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
6 화
그래도 지금의 나는 손이 덜 가는 아 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낮에는 잠을 참 잘 잤고,밤에는 이 유 없이 울지 않는 효자였다.
그렇지만 회귀 전에 부모님의 오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게 아닌가.
모든 자식들이 그렇듯 나도 부모님
을 참 애달프게 만든 녀석이었다.
한 살 때에 멋대로 사과 조각을 삼켜 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네 살까지 말 문이 잘 트지 않아서 부모님의 걱정이 많았고, 일곱 살 때에는 오토바이와 부딪쳐 두 달 넘게 입원을 했었다.
물론 내게는 그런 기억이 없고 어머 니께 들은 이야기들이 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대부분은 어디가 아프고 다친 것들이 아니라, 대체로‘처음’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 기 억들도 낡은 사진 한 장처럼 단 편적이다. 친척 누나와 불꽃놀이를 하 던 날, 좋아하는 친구의 집에 처음 놀
러 가던 날, 외할아버지께서 입원 중 이신 병원에 처음 간 날.
부모님께서 나를 키우시면서 겪으신 희생에 대한 기억은 어디에도 없다. 자식들은 이렇듯 철저하게 이기적이 다.
“엄마. 엄마. 엄마.”
어머니께 처음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들려 드렸다.
옹알이에서 나온 의미 없는 말이 아 니었다. 어머니와 눈을 마주친 상태에
서였다.
어머니는 차마 아실 수 없으시겠지 만,전생에 네 살 때까지 말이 터지지 않아 걱정을 끼쳐 드렸던 것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퀘스트 때문이지만.
[사람답게 1: ‘엄마’성공] [ 퀘스트 ‘사람답게 1’를 완료 하였습니다. ] [5 포인트를 획득 하였습니다. ] [ 누적 포인트 : 37]정말로 당신을 인지하고 부른 명칭 인지 아니면 옹알이인지.
어머니께는 그것이 특별히 중요하지 않으신지 마냥 즐거워하셨다. 어머니 께서 나를 한참 안고 돌아다니시다가 바닥에 내려 놓으셨다.
새로운 연계 퀘스트는 언어 발달과 연관되어 있었다.
재미있게도.
이번의 연계 퀘스트는 회귀자인 나 를 무시하는 처사였다.
치 아가 나지 않고 혀 가 굳은 탓에 발 음이 새기만 할 뿐,내 언어 능력에는 조금도 이상이 없지 않은가!
다음 퀘스트의 임무는 열여섯 가지 단어 말하기. 시시한 게임이다. 목숨
을 걸어야 하는 퀘스트가 단지 성장 발달의 지표에 불과해졌다.
본 시대에서 생활 퀘스트는 이런 식 이 아니 었다. 큰 리스크가 따랐다.
하물며 이번 퀘스트 완료로 5포인트 가 쌓였다.
F급 몬스터 한 마리를 처치할 때 붙 는 포인트가 2 포다.
입술 몇 번 움직이는 것으로,이러한 몸 따위로 두 마리이상을 처치하는 효 과가 있다니.
솔직히.
기쁨을 감출 수가 없다.
연계 퀘스트 ‘사람답게’의 마지막 퀘 스트일 것이다.
[ 사람답게 5 (퀘스트)임무: 대상을 특정해 열 문장 이상의 의 사소통을 해라. ]
아버지는 출장을 가셨고 어머니를 퀘스트의 희생양으로 삼을 순 없었다. 그래서 주인집 여자부터 생각이 났 다.
주인집 여자는 시샘이 많은 못된 여
자다.
그녀도 우리 어머니와 같은 시기에 셋째를 출산했으며 아들이었다. 그러 니 나와 고 녀석을 같이 두고 나면 비 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었다.
내가 조용히 있으면 언청이가 될 것 같다며 어머니를 겁주고.
거기에 반박하여 재잘재잘 아무런 소리나 내뱉으면 말 못하다가 죽은 귀 신이 달라붙은 것 같다며 어떻게든 나 를 깎아내렸다.
그렇게 상종 못 할 여자다.
어머니께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때에도,그것을 오히려 즐기는 빌어먹
을 못된 여자였다.
그 여자가 내 간택을 받아야 할 이유 는 하나가 더 있다.
무속을 신봉한다는 것이다.
정문에도 부적,부엌에도 부적, 주인 집 세대로 들어가는 길목에도 부적.
어머니 등에 업혀 오가는 도중 그것 들을 참 많이도 보았다.
마당으로 나갈 수 있는 문 앞에 섰 다.
어린 아기의 시선에는 모든 게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평범한 문짝이 괴란한 게이트만큼이나 커 보일 뿐만 아니 라 위압감마저 들었다.
그냥 문짝에 힘을 줘서 민다고 열리 는 게 아니다. 고리에 걸려 있는 숟가 락을 뺀 다음 손잡이를 돌리며 밀어야 한다.
숟가락 장금장치와 손잡이는 고개를 완전히 치켜들어야만 보이는 곳에 위 치해 있었다.
제자리에서 뛰며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위치.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 었다.
던전에 들어갈 때와 비슷한 긴장감 이 감돌았다.
어쩐지 어머니께서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등골이 서늘했다.
딛고 설 만한 것을 찾아 주변을 두리 번거렸다.
방구석에 있는 단단한 베개들에 시 선이 갔다.
열두 시가 넘은 깊은 밤.
우리 아버지처럼 주인집 남편도 집 에 없는 기막힌 날이었다.
마당에 묶여 있는 진돌이가 나를 보 자마자 꼬리치며 좋아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내려다 볼 수 있을 때와 는 달랐다.
커다란 야수의 눈동자가 달빛을 받 아 번질거 렸다. 그날따라 진돌이의 목 줄이 느슨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 것
이다.
목줄이 끊기거나 진돌이가 목줄에서 목을 빼내는 순간,진돌이는 화성 야 산의 보스 몬스터나 다를 바 없어진 다.
잠깐.
번뜩이는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쳤 다.
본래 계획은 동자 귀신으로 가장해 주인집 여자에게 퀘스트를 완료하고, 그 여자의 못된 심성을 교화시킬까 했 었다.
한데 왜 성인과의 대화만을 생각했 을까.
곧추석이다.
친척 누나와 만난다. 지금 친척 누나 는 네 살. 말을 곧잘 할 나이다.
어머니가 깰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 수하면서까지 진행하기에는 추석이 머지 않았다.
“우리 헤보가 오늘은 왜 안 웃을까? 낯가리는 거야? 아들?”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내 고추를 달랑거리면서 가지고 노는 이모들에 게는 오딘의 따끔함을 선사해 주고도
싶었다.
추석 날,나 같은 아기들이 많았다.
아직은 친척 동생들이 태어나지 않 은 시기들이라,여기저기서 빽텍 울어 대는 아기들은 모두 나의 친척 형이나 친척 누나들이다.
지애 누나가 내게 걸어왔다.
나보다 삼 년이나 먼저 태어난 누나 는 이맘때에 벌써 미모가 뛰어났다.
누나는 자신의 왼쪽 눈 밑에 조그닿 게 난 점을 싫어했지만, 그것이 누나 의 매력 포인트였다.
눈 밑의 점이며 또렷한 눈에 오뚝한 코 등. 성인이 된 누나의 얼굴이 겹쳐
졌다.
이모들은 누나에게 자리를 비켜 주 었다.
두 친척 오누이의 귀여운 첫 만남에 대한 기대심 때문이었다.
누나에게는 절정의 미모와 명문대라 는 간판 그리고 사법고시 합격에 검사 임용이라는 황금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외가의 자랑거리로 영원할 것만 같았던 지애 누나였지만,누나는 시작의 날에 행방불명된다. 괴물의 습 격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모에게 조언해 주고
싶었다. 누나가 앞으로 공부에 큰 재 능을 보여도 운동 쪽으로 진로를 잡길 바란다고.
물론 신체 능력이 생존 여부를 결정 짓는 것은 아니나 큰 역할을 하는 게 사실이다. 적어도 검사 시절의 경험이 누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최소한 시작의 날 이전까지라도 사 람들은 몸을 만들어 둬야 할 것이다. 혹은 전쟁이라 할 법한 치열한 경험들 로 단련되어야 할 것이다.
“동생이야. 동생. 앞으로 지애가 누 나답게 잘 놀아 줘야 돼.”
이모는 누나의 손을 강제로 내 손에
쥐여 줬다.
하지만 누나는 나를 덮치듯이 와락 껴안았다. 아기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거친 손길이 내 머리칼을 아무렇 게나 헤집어 댔다.
“선후야. 선후야.”
귀여운 목소리구나. 나도 누나의 귀 에 대고 아주 조그닿게 속삭였다.
“누냐. 안녕.”
놀란 지애 누나의 손길이 바로 멈췄 다.
그때 어머니와 외가 친척 분들의 관 심은 다른 친척 형,누나들에게로 옮 겨져 있었다.
나는 누나와만 말할 수 있다,어른들 을 부르지 말라는 등의 말을 빠르게 했다.
그렇게 누나와 아기자기한 말들로 퀘스트 조건을 완성 했던.
바로 그때 였다.
어?
[ 축하합니다. 튜토리얼에서 가능한 모든퀘스트를 최초로 완료 하였습니다. ] [ 튜토리얼을 생략할 수 있는 조건을 달 성 하였습니다. ]
지 금까지 가 튜토리 얼 이 었다고?
[ 튜토리얼 ‘영아기와 유아기’를 생략하 시겠습니까?]고민스러운 결정이 코앞에 놓였다. 한데 어차피 이후 몇 년 간은 부모님 의 곁에만 꼼짝없이 붙어 있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행동의 제약이 크다.
그럼에도 나를 망설이게 만들고 있
는 이유는 부모님의 젊은 날들을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어떤 불미스런 실수로 부모 님을 놀라게 하거나 무섭게 만드는 것 보다는 낫겠지.
튜토리얼은 스킴이다.
스킵!
깜깜했던 세상이 밝아졌다. 아련했 던 소리들도 일시에 뚜렷해졌다. 시야가 선명해지는 순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교실 안이었다.
어린 학생들의 뒤통수들 너머로 젊 은 남자가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 다. 내 손에는 샤프가 쥐어져 있었으
며, 노트에는 낙서 하나가 아직 완성 되지 않은 채였다.
겉표지를 확인해 본 교과서는 중학 교 1학년용 영어 교과서다.
나는 짝 없이 창가 쪽 제일 뒷자리에 홀로 앉아 있었다. 학창 시절 내 자리 는 항상 중간쯤이었다. 과거가 약간 바뀌었다.
“상태 창.”
거의 반년 간 치아 없는 삶을 계속 해 오다가 맞이한 뚜렷한 발음이 몹시 반가웠다.
[ 이름: 나선후체력: F ⑵ 근력: F (20)
민첩 : F (13) 감각: F (20)
누적 포인트 : 87 특성 (1)]
평균 등급 F.
시작의 날부터는 낙제 등급라고 해 서,비 능력자와 동급으로 취급받는 등급이지만 현재로선 전혀 나쁠 게 없 었다.
성 인 남성 수준으로 완성 된 몸이다. 뿐만 아니라 근력과 감각은 어지간 한 운동선수의 능력을 웃돌 만큼 늘어 나있다.
튜토리얼에서 성장시켰던 능력치가 스킵한 시간들에도 영향을 미쳤던 게 분명했다.
역시 과거가 바뀌었다. 중학생의 신 체라고 볼 수 없는 길고 단단한 팔에, 전완근이며 이두근에 힘이 제대로 실 린다.
주먹을 쥐락펴락하던 그때.
노트의 낙서가 시선에 들어왔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평범한 중학생 나선후가 해찰하고 있는 결과물로만 보였다. 그런데 노트의 낙서는 다름 아닌 F급 몬스터 였다.
F급 중에서도 야수형, 야수형 중에서
도 이족물(그足物).
분류 번호는 KF-07 인데,과연 노 트 상단에 나다운 지저분한 필체로 분 류 번호가 정확히 적시되어 있었다.
K는 한국의 국가 번호고 F는 몬스터 등급이이며 07은 임의로 부여한 번호 다. 사실 우리 한국의 능력자들 사이 에서는 그런 분류 번호보다는 ‘견졸’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되넘긴 전 페이지에는 경기도의 산 주소 하나와 그 산의 시세가 분명한 액수가 적혀 있었다.
스킴한 시간 동안에도 나는 회귀자 다운 삶을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몸을 만들고 F급 던전을 공략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던전의 봉인을 해제하기 이전에,먼 저 준비해야 할 바는 던전이 잠들어 있는 일대의 땅을 구입하는 일일 것이 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뛰어갔 다.
우리 가족의 터전이 미아리로 옮겨
진 시절이다.
기억대로의 집에,열쇠는 우유 바구 니 안에 들어 있었다.
잠긴 문을 열면서 이맘때쯤부터 어 머니께서 동네 커튼집에 다니셨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추억을 계속 더듬어 나가기엔.
스킴한 동안의 내가 어디까지 준비 해 두었는지가 무척 기대되어 다른 생 각을 더 할 수가 없었다.
작년 초등학교 졸업식 때 찍은 걸로 추정되는 사진이 거실 액자에 담겨 있 었다.
그때부터 이미 나는 신체 성장이 완
벽했다.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이 아니 라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라고 해도 믿 을 수 있는 정도.
사진 속의 두 분 부모님 모두 표정이 밝으신 점에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 다.
다음으로 들어간 내 방은 사춘기 소 년의 방이 아니었다.
중학 시절에 내 방이 어땠는지는 기 억나지 않아도, 이전 생의 방과 다르 다는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각을 재듯 접어 둔 이불은 내 솜씨였 다.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한 책상 위도 그
렇다.
방 안을 살살이 뒤졌다.
뭔가를 숨길 만한 구석을 빠짐없이 훑었으며 구식 컴퓨터 속의 내용물과 플로피 디스크들도 다 살폈다.
하지만 바뀐 과거는 내 신체 성장과, 거기에서 비롯된 교우 관계가 전부였 던 모양이다.
스킵 동안의 나는 이제서야 막 던전 을 공략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긴…….
초등학교 때까지는 부모님 곁을 지 켜 드려야지.
지금 부터는 내가 진행한다. 스킵 동안의 나여.
봉인된 던전 일대를 구입하거나 돈 을 불려 둔 건 아니 었어도.
경기도 화성의 야산을 첫 공략지로 삼은 것만큼은 훌륭한 결정이다.
현재 시가를 어떻게 알아봤는지는 대강 짐작이 갔다. 그러나 버스 영수 증 같은 흔적 따위는 진즉에 파기해 두었을 터라 그 쪽으로는 관심을 접었 다.
첫 공략지는 규모가 큰 야산이고 현 매매 시세는 13억 가량이다. 그 야산 에 F 등급의 던전이 시작의 날을 기다 리며 봉인되어 있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야산 구입.
보안 장치 설치 등.
전부 돈이다.
과거의 역사를 알고 있는 이상 돈을 버는 것도 어렵지 않다. 단순히 버는 수준에 족할까.
단.
스킴 동안의 내가 모아 둔 50만원이 면 훌륭한 자본금일 수 있겠으나.
미성년자는 미성년자용 주식 통장밖 에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이는 선물 옵션 거래 같은 투기성 거래가 원천적 으로 막혀 있다.
여차여차해서 법인을 설립해도 내가 추구하는 투자를 감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현재 내게 절실한 것은 대리인이 라 할 수 있었다.
여러 사람의 이름들이 뇌리를 스쳤 다. 조나단, 질리언,김청수, 제시카
그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단 한명뿐이었다.
조나단.
그는 지금 25세의 나이로 월 스트리 트에 있었다.
당시를 회상할 때 그는 자신과 그의 동료들을 가리켜 ‘월가의 늑대’라는 말을 자주 썼다. 그가 재직 중인 금융 회사의 이름에,〇LF가 들어가기 때 문이다.
97년의 오늘은 인터넷이 막 보급되 고 있던 시기였으며, 웹 사이트들은 이제 막 태동되는 시기에 불과했다.
월 스트리트를 무대로 삼는 금융 회 사들 중에,OLF가 들어가는 곳을 검색했다.
당연히 북미의 검색 사이트 APE에 서 였고 한 곳의 링크가 나왔다.
엄청나게 느린 인터넷 속도.
회사 직원들의 사진이 느리게도 떴 다.
당시에 말단이었던 조나단의 사진은 제일 마지막이었다. 한 계단씩 오르듯 조금씩 채워지는 사진 속에 젊은 조나 단이 웃고 있었다.
내가 바로 월가의 엘리트다, 라고 말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사진에는 모
든 걸 잃은 한 남자의 독기와 절망이 빠져 있었다.
메일을 보냈다.
– 안녕하십니까,조나단. 다름이 아니라 귀하에게 이 메일을 보내는 이유는,현 태 국의 바트화가 너무 고평가되어 있지 않 았는지에 관해 귀하의 의견을 듣고 싶어 서입니다.
조나단은 우리나라에 IMF를 가져왔 던,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당시의 활 약을 참 많이도 자랑했었다.
97년은 그의 온 일생을 통틀어 최고 의 전성기 였다고 했다.
많은 대중들이 우러러봤던 A급 헌터 의 칭호를 얻었어도, 과거를 회상할 때의 그의 표정에는 한없이 찌든 그리 움뿐이었다.
나는 조나단이 미끼를 물 것이라 확 신했다.
이때 조나단은 세계 헤지 펀드들이 태국의 바트화부터 공격할 것이라는 심증이 있으면서도 불안해하던 시기 였다.
그가 만약 자신을 좀 더 믿고 시작부 터 과감한 투자들을 감행했더 라면,그
의 전성기는 단지 개인만의 전성기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질 못했다. 이유는 뻔했다. 전성기 이전의 그는 패잔병 신세였으니까.
– 태국의 바트화는 고평가되어 있지 않 습니다.
그날 자기 전에 확인 한 메일함에는 그의 답장이 들어와 있었다.
一 실례했습니다. 태국의 바트화가 고평 가되어 있다 함은, 그걸 명분으로 삼을 수 있지 않겠냐 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였다.
아마도 내 답신을 기다리고 있었는 지,다음 답장이 오는 시간이 짧았다.
一 어디의 누구신지부터 밝혀 주십시오.
예상했던 대로다. 입질이 강하다.
– 명분으로 삼을 수 있는 조건은 더 있 지 않습니까. 아시아의 외환 보유고와 지 속될 달러 강세는,헤지 펀드들의 고민을 쉽게 덜어 주지 않겠습니까. 제가 예상하 기로는 이번 달부터 바트화에 대한 공격 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들
이 공격을 시작한다면 최종 목표는 태국 이 아닐 것입니다. 태국은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
조나단은 경 악했다.
시작은 오전에 난데없이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에서였다.
“태국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라 니……
상대는 헤지 펀드들의 바트화 공격 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 가정에 유력한 헤지 펀드
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까지 말이 다.
칸막이 너머를 둘러본 조나단은 자 신의 머리를 감쌌다. 동료들은 모두 여전히 정신없었고, 다시 생각해 보건 대 그들 중 누구와 상담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이건 기회다.
답신에서 거론되고 있는 헤지 펀드 들에 많은 투자 자금이 유입되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월가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자금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이후 판세가 달라질 것이란 부분 도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사실
이었다.
그래서 최근 월가의 분위기가 심상 치 않았다. 그러던 중에 이 메일이 온 것이다.
조나단은 무엇보다도 상대가 ‘명분’ 이라는 단어를 쓴 것에 집중했다.
이쪽 종사자가 아니고서는 그 맥락 에 그 단어를 쓸 수 없는 법이다. 누구지? 라는 물음보다도.
어디지? 라는 물음이 뻗쳤다.
어쩌면 이는 시험일 수도 있었다. 조나단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다음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一 지금도 제 사무실은 열려 있습니다. 꼭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 사무실에 방 문하실 수 없으시다면, 제 연락처는…….
왜 그렇게 손이 떨려오는지.
조나단은 유령 이라도 만난 기분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