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0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05화
양동작전(1)
삿포로역 북쪽 출구.
강우 일행은 무너진 잔해 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기척을 숨긴 그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크르르르르….”
후지모토 료마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듯, 삿포로 역 주변에는 수많은 마물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직 악마교도로 보이는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성이라는 것이 없는 마물이 서로에게 달려들지 않고 나름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니 누군가의 통제를 따르는 건 확실해 보였다.
“어떻게 할 거야?”
차연주가 귓가에 바짝 입을 가져다대며 물었다.
귀가 가려웠다.
강우는 침묵의 권능을 펼쳤다.
“이제 밖으로 소리 안 새어나갈 테니까 그렇게 말할 필요 없어.”
“읏…! 뭐, 뭐야? 기분 나쁘다 이거야?! 나도 기분 나쁘거든!”
새빨갛게 붉어진 얼굴로 그녀가 소리쳤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장현재에게 고개를 돌렸다.
“신호가 오면 정면으로 돌파한다, 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이 목적이니 그 방법이 제일 좋을 것 같군.”
잠깐 고민하던 장현재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부담이 큰 수단이었지만,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신호가 오면 설아는 바로 전원에게 버프를 돌리고 뒤를 따라와. 무리하게 치료할 필요는 없어. 버프 유지에만 집중해.”
“네, 강우 씨.”
“연주랑 에키드나. 둘은 후방에서 설아를 지키면서 원거리 지원을, 나머지는 돌격하는 걸로 하죠. 아, 장현재 단장님은 어떤 무기를 쓰시죠?”
“난 환도를 쓰네.”
“그렇다면 근접 전사 계열이니 같이 돌격하면 되겠네요.”
“…….”
순식간에 끝난 작전 브리핑.
원래 자신이 했어야 할 역할이 뺏긴 장현재는 묘한 시선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뛰어난 인재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오강우라는 플레이어에 대해 들었던 소식 중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당연히 대련에서 차연주를 이겼다는 얘기였다.
그밖에도 엘 쿠에로 토벌이나 이수역 사건을 실질적으로 처리한 것도 그라고 들었다.
처음 그의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단순히 싸움에 대해서 타고난 재능을 가진 플레이어라고만 생각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군.’
만난 시간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가 단순히 힘만 센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냉철하고 머리 회전이 빨랐다.
판단력과 행동력이 뛰어났고 사람들을 따라오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갖췄다.
‘크게 될 남자야.’
화랑부대라는 특수부대를 다년간 이끈 그조차 어느새 그의 말을 따르고 있을 정도면 말 다했다.
장현재는 몬스터에 더해 악마교라는 근본을 알 수 없는 사이비 종교가 활개 치는 정세에서 그와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에 안도했다.
-우우우웅!
그런 안도도 잠시, 장현재가 들고 있는 수신기에서 진동이 울렸다.
멀리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며 마물들이 그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역시.”
마물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강우가 중얼거렸다. 악마교도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북쪽 출구에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움직인 마물은 소수. 양동작전에 대해서 어느 정도 대비를 해뒀다는 배치였다.
하지만.
‘설마 배후를 급습하는 전력이 우리라고는 상상 못 했겠지.’
후지모토 료마를 제외한 일본인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은 낮다.
쿠로사키 유리에처럼 랭커급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한국에 비하면 랭커급 플레이어의 숫자가 적다.
양동작전을 대비했다고 해도 한국인 랭커들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상상했다고 해도 의미 없었다.
‘내가 있으니까.’
강우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빙결의 권능과 철부의 권능이 합쳐졌다.
리바이어던.
냉기를 뿜어내는 도끼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누군가 조력자가 있을 것까지는 예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조력자 중에 월드 랭커급 이상의 존재가 있을 거라고는 절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강우는 가진 바 힘에 비해서 이름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자신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기려고 손을 써뒀기 때문이었다.
보이는 검보다 보이지 않는 검이 무서운 법이다.
“준비.”
강우가 낮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꺼냈다.
한설아가 버프 마법 캐스팅에 들어갔다. 에키드나가 콧김을 내뿜으며 광역 마법을 준비했다.
“빛의 장막.”
-띠링.
[물리 방어력 300, 마법 방어력 300 상승합니다.] [중급 체력 회복 버프가 적용됩니다.]광역 버프.
한설아의 레벨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효과였다.
물리, 마법 방어력 300 상승이면 유니크 등급 장비 하나를 낀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강우가 원한 것은 이 버프가 아니었다.
“전에 걸어줬던 빛의 은총, 그걸로 부탁해.”
“아, 네. 강우 씨! 근데 빛의 은총은 단일 버프에 지속시간이 엄청 짧은데….”
“괜찮아.”
스탯을 절대치로 상승시켜 주는 사기적인 버프가 지속시간까지 길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설아는 마법의 캐스팅을 새로 했다. 머지않아 그녀의 손에 빛이 맺혔다.
“빛의 은총!”
-띠링.
[빛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물리방어력 300, 마법방어력 300, 고유 스탯(마기)가 3 증가합니다.]‘역시 전보다 버프 효과가 좋아졌어.’
106을 찍은 마기 스탯.
강우는 폭발적으로 차오르는 마기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만약 그가 스탯이 낮은 저레벨 플레이어였다면 3스탯 상승이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탯만 놓고 본다면 월드 랭커에 버금가는 플레이어였다. 절대치 스탯 상승 버프가 큰 효과를 볼 수밖에 없었다.
“개시.”
“다크 스웜!”
에키드나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검은 연기가 주변에 뻗어나갔다. 연기에 닿은 마물의 피부가 녹아내리며 끔찍한 악취가 피어올랐다.
-차르르르륵!
붉은 쇠사슬이 넓게 퍼졌다.
사슬에 닿은 마물의 육체가 처참하게 잘려나갔다.
강우는 몸을 일으켰다.
발을 박차며, 마물들을 향해 돌진했다. 공중에 몸을 띄웠다. 리바이어던을 움켜 쥔 채, 내려찍었다.
무시무시한 한기가 폭발했다. 얼어붙은 마물들의 육체가 비산했다.
“하압!”
“으랏차!”
백화연과 장현재, 구현모도 무기를 꺼내들고 북쪽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이수역 사건 때보다 훨씬 강력한 마물들이었지만, 그를 상대하는 전력은 한국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플레이어들이었다.
-쿵! 콰드득!!
“키에에에에에엑!!”
3미터에 달하는 거체를 가진 마물이 괴성을 내질렀다.
부에르와 같이 이천지옥에 속하는 마물, 데몬 골렘이었다.
그밖에도 일천~삼천지옥에 속하는 다양한 마물들이 출구를 지키고 있었다.
악마교가 어떻게 이들을 소환했고, 제어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지옥의 존재를 소환하고 다루는 점에서는 강우 자신이 가진 지식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다는 것은 지난 ‘융합’ 사건에서도 밝혀진 사실이었다.
‘중요한 건 아니지.’
눈앞의 마물이 지옥에서 소환한 마물이건, 몬스터에게 마정을 심어 만든 마물이건, 인간을 마기에 노출시켜 만든 마물이건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조차 벅찼다.
“키에에에엑!”
삐쩍 마른 마물이 달려들었다. 좀비나 미라처럼 생긴 마물이었다.
리바이어던을 집어던졌다. 회전하며 날아간 냉기의 도끼가 마물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양손을 들어올렸다.
지옥불의 권능이 맺혔다. 팔을 내려 긋자 지옥불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나갔다.
몸을 반 바퀴 돌린다.
오른 주먹을 당겨 몸을 낮췄다.
파쇄의 권능이 주먹에 집중됐다. 마기가 마치 쐐기와 같은 형태로 뭉쳤다.
데몬 골렘이 달려들었다.
주먹을 내질렀다. 골렘의 몸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화르르르륵!
“크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노, 놀랐잖아!”
구현모의 비명이 들렸다.
뜨거운 열기가 뺨을 스쳤다. 고개를 돌렸다.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개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케로베로스.
삼천지옥의 마물이었지만 오천지옥에 서식하는 마물 이상의 힘을 가진 포악한 마물이었다.
‘케로베로스까지 조종한다 이거지.’
처음 그가 소환수로 뽑으려고 했던 마물이었다.
물론 에키드나를 소환한 지금 케로베로스는 그저 머리 3개 달린 똥개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흐압!”
장현재가 케로베로스를 막아섰다.
백화연과 구현모가 합세할 것까지도 없었다.
케로베로스가 강력한 마물이긴 하지만 랭커급 플레이어, 그것도 그 중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는 장현재라면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았다.
-화르르륵!
“크르르르!”
문제는 그런 케로베로스가 한 마리가 아닌 세 마리라는 점.
백화연과 차연주가 각각 한 마리씩 맡았다. 파죽지세로 돌파하던 기세가 한 풀 꺾였다.
“이쪽에서 전선을 유지하고 있어!”
“가, 강우 씨!”
강우는 그렇게 소리치며 혼자서 출구를 돌파했다.
차근차근 정리하고 돌파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안전하지만 상황이 급했다.
‘후지모토 그 자식은 언제 오는 거야?’
강우는 주변을 살폈다. 혼란이라면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일으켰다.
북쪽 출구를 수비하고 있는 마물들은 거의 궤멸 직전이었고, 처음 빠져나갔던 병력들도 허겁지겁 북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콰아앙!
때마침 강렬한 폭음과 함께 바람이 몰아쳤다.
갑작스런 태풍이라도 몰아친 것 같은 강렬한 바람.
‘후지모토다.’
그는 주로 ‘스사노오의 눈’을 이용한 바람 마법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갑작스런 태풍은 그가 벌였을 가능성이 컸다.
강우는 후지모토 료마와 합류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귀찮을 정도로 마물이 달려들었다.
적당히 마물을 쓸어버리고 앞으로 나가자 상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최상층에 있다고 했지.’
고층 빌딩이 아니다 보니 최상층이라고 해봐야 3층이나 4층 정도일 것이다.
그 정도라면 창공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도 점프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높이였다.
강우는 발에 힘을 주었다.
“…응?”
그때,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를 본 것 같은, 불쾌한 이질감.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뜨며 주변을 살폈다. 이질감의 정체는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악마교도가 없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도, 올라가는 계단에도, 아래서 보이는 상층에도 악마교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건 이상했다.
소환 의식이 중요하다면 그를 지키기 위한 병력이 깔려 있어야 했다. 마물이 있긴 하지만 부족하다.
대기하지 않고 있더라도 이런 정신 나간 소란이 일어나는데 모습도 보이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후지모토가 마물들과 싸우며 최상층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생각이 이어졌다.
‘소환 의식이 최상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물론 추측이 틀렸을 수도 있었다.
소환 의식에 인원이 많이 필요해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후지모토가 최상층으로 가고 있다.’
후지모토 료마라는 보험이 있었다.
강우는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마물이 이렇게 깔린 걸 봐서 이곳이 소환 의식이 벌어지는 장소는 맞는 것 같았다.
마기 또한 역 전체에 가득 퍼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강우는 주먹을 쥐었다. 천력의 권능과 파동의 권능이 맺혔다.
하늘 부수기.
강력한 파괴의 힘이 주먹에 맺혔다.
단순한 소거법이었다.
‘위가 아니라면.’
지하밖에 남지 않았다.
주먹을 들어 전력을 다해 내려찍었다.
-쿠우웅!! 쿠구구구궁!!!
바닥이 박살 나며 몸이 지하로 떨어져 내렸다. 지하철이 다니는 어두컴컴한 통로였다.
“크읏! 누, 누구냣!”
붉은 악마 가면을 쓴 악마교도가 그를 반겼다.
‘빙고.’
강우는 발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