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9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97화
영웅은 절망에서 피어난다 (2)
‘어떻게 해야 할까.’
수련실 안을 응시하며, 울부짖고 있는 김시훈을 바라보며 느긋이 의자에 앉았다.
3개월.
100일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긴 시간 또한 아니었다.
루시퍼의 세력과 악마교의 전투만 하더라도 지난 3개월간 엄청난 진전이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싸웠지만, 본격적으로 서로의 목덜미를 물어뜯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김시훈에게 있어서 이 100일은 영원처럼 느껴졌을 것이 분명했다.
강우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김시훈을 살폈다.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든 검을 손에 쥐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
처절한 것을 넘어 비참하게까지 보이는 광경.
‘이제까지 저 정도로 막혔던 경험은 없었을 테니까.’
플레이어로 각성하고 난 이후 김시훈이 이 정도로 추락한 것은 처음.
그는 그 누구와도 비교하기 힘든 천재적인 오성으로 빠른 성장을 이룩했다.
천골(天骨).
무공 쪽으로는 잘 모르지만 천무진의 말에 따르면 하늘이 내려줬다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재능이라고 했다.
실제로 김시훈은 ‘인간’ 기준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속도로 강해졌다.
모든 플레이어가 겪는다는 ‘노력의 끝’조차 그에게는 없었다.
비교 대상이 강우다 보니 상대적으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단 성장 자체가 막힌 경험은 전무했다.
아니, 지금은 성장이 막힌 게 문제가 아니었다.
‘밑바닥으로 추락했지.’
검을 쥐지 못하는 검사.
김시훈이 지닌 아이덴티티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지금 그는.
쓰레기다.
“씨바아아알!!”
거친 욕설이 들렸다.
강우이 표정이 굳었다.
예상했다고 하나 김시훈이 바닥까지 추락한 모습을 보는 것은 편치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을 돌렸다.
‘슬슬 준비해야지.’
그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이번 계획에 그가 낄 자리는 없었다.
강우는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은 발록.
그 자리엔 빨래하다 불려 나온 발자하크와 리리스까지 있었다.
[크크크, 무슨 일로 이 몸, 죽음의 군주 발자하크를 찾으셨습니까.]“…제발 그 에이프런 좀 벗으라니까.”
로브 안에 입은 핑크빛 에이프런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를 부른 이유는….”
세 부하를 향해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발자하크는 노란 안광을 빛냈고, 리리스는 기대된다는 듯 웃었다.
발록의 표정은 불쾌한 듯 일그러져 있었다.
[그 인간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인간입니까?]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강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김시훈의 성장 포텐셜은 발록 이상이다.
근거 없는 추측이 아니다. 김시훈의 상태창만 보더라도 그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SSS급 특성.’
김시훈이 처음 각성한 특성의 등급.
그리고, 지금까지 8차 각성을 하면서 강우조차 한 번도 얻지 못했던 등급의 특성이다.
‘대공 학살자도 SS급이었어.’
대공의 힘을 다룰 수 있다는 사기적인 특성조차 SS급에 불과했다.
김시훈이 SSS급 특성의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발록을 넘어 대공급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아니, 그 이상이 될 수도.’
세계의 축복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듯한 인간이다.
그 이상의 경지도 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발록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강우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도 시훈이랑 같이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거다.”
[끄응. 그래도 왕이 아닌 다른 자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나를 위한 일이야.”
단호하게 말했다.
김시훈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쌓은 정 때문도 아니다.
‘필요해.’
모든 것을 혼자 할 수는 없다.
그는 신이 아니다. 전능하지 않다.
아니, 설사 신조차도 전능하지 않다.
가이아를 통해 그 사실을 알았다.
이번 전투만 하더라도 발록과 리리스, 에키드나가 없었다면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화산이 폭발했다면 그 결과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디언즈는 몰살당하고, 어렵게 하나로 모인 세계는 찢겨나갔을 것이다.
“만약 내가 시훈이를 동생처럼 생각하지 않았어도 이번 일은 똑같이 진행했을 거야.”
움직일 수 있는 말은, 적을 상대하기 위한 카드는 많을수록 좋았다.
그중에서도 김시훈은 굉장히 강력한 카드였다.
“잘해줄 수 있겠지?”
나지막한 질문.
발록과 리리스, 발자하크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깊게 숙였다.
[모든 것은 마왕의 뜻대로.]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렸다.
이 셋을 계획에 동참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리리스가 전체적인 계획을 조율할 테니 퀄리티도 의심할 필요 없다.
‘문제는.’
가늘게 눈을 떴다.
이 셋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연이 있고 악역이 있는데 히로인이 없다.
가슴을 태우고, 처절한 절망의 구렁텅이로 짓눌러버릴 결정적인 스파이스가 부족하다.
자신이 나서는 건 무리다.
그는 다른 누구의 도움을 받기에 이미 너무 강하다.
김시훈을 자극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적합한 인물을 하나뿐이다.
강우는 투명한 수정구슬을 던졌다.
수호의 전당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렸다.
* * *
“예…?”
옅은 갈색 머리칼.
병적으로 새하얀 피부.
잘못 만지면 부러지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가녀린 몸.
미친 듯이 보호 욕구를 자극하는 여인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시훈이를 위한 일입니다.”
“하,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가이아가 휠체어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의 몸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손을 뻗어 몸을 잡았다. 조심스럽게 휠체어에 앉혔다.
“어떻게 제가 김시훈 수호자님에게 그런 일을….”
가이아는 고개를 숙였다.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시훈이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저대로 시훈이가 좌절 속에서 무너지는 걸 보고 계실 생각입니까?”
“아, 아뇨! 그럴 리가 없잖아요!”
다급한 외침.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방법은….”
“지금 시훈이의 문제는 신체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두 팔의 신경은 오래전에 완전히 회복됐지요.”
“…….”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시훈이가 검을 쥐지 못하는 이유는 다분히 심리적인 문제입니다.”
가이아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강우는 치료에 있어서 기적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시훈은 검을 쥐지 못했다.
“시훈이 스스로 극복해야 합니다. 저희는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거고요.”
“하지만 그러다가 김시훈 수호자님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단호히 말했다.
소설로 치면 김시훈은 주인공이다.
굴복하지도, 굽히지도 않는다.
죽음을 초월한 의지가 말이 쉽지 그럴 수 있는 인간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무너질 인간이 아닙니다.”
“…….”
가이아가 침묵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적당히 비명만 질러주셔도 충분합니다.”
사실 그녀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다.
가이아를 계획에 끌어들인 이유는 그녀가 영웅 김시훈이 첫눈에 반한 여인이자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 맹세했기 때문.
딱 봐도 거짓말이 서툴러 보이는 가이아가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지는 못하리라.
“…알겠, 습니다.”
가이아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우는 씨익 웃었다.
‘이로써.’
배우의 캐스팅은 끝났다.
이제는 무대를 꾸밀 차례다.
‘이런 것도 꽤 재밌네.’
뭔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상황을 관조하는 기분이랄까.
묘한 쾌감이 등골을 울렸다.
‘나중에도 몇 번 써먹어야겠어.’
강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몸을 돌렸다.
* * *
“갑자기 산책이라니… 무슨 일이십니까?”
한적한 숲.
물길을 따라 냇가가 흐르고 있고 새들이 지저귀는 평화로운 숲길을 두 남녀가 지나고 있었다.
가이아와 김시훈이다.
“아, 아뇨. 그냥 김시훈 수호자님이 요즘 너무 힘들어 보이셔서….”
“…….”
김시훈은 침묵했다.
그는 휠체어의 손잡이 위에 올려진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떨린다.
손잡이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 위에 올려둔 채 밀고 있는 손.
정확히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손.
가슴에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끊어질 듯이 희미한 목소리로, 어렵게 말을 이었다.
“괜찮, 습니다.”
“…….”
누가 들어도 괜찮지 않은 목소리였다.
가이아는 손을 뻗어 김시훈의 손을 잡았다.
“저도… 두 눈을 잃고,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을 때, 많은 좌절을 겪었습니다.”
“……”
“더 이상 제 자신이 가치 없는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죠.”
“그건….”
“김시훈 수호자님이 어떤 좌절감을 느끼고 계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이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마주 잡은 김시훈의 손을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부디, 자기 자신을 증오하지 말아 주세요.”
“가이아 씨….”
“후훗. 평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만 하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김시훈 수호자님이 더 이상 괴로워하시지 않으셨으면 해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김시훈과 가이아.
둘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싹트기 시작했다.
“가이아 씨는….”
김시훈이 무언가 말하려고 한 순간.
-콰과과과과광!!!
“무, 무슨?!”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검은 마기가 사방에 휘몰아치며 수풀을 헤치고 거대한 존재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5미터에 달하는 거구. 전신이 기괴한 녹색 촉수로 뒤덮인, 끔찍한 생명체.
숨막힐 듯 뿜어져 나오는 마기.
“키에에에에엑!”
“크륵, 크륵.”
촉수괴물의 뒤를 이어 몬스터의 시체로 이루어진 끔찍한 망자(亡者)들이 쏟아져 나왔다.
“너, 너는….”
김시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괴물을 바라보았다.
촉수로 전신이 뒤덮인 거구의 악마가 외쳤다.
[나는 사탄님의 충직한 하수인, 요그사론이다!!]-쿵!
거칠게 발을 굴렀다.
촉수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죽음의 신 앞에 무릎을 꿇어라, 인간!!!!]* * *
‘오우 야.’
김시훈과 가이아가 있는 장소에서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장소.
나무 위에 앉아 주시자의 권능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강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연출 지리는데?’
리리스가 직접 꾸며준 발록의 외모는 보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치밀 정도로 끔찍했다.
발자하크가 만든 언데드 무리도 연출에 기막힌 효과를 더했다.
‘캬! 좋다 좋아!’
강우는 연극의 감독이라도 된 듯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꺄아아아아악!!”
발록이 손을 뻗어 가이아를 낚아챘다.
‘그렇지!’
악마의 손에 잡힌 가녀린 히로인.
그림으로 그린 듯한 구도였다.
‘여기서 이제 가이아의 입을 막아버리면….’
그녀의 어설픈 연기로 인해 계획이 들통날 일도 방지할 수 있다.
그때였다.
“시, 시훈 씨!!! 사, 살려주세요!! 시훈 씨이이이이!!”
‘엥?’
“놔, 놔라!! 이 더럽고 추잡한 악마야!!”
‘뭐야.’
영혼이 담긴 외침.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리는 처절한 비명.
‘얘, 뭐야.’
가이아의 절규가 이어졌다.
“나, 나를 어떻게 할 셈이냐!! 이, 이 끔찍한 악마들아!!”
‘이게 무슨 일이야.’
“그, 그 더러운 욕망에 찬 눈! 네놈들 설마 내게….”
‘얘 연기 왜 이렇게 잘해.’
“이 더러운 악의 종자! 이, 이 촉수를 사용해서 내게 난폭한 짓을 할 생각이지? 에로 망가처럼!!”
‘아니, 저기요.’
“에로 망가처럼!!!”
‘두 번 말하지 마.’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가이아의 의외의 면모에 뒤통수에 묠니르라도 후려맞은 기분이었다.
‘제수씨, 나한테 왜 그래….’
이거 전체이용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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