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0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08화
달이 지다 (1)
‘일단, 침착해. 흥분하면 안 돼.’
덜덜덜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깊게 심호흡했다.
역사적인 순간.
만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물론, 이런 방식 말고 좀 더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기회를 만끽하기를 기대했지만, 막상 기회가 눈앞에 닥치자 그딴 개똥같은 생각은 깨끗하게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뜨거운 열기가 전신에 퍼졌다.
‘설아야.’
광기에 찬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한설아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녀에게 알아서 잡아먹힐(?) 것 같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어디까지나 목적은 설아의 타천을 막는 거다.’
이것을 기회로 한설아와 달나라로 가겠다는 음흉한 생각은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 이건 인공호흡이야.’
타천하는 한설아를 막기 위한, 의료 행위.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환자를 구하는 의사의 마음으로, 신에게 기도하는 신도의 마음으로 경건하게 이번 일을 행할 것이다.
“강우 씨,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요?”
“어? 아, 음.”
자기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간 모양.
강우는 크흠, 헛기침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머릿속이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여기서 바로 본격적인 행동으로 나서서는 안 돼.’
모든 일에도 단계가 있지 않은가.
냅다 행동부터 옮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선은 달콤한 말로 설아의 욕심을 채운다.’
그녀의 육체가 천사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고, 그 집착의 대상이 자신이라는 것을 안 이상.
한설아가 지닌 욕망이 무엇인지 해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엘 때처럼….’
아니, 오히려 우리엘 때보다 더 쉽다.
우리엘의 ‘정’에 대한 집착은 결국 타천을 할 정도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으니까.
강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아야.”
“예, 강우 씨.”
“최근에 같이 있지 못해서 외로웠지?”
따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우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네… 정말 너무 외로웠어요. 하지만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다시는,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요.”
짙은 미소를 지으며, 검게 점멸하고 있는 열두 장의 날개로 강우를 덮었다.
“앞으로는 계속… 영원히 함께예요.”
녹아내리듯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강우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앞으로는 계속 같이 있자.”
“아, 아아!”
한설아의 몸이 떨렸다.
“강우 씨도 그걸 바라고 계셨군요!”
부르르. 환희에 찬 그녀가 외쳤다. 강우는 쇠사슬에 묶인 양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미안한데 이것 좀 풀어 줄 수 있어?”
“그, 그건….”
“설아 널 만지고 싶어서 그래.”
“지금 바로 풀어드릴게요.”
철컥. 양팔을 구속하고 있는 쇠사슬이 풀린다.
강우는 설아의 등을 쓰다듬으며 살며시 팔에 힘을 줬다.
“헤헤헤.”
한설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아주 조금이지만, 날개가 검게 점멸하는 속도가 늦춰진 것이 보였다.
‘좋았어.’
일단 효과가 있다는 것은 증명됐다.
그렇다면.
배시시 웃고 있는 한설아를 끌어안아 입을 맞췄다.
그녀가 한 것처럼 격렬하진 않았지만, 서로의 감정은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을 만큼 깊은 키스.
한설아가 날개를 퍼덕이며 즐거워하는 것이 보였다.
“설아야.”
“예, 예, 강우 씨.”
“우리엘에게 무슨 말을 들은 거야?”
“…….”
우리엘의 이름이 나오자 한설아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게… 강우 씨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행복하게 해드릴 수 없다고 그랬어요.”
입술을 짓씹는다.
“어이없지 않나요? 자기가 무슨 강우 씨의 애인처럼 말하더라고요. 강우 씨의 애인은 저, 전데 말이죠. 강우 씨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광기를 띈 눈빛이 강우를 향했다.
강우는 막힘없이 답했다.
“응. 그 꼬맹이 자식이 나랑 설아 사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를 했네.”
우리엘이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우리엘의 변호를 해줄 수는 없는 노릇.
무조건적으로 한설아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옳다.
“마, 맞아요!! 저랑 강우 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가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한설아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녀는 과할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첫 단추는 잘 끼웠다.
‘이제는.’
혓바닥에 기름칠을 할 때였다.
“난 일단 왜 설아가 날 보호해 주지 못하는 게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건… 강우 씨가 그만큼 위험하셔서….”
“아니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사실 난 전혀 위험하지 않아, 우리엘이 잘못 알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 없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답은 그것이 아닐 테니까.
“내가 위험한 거랑, 설아가 날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건 아무 연관이 없어.”
“…….”
지옥에서 마왕으로 군림했을 때, 광기에 찬 존재는 질리도록 다뤄봤다.
“내가 안전하지 않다는 건 사실이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도 사실이지.”
“그, 그렇다면….”
“하지만.”
그들을 다루는 방법은 간단하다.
“난 아무리 내가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면 된다.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면 된다.
“설아야.”
그녀의 뺨을 쓰다듬는다.
손발이 찌그러질 듯한 오글거림을 견뎌내며, 말을 잇는다.
“난 너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
“아….”
“네가 날 지켜줄 필요는 없어. 그냥… 그냥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돼.”
“거, 거짓말!! 강우 씨는 저 말고 그 꼬맹이 천사랑 더 같이 있고 싶어 하셨잖아요!”
한설아가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매일 저녁 늦게까지… 새벽까지 강우 씨를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는걸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계속 기다렸는데. 한 번도 오지 않아놓고…! 저, 저랑 같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으면서!”
쿠르릉!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아파트 전체가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니,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힘의 영향으로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강우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시바. 대체 얼마나 힘이 강한 거야.’
도시하나를 뒤흔들 힘이라니.
세라핌의 힘에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설아가 강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강우 씨는 저만 봐야 해요. 저만 사랑하고, 저랑만 얘기하고, 저만 만져야 해요. 아시겠죠?”
“설아야.”
“걱정하지 마세요.”
광기에 찬 눈빛이 강우를 향한다.
한설아는 강우의 몸을 침대에 쓰러트리고는, 그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강우 씨가 원하는 건 제가 뭐든 해드릴게요. 강우 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기 계시기만 해도 괜찮아요. 그러면….”
한설아가 천천히 강우의 뺨을 쓰다듬었다.
“매일 강우 씨가 좋아하시는 김치찌개를 해서 직접 먹여 드릴게요. 옷도 제가 갈아입혀 드릴게요. 화장실도 가실 필요 없어요. 아, 심심하시지 않게 TV도 이쪽으로 옮겨드릴게요. 침대용 테이블을 사면 컴퓨터도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몸을 숙여 강우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댄 그녀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애인 사이에 하는 기분 좋은 일도… 원하시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잔뜩 해드릴게요. 후훗. 저 이래 보여도 강우 씨 몰래 열심히 연습했답니다? 강우 씨는 가만히 누워계셔도 잘할 수 있어요.”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무수한 번뇌가 머릿속에 끓어올랐다.
‘이거 그냥 타천한 채로 둬도 괜찮지 않을까? 응? 마신이랑 타락한 천신. 뭔가 잉꼬부부 같은 느낌도 나고 그러지 않아?’
검은 날개건 하얀 날개건, 그 본질이 한설아면 괜찮지 않을까? 응? 그렇지?
강우는 미쳐 날뛰는 욕망을 필사적으로 제어하며,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한설아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날개가 검게 점멸하는 속도가 다시 빨라져 있었다.
‘침착해, 침착해.’
한설아의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건 알았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더욱 큰 떡밥을 던지면 될 뿐이다.
“미안해, 설아야. 네가 이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흐윽, 흑….”
“인정할 게. 너랑 같이 있는 것보다… 우리엘에게 더 신경 썼던 건 사실이야.”
“이익.”
설아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강우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발버둥 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내가 왜 그랬는지는 설아 너도 알고 있잖아.”
“저, 저보다 그 꼬맹이랑 같이 있는 게 더 좋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그녀 자신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강우를 속박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집착에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정말 너보다 우리엘이 좋아서 널 혼자 놔뒀다고 생각해?”
“그게 아니라면….”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단호한 태도로 말을 끊었다.
여기서 한 번, 강하게 나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좀 많이… 실망스러울 것 같은데.”
“아,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설아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눈부신 태세 전환이었지만, 뭐 어쩌랴.
강우는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을 만큼 설아 네가 불안에 떤 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해. 조금 더… 네게 신뢰를 줘야 했어.”
“아니에요. 이게 다 그 꼬, 꼬맹이가 잘못한 거예요. 강우 씨는 아무 잘못 없….”
“아냐. 내가 잘못한 거야. 나를 믿을 수 있도록, 미리 말해뒀어야 했어.”
“예? 무슨 말… 말씀이신가요?”
강우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오른손 중지에 낀 마해의 반지에서 검은 어둠이 살짝 떨어져 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하얀 반지가 만들어졌다.
반지에는 한설아의 이름이 검은 글씨로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다.
“사실 한 달 정도 전부터 이걸 준비했었는데…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 건네주지 못했어.”
“…예?”
새하얀 반지를 꺼내, 한설아의 앞에 내밀었다.
“설아야.”
지금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비장의 카드.
“결혼하자.”
“……!”
쿠구구구구궁!
정신 나간 힘의 격류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한설아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붉어진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아, 예? 겨? 결혼? 예?”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
강우는 통했다는 생각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지.’
결국 말로만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결혼하자는 말만으로 그녀의 타천(陀天)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제부터, 말이 아닌…!’
육체의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
불신과 광기로 찌든 그녀의 마음을 육체의 온기로 녹여내야 할 타이밍이었다.
‘간다, 간다, 간다!! 이제 진짜 간다!!’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이 시간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드디어, 드디어.
만 년 만에.
아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리리스랑은! 리리스랑은 다르다!!’
고름을 줄줄 흩뿌리는 촉수괴물에게 습격당한 것을 경험으로 치기에는, 너무 마음이 아프지 않은가.
‘촉수도 없어! 눈도 두 개야!’
고름도 없어!
신기해!
강우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그녀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흐윽, 흑….”
한설아가 눈물을 터트림과 동시에,
[타천(陀天)의 기운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곧, 타천(陀天)이 취소됩니다!]‘어?’
뭔 소리야?
“강우 씨…!”
아직 안 했는데?
“예, 예…! 저, 저도 좋아요!”
아니, 잠깐만.
시바 이건 아니지. 왜 그러는 거야. 설아야. 아직 우리에겐 육체의 대화가 필요하잖아.
말로 해결될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아.
‘아, 안 돼.’
강우는 절박하게 손을 뻗었다.
무언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벌써 성공하면 안 돼…!’
말밖에 안 나눴는데!
이제 응응항항 달나라에 갈 시간인데!!
‘실패해! 다시 실패하란 말이다!’
아직 성공해서는 안 된다아아아!!
[타락의 씨앗이 사라지고 있습니다!]‘씨바아아아아아알!!! 안 돼에에에에에에!’
“저희….”
한설아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 한줄기가 떨어졌다.
“결혼, 해요.”
“아….”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등 뒤에 돋아난 열두 장의 날개가 새하얗게 빛나는 것을 바라보며,
강우는 울었다.
“흐윽… 흐어엉.”
[타천(陀天)을 막는 데 성공했습니다!]‘아니야… 이게 아니야… 이런 걸 바란 게 아니라고.’
서로 부둥켜안은 강우와 설아는 그렇게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달이 지고,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