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8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83화
마른 걸레도 쥐어짜니 계속 물이 나오더라고 (1)
쿵! 쿠웅!
둔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굳게 닫힌 문에 몸이 부딪히는 소리.
“흐아, 아아.”
억눌린 비명이 문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내,
“아아아아아악!!”
끔찍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
찰칵. 찰칵. 찰칵.
문고리가 시끄럽게 흔들렸다.
발록은 그 앞에 서서, 흔들리는 문고리를 굳게 잡았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는 것처럼 등을 댄 채 문 앞에 주저앉았다.
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끔찍한 절규를 들으며 발록은 터질 듯 주먹을 쥐었다.
“…….”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떨궜다.
방 안에서 비명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을 칼로 헤집듯 아프다.
“강우 씨!!”
그때, 복도를 달려오는 여인이 보였다.
발록은 고개를 들었다.
한설아. 왕의 여인이자 천신의 영혼이 깃든 인간.
그녀는 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절박한 표정으로 문을 열려고 했다.
“안 된다.”
발록은 손을 뻗어 문을 열려는 그녀를 말렸다.
한설아가 날카로운 눈으로 발록을 올려다보았다.
“비켜요.”
발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쿠구구궁.
한설아의 몸에서 숨 막히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아득한,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성력이 발록을 짓눌렀다.
“크윽, 카학!”
발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거대한 압력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비키지 않았다.
“비켜, 요.”
한설아의 등에서 열두 장의 날개가 뻗어 나왔다.
발록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힘이다.
‘저런 힘이라면.’
왕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그 사실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
황당하고, 억울하게 느껴졌다.
분노까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은 왕과 같이 걷기 위해서 지난 천 년의 시간을 발버둥 쳤다.
하지만 고작 30년도 채 살지 않은 인간이, 고작 천신의 영혼이 깃들었다는 이유로 그를 아득히 뛰어넘다니.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발록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여긴, 못 지나간다.”
거대한 힘에 짓눌리면서도, 꿋꿋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지나가게 둘 수 없다.
이 안에는.
왕이 있으니까.
“…….”
한설아의 동공에 빛이 사라졌다.
감정이 없는, 섬뜩한 표정으로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문고리를 잡아 열려고 했다.
“안, 된다고, 말했, 다.”
그런 그녀의 손을 발록이 붙잡았다.
거대한 기운 속에서 움직이기 위해 어찌나 힘을 줬는지, 발록의 전신에 거미줄처럼 굵은 힘줄이 돋아 있었다.
한설아는 차가운 시선으로 발록을 내려다보았다.
“왜죠? 강우 씨가 저렇게 고통스러워하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왜 제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죠?”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회복 마법은 자신 있어요. 적어도, 고통을 덜어드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예요.”
한설아는 열두 장의 날개를 펄력여 거대한 성력을 내뿜으며 말했다.
발록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직 해보지 않았잖아요!”
“해봤다.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몇 번이나 시도했다.”
개문을 사용한 이후, 고통에 미쳐 날뛰는 왕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셀 수 없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오히려 왕의 상태를 더 위독하게 만들 뿐이었다.
“…가만히, 있어라.”
제발.
“가만히… 있어다오.”
발록은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한설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왜, 왜 강우 씨 혼자서 싸우신 거예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등 뒤에 돋아났던 열두 장의 날개가 흐릿하게 변하며 발록을 짓누르던 압박이 사라졌다.
“후아.”
발록은 크게 숨을 토해냈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천사들에게 집착이 있듯, 악마에게는 욕망이 있다. 너도 세라핌의 힘을 받아들였으니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강우 씨의 욕망이요?”
“그래.”
발록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왕이 아직 ‘악마’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철저하게 숨겨야 할 사실이었다.
특히 김시훈과 가이아의 화신에게는 더더욱.
다행히 김시훈과 가이아의 화신은 결계에서 풀려난 수만의 망령들을 처리하느라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마왕님의 욕망은 강자와 싸워 그 육신을 취하는 것이다.”
“육신을, 취한다고요?”
흠칫.
한설아의 표정이 굳었다.
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탐한다고도 볼 수 있지.”
“…….”
한설아의 눈빛이 한층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강우 씨가 싸운 성좌는 누구였는데요?”
“모른다.”
발록은 고개를 저었다.
“흐응.”
한설아는 가늘게 뜬 눈으로 방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바, 발록!”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리리스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다짜고짜 발록의 멱살을 틀어쥐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왕님이 혼자서 성좌들과 싸우셨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멀리서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온 듯, 그녀의 숨은 거칠었다.
“…….”
발록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리리스는 사납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발록의 멱살을 틀어쥔 손에 힘을 더했다.
“발록. 넌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대체?”
짙은 분노가 서린 목소리로 리리스가 쏘아붙였다.
발록은 고개를 돌리며 리리스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발끈한 리리스가 손을 들어 올렸다.
한설아가 리리스를 말렸다.
“지, 진정하세요, 리리스 씨. 강우 씨의 욕망 때문에 어쩔 수 없었대요.”
“…욕망?”
리리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강우의 욕망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발록을 흘겨보았다.
강우가 욕망을 참지 못했기 때문에 홀로 싸웠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강우가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도 못했다면 애초에 이 세계가 멀쩡히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리리스가 아는 한에서, 강우 이상으로 철저하고 완벽하게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악마는 없다.
그런데 욕망을 참지 못해서 홀로 싸웠다고?
“…….”
발록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분하다는 듯 짓씹은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 발록의 모습에서, 리리스는 대강의 상황을 파악했다.
“하.”
그녀는 헛웃음을 흘렸다.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발록을 쏘아보았다.
“패왕갑이니 뭐니 새로 힘을 얻었다고 하더니, 결국 예전이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
“…….”
억눌린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발록은 고개를 떨군 채 들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한설아만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흥, 리리스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설아 씨는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이건 저희 문제니까요.”
리리스는 검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힘없이 팔을 늘어트렸다가, 발록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개문을 사용하신 거지?”
“그렇다.”
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구에서 강우가 개문을 사용한 것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
한 번은 마몬을 상대할 때요, 다른 한 번은 지금이다.
‘내가 오시기 전에 한 번 더 사용하셨다고 하지만.’
어쨌든 그녀가 직접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
마몬 때도 그렇지만, 목숨을 무슨 게임 코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배팅하는 강우의 모습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속이 타들어 가고, 눈물이 맺혔다.
리리스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좀 더 빨리 눈치채야 했어.’
어떻게든 강우의 독단적인 행동을 막아야 했다.
누군가가 나서서 중재해주지 않은 한, 강우는 계속해서 홀로 짐을 짊어지려고만 할 테니까.
“이익!”
쾅.
리리스는 짜증난다는 듯 발을 굴렀다.
옆에 서 있던 한설아가 왠지 모르게 그녀와 동화되어 길길이 성을 냈다.
발록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부탁할 게 있다.”
“…뭔데요?”
한설아는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로 답했다.
“왕이 깨어나더라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최대한 함구해줬으면 한다.”
“…….”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리리스가 가늘게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그건 힘들 것 같은데? 마왕님의 마음은 잘 알지만, 다시는 이러지 않으시도록 확실히 못을 박아둬야지.”
강우가 왜 홀로 성좌와 싸운다는 무모한 선택을 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강우 혼자서 성좌와 싸우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그를 섬기는 이유가, 함께 하고 있는 이유가 없다.
성좌의 공격 한 번에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그 한 번의 공격을 받아줄 방패막이라도 되어야 했다.
언제까지고 보호받아야 하는 짐덩이로 남을 수는 없었다.
“…부탁한다.”
발록이 나지막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그의 모습에서는 비장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리리스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흥,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렸다.
“일단 난 우리 꼬맹이들한테 갈 테니까 알아서 하고 있어.”
할키온과 에키드나를 가리키는 말.
발록은 멀어지는 리리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한설아는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강우의 비명 때문에 초조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내 리리스가 다가와 그녀를 데리고 갔다.
조용해진 복도에는 발록과 덜컹거리는 문만이 남았다.
“…하아.”
발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등을 기대고 있는 문이 덜컹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왕의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
발록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귀를 닫고 고개를 숙였다.
어서 이 시간이 끝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 * *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다니까.”
강우는 침대에 누워 건성으로 답했다.
아직은 후유증 때문에 움직일 수 없지만, 고통 자체는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었다.
“하아. 그럼 푹 쉬고 계십쇼.”
발록은 침대에 누워 꼼짝 못 하고 있는 강우를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또 혼자 싸우면 한 대 칠 기세네.’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음에는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칵.
발록이 문을 열고 나갔다.
강우는 후련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뭐, 그래도.”
끝내주게 재밌었지.
성좌들과의 전투를 떠올리며 입가를 올렸다.
발록은 자신을 무슨 희생정신으로 머리가 가득 찬 성자처럼 묘사했지만, 실상은 그의 개인적인 욕심 또한 섞여 있었다.
강한 먹잇감들을 사냥해 뜯어먹고 싶다는 욕망이.
한동안 풀리지 않은 채 억눌러 왔던 욕망이 다소 사그라든 감각에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아니, 그게 아닌가.’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입가를 올렸다.
지금은 몸을 웅크리고 있지만, 어쩌면 욕망에 제대로 불이 지펴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식.’
얼굴을 가로지르는 검상이 인상적이었던 중년 사내.
그에 대해 떠올리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피가 끓어오르며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전신을 지배했다.
“흐흐흐.”
강우는 실없이 웃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와의 싸움은 필연에 가까울 정도로 이뤄질 것이다.
그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먼저 움직일 테니까.
‘얼마나 맛있을까.’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 감각.
강우는 머지 않은 시기에 그와 다시 조우할 날을 기대하며 몸을 침대에 뉘었다.
-달칵.
“저… 강우 씨.”
“아, 임자?”
방문을 열고 들어 온 것은 한설아였다.
강우는 밝은 표정으로 그녀를 반겼다.
하지만 한설아의 표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
“몸은 좀 어떠세요?”
“뭐… 거의 움직이지는 못하는데, 통증은 이제 없어. 이대로 며칠 쉬면 다시 쌩쌩해질 거야.”
개문의 어처구니없는 힘을 생각하면, 이 정도 후유증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강우의 대답에 한설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과일을 좀 가져왔어요.”
한설아는 쟁반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쟁반 위에는 한 입 크기로 예쁘게 잘린 과일들이 가득했다.
그중에는 에르노어 대륙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과일도 있었다.
“고마워.”
강우는 눈을 빛내며 웃었다.
안 그래도 뭔가 달달한 것이 먹고 싶었던 참이었다.
“자, 아~ 하세요.”
한설아가 손으로 과일을 집어 내밀었다.
개문의 후유증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기에 강우는 아기 새가 먹이를 받아먹듯 침대에 누워 넙죽넙죽 음식을 받아먹었다.
“그러고 보니 강우 씨, 발록 씨에게 강우 씨의 욕망에 대해 들었어요.”
“엉? 내 욕망?”
“예. 육신을 탐하고… 취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고 하셨어요.”
“아니, 그게 맞긴 한데.”
왜 이렇게 이상하게 들리는 거지?
한설아가 손을 뻗었다.
그녀는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후, 누워있는 몸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강우 씨의 욕망이라면, 제 집착처럼 해소해 주지 않으면 위험한 거겠죠?”
“그렇긴 한데. 이번에 어느 정도 해소됐어.”
다른 성좌는 먹지 못했지만, 공포의 성좌를 통째로 씹어 삼켰다.
전투 자체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해소됐다고요?”
한설아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떨리는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성좌 중에… 여자가 있었나요?”
“아, 한 명 있었지.”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세르핀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엘프였다.
“…….”
한설아의 눈빛이 검게 점멸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 위로 올라섰다.
“저기요…?”
설아 씨?
강우는 당황한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한설아는 입가를 떨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후, 후훗. 그래요. 제가 강우 씨의 욕망을 잘 해소해 주지 못한 탓이겠죠? 이해할 수 있어요.”
“아뇨.”
이해 못 하신 것 같은데요.
“그러고 보니 지금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하셨죠?”
한설아는 입술을 핥았다.
“아니, 저기….”
뭔가 오해가, 라고 말을 이으려던 찰나.
-찰칵.
방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어?”
뭐지?
* * *
“오강우 이 자식 어딨어?!”
“아, 연주야.”
“방 안에 강우 놈 있어?”
“응, 지금 주무시고 있어.”
“흥. 비켜봐 이 자식이 전에 혼자서 튀어간 것도 모자라서 이번에도….”
“아, 괜찮아.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응? 뭐가?”
“후훗.”
한설아는 입가를 가린 채 고요히 웃었다.
“마른 걸레도 쥐어짜니 계속 물이 나오더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