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68)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69화
걘 또 누군데 (1)
푹신.
따듯하고, 뭉글뭉글한 감촉이었다.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근 듯 편안한 감각에 몸을 살짝 비틀었다.
부드러운 감촉을 지닌 무언가를 향해 파고들었다.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뭉클뭉클.
무심코,
손을 뻗어 그 따듯하고 부드러운 무언가를 만졌다.
‘크다.’
손 하나로 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읏…!”
부드러운 무언가를 만지자 물기에 젖은 신음과 함께 부드러운 무언가가 움찔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거나 도망치지는 않았다.
‘아….’
부드러운 물체에 얼굴을 비비며, 그 감각을 즐겼다.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다,
경험하지 못한 포근함이다.
언제나 삶은 고통이었다. 절망이었으며, 처절한 발악과 비참한 발버둥의 연속이었다.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처절했던가.
기억이 떠올랐다. 지옥의 기억이다.
매 순간이 죽음의 고비였다. 아니, 왜 죽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험난한 삶의 지속이었다.
이렇게 처참히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수천, 수만 번을 생각했다.
그런데,
왜,
‘버텼던 거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림의 일부가 도려내진 것처럼, 몽롱하다.
뭉클뭉클.
얼굴에 닿는 감촉이 따듯하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부모의 뱃속에 있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다.
“하읏.”
다시금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부드러운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포근함이 전신을 휘감는다.
‘아.’
눈물이 흘렀다. 견고히 쌓아왔던 성이 무너지듯, 단단한 둑이 터지듯.
참을 수 없는 감정의 해일이 몸을 뒤흔들었다.
“가, 강우 씨…?”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
조금 더 이 따듯함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그 말을 무시했다.
이렇게 평안한 기분을, 따듯한 감각을 느낀 것이 얼마 만이었던가.
아니, 얼마 만이었다는 표현을 옳지 않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으니까.
-그때 마왕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죠.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더 높은 곳으로. 더 아득한 곳으로.
앞으로, 앞으로.
“아, 으아.”
미칠 듯한 중압감이 몸을 짓누른다.
고독하게, 모든 것을 짊어진 채.
앞으로 나아갔다.
주변을 돌아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지쳤… 다고.”
너무 많은 이들이, 너무도 많은 이들이 죽었다.
지쳤다. 질렸다. 신물이 났다.
어깨를 짓누르는, 전신을 짓이기는 무게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한 적이 없다.
초인도, 신도 아니다.
아등바등, 비참하고 처절하게 발버둥 쳤을 뿐이다.
멈추고 싶었다. 제자리에서 서서 숨이라도 고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무수한 시선은, 어깨에 짊어진 짐은 그를 용납지 않았다.
깎여나가고, 고갈되고, 메말라도.
앞으로, 앞으로.
그리고.
“…….”
따스한 감각이 그를 감쌌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짐승이 우는 것과 같은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상냥한 손길이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것이 느껴진다.
손에서 흘러나온 새하얀 빛무리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괜찮아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냥한 목소리.
“괜찮아요.”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등으로 내려온다.
그 달콤함에 취해 다시금 의식이 혼미해진다.
혼미해지는 의식에 몸을 맡겼다.
의식이 점멸했다.
* * *
“끙차.”
강우는 몸을 일으켰다.
구출 작전 이후로 10일이 흘렀다.
한설아의 간호를 받으며 편안히 뒹구는 것도 슬슬 여기까지.
더 이상 어물거릴 수는 없었다.
“컨디션이 좋네.”
왠지 모르겠지만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진짜 부상을 당했던 거라면 부상이 치료됐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맞지 않다.
‘애초에 다치질 않았는데.’
침대에 누워 10일을 뒹굴거린 것은 어디까지나 오강우 구출 작전의 디테일함을 살리기 위함.
부상은커녕 생채기 하나 없었다.
그나마 한설아가 내뿜는 빛에 데미지를 받은 것이 전부. 그것도 오래 빛을 쐰 것도 아니기에 금방 치료했다.
‘뭐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기를 일으켰다.
두 눈이 부릅떠졌다.
“뭐야 이게.”
무심코 육성이 흘러나왔다.
몸을 타고 도도하게 흐르는 마기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 이질적인 느낌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얌전하다고?’
도도하게 흐르다니. 무협지에서 나오는 내공도 아니고 마기에 그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도도하긴 개뿔.’
머리에 꽃 달린 미친년처럼 쉬지 않고 날뛰는 것이 바로 마기다.
급류처럼 몸속을 헤집던 마기가 갑자기 무슨 강물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여유롭게 움직이니 이질감부터 들었다.
“출력의 차이는… 없는 것 같고.”
강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출력의 차이가 없는데, 이 정도로 마기가 얌전하다.
얻어지는 결론은 하나였다.
‘마기 제어력이 올라갔잖아?’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강우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머리를 긁적였다.
“뭐 밤새 영약이라도 주워 먹은 건가?”
자신이 말하고도 헛웃음 나오는 소리.
영약을 먹었다는 것이 우스운 것이 아니다.
‘고작’ 영약 따위로 마기 제어력은 오르지 않는다.
“좋은 일이긴 한데….”
아직 벨페고르의 마기를 흡수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마기 제어력을 올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위험한 작업인가를 생각하면,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마기 제어력이 올랐다는 소식은 충분히 반길 만했다.
‘알 수가 있어야지.’
머리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방문이 열렸다.
-달칵.
“이, 일어 나셨나요, 강우 씨?”
“아, 응. 지금 막 일어났어.”
한설아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
그녀를 본 강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일 있어? 뺨이 엄청 붉은데.”
“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설아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깊게 심호흡하더니 묘한 기대감이 서린 눈빛으로 다가왔다.
“그, 그나저나 아직 몸이 좀 불편하시죠? 오늘도 제가….”
“아니. 이제 괜찮아.”
한설의 표정이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강우는 픽 웃으며 말했다.
“간병해 줘서 고마워. 이젠 완전히 나았어.”
“그, 그러신가요?”
“응.”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고 침대에 죽치고 있을 순 없으니까. 슬슬 움직여야지.”
“…….”
“왜?”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설아는 무언가 자꾸 떠오르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에서 김이라도 뿜을 듯 뺨이 붉다.
“저… 강우 씨.”
“응?”
“그… 강우 씨는 지옥에서 만 년을…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때 얘기를 해주실 수….”
“안 돼.”
살짝 차가운 목소리였다고 생각한다. 한설의 몸이 움찔 떨렸다.
강우는 담담히 말했다.
사실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설아라면 진짜 자신을, 지옥에서의 자신을 받아주고 이해해 줄 것이라는 묘한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건… 안 돼.”
“…왜죠? 저, 저도 강우 씨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동정할 테니까.”
“…예?”
“들으면, 동정할 거야.”
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시크한 척, 쿨한 척 멋 부리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과거는, 지옥에서의 기억은 잘 뽑아낸 신파극이다.
‘기가 막힌 똥꼬쇼였지.’
처절하고 비참한 것으로 치면 어떤 스토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도저히 입으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꼴사납고, 추잡한 기억이다.
‘여기서 눈물 한바탕 질질 짜면서 아주 지랄 쑈를 할 걸 생각하면….’
입으로 내뱉는 순간 말과 섞여 다른 무언가가 나올 것 같았다.
참지 못하고 질질 짤 수도 있으리라.
‘나이를 그렇게 처먹고.’
할 만한 짓은 아니다.
물론, 나이를 얼마를 처먹건 정신적 성숙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은 듯한 사람들을 찾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특히 악마의 육체는 끝없는 욕망의 충동질로 정신적 성숙을 방해한다.
지금 자신만 하더라도 뭐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는 초로의 노인과 같은 초탈함을 가진 건 아니었으니까.
“…….”
한설아가 몹시 우울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찾아 들을 만큼 재밌는 스토리는 아니니까.”
“그게 아니라….”
“알아.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래도 말하기 워낙 쪽팔린 기억이라… 지금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한설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강우 씨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죠.”
“고마워.”
“그래도, 포기한 건 아니에요. 반드시 강우 씨에 대한 모든 일을 들을 거예요.”
한설아가 굳은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말했다.
강우는 갑작스런 그녀의 선포에 머리를 긁었다.
“그보다 할키온이랑 에키드나는?”
“리리스 씨가 치료하고 있다고 해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앞서 말한 디테일을 위해 물었다.
‘지금 쯤 난리 났겠네.’
그 둘은 자신에 대한 의존이 굉장히 심했다.
권속인 탓도 있지만, 성격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이 컸다.
그런 발록에게 집에 가만히 있으라 명령했으니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을 것이다.
‘일단 나중에.’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아니다.
강우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시게요?”
“천사를 한 번 만나봐야 할 것 같아서.”
“…….”
한설아의 눈에 서늘한 분노가 서렸다.
천사가 그의 구출 작전 때 협력하지 않은 것이 떠오른 탓.
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나도 사정을 듣기는 했는데, 그래도 협력 관계인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사실 나 하나 구하겠다고 겁도 없이 우르르 몰려온 것도 칭찬할 만한 일은 아니고.”
“그, 그건!”
“뭐, 그래도… 고마워.”
강우는 한설아의 손을 잡았다.
“덕분에 살았어.”
“저만 간 게 아닌걸요. 그리고… 이제까지 강우 씨에게 받은 걸 생각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설아가 뜨거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강우는 크흠, 하고 헛기침하며 몸을 돌렸다.
“저녁까진 돌아올게.”
쑥스러움을 감추듯,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우우웅.
아파트 옥상에서 게이트를 연 후, 수호의 전당으로 이동했다.
세계 곳곳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지니고 있는 수호의 전당은 단순 이동 수단으로도 굉장히 활용도가 높았다.
“혀, 형님?!”
“오랜만이네.”
“몸은 괜찮으십니까?!”
수호의 전당으로 들어오자 김시훈이 가장 먼저 그를 반겼다.
강우는 흥분해서 달려오는 김시훈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괜찮아. 완전히 나았어.”
왠지는 모르겠지만 전보다 좋을 정도다.
“후우. 걱정 많이 했습니다. 형님이 아프셔서 병문안도 힘들다는 소리를 듣고 진짜….”
“……?”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문안이 힘들다는 말은 한 적도 없다.
“그래도 다 나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보다 좀 더 쉬시지 여긴 왜 오신 겁니까?”
“몸도 나았으니 그 때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야지. 그리고 앞으로 대책도 마련해야 하고.”
“…….”
김시훈은 굳게 입을 닫았다.
반론할 말이 궁했다.
“가이아 씨도 불러줘. 한 번에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차연주 씨도 부를까요?”
“아니. 라파엘은 연주 잘 모르잖아. 너랑 나랑 가이아만 가는 게 좋을 거야.”
“…천사를 만날 생각이십니까?”
김시훈이 불쾌하다는 듯 가늘게 눈을 떴다.
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설아와 같은 반응이다.
“무슨 생각하고 있는 줄은 알겠는데, 아직 우린 천사랑 협력 관계야. 앞으로도 그럴 거고.”
“…….”
“시훈아.”
“예…. 알고 있습니다.”
김시훈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죠. 가이아 씨는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김시훈은 몸을 돌렸다.
강우는 김시훈의 뒷모습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뭐, 이 정도가 적당하지.’
천사와의 관계는, 그 거리는 딱 이 정도가 적당하다.
자신이 결국 악마인 이상 천사들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해와 타산 위에서 협력해야 한다.
어느 정도 서로 경계하면서, 일치된 목표에는 힘을 합치는 것.
강우가 바라는 천사와의 관계였다.
“강우 씨! 모, 몸은 괜찮으신….”
“그 얘기는 가면서 합시다.”
걱정 가득한 가이아의 얼굴을 보며 강우는 웃었다.
* * *
“…사천왕이라니.”
라파엘이 이마에 손을 올렸다.
생각지 못한 변수다.
“예언의 악마의 세력이 그토록 강하단 말인가. 아직 ‘그쪽’ 일도 해결되지 않았거늘….”
초초하게 입술을 짓씹었다.
너무도 강대한 악의 세력에 머리가 아찔했다.
“그때의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겠나?”
“물론입니다.”
강우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사탄을 조사하기 위해 간 일. 그 흔적을 찾아낸 일. 그리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를 습격한 예언의 악마.
말이 이어질수록 라파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좋아.’
강우는 씩 웃었다.
‘잘 넘어왔어.’
자신이 예언의 악마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모습.
‘키햐! 이제 드디어 안전자산을 구할 수 있게 됐네!’
라파엘의 표정을 보니 계획이 완전히 성공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예언의 악마라는 혐의를 완전히 벗었으며, 타락천사 라키엘이라는 편리한 카드를 하나 얻었다.
‘좋아! 라키엘 코인 떡상 가즈아!’
라키엘이란 카드를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어.’
사탄이 중간에 나타나 얼마나 곤혹을 치렀던가.
강우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만난 사천왕의 이름이 뭐라고?”
“타락천사 라키엘입니다.”
강우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라키엘…?”
‘그래, 당연히 처음 들어봤겠지.’
내가 만든 거니까.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콰앙!
라파엘이 두 눈을 부릅뜨며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라, 라키엘이 거기 있었다는 말인가!!!”
‘응?’
“어, 어째서!! 어째서 그 타락한 성좌(星座)가 지구에…!”
‘뭔데 X발.’
“서, 설마….”
라파엘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보, 봉인이… 풀렸단 말인가?”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에 폭풍이 몰아쳤다.
‘아니.’
머리를 움켜쥐었다.
‘라키엘은 또 누군데 X발….’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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