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7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73화
망령의 저택 (1)
“…….”
침묵이 흘렀다.
몸을 돌려 앉은 에키드나가 무릎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파묻고 있다.
“저기….”
“치사해.”
토라진 목소리로 답한다.
가늘게 뜬 눈으로 강우를 흘겨본다.
“강우는 치사해.”
입술을 삐쭉 내밀며 다시 한 번 말했다.
강우는 픽 웃으며 에키드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다.
“크앙!”
에키드나가 머리를 빼내며 이빨을 드러냈다.
제 딴에는 위협을 준다고 한 것이겠지만,
‘귀엽잖아.’
왠지 괴롭히고 싶은데.
음.
‘참아야지.’
분위기가 좋지 않다.
“만지지 마!”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녀가 소리친다.
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평소 에키드나답지 않은 모습이지만, 왜 이러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에키드나는 용언마법을 익히기 위해 정신없이 수련했다.
특히 그가 ‘탈태’하고 있는 모습을 본 이후에는 더더욱 처절하게.
그런데 자신이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결코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용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니 충격이 클 것이다.
아니, 단순히 그는 용언을 사용하는 것에서 멈추지도 않았다.
용언의 근본을 파헤쳐, 언령이라는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에키드나 입장에서 그런 그의 모습이 어떻게 비쳤겠는가.
‘이제까지의 노력이 부정당한 느낌이겠지.’
조롱당한 느낌일 수도 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필사적으로 노력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절대로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마주한 채, 어깨를 짓누르는 좌절감에 빠져 있을 것이다.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문 채, 몸을 웅크린 에키드나를 내려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은 있었다.
‘이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야.’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의 문제 또한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고작해야 그런 것으로, 고작해야 그딴 것으로.
하루 만에 용언을 익히는 것을 넘어 언령에 도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우으.”
에키드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물기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
다시 한 번 침묵했다.
말이 되지 못한 단어의 편린들이 입안에 맴돌았다.
혼자서,
아무도 듣지 않을 변명을 이어간다.
‘이건.’
재능도, 시간의 문제도 아니다.
쌓아 올린 무게의, 걸어온 길의 차이다.
그는 비정상적인 마기 제어력을 가지고 있다.
이질적이고, 기괴하다고 해도 좋다.
신격을 획득한 신마저 경악해서 까무러칠 정도로, 그의 마기 제어력은 경이 그 자체였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지나칠 정도로.
‘다루지 못하면.’
죽으니까.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매시간, 매분, 매초.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풀면 그대로 몸이 터져 죽는다는 공포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쌓여 일 년이 되며.
그 일 년이 쌓여 만 년이 될 동안.
“쯧.”
가볍게 혀를 찬다.
그렇다고 해서 에키드나에게 네가 뭘 아냐고, 내가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왔는지 상상이라도 해봤냐고 따질 생각은 없다.
동정도, 연민도, 공감도 필요 없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강우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에키드나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복잡한 감정일 것이다.
강우는 픽 웃으며 몸을 돌렸다.
“슬슬 돌아갈까.”
여기서 위로를 건네는 것은 조롱이나 다름없다.
받아들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겠지.
“…응.”
에키드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힘없이 어깨를 늘어트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이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짝.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에키드나가 갑자기 자신의 양 뺨을 때렸다.
강우에게 다가와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강우, 아까 소리쳐서 미안해.”
“응?”
강우는 살짝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며칠은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회복이 빠르다.
‘성장한 건가.’
에키드나가 성장한 것은 육체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들어 에키드나의 머리칼을 헝클어트렸다.
“이제 좀 진정됐어?”
“응. 강우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
뭔 소리야 그건.
“난 예전 강우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발록이 가끔 얘기해 줬거든.”
“…….”
말이 멈춘다.
에키드나가 조용히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말없이 시간이 흘렀다.
고요히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에키드나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강우.”
“이건 뭐 딱히 무리한 건 아닌데.”
어색하게 웃었다.
거짓말이다.
아무리 마기 제어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하루 만에 용언의 근간을 파헤치려고 한 시도는 굉장히 위험한 도박이었다.
설계도도 잘 모르는 기계를 조각조각 분해해서, 자신에 맞게 재조립한 것과 마찬가지.
최악의 경우 언령은커녕 용언이 폭주하여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었다.
‘뭐.’
항상 이래왔지만.
강우는 에키드나의 손을 잡았다.
“슬슬 돌아가자. 아이리스가 오늘 다들 무사 복귀한 기념으로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했거든.”
물론 만드는 것은 아이리스가 아닌 황실 요리사들이지만.
“흐응! 흐응! 아이리스 좋아!”
언제는 싫다며.
강우는 픽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고통의 성좌가 죽은 후 일주일 정도가 흘렀다.
강우는 기껏 익힌 언령의 힘을 시험해 볼 틈도 없이, 바쁜 일정에 시달렸다.
제국의 문제부터 천사의 일, 신까지.
강우가 의도했다고는 하나 생각한 것보다 급하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었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돌렸다.
한설아가 타준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마셨다.
“괜찮으신가요, 강우 님?”
리리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강우는 현재 일주일째 잠을 자지 못한 상황이었다.
“몸은 괜찮아.”
정신 쪽이 슬슬 피로해서 문제지.
강우는 살짝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리스의 정보 조직이 어느 정도 완성된 이후, 루시퍼에 대한 각종 왜곡된 소식을 퍼트려 공포감을 조성하느라 일주일 내내 머리를 싸맸다.
그와 동시에 악의 성좌들의 움직임을 찾고, 루시퍼의 아내에 대한 것도 조사하려고 하니 분신의 권능으로 몸을 늘려도 손이 부족할 정도였다.
“루시퍼에 대한 공포감 조성은 어때?”
리리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진즉에 때려치웠을지도 모른다.
“잘되고 있어요. 이거 보세요.”
리리스가 사진을 몇 장 내밀었다.
아르난 제국의 도시를 찍은 사진이다.
텅텅 빈 술집의 모습이 보였다.
피델리오가 집권하고 있던 당시조차 어느 정도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쥐새끼 한 마리 찾기도 힘들다.
“다들 루시퍼가 무서워서 밖에 나오지 않고 있어요.”
“잘 되고 있네.”
강우는 씩 웃었다.
술집 사장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루시퍼에 대한 공포가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는 건 좋은 소식이었다.
‘나중에 돈이랑 식량이나 한번 풀어야겠네.’
사실상 아르난 제국을 경제 마비 상태로 만들었으니 이번 일만 끝나면 어느 정도 책임을 질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일주일 만에 이 정도는 예상 이상인데? 산탄젤로가 습격당했던 걸 퍼트린 게 컸나?”
천사들은 산탄젤로가 습격당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했지만, 그런 좋은 먹잇감을 놓칠 강우가 아니었다.
리리스가 만든 정보 조직을 이용해 천사들의 성지(聖地)가 악신에게 유린당하고 약탈당했다는 소식을 대륙 전체에 퍼트렸다.
“그것도 있지만.”
리리스가 짙게 웃었다.
“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게 더 컸어요.”
“아, 그거?”
강우는 씩 웃었다.
에르노어 대륙은 기본적으로 다신교다.
실제로 신격을 지닌 신이 여럿 존재하고, 그들의 힘을 받은 사제나 사도들이 활동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섬기는 것은 천신 세라핌과 영웅신 티리온이지만, 다른 신들의 세력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일주일 전, 사제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신들의 계시가 내려왔다.
-악신 루시퍼가 대륙에 종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짧지만 강렬한 내용의 계시.
그것도 어느 신 하나가 독단적으로 경고한 것도 아닌, 여러 신이 동시다발적으로 계시를 내린 것이다.
당연히 대륙 전체가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언제 나타날지 모를 악신과 그의 수하들에 대한 공포로 몸을 떨었다.
“잘되고 있네.”
강우는 씩 웃었다.
역시 미카엘을 통해 신들에게 상황을 전달한 것이 큰 효과를 봤다.
이대로 종말의 공포가 고조된다면, 하이엘프가 현신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전에 좀 할 일이 있지만.’
단순한 소문만 무성한 공포로는 한계가 있다.
적절한 이벤트를 일으키며 김시훈이 그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그가 생각하는 구도가 완성될 것이다.
“호호호. 요즘 인간들 사이에서 루시퍼가 어떻게 불리는지 아시나요?”
“응?”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리스는 꺄르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파리 군주라고 불리고 있어요. 오물과 역병의 악마라고.”
아.
‘거참, 루시퍼 새끼.’
그러니까 좀 씻고 다니라니까.
강우는 한심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파리 군주라니.
악신이라는 예전 칭호와 비교하면 지나칠 정도로 추잡하고 더러운 이름이다.
‘다 네놈이 자초한 일이다.’
난 잘못 없어.
아무튼 없어.
강우는 리리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밖에 다른 일은 없어?”
“아, 참. 그러고 보니 좀 수상쩍은 보고가 하나 있었어요.”
“수상쩍은 보고?”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뜨며 물었다.
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 까지는 아닌데요. 그래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마을에서 사람들이 계속 실종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실종?”
눈살을 찌푸렸다.
실종 사건이 작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리스가 수상쩍다고 보고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냥 실종만 된 거야?”
“아뇨. 그랬다면 강우 님에게 이렇게 보고하지도 않았겠죠.”
리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음…. 뭐라고 할까요.”
리리스는 입술에 손가락을 댄 채 적절한 말을 찾았다.
“귀신의 집, 이라고 할까요?”
“귀신의 집?”
그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마을 근처에 갑자기 거대한 저택이 나타났다고 해요. 수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저택에 들어갔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뭐 이런 거야?”
“예.”
공포 영화에서 단골처럼 나오는 장면이다.
“음.”
강우는 눈을 빛냈다.
무시하기에는, 꽤나 흥미로운 소식이다.
“시훈이 좀 불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