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7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74화
망령의 저택 (2)
“공포의 성좌여.”
“예, 절망의 주인이여.”
“정말 이런 방법으로 공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가?”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
“인간의 공포는 미지(未知)에서 오게 되죠. 아무리 악신이 설치고 다닌다고 해도… 그는 결국 누구나 ‘알고 있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호오.”
“조금만 기다려보십시오. 곧… 온 대륙이 성좌(星座)의 공포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
* * *
“…확실히, 조사할 필요가 있는 사건이네요.”
제국 변두리 마을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을 전달받은 김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밖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저택.
그와 동시에 하나둘씩 사라지는 사람들이라니.
둘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낙관적이다.
“바로 출발하자. 아, 혹시 따로 할 일이라도 있어?”
강우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서류 더미에 파묻힌 채 보낸 지난 일주일.
답답해서라도 빨리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귀족 영애들하고 약속이 있기는 한데… 애초에 제가 원한 약속도 아니었으니 거절해 두고 오겠습니다.”
김시훈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루시퍼에 대한 공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연스럽게 김시훈의 인지도 또한 급상승했다.
더러운 파리 군주의 손아귀에서 대륙을 구원해 줄 영웅으로 추앙받기 시작한 것.
그와 어떻게든 연을 만들기 위해 제국, 왕국을 가리지 않고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이 모여들었다.
“좋아. 그러면 가는 길에 레이라 씨도 불러와. 이번 사건 설명도 해주고.”
“레이라 씨도 같이 가는 겁니까?”
“응.”
레이라는 가이아의 화신이다.
저 수상쩍은 저택에 신의 힘이 개입했다면, 그녀를 통해 단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신들이 다 정의롭고 착한 건 아니니까.’
악신 루시퍼의 등장에 오히려 환호성을 내지르는 신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 혼란을 틈타 자신의 신격을 더 높일 방법을 꾀하던지.
혹은 겉으로는 루시퍼에게 분노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놈들도 있을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신은 우리 아름답고 총명하신 가이아 님뿐이지.’
고럼고럼.
“네, 그럼 잠시 갔다 오겠습니다.”
김시훈이 밖으로 나갔다.
강우는 리리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리리스. 너도 갈 준비해.”
“예? 저도요?”
리리스는 설마 자신을 부를 줄 몰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탐지나 탐색 관련은 네가 더 뛰어나잖아. 그리고 이번 사건을 처음 들은 것도 너고.”
오히려 같이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기서 더 늘어나는 건 좀 그렇지만.’
수상쩍은 사건을 조사하러 가는데 우르르 몰려가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
“어… 음.”
리리스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제가 그 저택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
자신과 같이 가자는 말에 꺅꺅 흥분하며 좋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꽤나 반응이 심심하다.
‘뭔 일이라도 있나?’
뭐, 일단 가보면 알겠지.
강우는 몸을 일으켰다.
* * *
“…확실히.”
제국 변방에 위치한 마을.
영주라기보다 촌장이 있을 법한 작은 마을은 음산한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 하나 찾을 수 없었고, 그 흔한 말소리도 거의 들려오지 않았다.
창문 틈으로 보이는 희미한 불빛만 아니었더라고 사람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마을이다.
“존나 수상쩍네.”
로스릭 성이냐?
“저기가 이 마을 촌장이 있는 곳이에요. 이 사건을 처음 보고한 사람도 그분이고요.”
리리스가 마을 한 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촌장의 집이라고 했지만 딱히 화려한 느낌은 없었다.
주변에 있는 집들과 마찬가지로 적당히 허름한 집이었다.
“…뭔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마을이네요.”
레이라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을 전체에 내려앉은 음산한 분위기에, 조심스럽게 김시훈의 손을 잡는다.
“일단 들어가 보죠.”
강우는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똑똑.
끼익. 문이 아주 살짝 열리며 주름진 얼굴이 가득한 노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강우 일행을 노려보았다.
“누구시오?”
“실종 소식을 조사하기 위해 온 파견대입니다.”
“…….”
노인은 경계 어린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강우와 리리스, 레이라를 살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김시훈을 향하자.
“허업!”
두 눈을 부릅뜨며 숨을 들이켰다.
“서, 설마! 당신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떤다.
김시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김시훈이라고 합니다.”
“여, 역시! 소드엠페러셨군요!”
“…예?”
소드 뭐?
“검의 제왕! 악신을 물러나게 한 영웅! 아아, 설마 소드엠페러 님처럼 대단하신 분이 이런 작은 마을을 도와주러 오실 줄이야!”
촌장은 눈물까지 펑펑 흘리며 몸을 떨었다.
물론 김시훈과 강우 또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푸흡! 소, 소드엠… 크흑!”
강우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사람들 사이에서 붙은 김시훈의 별명이 소드엠페러였다니.
정말.
너무 부럽다.
“너, 너무 머, 멋진 칭호다, 시훈아.”
크헉헉헉.
강우는 입술 사이로 빠져나오려는 웃음을 억누르며 김시훈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
김시훈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천랑부대라는 기막힌 이름을 지었던 김시훈도 소드엠페러라는 전율스러운 칭호를 견디긴 힘들었던 모양.
“우, 웃지 마십쇼, 형님!”
버럭 소리친다.
“크핰핰핰핰! 왜, 사람들이 붙여준 멋진 칭호잖아?”
“윽….”
김시훈은 차마 촌장의 면전에서 그딴 손발이 찌그러져 사라질 것 같은 칭호가 붙었는지 따지지 못하고 입술을 짓씹었다.
“…….”
김시훈이 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옆에 있던 레이라가 김시훈의 팔을 잡았다.
“그만큼 사람들이 시훈 씨를 칭송하고 있다는 의미니까 그렇게 창피해하지 마세요.”
“하지만….”
“호호호. 전 마음에 드는걸요?”
“그, 그렇습니까?”
“예.”
레이라는 방긋 웃었다.
“소드… 푸흡! 엠페러. 얼마나 멋진 칭호인가요?”
“…….”
김시훈의 표정이 처참히 구겨졌다.
강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히야 우리 재수씨.’
사람 좀 맥일 줄 아네.
* * *
촌장의 설명에 따르면 저택이 나타난 것은 5일 전.
갑작스럽게 나타난 저택에 마을 청년 세 명이 들어갔다가 실종된 것이 시작이라고 했다.
그 뒤에 저택에서 흘러나온 음산한 안개가 마을을 뒤덮었고, 사람들이 하나씩 실종되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현재까지 실종된 사람의 숫자는 스물여덟.
마을의 규모를 생각했을 때 단순한 우연이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숫자였다.
구체적인 얘기를 들은 강우 일행은 바로 갑작스럽게 나타났다는 저택으로 향했다.
“와우.”
저택을 본 강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깨진 창문과 썩은 문짝, 곳곳이 허물어진 외벽까지.
“진짜 공포 영화 찍기에 기막힌 곳이네.”
너무 대놓고 음산해서 오히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히 발걸음을 옮겼다.
오히려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나오니 무섭지조차 않았다.
“들어가자.”
끼익. 어떻게 아직 달라붙어 있는지 모를 문을 연다.
곰팡이의 냄새와 희미한 혈향이 흘러나오는 통로가 보였다.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지기는 하네요.”
김시훈은 가늘게 눈을 뜨며 통로를 살폈다.
성검을 미리 소환하여 허리에 찼다.
그때였다.
-콰앙!!
강우가 들어온 저택의 문이 갑자기 거칠게 닫혔다.
순식간에 저택 안이 어둠에 잠겼다.
“키햐.”
진짜 본격적이네?
강우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재밌다는 듯 낄낄 웃었다.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두 개의 불꽃이 만들어져 통로 안을 밝혔다.
일렁이는 불꽃에 비친 통로의 모습은 한층 더 음산했다.
곰팡이와 녹슨 철, 이름 모를 검은 이끼들이 가득한 통로.
코끝을 간질이는 역한 냄새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려 통로를 살피니,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일단 둘씩 나눠서 저택 내부를 조사해보자. 뭐 발견하면 통신 구슬로 연락하고.”
저택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거대했다.
통로도 그다지 넓지 않으니 넷이서 함께 다니는 건 비효율적이다.
“예.”
김시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라와 함께 오른쪽 통로로 향했다.
강우는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
리리스가 그를 따라오지 않고 가만히 멈춰 서있다.
“왜? 뭐 발견한 거 있어?”
“…….”
강우가 물었지만 리리스는 대답하지 않은 채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왕님.”
꿀꺽. 침을 삼키더니 강우의 팔을 끌어안는다.
“…….”
어라?
아까 전부터 뭔가 반응이 이상한데?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뜨며 리리스를 바라보았다.
설마, 하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설마 리리스, 너….”
무서운 거야?
“아, 아뇨! 이, 이런 낡아빠진 저택에 들어왔다고 해서 무서울 리가 없잖아요!!”
리리스가 다급히 소리쳤다.
강우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방금 반응으로 확실해졌다.
“이야, 의외네. 네가 이런 걸 무서워했을 줄이야.”
천년 가까이 그녀와 함께 있었지만 처음 안 사실이었다.
“아니라니까요!”
리리스가 붉어진 얼굴로 빼액 소리쳤다.
강우는 가볍게 웃었다.
“정 그렇게 무서우면 나 혼자 조사할까?”
“아, 아뇨. 하나도 안 무섭다니까 왜 자꾸 그러세요.”
리리스가 팔을 잡아당겼다.
“어서 가요, 마왕님.”
“그래, 그래.”
딱 봐도 오기를 부리는 것이 보였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신선하네.’
리리스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가.
아니, 얼마만이 아니라 처음인 것 같다.
‘설마 귀신이나 망령을 무서워했을 줄이야.’
평소 여유 가득한 리리스의 모습과 대비되어 몹시 재밌다.
강우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속으로 삼키며 저택을 조사했다.
-저벅, 저벅.
고요한 발걸음 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아으.”
리리스의 표정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강우는 그녀의 반응을 바라보며 소리 죽여 웃었다.
‘이게 뭐가 무섭다고.’
설사 귀신이나 망령이 나온다고 해도 해를 끼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참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다.
‘그래도 보는 맛은 있네.’
공포영화를 볼 줄 모르는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보면 그 사람 반응 보는 게 더 재밌다고 했던가.
리리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데려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쿠웅!
그때, 통로에 세워져 있던 커다란 서랍이 옆으로 떨어졌다.
서랍의 문이 열리며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눈알과 장기, 피가 쏟아져 내렸다.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귀여운 장치도 해놨….”
“꺄아아아아아아악!!!”
리리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강우의 팔을 끌어안으며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질척하고 끈적한 감촉이 팔을 타고 전해졌다.
‘어?’
질척하고 끈적한 감촉?
“하으으으으으!”
리리스의 머리칼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노란 고름이 흘러나오는 녹색 촉수가 강우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18개의 눈동자가 뚝뚝 눈물을 흘렸다.
“꺄아아아아아아악!!”
강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 마왕님!”
녹색 촉수가 몸 곳곳 파고들었다.
아니, 몸을 파고드는 것도 모자라 입과 코, 귓구멍까지 스멀스멀 기어 들어왔다.
“으어어어어어.”
뭐야.
이게 뭔 일이야.
“너, 너무 무서워요!!”
나도 무서워.
나도 이제 무섭다고 씨발.
“사, 살려….”
어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