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40
4 화
뉴욕의 증시가 한때 5% 이상 폭락했 다.
세계 경제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사 안은 물론, 미 대통령의 성추문 스캔 들로 그가 탄핵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더해졌다.
우리나라로서도 대현 그룹이 북한에 30만 톤의 쌀을 지원하며 나라 전체
가 시끄러운 날.
반면에 공항은 한적했다.
제시카는 영국이 아닌 뉴욕에서 들 어왔다.
미인은 눈길을 사기 마련.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씩 그녀에게 꽂혔다. 그녀는 첫 만남에서의 촌티를 지운 모습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에단.”
공항 레스토랑은 옛날보다도 손님이 더 없었다. 폐업이 가까워지는 음산한 분위기가 사업장 전체에 자욱하다. 거 기에 제시카가 피워 올린 담배 연기가 추가되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가 건넨 담배 개피에 불을 붙였다.
제시카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다시 만나고 싶었어 요. 그런데 한국이라니, 이건 뜻밖이 네요.”
“러시아발 금융 전쟁도,월가의 인수 전도 이 나라에서 시작됐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한국은 매력적 인 시장이 아니에요. 매력적일 수는 있었죠. 전일이라는 신생 투자 회사와 이 나라 정권이 유착하기 전까지는요. 더군다나 신생 투자 회사는 매우 공격 적일 뿐만 아니라, 자금도 풍부하더군
요. 며칠 전만 해도 100억 달러를 더 투입했지요.”
“이 나라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누군들 안 그렇겠어요. 에단의 말마 따나,이 나라에서 많은 게 시작됐어 요. 그런데 에단. 한국에는 무슨 볼일 로 계신 거죠?”
“제 얘기는 그만하죠.”
“여기 분위기가 끔찍해서 나름대로 노력해 본다는 게,지나쳤네요. 사과 드릴게요.”
“하지만 조용하죠. 긴히 말하기에는 이만한곳이 없습니다.”
제시카는 웃음 띤 얼굴로 고개를 끄
덕였다.
거기에 대고 물었다.
“뉴욕에서는 어땠습니까?”
묻자마자,제시카는 즐겁다는 듯이 대꾸했다.
“누군들 안 그랬겠어요. 모두가 그들 을 동경하고,그들처럼 되고 싶다 꿈 꿨죠. 그래서 그들과 맞섰다는 게 실 감이 들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인수 회의 때 그들의 절박하고 투쟁적인 모 습을 직접 보니…… 어땠냐고요? 놀 라운 경험이었죠.”
부도 위기의 헤지 펀드와 금융 기관 들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인수한 펀드의 창립자 중에 는 전임 대통령의 경제 고문도 속해 있었어요. 알고 계신가요?”
“랜드마크 캐피털 말이죠?”
“네.”
제시카의 두 눈이 깊어졌다.
몇 달 동안 진행됐었던 금융 전쟁을 되짚어 보는 것 같았다.
우연희가 겪었던 던전에서의 한 달 처럼 매순간 목숨을 걸었던 것은 아니 었으나.
그녀 본인에게는 큰 의미가 있던 나 날들이었다.
수천억 달러 규모의 총알들이 날아
들던 전장을 바로 옆에서 목도할 수 있는 기회란 쉽게 오는 게 아니다.
스킬로 치자면.
개안(開眼)을 획득한 셈.
지금은 어둠을 밝히는 수준일 뿐이 지만, 등급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것 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녀의 수련생 시절이 끝났다고 판 단한 건,지난달에 들어와 있었던 한 통의 메일 때문이었다. 질리언이 보내 온 메일이었다.
이번 금융 전쟁에서 보완했어야 할 부분들을 고백하는 식 이 었는데.
제시카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었
다.
“이제 우리 얘기를 해 봅시다. 지난 달, 질리언이 의견 하나를 냈습니다. 그는 제시카에게 데스크 한 팀을 맡기 고 싶어 하더군요.”
“제발, 아니었다고 해주세요.”
“예?”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전황의 급변 성 앞에는 무의미한 전략이었어요. 설 마 제 보고서를 그들에게 보여 준 건 아니죠?”
“그들이라뇨
“투자 시안을 작성한…… 디렉팅 부 서 말이에요. 비웃음만 살 뿐이에요.”
그러고는 바로 이어 붙였다.
“그들은 대체 누구죠? 아직도 그날 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들이 작성한 투자 시안을 본 날 이후로,며 칠간 잠도 못 잤어요.”
“이거 말이로군요.”
그때쯤 새로운 투자 시안을 꺼내 보 였다.
제시카는 손부터 뻗어 왔다. 그렇게 막상 집어 들긴 했으나 다시 내려놓으 며.
그녀가 멋쩍은 미소를 지 었다.
“봐도 됩니다. 그러라고 가져온 거니 까.”
정말이요?
그녀는 그런 기쁜 얼굴로 나를 쳐다 보았다.
그러나 투자 시안을 펼쳐 보지는 않 았다. 애타는 눈빛과는 상반된 행동이 었다.
“질리언 보스가 저를 어떻게 평가 이 상으로 부풀렸는지 모르겠지만, 에단 의 고객 분들은 실수하고 있는 거예 요. 보스도 그랬죠. 이번 금융 전쟁에 서 배운 것은 쓸모가 없을 거라고요. 저도 크게 공감하고 있어요.”
역시 제시카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여자였다. 그녀는 투자 시안을 자신에
게 직접 보여 준다는 게, 무슨 의미인 지 모르지 않았다.
“저는 보스 아래에서 수습 과정을 더 밟아야 해요.”
“질리언의 의견과는 다르군요.”
“아니, 제 말은 맨 섬을 떠날 수 없다 는 말이에요. 보스에게 배울 것들이 너무 많이 남았어요. 불과 몇 달 전까 지만 해도 저는 전화 서기였어요. 그 런데 갑자기…… 에단. 제가 멋대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 겠죠?”
“제 고객분들의 판단이나 제 판단도 질리 언과 같습니 다. 하지만 강요할 수 는 없죠. 제안을 더 들어 보시겠습니
맨 섬의 자금도 인수전에 뛰어들어 있었다.
현재까지 맨 섬은 랜드마크 캐피탈 을 위시로 대형 헤지 펀드 세 곳의 지 배 지분을 인수했다.
헤지 펀드 창립자 세 명 중, 두 명의 경우에는 그들의 포트폴리오와 시스 템 그리고 고객 자금을 고스란히 바치 게 된 꼴이었지만.
제시카가 언급한 전(前) 미 대통령의
경제 고문은 달랐다. 그는 소량의 파 트너 지분을 간신히 남기며 잔존하는 데 성공했다.
그 같은 자들은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한 것을, 오히려 투기 수단으로 삼 았다.
현재 맨 섬과 뉴욕의 자금은 그러한 자들을 상대로 겨루고 있었다.
어떤 패배자들은 사설 업체가 아닌, 미 연준의 구제금융을 받고.
또 어떤 패배자들은 그들을 노리는 자금 앞에 가능한 이득을 남기는 데 성공하고.
그마저도 실패한 패배자들은 우리와
경쟁사들에게 모든 걸 빼앗겨 버렸다.
뉴욕의 인수전은그런 전쟁이었다.
“우리 고객분들께서는 이참에 글로 벌 자산 운용사를 가지고 싶어 하십니 다.”
제시카는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인수전에 공격적으로 뛰어들라는 지 시가 가리키는 바는, 결국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질리언이 그녀에게 어디까지 들려줬 는지는 모르겠다만.
“인수전은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독 립 헤지 펀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펀 드들을 보유한 투자 기관들도 협상 도
마에 오르기 시작했죠.”
“그렇죠.”
“그것을 몇 개 묶을 계획입니다. 블 루스톤 그룹 규모로.”
“조나단 인베스트먼트도 같은 행보 를 밟고 계시다는걸 알고 계시죠?”
“맨 섬과 뉴욕을 이어 준 게 바로 접 니다. 그 사실까지는 듣지 못한 모양 이군요.”
“그래요?”
“조나단 인베스트먼트도 이번 전쟁 에 있어서 승리의 주역입니다. 당연히 그들의 창고에도 현금이 엄청나게 쌓 여 있죠. 그들과 경쟁하게 놔둘 순 없
었습니다. 서로 비슷한 처지 아닙니 까.,’
“맞아요. 보스는 조나단 인베스트먼 트와 타협점을 잘 찾아가고 있었어요. 그게 에단 덕분이었군요……
나를 향한 제시카의 시선이 새삼 달 라졌다.
“지금 월가는 이 나라와 사정이 같습 니다.”
화마(火魔)가 닥쳤고.
밀림에서 살던 돈 많은 짐승들은 노 릿하게 구워졌다. 거둬 가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과가 뚜렷해질
겁니다. 어쩌면 블루스톤 그룹을 뛰어 넘는 자산 운용사로 확장될지도 모를 일이죠.”
“놀라운 이야기지만, 믿을 수밖에요. 제가 보고 온 게 그것들이에요.”
“우리 고객분들께서는 그 회사의 최 고 경영자로 질리언을 낙점하였습니 다. 질리언은 그렇게 맨 섬을 떠나게 될 겁니다. 그의 승낙만 남았죠.”
“하지만 저는 남게 되는 건가요?”
“그냥 남는 게 아닙니다. 질리언의 보직을 제시카에게 승계할 생각입니 다.,,
제시카는 담배를 한 대 더 물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담배 연기만 천천 히 내뿜으며 하나를 응시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새로운 투자 시안 으
담배가 다 타들어 가던 시점에 제시 카가 투자 시안을 집 어 들었다.
“과분한 제안이었어요. 하지만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 것은 맞는 것 같네 요. 이걸 보고 결정해도 될까요? 목에 걸려 버릴지언정…… 참을 수 없네
요.,,
“물론입니다.”
마침내 제시카가 투자 시안을 펼쳤 다.
그때부터 그녀는 레포트를 채점하는 교수 같아 보이 기도 했다.
다양한 감정들이 그녀의 만면을 스 치되,결국엔 하나로 귀결됐다.
조금은 따분하다는 식으로.
“이거, 같은 부서에서 나온 게 맞나
요?”
제시카가 물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제 기대하고는 많이 다르네요. 당시 의 천재성이 보이질 않아요.”
“같은 부서에서 나온 게 맞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따라야 할 절대 룰인 것도 맞습니다.”
“이 뒤로 더 없나요?”
“뭘 기대하고 있는 건가요. 제시카. 이번에는 미국이 무너지기라도 바랬 습니까?”
“제게 맡길 자금은요?”
“처음 맨 섬에 들어갔던 자금의 두 배입니다. 그 외 남은 수익금은 전부 기존의 대주주들에게 배당되거나,신 생 자산 운용사로 투자 이전될 겁니 다.,,
그제야 제시카의 얼굴이 살짝 굳었 다.
“300억 달러……
“큰 자금입니다만 그렇게까지 어려
운 과제가 아닙 니다.”
제시카도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 였다.
“이번에도 룰은 같습니다. 투자 손실 에 따른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매집만 하면 되는 것 이군요. 최대한 시세 상승을 누르며.”
“그러며 백여 명이 넘는 엘리트 매니 저들을 선두 지휘해야 하는 겁니다. 어쩔 건가요? 맨 섬에 남겠습니까? 아니면 질리언을 따라 가겠습니까?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충분 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을게요.”
제시카가 바로 대답했다.
새로운 투자 시안은 심플했다.
컴퓨터 보급률과 인터넷 보급망 등 의 데이터들로 부풀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지시부터가 간단했기 때문이 다.
뉴욕 나스닥 시장의 주요 IT종목을 매 집 하라.
지금은 98년 하반기.
그것에 닷컴 (.com)만 붙어 있다면 눈을 감고 아무거나 찍어도 엄청난 수 익이 된다.
애견 용품만 파는 업체가 닷컴을 붙 였다는 이유만으로 2억 달러의 투자 를 받고.
설사 IT 기업이 아니더라도 광섬유 부품을 파는 부서가 존재한다는 이유 만으로,그 기업의 가치는 40배 이상 폭등해 버린다.
비로소 꿈의 통신망이 대중들의 앞 에 펼쳐진 시대다. 21세기에 대한 장
밋빛 희망은 단순한 희망을 뛰어넘어 광적 인 수준으로 폭발한다.
거품이 천장에 도달하기 전까지. 바야흐로.
원숭이도 수익을 내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닷컴 붐 당시 구골만큼은 특별히 덕 을 본 게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결국 닷컴 버블이 터지며 닷 컴 회사들이 연달아 무너졌던 이후부 터는.
구골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되 었다. 실리콘 밸리의 뛰어난 실업자들.
그러니까 개발자들과 명석한 인재들 을 흡수하는 것으로 세계 최대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그때 확보할 수 있던 것이다.
최근 월가의 사정이 당시와 많이 닮 아 있었다.
러시아발 금융 전쟁의 여파로 헤지 펀드들과 투자 기관들이 도산 직전까 지 몰리며 엘리트 매니저들이 길거리 에 나앉기 직전이었다.
그러한 인력뿐만 아니라 자금과 풍 부한 시스템까지 뉴욕 회사로 결집됐 다.
그 결과.
뉴욕 회사는 인수전의 최대 수혜자 로 몇 달간의 전쟁을 끝마쳤다.
98년 말, 겨울.
본사 빌딩 앞에는 곧 다가올 성탄절 을 기념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여 있 다.
거기에서 눈을 델 수 없었다.
상단의 반짝이는 별 그리고 나무를 따라 둘러진 램프들이 인수 합병하는 데 성공한 온갖 것들을 상징하는 것처 럼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해 온 것 이다.
단 일 년 반 만에.
“학교는 어떻게 하고 왔어?”
조나단이 물었다.
“방학했지.”
조나단은 인상이 많이 바뀐 느낌이 었다. 헤실거리며 나를 의식하던 표정 이 없었다. 대신 반가운 미소로만 인 사를 대신해 왔다.
그의 사무실은 우리나라였다면 축하 난이 쌓여 있겠지만 어느 로펌처럼 서 류 더미만 가득했다. 그가 정리되지 않은 그것들에서 하나를 빼냈다.
“자. 이것부터 확인해 봐.”
뉴욕 회사의 이사진 목록.
거기엔 유명 인사들의 이름들로 가 득하다. 적어도 우리들에게 그 이름들 은 초호화 블록버스터 무비의 캐스팅 목록이나 다를 바 없었다.
글로벌 헤지 펀드들의 창립자와 파 트너들.
거대 에너지 회사의 전 CEO.
빅 4 은행 중 한 곳의 전임 은행장.
80년대 IMF 총재를 역임했던 독일 인까지.
이 명단 그대로 세계 경제 콘퍼런스 를주최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반면에 그걸 바라보는 조나단의 표 정은 그리 편안하지 못했다.
그는 이 목록을 완성하기 위해서 지 난 몇 달간 가장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조나단의 피부는 시간을 얻어 맞은 것처럼 푸석해 보였다.
하지만 달라진 인상처럼,눈빛에도 제법 날이 서 있는 게 기대했던 대로 였다.
“상호명은 그대로 이어 가기로 했다. 그래서 조나단 투자 금융 그룹. 이사 진들 모두가 이대로를 원하더군. 내 이름의 브랜드 가치가 어쩌고저쩌고 잘도 지껄여 댔었지. 패배자들 주제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제 한 배를 탄 사람들이다.”
“말은 바로 해야지. 이것들이 우리 배에 올라탄 거야. 이 자식들은…… 하나같이 비열한 자식들뿐이야.”
단어 하나하나에서 그간의 스트레스 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이사진들은 생존에 성공한 자들이었 다.
누구는 자신들이 창립한 헤지 펀드 와 함께,또 누구는 도산한 투자 기관 에서 탈출한 채로.
조나단에게 이들 이사진들은 우리에 게 패배한 적장이며, 인수전에서는 그
를 심각하게 괴롭혔던 스트레스 덩어 리였지만.
본래 역사에서 그들은 러시아와 함 께 침몰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명성을 유지한다. 성공적인 은퇴를 하는 자들 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여기는 우리 둘이서만 몰던 나 룻배 수준이 아니지. 뛰어난 항해사가 필요해. 가능한 많이.”
세계 팔 대양을 휘젓고 다니려면 말 이다.
“내가 이러는 것도 네 앞에서 만이 야.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나갈 까? 봐. 눈이야. 더럽게 추워지고 있
어.”
그 짧은 사이에.
거리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 는 일부러 월가를 벗어났다.
성공한 엘리트들을 위한 상가들을 피해서였다. 그래서 우리가 찾은 곳은 뉴욕답지 않은 어느 골목, 작은 위스 키 바였다.
손님이 몇 없고 재즈 음악이 흘러나 오는 곳이 었다. 한 병에 만 달러가 넘 는 위스키와 와인 대신 이편이 나았 다.
월가의 살롱에서 자리를 잡았다가, 경제 토론회가 열렸을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이제 와서 미성년자처럼 굴진 않을 거지? 에단.”
조나단이 내 주력 가명 하나를 언급 하며 술병을 기울였다.
그가 물었다.
“질리언은 아무것도 모르지?”
나는 고개를 끄덕 였다.
“들려줄 계획도 없고?”
“영원히.”
“자, 일단 마시고 시작하자. 처음이 네. 너와의 술자리는.”
독한 위스키였다.
조나단은 그걸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심산인 것 같았다.
술이 조금 더 들어갔을 때.
그의 눈빛이 한결 풀어졌다.
그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희미 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코네티컷 퇴직 교사연기금을 가져온 게 신의 한 수였지. 안 그래?” 30%의 성과 수수료를 제해도. 우리는 미 당국의 연기금 20억 달러 를 77억 달러로 만들어 줬다.
아마도 미 당국의 수많은 연기금 부 서들에서는 그때부터 우리를 고려했 을 것이다.
최근 공무원들의 접근이 활발해졌
다. 비단 미국인뿐일까. 일본과 캐나 다 그리고 노르웨이 등 세계 각국의 공무원들도 바다를 건너 왔다.
그들 모두는 뉴욕 회사의 인수 합병 과정을 예의 주시 하고 있었다.
그러다 뉴욕 회사가 그룹 체계를 갖 추던 날.
비로소 그들의 제안이 시작됐다.
자신들의 연기금을 운용해 달라고 말이다.
그 규모가 현재까지 무려 4천억 달러 였다.
“앞으로 이사진 새끼들 인생에서는 크리스마스는 물론 휴일도 없을 거
다.”
조나단은 복수했다지만 씁쓸하게 웃 어 버렸다.
그도 알고 있는 거다.
이사진들에게 평생 일할 분량의 일 을 던져 준 것이,그들에게 도리어 성 공의 징표가 될 수 있었다.
뉴욕 그룹이 운용하는 자금은 한 나 라의 경제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금액. 자그마치 세계 자산의 흐름과 분배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금액 이다.
조나단 투자 금융 그룹이 세계 무대 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이 술자리는 그걸 기념하는 조그마한 축하연이 었다.
병에 담긴 위스키가 반절 정도 줄어 든 무렵.
우리 앞에는 자연스럽게 다음번 투 자 시안이 놓여져 있었다.
“그룹 산하의 헤지 펀드들도 같이 움 직이나?”
“아니. 하던 대로 내버려 둬. 어차피 그것들도 IT에 뛰어들 테지.”
“하긴.,,
벌써부터 그럴 조짐이 시작되고 있 다.
다음 세기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이
미 95년도에 시작됐던 일이다.
그것이 지금부터는 그 동안의 속도 를 초월하여 더 빠르고, 더 많은 자금 들이 뉴욕 증시의 IT 종목에 모여든 다.
광적으로.
“그룹 산하의 헤지 펀드는 물론,연 기금 운용에도 개입하지 않을 거다. 이것들은 때가 되었을 때 우리의 지시 를 따르기만 하면 돼.”
가만히 놔둬도 우리보다 뛰어난 엘 리트들이 평균 이상을 해낼 것이다. 사실이었다.
인수 합병한 헤지 펀드와 투자 기관
의 엘리트들이 우리보다 못한 바는, 단지 시간을 역행해 보지 않은 경험뿐 이다.
계속 말했다.
“이것들도 손실을 복구해야 할 거 아 냐. 우리의 부자 손님들 다 떨어져 나 갔지?”
“처음에는. 최근에는 다시 되돌아오 고 있다. 우리 그룹 아래로 합병된 차 례대로. 하여간 돈 냄새는 기가 막히 게들 맡지. 안 그래?”
“그럼 더 좋고. 다만.”
“다만?”
가방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우리 순 재산만큼은 거기 적힌 기업 들 주식에만 투입시켜.”
조나단에게 종이,그 리스트를 건네 며 말했다.
“너도 정신없긴 마찬가지였지 않아? 언제 또 준비한 거야.”
어차피 이름만 대면 누구라도 알 기 업들이 대부분이긴 했다.
조나단은 리스트를 곱게 접어서 지 갑 깊숙한 곳에 끼워 넣었다.
그가 약간 취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 다.
“우리도 신(新) 세기의 열성 팬이 될 시간이군.”
“누군들 아니겠어. 하지만 광적인 투 기가 천장까지 치닫기 전에 몸 빼낼 준비도 해둬.”
“그건 내가 체크하지. 뭐,내가 하는 게 아니겠지만. 그게 그거잖아.”
“월말 보고서는 꾸준히 보내. 우리가 진입하는 시점부터.”
“일 얘기는다 끝난 것같지?”
“어느 정도.”
“그럼 다시 퍼 마셔 볼까.”
“아니,이쯤이면 적당한 것 같다.”
“이제 시작이잖아.”
“내일 미팅이 있어.”
“또 어딜?”
“그렇지 않아도 그 건 때문에 온 거 다. 내일 시간 비워 둬.”
“재무부 부 장관을 내치라고? 러시 아가 어떻게 몰락하기 시작했는지 잘 아는 사람이 그래?”
“오전이야 오후야?”
“오후니까 퍼 마시려고 폼 잡고 있는 거지.”
“오늘은 간단히 하고,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못하고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지.”
“말해 봐.”
“스탠포드 대학생 두 명을 설득해 줘 야겠어.”
과연 언제 나서는 것이 그 둘의 회사 에 최소한의 영향만 미치는 것인 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애초에 페이지랭크 기술을 팔기로 결심했을 때, 둘은 이 사업에 미련이 없었다. 둘의 계획은 기술을 팔아 박 사 학위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술은 팔리지 않았고,어쩔 수 없이 사업체를 꾸려 나가다가.
닷컴 거품과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
어 회사에 독과점 문제가 발생했던 것 을 기회로 비상하게 된다.
그들은 기업 공개를 하기 전까지 거 대 투자 자본을 받지 않았다.
이왕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면,자기 들만의 자본으로 그 회사를 이끌어 나 갈 목적이 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기 업 공개 (IPO)까지 기 다려야 할까?
기업 공개 당시, 월가의 전통적인 방 식을 무시하고 민간 투자자들에게 많 은 기회를 넘겼던 걸 생각해 보면 그 이전에 최대한 많은 지분을 확보해야 만했다.
아이 러니한 점이 바로 그 때문이다.
섣불리 개입하면 두 창립자는 박사 과정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렇다고 개 입하지 않으면 눈앞의 황금을 두고 날 려 버리는 셈.
역시 조나단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 정이었다.
“매입가가 백만 달러라면서. 그냥 사 버려.”
“그걸 팔아서 번 돈으로 뭘 하려고 하겠어. 박사 과정이나 제대로 밟으려 는 거지.”
“그렇게 뛰어난 기술이면 왜 퇴짜만 맞고 돌아다니는 거냐.”
“보는눈들이 없는 거지.”
사실은 다르다.
현존하는 검색 사이트들은 사용자를 늘리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검 색 기술보다 마케팅에 있다는 걸 꾸준 히 학습해 왔다.
그래서 사용자들이 그들의 사이트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도록 다 양한 콘텐츠를 종합시 키는 구조가 굳 어 졌다.
그게 지금까지의 흐름.
“득에 실패해선 안 돼. 무턱대고 사 버려도 안되고. 알겠어?”
실패하면 검색 기술을 사 버린 다음.
둘의 기업이 밟았던 전철을 고스란 히 따라갈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에 말이다.
“이 둘에게 내 스토리가 먹히면 좋겠 군.”
“먹힐 거다.”
“그래. 진실을 모르는 자들에겐, 내 스토리만큼 대단한 게 없지. 내일 오 전 스탠포드 교내에서?”
“마음이 바뀌었어. 뉴욕 본사로 전장 을 바꾼다. 연락은 내가 해 둘 테니 까.,,
“진짜야? 전장이라 표현할 만큼? 그 렇게나 이걸 가져야만 하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 였다. 조나단은 생 각 깊은 얼굴로 조용해졌다.
그러고는 마지막 남은 술잔을 넘겼 을때.
그가 새삼 달라진 눈빛을 번뜩였다.
“연필 깎아서 와. 그 동안 깜냥이 있 는데,대학원생 두 명는 정도는 요리 해 줘야겠지. 그런데 구골이라는 뜻이 십의 백 제곱이라고?”
“그래.”
“작명 센스 하나는 죽여주네. 그 숫 자 끝에 달러만 붙이면……
조나단은 말꼬리를 흐리며 나를 지 그시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