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7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78화
쫄? (1)
[…가이아의 꼭두각시인가.]공포의 성좌는 스산한 눈빛으로 강우를 흘겨보았다.
공포의 신으로서 획득한 신격이 그의 내면에 담긴 가이아의 힘을 읽어냈다.
‘빛의 수호자라.’
가소로운 칭호였다.
공포의 성좌는 낫을 들어 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다른 존재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자신이 올 것을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면, 필히 다른 인간의 무리도 주변에 매복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예상과 달리 넓은 정원의 주변에는 가이아의 권속 하나를 제외한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혼자 나를 상대하러 온 건가.’
그럴 리가.
공포의 성좌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무모하다고 해도 ‘신’을 상대하는데 혼자 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같은 가이아의 권속인 김시훈이라도 데리고 와야 했다.
‘시간을 벌기 위해 온 건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렇다면 애초에 다 같이 도망치지 굳이 홀로 기다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
[다른 놈들은 어디 있지.]“없어.”
단호한 대답에 공포의 성좌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딘가에 숨어 빈틈을 노리고 있는 건가.’
가소로운 생각이다.
수많은 원혼(冤魂)의 군집체로 이루어진 그에게 빈틈이란 없다.
“제길… 하나만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실망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와 달리, 인간의 눈빛은 타오르듯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그제야 공포의 성좌는 이상함을 느꼈다.
공포의 신을 마주한 적이 보이는 반응이라고는, 지나치게 이질적이다.
공포에 떠는 것도, 절망에 잠기는 것도 아니다.
하다못해 투지에 불타는 것조차 아니었다.
‘뭐지.’
인간의 시선에서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아니, 기묘하지 않다. 그가 익히 알고 있는 감각이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왜 그런 눈빛을 보내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
공포의 성좌는 자신의 감각을 의심했다.
그의 감각대로라면,
‘환호하고 있다.’
오랫동안 굶주린 짐승이 먹잇감을 발견하듯, 환희(歡喜)에 가득 찬 눈빛.
‘어째서.’
신을 앞에 두고, 저런 눈빛을 보낼 수 있는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득한 세월을 존재해오며, 공포의 신을 마주한 필멸자가 환희에 젖은 기억은 없었으니까.
‘미치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공포의 성좌는 반투명한 육체를 움직여 거대한 낫을 내렸다.
계획을 망쳐버린 필멸자들을 벌하기 위해 기껏 본인이 직접 움직였더니, 정신이 나간 인간이 상대라니.
맥 빠지는 일이다.
“다른 놈들은 어디 있어?”
자신이 했던 질문과 같은 질문을, 인간이 입에 담았다.
공포의 성좌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답했다.
[없다.]“없다고?”
진심으로, 실망한 듯한 모습.
아니, 분해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입술을 짓씹으며 발을 구르고 있다.
[쯧.]완전히 미쳐버린 건가.
공포의 성좌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제정신이 아닌 인간 하나에게 시간을 빼앗기기에는, 오늘 신벌(神罰)을 내릴 필멸자들이 많다.
[죽여라.]낫을 들어 인간을 가리켰다.
주변에 떠오른 수천의 망령들에게 명령했다.
살육을 기대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던 수천의 망령들은 어느새 움직임을 멈춘 채 인간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공포의 성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망령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피에 미친 원귀(冤鬼)들은 사냥감에게 달려들지 않고, 제 자리에 멈춰 서 있을 뿐이다.
[아아, 아아.]아니.
단순히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뭐, 라고?]공포의 성좌의 반투명한 두 눈이 부릅떠졌다.
흐릿한 육체의 안쪽, 유일하게 선명하게 빛나는 보랏빛 눈동자가 당황에 물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인간이 웃는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망령들을 돌아본다.
“너희들, 나 알고 있지?”
[아, 아아.]망령들이 몸을 떨었다.
오로지 인간에게 공포를 주기 위해서만 탄생한 그들이, 오히려 공포에 잠식된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그 인간이야. 그때 그 인간이야.] [아니야, 아니야. 인간이 아니야.] [악마다. 악마다.] [복수에 미친 악귀야.] [또 우리를 죽이려고 할 거야.]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고 할 거야.]망령들이 공포에 몸을 떨며 비명을 질렀다.
강우는 미안하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때는 그… 좀 사정이 있어서 그랬어.”
“그러니까… 그게 상황이 좀 복잡한데.”
머리를 긁적이며 억울함이 담긴 망령들의 시선을 피했다.
자신이 망령을 무참히 학살한 이유.
이유가 있긴 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말을 골랐다.
화풀이로 인해 억울하게 학살당한 원혼들이 상처 입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서.
“생긴 게 그… 좆 같이 생겨서 그래.”
조심스럽게 이유를 말해주었다.
[…….]망령들이 침묵했다.
망령들의 끔찍한 생김새 때문에 리리스가 기겁을 하고 촉수 발작을 일으켰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근데.’
왜 이걸 말로 설명하니까 되게 쓰레기 같지.
왠지 모르게 죄책감이 드는데.
[너무해, 너무해.] [악마! 사악한 악마!]“아니.”
악마 맞긴 한데.
사람을 납치해 고문하는 망령들에게 사악하다 들으니 복잡한 기분이다.
[…하.]공포의 성좌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가이아의 권속이 아닌, 그의 권속들을 향해 스산한 살기를 내뿜었다.
수천에 달하는 망령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공포의 성좌는 신성을 일으키며 낫을 휘둘렀다.
[끼야아아아악!!]근처를 떠돌던 망령 하나가 거대한 낫에 몸이 꿰뚫렸다.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오며 망령의 몸이 거칠게 압축되어 낫으로 빨려 들어갔다.
분노에 찬 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인간을 죽이라는 말을 못 들은 건가?]신의 분노에 정원 전체가 흔들렸다.
망령들이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다시 한 번 명령하겠다.]공포의 성좌는 거대한 낫으로 다시금 강우를 가리켰다.
[가이아의 권속을, 죽여라.]선언했다.
그리고.
[…….]다시금,
넓은 정원에는 침묵만이 맴돌았다.
[…뭐?]공포의 성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두 눈을 부릅떴다.
망령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으, 아우으.]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제자리에 서서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고?’
신성까지 사용했음에도?
공포의 성좌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분노에 앞서 위화감이 들었다.
‘있을 수 없다.’
망령들은 명계(冥界)의 존재.
그 누구보다도 죽음과 공포에 민감했다.
그런 그들이, 공포의 신인 자신보다 다른 존재에게 더욱 큰 공포를 지니고 있었다.
‘이건….’
이상하다.
단순한 착오라고 생각할 수 없다.
공포의 성좌는 고개를 돌렸다.
눈앞의 인간을 주의 깊게 살폈다.
날카로운 눈매를 지녀 성질 사납게 생겼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딜 어떻게 보나 인간이다.
그의 안에 담긴 가이아의 힘과, 찬란히 빛나는 황금빛 마력도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신이라면 마땅히 지니고 있을 신격(神格)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솔직히 느껴지는 힘만으로 판단하면, 저 인간과 자신 사이에는 압도적인 것을 넘어 절망적인 격차가 있다.
그만큼 ‘신성’을 다룰 수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비유하자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인간과 전신 갑주와 강력한 마법 무구로 무장한 인간 사이의 격차였다.
떼거리로 몰려오면 모를까, 혼자서는 절대로 그 격차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런데.’
대체 뭐란 말인가.
‘왜 이렇게.’
저 존재가, 두렵게 느껴진단 말인가.
[…….]지식과 본능 사이의 괴리감.
인간과 다시 한 번 눈을 마주쳤다.
인간은 여전히 포식자의 눈으로,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골을 타고 섬뜩한 감각이 흘렀다.
그에게 너무도 익숙한, ‘공포’라는 감각이었다.
‘위험하다.’
정확히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느꼈다.
지식을 따를 것인가, 본능을 따를 것인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공포의 성좌는 인간에게서 몸을 돌렸다.
‘뭔가가 있다.’
공포의 성좌는 더 이상 눈앞의 필멸자를 얕보지 않았다.
망령들의 반응과, 자신의 직감을 통해 그는 확신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뭔가가 저 인간에게 있다고.
‘피해야 한다.’
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상, 싸울 수는 없었다.
단순히 신격이 없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싸울 정도로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돌아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공포의 성좌는 보랏빛으로 빛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인간과 싸우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다.
공포의 성좌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천천히 거리를 벌렸다.
강우의 눈이 빛났다.
“와우.”
짧은 감탄사를 흘렸다.
“이야, 진짜 깜짝 놀랐네.”
보통이면 ‘어디서 하찮은 필멸자가!’라고 소리치며 달려들 타이밍이었다.
그들이 멍청하고 생각 없기 때문에 그렇다기보다는,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자신이 압도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신격이 있는 존재와 없는 존재 사이에 얼마나 불합리한 싸움이 펼쳐지는지는 지난번 전투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런데 설마 전투를 피할 줄이야.’
그들은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달려드리라 생각했다.
하찮고 나약한, 신격조차 없는 한낱 필멸자가 까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오강우라고 했나.]공포의 성좌는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놈의 목을 거두기 위해, 다시 돌아올 것이다.]신격조차 없는 필멸자에게 등을 돌려 도망친다는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잔뜩 살기를 담아 선언했다.
공포의 성좌는 몸을 돌렸다.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푸흡, 푸헼헼헼헼!!”
[…….]너무도 경박한 웃음소리에 절로 발걸음이 멈췄다.
강우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새끼 뭐 도망치면서 폼 하나는 뒤지게 잡네. 그러면 안 추할 줄 아니?”
[크읏. 네, 네놈.]“공포의 신이라면서요. 예? 근데 이렇게 겁에 질린 개새끼마냥 도망쳐야 되겠어?”
공포의 성좌가 버럭 소리를 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적잖은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
신이 인간을 보고 공포를 느껴 도망치다니.
아무리 직감을 믿고 하는 판단이라고 해도 굉장히 수치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공포의 성좌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다시금 몸을 돌리려고 했다.
“쫄?”
[…….]흠칫.
공포의 성좌의 몸이 멈췄다.
저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몹시, 몹시 기분이 불쾌해졌다.
[잊지 마라, 인간. 이것은 어디까지나….]“쫄?”
“쫄?”
[지금은 물러서지만, 다시 네놈의 목을 거두기 위해 돌아올 것이다.]“그래서.”
쫄?
[…….]침묵이 내려앉았다.
공포의 성좌는 자기도 모르게 뒷목을 부여잡았다.
[이런 씹새ㄲ….]인간에게서 느껴지던 공포가, 타오르는 듯한 분노에 조금씩 집어 삼켜지기 시작했다.
* * *
“태무극.”
색기 어린 목소리가 검은 공간 안에 울려 퍼졌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의 중앙.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는 태무극에게 프로세르핀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태무극은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답했다.
프로세르핀은 풍만한 가슴 사이에서 검은 구슬 하나를 꺼냈다.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루시퍼한테 연락이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