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0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04화
일본으로(3)
-후우웅!
거대한 날개. 현대 지구에서는 있을 수 없는 드래곤이라는 생물이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강우의 연락을 받고 쏜살같이 날아온 에키드나였다.
“…이런 건 언제 준비한 거야?”
차연주가 물었다.
그녀는 에키드나의 등 위에 설치된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강우가 답했다.
“전에 했던 고생을 또 하고 싶지 않거든.”
에키드나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비늘 하나에 의지해서 대롱대롱 날아갔던 비참한 기억.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이거 보호막도 네가 유지하고 있는 거야?”
차연주는 의자 주변을 둘러 싼 채 바람을 막아내고 있는 검은 벽을 톡톡 건드렸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보단 상황이 나아져서.”
정확히는 마기의 양이 달라졌다.
세 자릿수를 넘어간 마기 스탯은 투영의 권능을 운용해서 에키드나의 몸을 가리는 한편 보호막으로 바람을 차단해도 문제없을 마기를 주었다.
‘마정의 역할도 크고.’
마정을 형성하며 한층 더 손쉬워진 마기 운용.
이전에는 정신을 집중해서 펼쳐야 할 권능도 훨씬 수월하게 펼치는 것이 가능했다.
덕분에 에키드나가 전속력으로 날고 있음에도 강우 일행은 꽤나 편하게 일본으로 향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흔들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우욱! 우우웁!!”
구현모가 의자에 앉은 채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제, 제발 좀 천천히….”
“상황이 상황이니 좀 참아라.”
“으어어어어어.”
장현재의 칼 같은 대답에 그는 절망했다. 멀미가 심한 사람에게는 지옥 같은 조건인 게 맞았다.
[강우, 또 싸우러 가는 거야?]에키드나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알았어.”
강우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마전의 개방.
목숨을 담보로 하는 무모한 도박을 또 하고 싶은 생각은 그도 없었다.
‘필요하다면 해야겠지만.’
마정이라는 새로운 힘도 얻었다.
어지간하면 만마전의 개방 없이 이번 사건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어… 강우 씨.”
기어들어가는 듯한 조심스런 목소리. 강우는 고개를 돌렸다. 주변에 가득한 랭커급 플레이어들 사이에 끼어 움츠러든 한설아가 있었다.
“제, 제가 같이 가도 되는 걸까요?”
사자 무리에 섞인 고양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뒤에서 버프만 유지해 주면 돼.”
“차, 차라리 시훈 씨나 태수 씨가 더 낫지 않았을까요? 제가 강우 씨의 도움이 될지 잘….”
“적어도 이번 일에는 설아 네 도움이 더 클 거야.”
강우가 에키드나와 더불어 마지막 동행자로 꼽은 건 한설아였다.
그녀의 말대로 단순 전력이라고 하면 김시훈이 훨씬 더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우는 그녀를 선택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전에 받았던 버프.’
그녀의 ‘빛의 은총’이라는 버프는 고유 스탯을 증가시켰다.
아마 당시보다 레벨이 훨씬 올랐으니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지금 세 자릿수에 달한 마기 스탯이 버프로 상승된다면 그 효과는 엄청났다.
자신에게만 걸어줄 수 있는 버프도 아니었으니 다른 사람들의 전력 상승도 기대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버프 능력이 거의 사기급이네.’
스탯을 절대치로 상승시켜 주는 버프라니.
고레벨 플레이어가 될수록 스탯이 얼마나 올리기 힘든지를 생각하면 보통 효과가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전설급 장비를 구하려는 이유도 스탯 상승치가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강우, 도착했어.]강우는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섬, 아니, 육지의 모습이 보였다.
홋카이도의 면적이 워낙 넓은 탓에 결코 섬이라고는 부르기는 힘들었다.
“…….”
위에서 섬의 모습을 내려다 본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참혹하다,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SS급 게이트의 발원지인 삿포로는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 나올 법한 붕괴된 도시의 광경.
‘이게 몬스터를 감당하지 못한 도시의 말로인가.’
사실 한국에도 이런 장소가 몇 군데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 홋카이도처럼 넓은 범위에 걸쳐 철저하게 파괴된 곳은 없었다.
-크르르르르르!!
파괴된 건물 사이에서 몬스터가 날아올랐다.
10여 미터가 넘는 크기를 가진 거대한 비룡(飛龍)이었다.
피부는 단단한 돌덩이로 이루어져 있었고, 발톱은 강철도 찢어발길 듯이 날카로웠다.
드레이크.
SS급 일반 몬스터로 홋카이도를 멸망시킨 주범.
[강우.]“일단 피해서 가. 지금 저 몬스터를 상대할 시간은 없어.”
[응, 알았어.]에키드나가 선회했다.
“저쪽이다.”
장현재가 한곳을 가리켰다.
바다 근처에 모 유명 게임에서 나오는 벙커를 연상시키는 건축물이 있었다.
일본에서 몬스터의 천국이 된 홋카이도를 복구하기 위해 만들어낸 삿포로 기지였다.
물론, 기지를 만들긴 했지만 아직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기지에 내려온 에키드나는 재빠르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투영의 권능을 해제하자 마치 하늘에 뚝 떨어진 것처럼 강우 일행이 나타났다.
“누구냐!”
“가, 갑자기 어디서….”
기지를 지키고 있던 일본인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꺼냈다.
장현재가 다가갔다.
그는 유창한 일본어로 플레이어들과 대화했다.
“에키드나, 전에 걸었던 통역 마법 있지? 그거 미리 걸어줘.”
“응.”
마법이 걸리니 장현재와 일본인 플레이어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현재 상황을 듣고 싶다.”
“내부에서 야마다 총리님과 후지모토 료마님이 회의 중이십니다. 바로 연락을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장현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기다리니 벙커의 문이 열리며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 하나와 말끔한 인상의 청년이 걸어 나왔다.
“오오. 이렇게 빨리 지원 병력을 보내주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장현재 단장.”
“아닙니다. 이웃나라의 위기니 함께 극복해야죠.”
“뒤에 있는 분들은….”
야마다 총리는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일단 알고 있는 얼굴은 셋.
레드로즈 길드의 길드장인 차연주와 화랑부대의 백화연, 구현모였다.
하지만 다른 세 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이번 악마교 토벌 및 인질 구출 작전에 지원해 준 플레이어들입니다. 실력은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장현재가 나서서 말했다.
사실 그도 강우와 에키드나, 한설아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총리에게 신뢰를 잃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흐음. 알겠습니다. 장현재 단장의 말이라면 믿어야죠.”
일단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야마다 총리와의 대화가 끝나자 후지모토 료마가 나섰다.
그는 장현재의 뒤에 서 있는 강우 일행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후지모토 료마라고 합니다.”
말끔하게 생긴 외모에 큰 키.
김시훈처럼 비정상적일 정도로 뛰어난 미남은 아니었지만 흔히 보기 힘든 미청년이었다.
특히 시선을 끄는 건 눈.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는 왼쪽 눈은 평범한 검은색 오른쪽 눈과 대비되어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흔히 말하는 오드아이였다.
“우선, 이번 사건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타국의 일이라고 무시할 수 있는데 마치 자국의 일처럼 열정적이신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
“겉치레는 거기까지 하죠.”
강우가 그의 말을 끊었다.
순간적으로 후지모토 료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보다 현재 악마교의 위치와 소환 의식의 진행 단계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음….”
후지모토는 다시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략적인 상황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는 벙커 안으로 강우 일행을 안내했다.
벙커 안 회의실에는 현재 삿포로의 지형을 축약해 둔 지도가 있었다.
“현재 악마교가 소환 의식을 준비 중이라고 생각되는 곳은 이곳입니다.”
기다란 지휘봉이 지도를 가리켰다.
“SS급 게이트가 처음 열린 삿포로역. 역사 3층에서 악마교는 소환 의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주변에는 악마교가 풀어 놨다고 추정되는 변종 몬스터가 가득하죠. 변종 몬스터 외에 다수의 악마교도 이곳의 주변을 지키고 있습니다.”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저희 전력으로는 이곳을 돌파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께 지원을 요청드린 것도 이 때문이죠.”
“작전은 어떻게 됩니까?”
장현재가 물었다.
후지모토 료마가 지도에서 두 곳을 가리켰다.
“양동 작전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먼저 이쪽에서 습격을 가해 미끼 역할로 악마교의 시선을 끌고, 그 다음에 뒤쪽에서 급습을 가할 생각입니다. 여기서, 뒤쪽에서의 급습을 한국인 플레이어분들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아마 그들은 여러분에 대한 정보가 없을 테니 기습의 효과는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흠.”
장현재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작전판을 바라보는 강우의 표정도 썩 탐탁지 않았다.
양동작전.
한쪽에서 시선을 끌고, 뒤에서 급습한다.
좋은 작전이다.
실제 역사상 수차례 성과가 증명된 방법이기도 했다.
‘그게 문제지.’
그렇다.
너무 좋은 작전이라는 게 오히려 문제였다. 상상하고,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악마교가 무슨 성처럼 거대한 장소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켜야 할 것은 소환 의식이 벌어지는 장소와 쿠로사키 유리에뿐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겠네요.”
후지모토 료마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가 지도의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사실 이번 작전에는 마지막 한 수가 있습니다. 혼란이 가중 된 틈을 타 한 명이 이쪽 방향으로 침입해 하늘의 무녀님을 구출하는 거죠.”
양동작전을 비튼 세 번째 수.
제대로 먹혀만 든다면 확실히 나쁜 작전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양동작전 자체만 하더라도 나쁜 작전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악마교는 한국인 플레이어들의 참전을 아직 모르고 있으니 그의 말대로 제대로 뒤통수를 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역할을 제가 맡겠습니다. 아무래도 개인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보니 제가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요.”
월드 랭커다운 패기.
‘아니, 패기라고 하긴 힘들군.’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후지모토 료마에게서 풍겨오는 욕망의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뭐, 영웅이 되고 싶다 이건가.’
납치당한 일왕의 손녀. 그녀를 구하는 세계 8명뿐이 없는 월드 랭커!
말만 들어도 그림이 그려지고, 드라마가 떠오르는 구도였다.
아마 후지모토 료마 자신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상관없지.’
그가 영웅이 될 욕심을 가지든 말든 강우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가 제안한 작전 자체는 성공 가능성이 괜찮다는 것이고, 제대로 성공만 한다면 리리스의 소환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