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6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70화
응, 안 돼 (1)
“그게… 무슨 헛소리냐.”
태무극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유산을 훔쳐간 범인이 루시퍼라니.
뜬금없어도 너무도 뜬금없는 말이다.
“미카엘이 고통의 성좌와 루시퍼를 착각했단 말이냐?”
그럴 리가.
미카엘은 오랜 시간 루시퍼와 싸워왔다.
고통의 성좌와 루시퍼를 헷갈릴 리가 없다.
“모르겠어.”
멍한 눈빛의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
태무극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대체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천사들의 공포 또한….”
“루시퍼를 향해 있어. 인간들의 공포도. 이대로는 부(否)의 감정을 흡수할 수 없어.”
“…….”
태무극의 눈썹이 아주 살짝 꿈틀거렸다.
인간들의 공포야 얼마 전 루시퍼가 제국에 모습을 보였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사의 공포까지 그를 향하고 있다니?
산탄젤로를 습격해 천사들을 학살하고, 유산을 탈취한 것은 루시퍼가 아닌 자신이었다.
“뭐가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냐….”
태무극은 가늘게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짧은 후회가 머릿속을 스쳤다.
만약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가면을 벗고 산탄젤로를 습격했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스친다.
‘결과론적인 얘기지.’
마신의 유산을 탈취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정체를 밝히고 습격했을 때 유산을 손에 넣지 못했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상황이 꼬였으리라.
태무극은 후회의 감정을 잘라내며 다시 원래의 무기질적인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어떻게 할 거야?”
소년이 묻는다.
“해야 할 일은 하나지.”
태무극은 덤덤히 답했다.
대체 왜 천사들이 루시퍼를 유산을 탈취한 범인으로 생각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대륙을 공포에 잠기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공포를 마신에게 향하도록 만드는 것.
마신의 유산을 완성하여 ‘마해(魔海)의 열쇠’를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부(否)의 감정이 필요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지.’
대륙을 공포에 잠기게 만드는 것.
종말의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며, 마신의 이름조차 꺼내는 것이 금지되는 세계.
그런 세계를 만드는 것은 지나치게 쉬운 일이었다.
인간과 천사들은 나약하고, 신은 간섭하지 못한다.
태무극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인다. 그 바다를 건너면, 에르노어 대륙이 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에르노어 대륙만이 아니다.
차원의 벽 너머.
과거 태무극이 살았던 환(晥) 대륙과 가이아가 관리하는 세계가 존재한다.
삼원(三元)이라 불리는 세계.
그곳들은 머지않아.
“세계는… 바울리 님의 이름 앞에 고개를 조아릴 것이다.”
절망의 성좌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 *
아쉽게도 강우의 두 번째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고대 마물의 시체들을 천사들이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
수십 수백이 우르르 고대 마물의 시체에 달라붙어 이것저것 조사하고 있는데 시체를 빼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강우는 나중에 천사들이 시체를 처분할 때 다시오리라 마음을 먹으며 일단 아르난 제국으로 복귀했다.
황성에서는 갑작스러운 우리엘의 등장과 강우가 사라진 것 때문에 큰 소란이 일고 있었다.
“찾아라!! 대륙 전체를 뒤져서라도 찾으란 말이다!!”
아이리스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제국군을 닦달하고 있었고, 김시훈은 이미 강우의 뒤를 쫓기 위해 발록과 함께 북쪽으로 출발해 버렸다.
할키온과 에키드나 또한 마찬가지.
아니, 그냥 리리스와 베르나크를 제외한 강우의 파티원 전원이 이미 북쪽으로 출발해 버린 후였다.
“…….”
강우는 자신을 찾으면 막대한 포상과 귀족의 작위를 수여해 주겠다는 황실 공고문을 읽으며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아주 개판 났네, 개판 났어.’
미리 말하지 않고 자리를 비운 것도 잘못이긴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반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셨나요, 강우 님?”
공고문을 손에 든 채 어처구니없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자, 우아한 발걸음으로 리리스가 걸어왔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퍽 즐겁다는 듯 한쪽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고 있었다.
강우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말리지 그랬어.”
“호호호. 시훈 씨가 워낙 강경하셔야죠. 당장에라도 혼자 뛰쳐나가려는 걸 그래도 발록이랑 다른 애들이랑 붙여준 거예요.”
“일단 애들부터 다시 불러와.”
지금 북쪽에 도착한다고 해도 열심히 전후 뒤처리를 하고 있는 천사들과 어색한 만남을 가질 뿐이다.
리리스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연락했어요.”
아무래도 강우가 이런 명령을 할 거라고 예상했던 모양.
강우는 그럴 거면 애들 출발하기 전에 어떻게든 말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 없이 혼자서 산탄젤로로 튀어간 것은 그의 책임이 크다.
“그래, 강우 님.”
리리스가 다가온다.
두 팔을 뻗어 그의 팔을 끌어안으며, 살짝 어깨를 기대온다.
강우의 팔을 잡은 리리스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꼭 말씀해 주시고 가세요.”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동시에 만약 이 일이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뭔지도 모를 사이 한설아가 홀로 적진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미안하다.”
손을 뻗어 리리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걸렸다.
“후후훗. 그래도 전 강우 님을 믿었답니다?”
“뭐… 일단 애들이 돌아오기 전에 해둘 말도 있으니 잘 됐다면 잘 된 거네.”
“해둘 말이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스는 그의 진짜 계획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조력자였다.
이번 일에 대해 미리 전달해 두는 것이 좋다.
강우는 북쪽에서 만났던 고통의 성좌와 천사들에 대한 얘기를 그녀에게 전했다.
“으음.”
리리스는 입술에 검지를 올린 채 잠시 침음을 흘렸다.
“확실히, 악의 성좌들 입장에서는 그냥 도움을 받은 게 되네요.”
“그건 어쩔 수 없었어.”
루시퍼에게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악의 성좌들에 대한 견제를 풀 수밖에 없었다.
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둘 다 놓치는 것보단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면 이대로 계속 악의 성좌들의 정체를 숨길 생각이신가요?”
“일단 하이엘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악의 성좌와 루시퍼가 협력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도 되긴 한다.
하지만 결국 지금 당장 활동하는 것이 악의 성좌들인 이상, 이목은 그들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어차피 어느 쪽으로 향하건 종말의 위기가 닥친다는 것은 마찬가지일 수 있지만.’
사실 공포가 어느 쪽을 향하던, 종말의 위기라는 상황만 만들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아냐.’
잠시 생각을 이어가던 강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악의 성좌들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다.
화려한 연출과 극적인 상황을 만들면서도 최대한 힘없는 이들이 말려들지 않게 만들려면, 자신이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공포의 대상이 여럿이라는 것은 의외로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라는 것은 끝없이 타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모되고, 사그라진다.
그 공포를 하나로 집중하기 위해서는 공포의 대상이 여럿이어서는 곤란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종말을 불러일으킬 악(惡)의 존재는, 루시퍼 하나로 족했다.
“그때까지는 악의 성좌들의 존재를 철저하게 감추면서 루시퍼에게만 집중할 거야. 리리스 너도 정보 조직이 완성되는 즉시 정보를 조작해서 악의 성좌의 존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만들어.”
“예, 명을 따르겠습니다.”
리리스는 입고 있는 치마를 우아하게 들어 올리며 허리를 숙였다.
“그런데….”
리리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봤다.
고통의 성좌와의 전투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들었다.
거기에 더해 유산을 훔쳐간 범인은 고통의 성좌와는 격이 다른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까지.
“마왕님.”
리리스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그녀의 표정이 어둡다.
강우는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왜, 내가 걔들한테 질까 봐?”
“그, 그건 아니에요.”
리리스는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돌렸다.
사실 강우의 추측이 맞다.
그가 구천의 지옥을 지배한 마왕인 것은 사실이지만, 적은 신격을 획득한 신들이다.
객관적인 전력 차를 따지면 압도적이다 못해 절망적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지.”
강우는 피식 웃으며 딱딱하게 굳은 리리스의 입가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바알과 싸우기 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당시 바알과의 전력 차는 끔찍하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심지어 강우는 마지막에 그를 이겼을 때조차 바알을 넘어서지 못했다.
“리리스.”
강우는 씩 입가를 올렸다.
“그래서 결국 그때 어떻게 됐지?”
절망적일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 차.
최후의 최후의 최후까지.
넘어서지 못한 괴물.
하지만.
“누가 이겼지?”
그는 승리했다.
절망적인 전력의 차를 뒤집고, 절대적인 힘의 격차를 찍어누르며.
결국, 이겼다.
“마왕, 님….”
리리스의 눈이 커진다.
짜릿한 전율이 그녀의 등골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자기도 모르게 머리끝이 촉수로 변했다.
녹색 촉수가 타오르듯 붉어졌다.
리리스는 강우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 그가 그 ‘승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끔찍한 고통과 치욕을 넘어왔는지를 떠올렸다.
‘아.’
이런 사람이었지.
언제나, 그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앞에 무엇이 있어도.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
“아아, 마왕님.”
리리스의 숨이 거칠어졌다. 뜨겁게 몸이 달아올랐다.
강우의 목에 팔을 두르며 격렬하게 입을 맞춘다.
혀를 얽히며,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그에게 비볐다.
열락(悅樂)에 빠진 목소리로 그에게 속삭였다.
“저, 오늘 하루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런 못생긴 껍데기가 아닌, 진정한 모습으로 돌아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요.
“…….”
강우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조금씩 촉수로 변하기 시작한 리리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뜨거운 감정이, 진심 어린 눈빛이 전해졌다.
대답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응.”
안 돼.
돌아가.
절대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