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5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54화
영웅 레이날드 (1)
-파아아앗!!
황금빛 기운이 폭발했다.
지상에 태양이 강림한 듯, 찬란한 빛이 주변을 휩쓸었다.
“아, 아아.”
레이날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터질듯한 기운이 그의 전신을 감쌌다.
-일어나거라, 레이날드.
“티리온 님….”
이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레이날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비열한 적의 술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죄책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당당히 고개를 들어라, 나의 아이야.
티리온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웅장하면서도, 굳건했다. 레이날드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소녀를 구하기 위해 검을 든 네 의지. 어찌 그것을 실수라고 할 수 있단 말이냐.
“아아.”
탄성이 흘렀다. 레이날드는 델 라인을 움켜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감사합니다. 티리온 님.”
-후후. 네가 나의 아이라 자랑스럽구나.
“저도 티리온 님을 섬길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이 돌아왔다.
굳건히 대지를 밟고 몸을 일으켰다. 터질듯한 힘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발자하크는 사탄의 수하가 되며 더욱 큰 힘을 손에 넣은 것 같습니다.”
-사탄이라. 악신 루시퍼와 같은 존재인가?
레이날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탄이 누구인지 예상가는 바가 있습니다.”
-그게 누구더냐?
“제가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마룡을 자신의 권속으로 삼으려던 악마가 있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었다. 발자하크가 보여주는 비열한 술수.
그것은 그 악마가 사용하던 저열한 전투 방법을 연상케 했다.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었다.
지금 마왕 발자하크의 공격을 받아내며 그 악마를 상대했을 때와 비슷한 기운을 느꼈다.
‘틀림없다.’
악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청년.
겉모습은 인간과 똑같았지만 그 정체는 악에 물든 악마였다.
-가만 둘 수 없겠군.
“예.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탄을 반드시 물리쳐야 합니다.”
-후후.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쓰러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물론입니다.”
-나의 힘을 빌려주마. 대가가 크긴 하지만… 나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감사합니다.”
레이날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지어졌다.
델 라인을 들어올렸다.
아직도 발자하크의 손에 잡혀 있는 가녀린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빛에 신념을 바쳐라!”
포효했다. 델 라인에서 황금빛 광휘과 쏟아졌다.
지금까지는 소녀를 인질로 잡고 있는 비열한 발자하크의 수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티리온의 힘을 받은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델 라인에서 쏟아진 빛이 소녀의 몸을 보호했다.
발자하크의 눈빛이 떨렸다.
-쿠우우우웅!
발을 박찼다.
어마어마한 충격에 주변 암벽들이 박살 났다. 터질 듯한 힘이 전신을 채웠다.
길게 늘어진 듯한 환각이 보일 정도로 쏘아진 레이날드의 몸이 발자하크의 앞에 도달했다.
델 라인이 발자하크의 머리를 노렸다.
[크읏!]발자하크는 다급히 마법을 사용했다.
검은 마기의 방벽이 그의 전면에 만들어졌다.
-콰아아앙!
델 라인이 방벽을 때렸다. 일검에 마기의 방벽이 터져나갔다.
발자하크의 몸이 거칠게 뒤로 튕겨졌다.
“괜찮으십니까?”
발자하크가 인질로 잡고 있던 소녀를 감싸안았다.
소녀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레이날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소녀의 뺨에 손을 올렸다.
“어디 다치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뇨….”
소녀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의 눈빛에 망설임이 떠올랐다.
-마스터의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마라.
-알고 있어.
발자하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키드나는 표정을 찡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행입니다.”
레이날드는 소녀를 구해냈다는 성취감에 휩싸여 눈물을 글썽였다.
황금빛에 휩싸인 금발의 미청년과 그의 품에 안긴 아름다운 소녀.
주변에 널브러진 죽음의 기사와 바닥에 쓰러진 리치.
겉으로만 본다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멋진 장면이었다.
물론, 현실은 달랐다.
‘어딜 만지는 거야.’
에키드나는 몸을 비틀어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레이날드의 몸이 자신에게 닿았다는 사실이 몹시 불쾌하게 느껴졌다.
‘강우….’
그녀가 바라는 것은 이런 겉멋만 잔뜩 든 얼간이가 아니었다.
고독이라는 질척한 진흙탕에서 그녀를 구원해 준 존재.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맡은 역할을 잊지는 않았다.
에키드나는 수줍게 뺨을 붉히며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레이날드는 뿌듯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마저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티리온이 빌려준 힘이 유지되는 것은 극히 짧은 시간.
그 시간이 지나면 힘을 준 티리온과 받아들인 자신 모두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었다.
‘그 전에 발자하크를 처리해야 해.’
검을 쥐었다. 망설임 없이 발을 박차고 발자하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강우, 들려?”
레이날드가 발자하크를 향해 날아가자 에키드나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강우를 불렀다.
-들려.
“어떻게 해야 해? 나도 발자하크를 도울까?”
-아니, 일단 가만히 있어. 그리고 내가 신호를 보내면 거기서 멀어져서 몸을 숨기고 있어.
“응, 알았어.”
반론은 없었다.
강우의 명령이라면 의문을 제기할 것도 없이 따르는 것.
그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에키드나는 신뢰에 찬 눈으로 강우와의 연락을 끊었다.
* * *
“제기랄.”
거친 욕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강우는 김시훈과의 대련을 잠시 멈췄다.
“조금만 쉬었다 하자.”
“허억! 허억! 알겠습니다, 형님.”
김시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친 김시훈에 비해 강우는 꽤나 멀쩡한 상태.
“역시 아직 형님에게 닿을 수는 없네요.”
김시훈은 자조 섞인 미소로 시선을 피했다. 강우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인마. 그래도 형이 된 입장에서 동생에게 벌써 따라잡히면 내가 뭐가 되겠냐.”
“하하하. 조금만 기다리십쇼. 언젠가 형님을 따라잡고 말겠습니다.”
“기대하마.”
강우는 피식 웃었다.
몸을 돌린 강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속은 그렇지 못했다.
‘망할.’
왼쪽 눈을 통해 발자하크의 모습이 보였다.
레이날드의 각성 이후 인질 작전이 실패해 버리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전투는 일방적.
각성한 레이날드는 파죽지세로 발자하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어찌어찌 마법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머지않아 레이날드에게 패배하게 되리라는 것은 명백해 보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발자하크를 잃는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레이날드가 발자하크를 처치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강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첫 번째 계획이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강우는 가이아를 향해 몸을 돌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지금쯤이면 레이날드 씨가 계시를 받았겠네요.”
“아, 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한 번 그 계시란 것을 들으러 가죠.”
강우는 가이아와 김시훈과 함께 레이날드의 방으로 향했다.
당연히 레이날드의 방은 텅 비어 있는 상태.
“레이날드 씨는 어디 간 거죠?”
강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김시훈 또한 마찬가지.
“무슨 얘기를 들으신 건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잠시만요, 형님.”
김시훈이 한 부분을 가리켰다. 새하얀 바닥이 움푹 들어간 것이 보였다.
그 움푹 들어간 자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진각을 밟고 급히 어딘가로 이동한 흔적입니다.”
“잠깐 그렇다면….”
강우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흔적을 살폈다. 다급하게 흔적이 향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흔적이 향한 곳은 그랜드캐넌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있는 방.
김시훈도 대충 감이 잡혔는지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형님, 이거….”
“제길!”
거칠게 욕을 내뱉었다. 가이아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떻게 된 거죠?”
“계시를 받자마자 급히 어딘가로 향한 흔적입니다.”
“그렇다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발자하크… 혹은 악마교가 모종의 방법으로 레이날드 씨를 유인한 겁니다.”
“그, 그런.”
가이아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레이날드가 자신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혼자 달려나간 것을 보면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다는 의미.
새롭게 생긴 아군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아니, 레이날드의 가치는 단순히 아군을 넘어서 있었다.
그는 신의 사도로서 강력한 힘을 갖추고 있었고, 신의 가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계시라는 방법을 통해 악마교의 본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엄청난 존재였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한 일.
“먼저 가겠습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강우는 몸을 돌려 거칠게 발을 굴렀다.
“형님!”
“가이아 씨를 데리고 따라와!”
강우는 그렇게 말하며 게이트를 넘었다.
신속의 권능을 전력으로 사용한 강우의 몸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협곡을 질주했다.
깎아지는 듯한 암벽을 마치 평지처럼 질주하며 품속에서 가면을 꺼내어 얼굴에 썼다.
왼쪽 눈으로 보이는 레이날드의 모습.
황금빛이 폭발하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레이날드 씨!!”
멀리서 보이는 그를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강우 씨?”
레이날드는 강우의 등장에 살짝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말도 없이 왜 여기에 오신 겁니까?!”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어서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발자하크가 인질을 잡은 채 저를 이쪽으로 불러냈습니다.”
레이날드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진 발자하크를 가리켰다.
“저 비열한 악마의 손에 죄 없는 소녀가 위기에 처했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티리온 님의 가호 덕분에 소녀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레이날드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리려 했다.
“읏.”
순간,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몸을 감싸고 있던 황금빛 가호가 사라졌다.
티리온에게 빌린 신의 힘이 다했다는 의미.
더 이상 귓가에 티리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괜찮아.’
이미 상황은 끝났다. 사악한 마왕 발자하크는 쓰러졌고, 지원군은 도착했다.
인질로 잡혔던 아름다운 소녀까지 구한 상태.
“응?”
그가 구한 소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레이날드는 다급히 몸을 돌려 소녀가 있는 곳을 찾았다.
“부, 분명 여기에 발자하크에게 잡혀 온 소녀가…! 가, 강우 씨! 혹시 이 주변에서 소녀를 보지 못하셨….”
-푸욱!
레이날드의 몸을 뚫고 검붉은 창이 지나갔다.
“새끼 더럽게 귀찮게 하네.”
강우는 레이날드의 몸에 박아 넣은 창을 비틀었다.
선홍색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영웅놀이는 다른 소설가서 하세요.”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근데 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은 나와도 안 읽을 것 같다.”
하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