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18)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19화
순백의 처형자, 루드비히 (1)
“예언의 악마, 요?”
“…….”
가이아와 김시훈의 표정에 동요가 생겼다.
당연했다.
예언의 악마.
666가지의 권능을 지닌, 마해의 주인.
지구를 수호하는 가이아 시스템을 박살 내고 외계(外界)의 침입을 이뤄지도록 만든 존재.
수호자를 죽이고, 레이날드라는 걸출한 용사를 무자비하게 살해한 악마.
악(惡)의 원흉.
만악의 근원.
사탄.
그 악마에 대한 얘기가 이계의 조력자의 입에서 흘러나왔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예, 예언의 악마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김시훈이 흥분한 표정으로 루드비히의 어깨를 붙잡았다.
루드비히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라파엘 님도 지구의 신들과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예언의 악마라는 사악한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자가 한 짓을 들어보니… 아주 끔찍하더군요.”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영웅신 티리온 님의 사도도 그자가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아….”
레이날드.
그 아련한 이름에 일행은 탄성을 흘렸다.
당시 레이날드의 죽음에 눈물까지 보였던 강우의 표정은 거칠게 일그러지기까지 했다.
“사탄을 찾는 데 도움을 주실 수 있단 말입니까?”
예언의 악마 사탄.
그 악마에 대해 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김시훈은 다소 흥분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루드비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 그 전에… 라파엘 님께서는 예언의 악마가 사탄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충격적인 말에 가이아와 김시훈, 강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중 강우의 표정은 창백하게 질리기까지 했다.
루드비히의 말이 이어졌다.
“라파엘 님이 알고 계시는 사탄은 마해(魔海)를 지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악의 경우, 사탄은 예언의 악마가 아닌 그자의 권속일 가능성도….”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강우가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과거, 사탄과 대적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 자신의 입으로 마해를 얻었다고 말했죠. 사탄이 예언의 악마라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입니다.”
“아….”
루드비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사탄이 직접 마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면… 확실히 그자가 예언의 악마가 맞겠군요.”
“…….”
짧은 침묵이 흘렀다.
강우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예언의 악마는 어떻게 찾으실 생각입니까?”
“이겁니다.”
루드비히는 손을 뻗었다.
찬란한 빛무리가 모여들며 새하얀 검이 나타났다.
“성검 루드비히입니다.”
“루드비히…?”
“예.”
루드비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가이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도 그녀처럼 본명을 버렸습니다. 이 검은 제 삶이자, 모든 것입니다.”
루드비히는 새하얀 검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 검은 악(惡)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영혼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입니다. 마(魔)를 찾는데 아주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죠. 이 검을 사용하면 마해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자랑스럽다는 듯 검신을 만졌다.
김시훈이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면 바로….”
“아뇨. 죄송하지만 지금 당장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루드비히는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새하얀 성검이 허공에 흩어졌다.
“아직 이 세계에 검이 적응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성검의 빛이 유지되지 않는군요.”
“언제쯤 성검을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일주일, 정도일까요? 그 뒤에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루드비히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동안 여러분께서 지구에 대해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부끄럽지만… 솔직히 이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많거든요.”
루드비히의 눈이 반짝였다.
순진무구한 그의 모습에 가이아와 김시훈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하하.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김시훈이 나서서 말했다.
둘은 웃으며 수호의 전당으로 향하는 게이트로 들어갔다.
루드비히를 따라온 네 명의 빛의 감시자가 그 뒤를 따랐다.
* * *
“좋은 구경 했습니다. 지구의 문명은… 하하. 뭐라 말할 표현을 찾기 힘드네요. 경이로웠습니다.”
루드비히는 상기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건물과 회색으로 가득한 도시.
아르난 제국의 수도가 우습게 느껴질 만큼 경이로운 문명이었다.
“다음에는 지구의 음식들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다시 그 초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프리카 말씀입니까?”
“예. 그곳에서 루시퍼의 흔적을 찾아야 하니까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아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미 날이 늦었으니 수호의 전당에서 주무시고 내일 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아닙니다. 마(魔)를 멸하는 중대한 일에 휴식을 취할 수는 없죠.”
“저희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괜찮습니다.”
단호한 목소리.
칼로 자르는 듯한 말투에 가이아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지만 이내 다시 미소를 찾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통신용 수정 구슬을 드릴 테니 연락이 필요하면 연락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헤어지려는 분위기.
그때 김시훈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루드비히를 향해 작은 펜던트를 내밀었다.
십자가를 천사의 날개가 감싸고 있는 디자인의 펜던트.
“이건….”
“아까 전에 유심히 보고 계시길래 몰래 샀습니다. 지구에 오신 기념으로 선물하려고요.”
“오오.”
루드비히는 눈을 반짝이며 탄성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예쁜 펜던트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선물까지….”
“별 것 아닙니다.”
“아니요. 적어도 제게는 아주 큰 선물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훈 씨.”
두 사람은 서로 악수를 나눴다.
처음 만났는데도 죽이 잘 맞는 그들의 모습에 가이아가 방긋 웃었다.
마땅히 친구라고 부를 존재가 없었던 김시훈에게 좋은 친구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모양.
“그럼, 루시퍼의 흔적을 찾으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루드비히는 예의 바른 동작으로 깊게 허리를 숙였다.
새하얀 게이트가 열리고 그 안으로 루드비히와 네 명의 빛의 감시자가 들어갔다.
처음 그들이 도착한 황폐해진 초원이 보였다.
초원 너머를 바라보며, 루드비히가 입을 열었다.
“정말 좋은 분들이시군요.”
“예. 가이아의 사도들이 협조적이라서 다행입니다.”
“하하하. 실력도 꽤 출중해 보이던데요?”
루드비히는 밝게 웃었다.
“악마와의 싸움에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 그렇군요.”
당황하는 목소리의 사제들.
루드비히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처음에는 사실 악마를 꾀어내는 미끼로라도 사용 못 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으음.”
“루, 루드비히 님.”
“예?”
사제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 가이아의 권속들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가이아라 하면 최상위 신….”
“아차, 이용이라는 말이 잘못됐던 것 같군요.”
루드비히는 활짝 웃었다.
그는 김시훈에게 건네받은 펜던트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희생. 그렇죠, 희생입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魔)를 멸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희생은 필요하죠.”
“…….”
“가디언즈분들 또한 악마와의 싸움 중에 목숨을 잃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겁니다. 암요, 그렇고 말고요.”
“그, 그렇군요.”
“잊지 마세요, 여러분.”
루드비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제들을 향해 단호히 말했다.
“마(魔)를 멸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안 됩니다. 수많은 희생을 치러서라도… 예, 말 그대로 이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예언의 악마, 사탄만큼은 반드시 배제해야 합니다. 모두 알고 계시죠?”
“무, 물론입니다!”
예언의 악마, 사탄. 신이 예언한 그 악마는 단순히 지구만의 위협이 아니었다.
라파엘은 지구를 멸망시킨 예언의 악마가 다음 타겟으로 에르노어 대륙에 있는 천사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그분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예언의 악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야 했다.
설사 가이아의 권속들을 모두 사지로 몰아넣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하하! 다행이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마를 멸하기 위해 희생하는 것은 고결한 행위. 죽어서도 그 영혼은 천국으로 건너가 진정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루드비히의 입가가 올라갔다.
바다를 연상케 하는 그의 아름다운 푸른색 눈에서 순백의 광기가 번들거렸다.
사제들은 가늘게 몸을 떨며 루드비히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명(異名)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순백의 처형자, 루드비히.
빛의 감시자들 사이에서 불리는 그의 이름이었다.
* * *
‘씨이이바아아아알!!’
육성으로 나오지 못한 욕설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못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어두운 방 안. 침대에 걸터앉은 강우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제기랄.’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마해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저 성검 루드비히라는 것이 마기의 지배자 효과를 뚫어내고 마해를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단순히 마기를 탐지하는 효과가 뛰어날 뿐 마기의 지배자로 완전히 마기의 기척을 감추면 마해를 찾아내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강우는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결국 들킬 수 있는 위험부담이 있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손을 써야 해.’
성검 루드비히가 사용되기까지 일주일.
그 사이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
굳게 입을 다문다.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사탄으로 변해서 습격해?’
괜찮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가디언즈의 창고 습격 때도, 레이날드 때도 써먹었다.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면 안 돼.’
도마뱀도 꼬리가 길면 잡힌다.
원 패턴으로 똑같은 방식만 고집하다 보면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즉, 사탄이 등장하는 타이밍이 너무 적절해서 되려 의심을 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
‘좋지 않아.’
계속 한 가지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더 많은 의심을 사방에 뿌리는 일이다.
안 그래도 예언의 악마가 사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시된 마당에 같은 방법을 고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생각을 이어갔다. 그때, 루드비히에게 들었던 말 하나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이 검은 악(惡)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영혼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입니다.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어!!’
그의 입가가 비틀어 올라갔다.
순수한 영혼만이 그 검을 사용할 수 있다면.
‘타락시키면 되잖아?!’
새하얀 건 원래 더럽혀야 제 맛인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