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2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23화
성자(聖者)를 타락시키는 방법 (4)
“호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강우는 탄성을 흘렸다.
“대단한데.”
충분히 궁지에 몰아넣었다.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선택의 폭을 제거했다.
어느 정도의 진실을 공개하며 바닥의 바닥까지 끌어당겼다.
‘그런데.’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종속의 권능을 저항했다.
‘놀랍군.’
흔들림 없는 그의 신념에, 더럽혀지지 않는 순수에 감탄했다.
저 상황에서 ‘거래’를 거절할 확률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식, 가소롭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거절할 확률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역으로 말하면, 거절할 확률이 적지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도 당연히.
모든 대비는 이미 끝났다.
“그것뿐이지.”
악마는 웃었다.
* * *
“악마와의 타협은 없다.”
씹어뱉듯, 말했다.
루드비히는 성검을 지팡이로 삼아,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도 알고 있다.
미래를 위해, 라파엘과 에르노어 대륙을 위해 신념을 굽히는 것이 옳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드비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악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사악하고, 간악하며, 영리한지 알고 있다.
‘거래라고?’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가소롭지도 않다.
사탄은 그 거래의 대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갈 생각일 테니까.
만약 거래의 대가가 그의 모든 것이라면, 결과적으로 파국을 맞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 정도를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간다고 능사가 아니다.
라파엘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도 전에, 그는 사탄의 꼭두각시가 되어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빛을 섬기는 동료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여 가면서.
‘그럴 순 없다.’
루드비히는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이곳에서 들은 정보를 라파엘에게 전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악마의 힘을 빌리는 것은 오히려 자충수.
더욱 큰 파멸을 맞이하는 지름길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루드비히는 꿀꺽, 침을 삼켰다.
두 눈을 감았다.
정신을 한 곳에 모았다.
성검 루드비히. 그의 이름까지 버리면서 손에 넣은 검을 굳게 움켜쥐었다.
“내 목숨을 바치겠다.”
검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우우웅.
성검이 진동했다. 새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루드비히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몸에 찬란한 빛이 서렸다.
목숨을 대가로 한, 목숨을 대가로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기술의 이름을 낮게 읊조렸다.
“광명(光明).”
-우우우웅!!!
거세지는 진동.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는 빛이 그의 몸을 감쌌다.
투둑. 등가죽이 찢어졌다.
찢어진 등가죽으로 네 장의 날개가 빠져나왔다.
아까 전 빛으로 이루어진 가짜 천사의 날개가 아니다.
‘진짜’ 천사가 지니고 있는 날개.
찬란한 빛가루가 사방으로 뻗어갔다.
“크윽, 커헉!”
몸을 비튼다.
성검에서 흘러넘치는 거대한 성력이 그의 몸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인간의 육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의 총량을 아득히 넘어서는 성력의 파도.
“으, 아아아아아!!”
숨을 토해낸다.
찬란한 빛에 휩싸인 채, 성검을 쥐어 휘둘렀다.
-쩌적!!
어둠이 갈렸다.
* * *
검은 구체를 통해, 발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계획이 틀어진 것 같습니다.]“그건 보면 알아.”
처음 짰던 계획.
루드비히를 타락시킴과 동시에 종속의 권능으로 그를 지배하는 것.
천사의 사도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이용하는 것.
그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좀 아쉽긴 하네.”
강우는 의자 등받이에 느긋이 등을 기댔다.
지난 일주일.
리리스와 던전을 제작하면서 즉흥적으로 떠올린 계획을 구체화시켰다.
단순히 구체화시킨 것이 아닌, 이번 계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최대한 극대화시키려고 했다.
‘아무래도 그건 실패한 것 같지만.’
단순히 루드비히가 성검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간단했다.
아주 간단하게, 그를 죽이면 됐다.
죽은 인간이 성검을 사용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강우는 그 이상을 원했다.
반복되는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타락시키는 수고를 들인다면, 그 이상의 이득을 얻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종속의 권능을 사용하려 했는데.’
실패했다.
루드비히라는 전력을 온전히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여러모로 쓸모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은 쓰기 어려웠다.
[죽이시겠습니까?]발록이 살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음….”
고민에 잠겼다.
강우는 의자에 기댄 몸을 흔들며, 발자하크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으음. 근데 저 루드비히라는 자, 좀 아깝긴 하군요.
‘아깝다고?’
-예. 저 정도로 강력하면서, 경이로운 육체를 가진 인간은 마스터의 동생분 외에는 본 적 없습니다. 아마… 레이날드보다 훨씬 뛰어난 것 같더군요.
‘그래서?’
-흐흐흐. 저자의 육체로 데스나이트를 만든다면… 아마 엄청난 작품이 탄생할 겁니다. 최상급 데스나이트… 아니, 단순한 데스나이트를 넘어서 어비스 나이트를 만들 수도 있겠군요.
‘뭐야 그 졸라 쎄 보이는 이름은.’
-데스나이트의 상위 개체입니다. 아주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원혼으로만 만들 수 있는 존재이지요. 아마 그 힘은… 흐흐흐. 발록 님도 고전을 면치 못하실 정도일 겁니다.
‘음…. 일단 기각. 어차피 종속의 권능으로 이어진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아.’
짧은 대화가 머릿속에서 이어졌다.
고민을 이어가던 강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죽이지 마.”
[하지만 이대로라면 놈이 밖으로….]“괜찮아.”
[놈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걱정된다는 목소리.
강우는 활짝 웃었다.
“발록.”
“성자(聖者)를 타락시키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해?”
[그건 여러 가지 방법이….]“만약 어떤 방법으로도, 무슨 이유에서라도 타락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발록은 침묵했다.
무슨 방법으로도 타락하지 않는 성자를 타락시키는 방법이라니.
애초에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는 질문이다.
답이 있을 리가 없다.
“지금부터 잘 봐봐.”
강우는 웃었다.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 * *
-쩌적!!
어둠이 갈라졌다.
동굴의 외벽이 찢겨나가며 벌어졌다.
그 사이로, 빛이 흘러나왔다.
‘여긴.’
황폐한 초원이 보였다.
익숙한 장소다.
‘처음 도착한 곳.’
루드비히의 눈이 빛났다.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그를 몰아붙이던 악마, 요그사론을 바라보았다.
놈은 어째서인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기회다.’
왜 그가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이 기회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루드비히는 몸을 웅크렸다.
발을 박차며, 네 장의 날개를 펄럭였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의 몸이 쏘아졌다.
‘전해야 한다.’
이곳에서 들은 정보를 모두 라파엘에게 전해야 했다.
루드비히는 벌어진 어둠의 틈으로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무수한 촉수가 그를 쫓는다.
하지만, 그가 더 빨랐다.
-콰드드드드드득!!
던전을 탈출했다.
풀 한포기 자라지 않은 대지에 루드비히의 몸이 굴렀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전력으로 성검의 힘을 끌어올린 대가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빨리.’
에르노어 대륙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였다.
“루드비히 씨!!”
“괜찮습니까?!!”
멀리서 김시훈, 강우, 가이아, 차연주, 그레이스 등 가디언즈의 정예 멤버가 다급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아까 전에 보낸 구원 요청을 받고 도착한 모양.
“크윽….”
루드비히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가디언즈는 예언의 악마에게 속고 있다.
우선 그들에게라도 진실을 전해야 한다.
“여러분은 지금 속….”
“잠깐.”
선두에서 달려오던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 강우가 손을 들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모두 멈추세요.”
“왜, 왜 그러십니까, 형님?!”
“…….”
김시훈의 다급한 물음.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일그러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미, 늦었어.”
“예? 그게 무슨 말씀….”
“루드비히는 이미 악마에게 지배당하고 있어.”
“…예?”
“그, 그 말이 사실인가요, 강우 씨?!”
가이아의 다급한 물음.
강우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미… 늦었습니다.”
그는 거칠게 주먹을 쥐며 발을 굴렀다.
“제길! 제기랄! 더 빨리 왔다면…!”
원통하다는 듯 욕을 내뱉었다.
루드비히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뭔 소리야?’
그는 악마에게 지배당하지 않았다.
사탄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력으로, 그 끔찍한 던전을 탈출했다.
그런데.
이미 늦었다니?
“혀, 형님! 왜 그러십니까?! 지금 루드비히는 멀쩡….”
“아니.”
강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품속에서 통신용 수정 구슬을 하나 꺼냈다.
“사실 처음 이 통신을 들었을 때부터… 늦었다고 생각했었다.”
음성이 흘러나왔다.
[루드…히입니다. 게이트에… 누가 손을… 악마의 함정… 저는… 이미… 당했… 위험… 모두… 도망치… 이대로는… 악마에게 지배당…….]지직 거리는 노이즈.
그 음성을 통해 루드비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장에라도 죽음을 직감한 말.
단발마의 비명과도 닮은 유언.
저 통신만 듣더라도 이미 루드비히가 늦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강우는 김시훈의 어깨를 잡았다.
“미안하다, 시훈아. 차마 네게 이 통신을 전할 수 없었어.”
“아, 아아아….”
“루드비히 씨는… 이미 악마의 손에 타락했다.”
강우는 차마 루드비히의 모습을 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떨궜다.
루드비히는 입을 쩍 벌린 채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뭐야.’
머릿속이 복잡했다.
수정 구슬을 통해 들리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목소리.
하지만 자신은.
그런 말을 내뱉은 적이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루드비히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는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가디언즈와 나눴던 통신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누…구. 무슨, 일?
“루드비히입니다. 게이트에 누가 손을 쓴 것 같습니다. 악마의 함정이라고 추측됩니다.”
-상황… 어떻…?
“저는 괜찮지만, 이미 부하가 당했습니다.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가디언즈 모두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 저희는 도망치면서 시간을 벌 생각입니다.”
-밖… 나올 수… 니까?
“이대로는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공간 자체가 악마에게 지배당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어디.
“모르겠습니다. 아마 던전 내부로 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 로, 구… 치지이이익!!
저 말이.
‘뭐야, 저게 어떻게.’
[루드…히입니다. 게이트에… 누가 손을… 악마의 함정… 저는… 이미… 당했… 위험… 모두… 도망치… 이대로는… 악마에게 지배당…….]이런 말로 바뀔 수 있단 말인가.
“아, 아아.”
루드비히의 몸이 흔들렸다.
그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루드비히는 이미 타락했습니다.”
강우는 눈물을 훔치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를… 저희 손으로 죽여야 합니다.”
무슨 방법으로도 타락하지 않는 성자를 타락시키는 방법.
그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지.’
진실 같아 보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