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41)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42화
예언의 악마 (2)
“자, 잠시만요.”
가이아는 이어지는 말들이 너무 갑작스러운지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시훈 수호자님. 방금 전에 하신 말씀에 거짓은 없으십니까?”
“예.”
김시훈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호한 그의 대답에 가이아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분명 그 사탄의 생김새가 인간과 비슷하다고 하셨죠?”
“정확히는 몸의 윤곽만 그랬습니다. 검은 장막을 둘러싸고 있어서 정확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가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김시훈 수호자님의 말씀은 잘 알았습니다. 당시 알렉 수호자님이 악마교에게 노려지고 있었던 상황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미 사탄은 악마교에 몸을 담았을 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결국에 최종적인 적은 악마교란 얘기군요.”
강우가 말했다.
악마교. 천 년 전부터 존재해온 악마를 숭배하고, 그 힘을 받아들이는 사악한 존재들.
‘예언의 악마와 엮일만한 놈들이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으려는 예언의 악마 사탄과 그들이 힘을 합치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게까지 느껴질 정도.
가이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게 되겠네요. 하아. 만약 악마교 내부에 벌써 들어가 있다면 조금 더 상황이 어려워졌네요.”
“사탄은 3개월 전 이미 알렉 씨를 간단하게 압도할 정도의 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게 힘이 약해진 상태였다면… 모든 힘을 되찾고 난 이후는 상상하기도 끔찍하겠네요.”
암울한 분위기가 방 안에 내려앉았다.
강우는 가이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자, 이런 상황에서도 수호자만 가디언즈에 받아들이는 원칙을 고수하실 생각이십니까?”
“…….”
그녀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가이아는 그레이스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레이스. 그걸 가져와 주세요.”
“응.”
그레이스가 네모난 상자 두 개를 가지고 왔다.
상자의 뚜껑을 열자 새하얀 가면과 탁구공만한 수정구슬이 보였다.
가이아는 테이블을 더듬거리며 상자 안의 가면을 하나 들어올렸다.
푸른색 빛의 방패가 멋스럽게 새겨진 가면.
“가디언즈는 은밀히 활동해야 할 때도 많아 기본적으로 임무 중에는 가면을 착용합니다. 음. 좀 과장되게 말씀드리면 이 가면은 가디언즈의 상징, 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
“우선 김시훈 수호자님. 세계를 지키고 예언의 악마를 처치하는데 힘을 보태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김시훈은 뜨겁게 타오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아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손에 든 가면을 김시훈에게 내밀었다.
“가디언즈의 일원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시훈은 복잡한 표정으로 가면을 받아들였다. 그는 가면을 들어 얼굴에 가져다대었다.
“아.”
“후훗. 그냥 밋밋한 디자인의 가면은 아니죠?”
가면에는 무슨 특수한 효과가 있는지 김시훈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가면에 이어 탁구공만 한 크기를 가진 투명한 수정 구슬도 그에게 내밀었다.
“가디언즈 멤버에게 지급되는 통신 장비입니다. 게이트 내에 있어도, 세계 반대편에 있어도 연락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바닥에 놓으시면 이곳, ‘수호의 전당’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활성화 시키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다른 이에게 물건을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본진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 수 있다니.
적에게 빼앗기기라도 했다가는 그대로 재앙이 일어나는 물건이었다.
김시훈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가이아는 가볍게 웃었다.
“전설 장비처럼 귀속 되는 물건이기 때문에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김시훈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반해 강우의 표정은 미묘했다.
‘배신은 애초에 고려도 안 한다는 건가.’
귀속되는 물건이라고 해도 그 당사자가 배신을 하게 된다면 순식간에 뒤통수를 맞을 수 있었다.
강우의 입장에서는 안일하기 짝이 없는 물건.
‘뭐, 나야 좋지만.’
단순히 멍청해서 저런 귀중한 물건을 멤버에게 지급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면과 수정 구슬은 말 그대로 신뢰의 상징. 그만큼 가이아가 가디언즈 멤버를 신뢰한다는 증거이리라.
상자가 두 개인 것을 보면 자신 또한 가디언즈의 멤버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기정된 사실.
신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강우 자신이 ‘예언의 악마’라는 사실은 더욱 완벽하게 감춰질 것이다.
“다음은….”
가이아가 몸을 돌렸다. 그녀의 손에 두 번째 가면이 쥐어져 있었다.
“강우 씨.”
“예.”
그녀는 강우에게 가면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말이 맞아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수호자만 가디언즈로 받아들인다는 원칙을 지킬 여유는 없죠. 하지만 제가 강우 씨를 가디언즈로 받아들이려고 한 것은 여유가 없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뜨거운 목소리. 강우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김시훈 수호자님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 사탄이 김시훈 수호자님을 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보여주신 진심어린 분노. 이 두 가지가 이번 결정의 가장 큰 이유입니다.”
“시훈이는 제 소중한 동생입니다. 예언의 악마인지 뭔지 잘 몰라도 감히 시훈이를 죽이려고 한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타오르듯 뜨거운 눈빛. 강렬한 목소리.
피가 섞이지 않은 의동생을 걱정하는 것 치고는 조금 과한 감이 있으나 효과는 뛰어났다.
“혀, 형님.”
“후훗. 정말 좋은 사람을 형으로 두신 것 같네요. 사실 처음에 김시훈 수호자님을 통해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 신뢰가 너무 과하지 않나, 하는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네요.”
김시훈은 감동에 젖은 듯 몸을 떨었고 가이아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강우는 두 사람의 반응에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고맙다, 사탄아!’
만약 사탄이 이 소식을 들었다면 이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을 만한 상황.
하지만 어쨌든 강우의 입장에서는 더 좋을 수 없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강우 씨. 당신은 비록 수호자가 아니지만 이미 그 정의로운 마음만큼은 수호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럼, 그럼.’
“그럼 강우 씨, 세계를 지키고 예언의 악마를 처치하는데 힘을 보태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디언즈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니 괜히 정의감이 차오르는 듯한 기분.
‘그래, 나만큼 정의롭고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가이아의 선택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디언즈의 일원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면을 받았다. 푸른 방패 문양이 그려진 가면.
악마교가 사용하는 붉은 악마 가면과 묘하게 대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면을 썼다.
-띠링.
-쿠구구구구궁!
“엇?!”
“이건….”
수호의 전당이 뒤흔들렸다.
가이아의 축복. 수호자에게 허락된 강력한 버프.
강우는 수호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효과를 거의 받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스텟 1증가라.’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고작 모든 스텟 1증가한다는 것은 그다지 큰 효과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강우의 입장에서 스텟 1의 증가는 결코 ‘고작’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의 마기 스텟은 이미 플레이어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높아진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스텟 1의 차이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크으, 마기 차오르는 것 봐라!’
스텟이 올라가자 폭발적인 마기가 새롭게 생겨났다.
만약 마기의 지배자 특성으로 마기의 기운을 속이지 못했다면 당장에 정체가 탄로 났을 정도로 강렬한 마기.
나중에 천룡심법으로 이 마기들을 혈액에 녹이면 완벽하게 그의 힘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이제 둠가드랑은 싸워볼 수 있겠네.’
파멸을 수호하는 자 둠가드.
그가 이끄는 마왕군의 3군단장이자 구천지옥 내에서도 ‘대악마’급의 악마였다.
대공급이라고 평가받는 발록, 리리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어지간한 구천지옥의 악마들은 백단위로 몰려와도 순식간에 참살할 수 있는 강자.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군.’
가디언즈의 일원이 된 것에 대해서 자부심까지 끓어오를 정도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통신용 수정 구슬까지 받아든 강우는 가이아의 손을 붙잡았다.
“아, 예. 저야 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폭발적인 기운에 당황했던 것도 잠시. 가이아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악마교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바로 연락주세요.”
“예. 임무에 대한 것은 추후 통신 구슬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수호의 전당으로는 부담 가지실 필요 없이 언제든지 찾아와주세요. 혼자 있으면 쓸쓸 하거든요.”
가이아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잘 못 만지면 부러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녀린 손.
그 손을 바라보는 김시훈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예. 연락기다리겠습니다.”
몸을 돌려 방문을 열었다. 처음 도착했던 게이트 밖으로 나가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강우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옥상.
“…감사합니다, 형님.”
“감사하긴 뭐가 감사해.”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강우는 씨익 웃으며 김시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김시훈은 감동에 젖은 듯 눈시울을 붉혔다.
“형님.”
“응?”
김시훈은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끼, 진짜 너무 잘 생겼네.’
우수에 찬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것만으로도 화보의 한 장면 같았다.
“뭔가 오늘…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새로운 목표?”
“예.”
김시훈은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강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웬 사랑타령이란 말인가?
“설마….”
“그녀를 처음 본 순간, 확신했습니다. 제 운명은 그녀를 지키는 거라고.”
“…….”
그는 몸을 돌려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댔다.
“만지면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김시훈이 거칠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강렬한 기운과 함께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사탄이라는 악마를 반드시 제 손으로 죽이겠습니다.”
“…….”
“형님도 보셨지 않습니까? 제대로 걷지도, 보지도 못하는 그녀의 몸을.”
‘시훈아.’
“그 모든 것이 사탄이 지구에 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이아 시스템을 망가트리고, 수호자를 죽였습니다.”
‘잠깐만 시훈아.’
“그게 너무 분하고, 화가 납니다. 이런 감정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러는 거야.’
“그녀를 지키고 싶습니다.”
타오르는 의지가 김시훈의 눈에 서렸다.
그에 반해 강우의 안의 죄책감은 점점 더 그 몸을 키우고 있었다.
“그녀를 지키고, 미소 짓게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잘 알았어. 이제 그러니까 그만해, 새끼야.’
“형님.”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그렇다고 계속 지옥에 썩을 수는 없잖아? 응? 만 년이나 처박혔는데 얼마나 더 있으라는 거니?’
“형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마음이 든든하지 않았을 겁니다.”
‘네가 리리스를 알아 인마? 어? 걔 아냐고? 걔랑 한 천 년 붙어 있으면 다른 사람 다리가 마비되든 눈이 멀든 그딴 게 머리에 들어오기나 할 것 같아?’
김시훈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뭔가 이렇게 입으로 말하니 부끄럽네요. 하지만 형님이 제 곁에 있어주신 덕분에 확신이 섰습니다.”
“…….”
강우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미안해 시훈아.’
끓어오르는 죄책감에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
김시훈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형님. 저희 함께 예언의 악마를 죽이고 세계를 지킵시다.”
“…….”
침묵이 흘렀다. 강우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우는 김시훈의 손을 굳게 움켜쥐었다.
“그래.”
‘에라, 시바 이젠 나도 모르겠다.’
마주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사탄의 손에서 세계를 지키자.”
예언의 악마 사탄.
그 더럽고 비열한 악마는 구천지옥을 지배한 것에서 멈추지 않고 지구에 나타났다.
그리고 세계를 수호하는 가이아 시스템을 망가트리고, 지구를 손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가만 둘 수 없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김시훈이 처음 사랑을 하게 된 여인을 그렇게 만들다니.
그에게 있어 김시훈이 피보다 짙은, 말 그대로 영혼이 섞인 사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용서하지 않으리라.’
정의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