야겠어
요. 그렇잖습니까. 아니면 빌어먹을 십자가나 은 탄환이라도 좀 보급해 주 든지. 소름 끼쳐 죽겠습니다.”
“십자가,그거 웃기라고 한 소리냐? 그렇다면 성공했다. 최근 들어 본 이 야기 중에 가장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명찰이나 떨어지지 않게 잘 박고 있 어.”
무스는 나름대로 확신하고 있었다. 오시리스의 도시에서 흘러나오는 흡 혈귀들이 자신과 부하들을 노리지 않 는 이유는 세계 각성자 협회 문장이 찍힌 명찰 때문이라고.
그게 이계에서는 가장 강력한 십자
가라고.
“그리고 이거 받으십시오. 개인 지급 량이 한 알씩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 음부턴 우리 돈으로 직접 사야 한답니 다. 대장도 그 재수 없는 말투를 들어 봤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그게 뭔데?”
“스파이더 웹이란 겁니다. 저도 아직 복용해 보진 않았는데, 들리는 말로는 우리도 각성자처럼 될 수 있다 합니 다.”
“……별것이 다 튀어나오는군. 이젠 놀랍지도 않아.”
“동감입니다.”
“어쨌거나 수고했다. 흡혈귀를 상대 할 때 큰 도움이 되겠어.”
흡혈귀라니.
무스는 자신이 말해 놓고도 그 비현 실적인 단어에 고개가 저어졌다.
지난밤에 죽여 놓았고,햇빛 아래에 서 흡혈귀의 시체가 어떻게 백골로 변 하는지 다 지켜보았지만,여전히 실감 이 들지 않았다.
무스는 부하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 나서 몸을 일으켰다.
이 촌구석은 워낙에 작은 마을이었 던 탓에 주둔 중인 용병을 모두 합쳐
도 다섯 명밖에 되지 않았다.
함께 진입했었던 각성자와 용병들이 진즉에 다른 전장으로 떠나면서,마을 을 통제할 수 있는 소수 병력만 남겨 진 것이었다.
부하가 비포장 길을 헤치고 온 트럭 을 정비하고 있는 시각.
다른 부하는 마을 병사들을 모아 놓 은 연설 석상에 있었고,또 다른 부하 는 하수 시설 공사 작업을 지휘하고 있었으며,마지막 부하는 보급품과 서 류상의 목록을 대조하고 있었다.
그때 무스는 입에 펜을 물고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직도 위생 상태가 최악에서 벗어 나질 못했어. 전염병이 돌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야. 책만 보고 하수 시 설을 만드는 건 한계가 있는데. 지원 을 더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비누가 더 많이 필요해. 더 이상 보 급을 받는 건 무리가 있다. 자체적으 로 제작할 수 있게끔 체계를 만들어 둬야겠어. 그래,그 녀석이 책임자로 마땅하겠군.’
‘이번에 항생제를 보급받았던가? 그 것도 확인해야겠고. 그 아이…… 죽지 말아야 할 텐데. 조금만 더 버텨 줬으 면.’
‘노먼이라는 녀석을 자치 대장으로 승격해야겠다. 지금 녀석은 앞으로 문 제를 일으킬 소지가 높아.’
‘빌어먹을,광산 하나라도 있으면 오 죽 좋아. 금까지는 바라지도 않겠어.’
‘흡혈귀…… 하지만 오시리스에게 따지는 건 생각도 말아야 한다. 밤 경 비를 강화하는 수밖에. 그러려면 이것 들의 영양 상태부터 개선시켜야 한 다.’
‘고쳐 나가야 할 게 산더미 같군.’ 그룹의 시각에서도 여기는 별 볼 일 없는 작은 촌구석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상 버려진 곳이었고,점령 상태
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무스와 그의 부하들은 제 소임을 다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촌구석의 쓰 임새는 한국의 군사 분계선처럼 오시 리스의 점령 지역과 바깥의 다른 점령 지역들을 구분 짓는 것에 그친다.
오시리스의 점령 지역과 접경을 두 고 있는 다른 촌구석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쪽들도 매일 밤이면 피를 찾아다 니는 습격자들에 의해 겁에 질려 있을 것이고.
소속 그룹들의 지원도 크게 없을 것
이다.
‘같은 처지들끼리 협력 체계를 구축 하면 좋겠지만 워낙에 소속이 다양하 니…… 그래도 한번 시도는 해 보는 게 좋겠어.’
원래는 계약 기간인 일 년이 지나고 나면 지구로 돌아갈 생각이 었다.
주택 융자금을 갚고,남은 돈으로는 조그마한 주점을 사서 더는 시체를 보 지 않아도 되는 땅에 정착할 계획으로 말이다.
그랬던 무스의 생각 바뀐 건 수백 주 민들의 운명이 제 결정에 달렸음을 체 감한 순간부터 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많은 이야기들 을들어 왔었다.
이계에서 행해지는 일들은 엄격한 비밀로 관리되고 있으며 설사 그 일이 밝혀진다 할지라도 법적으로 처벌받 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이런 촌구석 같이 그룹의 안중에서 벗어난 지역에 서는 점령 집단이 곧 법!
소문의 어떤 마을은 꼭 지구에서 들 여온 문명이기(文明利器) 때문이 아 니더라도 집권자의 현대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체계에 의해서 빠르게 번성 중이 라 했다.
또 소문의 다른 마을은 그 일이 지구
에 알려지면 어떤 파장이 생길지,각 성자와 용병들을 향한 인류의 시선이 어떤 지탄으로 흉흉해질지 두려울 정 도로 지옥 같이 추락했다 한다.
무스는 여기 촌구석에 들어온 이후 로 부하들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두 눈으로 직접 봐 왔었다.
불순분자를 골라내 제거하는 것도. 얼굴이 반반한 계집을 넘어트리는 것
도.
지시에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채찍 질을 가하는 것도…….
더는 특별하거나 구태여 숨겨야 하 는 일도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도 촌구석 주민들은 이전보다 나아진 삶이라 말한다.
그렇기 때문이었다.
무스는 더 잘해 보고 싶었다.
선량한 집정관은 아니어도, 적어도 이 촌구석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집정관이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 이 아닐 것 같았다.
어차피 이계에 머물면 머물수록 통 장에는 은퇴 자금이 불어나 있을 일이 기도 하고.
무스가 옆 마을로 보낸 부하가 돌아 오길 기다리고 있는 밤이 었다.
무스는 장전한 글록을 무장한 것으 로도 모자라서 M4를 챙겼다.
탁 치고 잡아당기고 쏘라(Tap, rack, bang).
그것은 M4 총구가 막혔을 때 탄피 를 빼는 방법 이 었다.
그는 해군 교관이었던 당시에 훈련 생들에게 가르쳐 온 내용을 상기할 정 도로,전투 중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
하고 있었다.
부하가 돌아올 시간이 한참을 넘은 것도 그렇지만 불길한 건 그뿐만이 아 니었다.
밤이 되면 흡혈귀 때문에 마을 전체 가 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그렇다 쳐 도 마을 전체가 잠들어 버린 듯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차라리 흡혈귀가 출몰하는 밤에는 비명 소리라도 있었다.
이따금 나던 호각 소리는 진즉 및었 다. 부하들과 이어진 무전기들에서도 대답 하나 돌아오지 않았다.
무스는 고민도 하지 않고 스파이더
웹을 복용했다.
스파이더 웹이 왜 그런 이름으로 불 리는지 알 수 있게 되었을 때.
피 냄새가 맡아졌다.
본인의 처소를 향해 오는 발걸음 소 리도 들렸다.
알약의 효용에 탄복하는 감정에 빠 져 버리기에는,마을에 변고를 일으킨 뭔가가 본인을 향해 엄습해 오고 있었 다.
무스는 엄폐물에 몸을 감추고 출입 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알약을 복용했기 때문일까. 심장이 가슴 벽을 때리는 느낌이 그 어느 때
보다 선명했고 입안의 침은 빠르게 말 라 갔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린 건 그 직후였 다. 무스의 생각은 빨랐다.
‘달고 들어온 피 냄새는 마을 사람과 내 부하들의 것이다.’
‘침입자! 격발한다.’
그런데 무스의 집게손가락은 방아쇠 에 걸쳐져 있는 채로 움직이지 않았 다. 무스가 멈춘 것은 손가락뿐만이 아니라는 걸 눈치채기까지도 그리 오 래 걸리지 않았다.
확장된 동공도 잠기지 않는다.
그는 어둠 속에서 침입자가 서 있는
모습을 응시하는 것 외에는,할 수 있 는 게 없었다.
어느 초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온몸 이 제압된 것이다!
무스는 그게 어떤 현상인지 들어서 알고 있는 게 있었다. 그는 이런 현상 을 두고 각성자들이 속박이라 불렀던 것을 기억해 냈다.
무스는 침입자를 각성자라 확신하며 이를 갈아 말했다.
“왜 이런 짓을 벌이시오? 밝혀지지 않을 거 라 생각하고 있다면 크게 실수 한 거요. 세계 각성자 협회에서 오늘 여기에서 일어난 일을……
“이 근방에는 각성자라는 것들이 하 나도 보이질 않네. 걸어 다니는 거라 곤 얼마 안 된 시체들뿐이야. 하나같 이 오시리스에 힘에 이끌린 것들뿐.”
실내의 불빛에 의해 그 모습이 드러 날 상황이지만,무슨 까닭에선지 침입 자의 모습은 여전히 어둠에 가려져 있 었다.
그때 어둠 바깥으로 빠져나온 건 긴 손톱이 었다.
붉디붉은 손톱의 끝에선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무스는 최면술 에 걸린 것처럼 그 광경에서 눈을 델 수가 없었다.
느릿하게 한 방울씩 뚝뚝.
하지만 정말로 최면술에 걸린 것은 아니어서,무스의 시선은 다시 침입자 를 쫓아 움직였다.
그때 침입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다 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아름다운 여성의 음성이었 다.
“오시리스가 정말 맞을까? 나는 그 게 의문스러워.”
“대체 무슨 말을…….?”
“둠 맨이 오시리스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게 맞을까? 그렇지, 너도 이렇게 만 물으면 안 되는구나. 오딘이 오시
리스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 니?”
무스는 무심결에 그 질문에 대한 답 을 떠올렸다.
어디까지나 들어왔던 것에 의하면 오시리스는 오딘에게 소중하다,라고 평가될 수 있는 각성자였다.
최종장에서 마리 쪽에 가담한 군주 들.
그러니까 지금 협회의 이사진들은 전부 오딘의 최측근인 자들이 었다.
“너도 다른 것들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
“하지만 너도 오딘에 대해서라면 아 는 게 없어.”
무스는 침입자의 의도를 조금도 헤 아릴 수 없었다.
그 정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한 건 각성자들 중에서 오시리 스와 오딘의 이름을 이렇게 함부로 언 급할 수 있는 자는 없다는 거 였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느새 눈앞에서 만 까닥거 리고 있는 붉은 손톱이 다였 다.
무스는 더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각성자라면 어떻게든 대화를 나눠
볼 여지가 있지만 드라고린 종족이라 ^—.
‘그런데 어떻게 우리 말을 이토록 자 연스럽게 하는 거냐?’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고운 음성은 결코 번역기의 그것이 아니었다.
“떨지 말렴.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물을 거란다. 오시리스를 죽이면 오딘 이 정말슬퍼할까?”
“마리는 다음 차례야. 여기까지 왔는 데 헛걸음할 순 없어.”
“대,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마지막 질문이야.”
“오딘의 혈족(血族)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니? 오딘과 같은 피가 흐르는, 진짜 오딘의 혈족들을 말하는 거란
“그래그래. 또 어김없이 오딘의 제사 장들만 언급하는구나.”
«큭»
물론 무스는 눈앞까지 닥친 죽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계에 머물면서 한결같이 들어 왔던 이야기가 있었다.
정체 모를 침입자는 죽음을 자초하
고 있다.
침입자는 오딘의 이름을 함부로 언 급하는 것을 넘어서,오딘에게 도전할 목적인 것 같았다.
오늘은 자신이 죽겠지만 내일은 침 입자가 저승길을 뒤따라올 것이다.
“너희 인간 군단들은 정말이지 마음 에 들지 않는구나. 정작 본인들이 무 엇을 추종하는지도 모르면서 열성을 다한단 말이야. 그 저승길은 오시리스 를 뒤따라 보내 줄 테니 기다리고 있 으렴.”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동화책을 읽 어 주는 듯한 목소리.
그렇게 자애롭기만 한 목소리였지 만,그 목소리는 곧 무스의 숨통을 짓 눌러 들어왔다.
무스는 질식해서 죽지 않았다.
그는 의식의 끝자락에서, 시작의 장 인도관들이 사람의 대가리를 터트려 죽였다던 이야기 가 문득 떠올랐다. 그게 본인이 맞이한죽임이 되리라. 이제야 뭔가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무스가 사망한 직후였다.
늘어져 있던 몸이 다시금 떨리기 시 작했을 때는,더는 무스라고 부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어어어……
“그쯤 하면 됐어. 그만 죽으렴. 좀비, 아니 구울로 불려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