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32
32화 도둑 오디션 (1)
적룡산업 빌딩 대표 사무실 내에서 창가 앞에 선 석두가 떠오른 아침햇살을 올려다본다.
고층건물이라 그런지 일광 쪽은 확실히 탁월한 면모를 보이는 장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면접일이던가?”
석두의 질문에 답변을 들려준 쪽은 평소의 창민이 아닌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마도요.”
석두와 기타 적룡파 임원들에게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왔을 때 입었던 여성용 정장 차림을 갖춘 세미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얼굴에 너무나도 확연하게 드러나기에 석두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내 비서 일에 상당히 많은 불만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군.”
“그야 당연하죠. 애초에 전 비서직을 지원한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따로 직책이 있는 것도 아니지.”
“…….”
“창민이 녀석이 없는 동안 네가 내 임시 비서다. 그건 서로 합의를 본 게 아닌가?”
“그치만… 제가 마땅히 할 포지션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의도적으로 한 게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번개를 대신해 소매치기라도 하러 가면 되거늘. 아니면 쾌남 대신에 해킹을 해도 상관없어.”
“…….”
전부 세미에게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본래대로라면 김창민이 맡았어야 할 직책이었으나, 오늘은 특별히 중요한 볼일이 있어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김창민, 그리고 망치.
두 사람은 지금…….
도둑 오디션 1차 실무진 면접관으로 참가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
“…….”
어색하게 앉아 있는 두 사람.
바로 적룡파의 주축이기도 한 망치와, 그리고 망치가 어떤 의미로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창민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것도 좁은 회의실 안에서.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창민이 목소리를 높인다.
“들어오세요.”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정장 차림을 갖춘 여성이 살짝 고개를 숙인다.
“슬슬 지원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낼까요?”
“네, 들여보내세요.”
창민의 말에 여성이 알았다는 식으로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여성과 동급으로 창민과 망치, 두 사람도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애초에 창민은 정장 핏이 잘 살아나는 체형에 처음부터 정장을 즐겨 입는 게 취향이기에 그다지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석두를 보좌할 때에도 항상 정장 차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망치는 다르다.
“으음…….”
꽉 조이는 넥타이.
터질 것 같은 와이셔츠.
게다가 옆에는 한때 자신의 상관이기도 했던 전(前) 도끼파 두목, 김창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본래대로라면 번개도 같이 들어와 3인이서 자리에 앉아야 했지만.
‘교묘한 녀석!’
번개는 진작부터 이 어색한 기운을 감지하고 일이 있다면서 먼저 자리를 빼버린 것이다.
그렇다.
이 자리는 실로 어색하다.
왜냐하면.
도둑이기도 한 그들은 현재 ‘면접관’이라는 신분을 갖추고 회의실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고작해야 열쇠공에서 도둑, 그리고 뒷세계를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던 망치에게 면접관이라니.
만약 자신에게 부모님이 계셨다면, 집안의 자랑이라면서 자수성가한 그를 보고 펑펑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다 부모님과 현재 같이 거주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지, 현재는 그런 것 따위는 없다.
여하튼 면접관이라는 어엿한 직책(?)을 가지고 자리를 잡은 망치.
긴장된 탓에 목이 타는 듯, 연신 물을 들이켠다.
“누가 보면 네가 면접을 보러 온 것 같군.”
“켁켁!”
창민의 한마디에 사례가 들린 망치가 연신 기침을 토해낸다.
아직까지도 조직 내 상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틀어박혀 있어서 그런지 망치는 지금도 창민 앞에 서면 꼼짝도 못한다.
“조금은 침착한 모습을 보여도 되거늘.”
“아, 알겠습니다!”
“목소리도 줄여라. 괜히 큰소리 내다간 바깥에 있는 지원자들에게 우리들의 정체를 들킬지도 모르니까.”
“…….”
어쩌라는 것인가.
속으로 구시렁구시렁거리며 다시 물 한 잔을 들이켜는 망치.
왜 하필이면 이 인간과 같이 면접관을 차지하게 된 것인지 모르나, 이것도 다 석두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
명령을 내렸으면 그대로 따르는 게 부하 된 도리 아니겠는가.
끼이익.
서서히 문이 열리면서 1번부터 5번 지원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녕하세요!”
기운차게 인사하는 지원자들.
하나같이 성실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적룡산업이라 그런지 학벌들도 괜찮다.
말 그대로 이들이 바라는 인재상이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플러스가 되는 요소가 존재한다.
바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른 인재 채용.
그것이 바로 여타 다른 기업에 비해 이들이 추구하는 인재상에 차별화가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즉.
겉으로는 평범한 면접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해 도둑을 선발하는 오디션이다.
“여기가 바로…….”
높은 빌딩을 올려다보는 도서희.
근처에도 많은 빌딩이 존재하긴 하지만, 확실히 신축된 건물이라 그런지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가 확연하게 다른 빌딩과 차이가 난다.
“…정신 차리자, 도서희!”
가볍게 자신의 볼을 몇 번 때리면서 앞으로 걸어 나간다.
실로 오랜만에 입어보는 검은 정장.
부모님의 장례식 때 입었던 상복 느낌이 나서 검은 정장은 싫기에 일부러 밝은 색 계통을 입었다.
또각또각 힐의 굽 소리와 함께 로비에 입성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내 데스크 여성이 말을 걸어온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저기… 면접 보러 왔는데요.”
“아, 그렇다면 3층으로 올라가세요. 면접실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으니 그걸 보고 따라가시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불신주의자이기에 사람과 대화를 하면 일단 말부터 자연스럽게 더듬게 된다.
물론 몇 번 말을 주고받기 시작하면 괜찮게 되지만, 그래도 첫 인상이 3초 만에 결정된다는 대한민국에선 확실히 좋지 않은 습관이라 할 수 있다.
이러다가 괜히 적룡산업 면접에서도 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자신의 이런 불편한 습관을 감수하고도 어떻게 해서든 이 면접엔 참가하고 싶었다.
그게 바로 도서희의 목적이자.
희망 사항이다.
도둑 오디션.
도서희는 이 면접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적룡산업과 함께할 임원.
그리고 적룡산업은 괴도라는 자가 한창 유명세를 떨칠 때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된 기업 중 하나다.
주축이 되는 남자, 김석두의 개인 신상까지 조사해봤지만 그는 말 그대로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었다.
어디 좋은 집안의 출신도 아니고 심지어 대자본을 이끌어올 만한 인맥도 없다.
그저 개인 정보를 비공개로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선 의심부터 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도착하자, 면접실로 향하는 길을 친절하게 안내하는 표지판이 벽에 붙어 있다.
길치는 아니기에 제대로 면접을 시행하는 장소까지 찾아가는 데에 성공한 도서희.
그러자 복도에서 다른 지원자들에게 이것저것 사전 설명해 주고 있던 여성이 서희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인다.
“면접 보러 오셨나요?”
“네, 네!!”
목에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간다.
게다가 자세도 경직되어 있는 모습.
다른 지원자들은 서희를 보자마자 분명 1차 실무진 면접에서 떨어질 만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자신들의 뇌에 심어버리게 된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적룡산업 임원을 뽑는 자리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자리에 너무 젊은 아가씨가 왔다는 사실에 다른 지원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허나 그건 이들의 커다란 착각이었다.
그저 채용 모집 공고만 보고 달려든 이들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적룡산업이 원하는 인재상… 아니, 적룡산업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석두가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 이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오히려 도서희가 더 자세히 알고 있을지 모른다.
‘침착하자. 침착만 하면 돼!’
그렇게 스스로를 심적으로 안정화시키며 자리에 앉는 서희였다.
어떻게 해서 오게 된 면접 자리란 말인가!
게다가 적룡산업은 필히 괴도와 무슨 연관이 있는 기업이다.
조금이라도 괴도와의 접점을 만들어두면…….
‘나중에 괴도님을 만날 수도 있을지 몰라!’
그 생각에 벌써부터 서희의 팬심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평범한 면접이로군.”
지금까지 대략 20여 명의 인재들과 면접해 본 결과.
창민이 내린 결론은 이와 같았다.
정말 평범하다.
너무 평범해서 따분할 지경이다.
심지어 옆에 있던 망치는 거의 졸음 직전까지 갔을 정도다.
“평범하면 안 되거늘…….”
지금까지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이 면접의 진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론 앞으로 봐야 할 지원자들의 숫자도 많이 남은 편이지만, 그래도 이 기세로 가면 정말 평범한 면접밖에 되지 않는다.
기껏 시간을 할애해 면접관으로 들어왔는데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가면 석두를 볼 면목이 서질 않는다.
“뭔가 낌새를 알아차릴 법한 그런 인재가 한 명 들어오면 좋겠는데.”
창민의 미간에 점점 주름이 지기 시작한다.
그때, 여성이 문을 열며 창민에게 묻는다.
“다음 지원자들을 들여보내도 될까요?”
“예.”
“알겠습니다.”
여성이 문을 열어주자, 5명의 지원자가 각각 자리에 앉는다.
그중에서 창민의 시야를 자극할 법한 인물 한 명이 눈에 들어온다.
‘상당히 젊은 여성이로군.’
임원 모집이라는 공고인데, 비교적 굉장히 젊은 여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력서를 보니 경력은 없고, 출신 학교는 제법 좋은 편.
최소 임원 자격을 갖추려면 그래도 관련 분야에 경력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젊은 여성, 도서희는 적룡산업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 분야 전반적인 경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기껏 해봐야 아르바이트 일 정도?
“그럼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창민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든 망치가 부스스하게 일어나 지원자들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지원자들을 본 소감을 털어놓는다.
“어?! 왜 젊은 여성분께서 이 면접 자리에…….”
“그, 그러니까…….”
예상치 못하게 지목을 당해버린 탓에 심히 당황한 서희가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감정 컨트롤에서는 실격이로군.’
의도치 않은 사소한 시험이었으나, 서희의 반응을 보자마자 창민은 곧장 그녀를 평가한다.
보나마나 이 여자는 별 볼 일 없게 떨어질 거 같다.
그렇게 생각하려던 찰나였다.
“괴, 괴도를 좋아해서입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여성의 말.
그러자 옆에 있던 지원자들이 피식 웃기 시작한다.
“괴도라니…….”
“갑자기 그런 뜬금없는 말을.”
“아가씨, 괴도 팬이라도 되우?”
서희에 비해 나이가 제법 많은 축에 속하는 지원자들이 작은 목소리로 키득거리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얼굴이 빨갛게 물든 서희.
이 아가씨는 그냥 무조건 탈락이다.
같은 조에 속한 지원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
창민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특히나 방금 전까지 어벙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망치조차도 할 말을 잃은 채 그저 말을 이어가지 못하며 서희를 바라본다.
‘찾았다!’
이 오디션의 진의를 꿰뚫은 자를!
창민의 입꼬리가 면접이 시작된 이후로 처음 올라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