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9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93화
에르노어를 위하여 (1)
-채앵! 카앙! 캉!
“빠, 빨리 치료를…!”
“아악!”
“어, 어떻게 악의 무리가 저희들의 접근을 눈치챈 겁니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닙니다!”
선두에 나선 앤두인이 양손에서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넓게 휘둘렀다.
그를 향해 달려들던 마물들이 신성이 담긴 빛의 폭풍에 휘말려 검은 잿더미로 변했다.
“화신들은 산개해서 마물들을 상대해 주십시오!”
앤두인은 균열에서 쏟아진 마물들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교단의 신도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대체 어떻게.’
마물들이 이토록 정확한 타이밍에 쏟아져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기습을 하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기습을 당한 꼴이 되어버렸다.
앤두인은 거칠게 주먹을 쥐며 거센 포효를 지르며 달려드는 마물의 머리를 터트렸다.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이어가기엔, 마물의 숫자가 너무도 많았다.
“흐아아아아아!”
앤두인은 함성을 터트리며 손에 쥔 메이스를 내리찍었다.
십수 마리의 마물이 메이스에 얻어맞고 공중으로 튕겨졌다.
* * *
“저 새끼 힐러처럼 생겨서 더럽게 세네.”
사제(물리)인가?
강우는 선두에 나서서 메이스로 마물들의 머리통을 박살내고 있는 앤두인의 모습에 탄성을 흘렸다.
곱상하게 생긴 외모 하며, 치렁치렁한 법복을 입고 있던 탓에 후방에서 지원하는 힐러나 버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앤두인의 모습은 여느 전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확실히 화신들이라 그런지 마물들 상대로 잘 싸우네요.”
전장을 지켜보던 리리스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양상이 이렇게 될 것은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화신들은 신성을 다룰 수 있으니까.’
신에게 빌린 신격이기 때문에 제대로 그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나, 어쨌든 신성은 신성이었다.
가이아가 힘을 되찾은 후 레이라가 어느 정도까지 강해졌는지를 생각하면 이 정도 마물들에게 서른이나 되는 신의 화신이 쓰러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역시 싸움 구경이 보는 맛이 있네.”
와그작.
강우는 팝콘을 한 움큼 집어삼키며 흥미진진하다는 듯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아, 거기서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전장을 지휘하는 앤두인과 그를 따라 싸우는 화신들.
그들의 전투를 내려다보며 강우는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아! 저 새끼 뭐 하는 거야?”
화신 하나가 너무 깊게 들어간 탓에 완전히 마물들에게 고립되어 버리고 말았다.
말벌 하나에 수십, 수백 마리의 꿀벌이 달려들어 공격하듯 엄청난 숫자의 마물들이 화신에게 달라붙었다.
화신이 빈자리를 통해, 마물들이 교단의 진형 내부로 침입했다.
다른 화신이 그 빈자리를 메꾸려고 무리하다가 오히려 자기도 마물들에게 고립됐다.
앤두인의 활약으로 물러섰던 마물들이 한층 더 흉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에이, 내가 해도 저것보단 잘하겠다.”
신성이라는 규격 외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활용도 못한 채 우왕좌왕 거리는 화신들의 모습에 쯧쯧 혀를 차며 훈수를 두었다.
영락없이 소파에 누워 축구를 관전하는 아저씨의 모습.
리리스가 입을 가린 채 작게 웃었다.
“참전하실 건가요?”
“아니. 귀찮게 뭐 하러.”
강우는 심드렁한 눈빛으로 마물들을 살폈다.
확실히 구천지옥에서 서식할 법한 강력한 마물들이었지만, 이제 신격까지 얻은 강우의 입장에서는 썩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먹잇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런 놈들 먹어봤자 배만 더 고플 뿐이지.’
칼로리가 거의 없는 곤약 같은 놈들이다.
지금처럼 극도의 허기와 욕망에 몸이 달아올라 있을 때 저런 놈들을 먹었다가는 기분만 상한다.
“그나저나.”
강우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교단과 마물들의 전투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저 정도로 많은 마물들을 소환한 거지?”
단순히 양만 많은 것도 아니다.
질적으로 따져도, 마물 하나하나의 힘은 구천지옥에서도 강력한 축에 속했다.
마물의 숫자는 적어도 만은 가볍게 넘겼다.
어쩌면 십만까지도 넘을지도.
저 정도 숫자의 마물 무리는 구천지옥에서도 보기 힘든 숫자였다.
‘무슨 마물 양산이라도 한 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물은 악마와 달리 번식 속도가 빠르니 가능성 있는 추측이다.
‘다루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가늘게 눈을 뜨며, 마물들을 내려다보았다.
마물을 양산하기 위해서는 양식장에서 물고기를 키우듯 한곳에 뭉치게 한 뒤 짝짓기를 유도해야 한다.
살의와 광기만으로 가득 찬 괴물들을 그렇게 정확하게 통제하는 것은 강우로서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성좌 중에 마물을 다루는데 특화된 놈이 있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 정도의 마물들을 확보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강우는 전장을 살피며 천천히 마기를 끌어 올렸다.
거대한 기운이 그의 발을 타고 대지로 뻗어 나갔다.
‘주시자의 권능.’
세 번째 눈이라도 생긴 듯, 이마를 기점으로 협곡 전체를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처절하게 싸우는 교단의 모습과, 앤두인의 절규가 귓가에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강우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교단이 아니었다.
유리가 깨지듯, 허공에 나타난 균열. 결계가 박살 난 틈을 통해 기감(機感)을 뻗었다.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결계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마물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고대 마물도 있네.’
산탄젤로를 습격했을 때 처음으로 모습을 보였던 고대 마물.
지성을 지닌 마물이 수백, 수천에 달하는 마물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혼자 달려들지 않은 게 정답이었구만.’
악의 성좌(星座)가 지닌 병력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어차피 이제 그의 앞에서 숫자의 차이라는 것은 중요치 않지만,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모기나 파리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거슬리는 건 치워야지.’
그 역할은 교단이 그 한 몸 장렬하게 희생해서 충실하게 수행해줄 것이다.
남은 병력은, 발록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 마무리하면 된다.
거슬리는 날파리들을 모두 처리한다면.
‘성좌만이 남겠지.’
강우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쿵, 쿵.
거칠게 심장이 뛰었다.
저 균열 너머, 숨을 죽인 채 전황을 지켜보고 있을 절망의 성좌를 떠올렸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강렬한 허기와 갈증이 그를 덮쳤다.
꿀꺽.
크게 침을 삼키며 끓어오르는 욕망을 달랬다.
“근데 너무 맥없이 밀리는 것 아닌가요?”
“그러게. 성좌도 아직 안 나왔는데 이러면 곤란한데.”
강우는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교단을 내려다보며 쯧, 혀를 찼다.
성좌가 지닌 병력은 대충 파악이 끝났지만, 그들의 역할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될 수 있는 한 마물들의 숫자를 줄여줘야 했다.
‘확실히 신격이 낮기는 한가 보네.’
같은 화신이라고 해도 레이라와는 비교하는 것 자체 민망할 정도로 격차가 심하다.
“아무리 그래도 화신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하급 신의 화신이라고 해도 신성이라는 규격 외의 힘을 다룰 수 있는 화신들이 성좌도 아니고 마물에게 이토록 밀린다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화신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더니 영 아니긴 하네요.”
“그것도 있고. 일단 서로 협력을 전혀 못 하고 있는 게 더 문제지.”
신합회라는 이름 아래 모였다고 해도 서로 다른 신들을 믿는 세력이 연합한 단체다.
애초에 협력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화신들은 앤두인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개별 행동을 하다가 마물들에게 고립됐고, 그 아래 신도들도 서로 중구난방으로 싸우느라 마물의 습격에 대처하지 못했다.
어설픈 협력은 오히려 혼자 싸우니만 못했다.
강우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놈들이 성좌까지는 밖으로 끌어내야 하는데.”
절망의 성좌와 프로세르핀.
둘 외에 다른 성좌들이 몇이나 있을지 확인하는 것이 이번 계획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화신들의 맥없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성좌들이 오기도 전에 전투가 끝나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직접 나서야 할까요?”
“글쎄.”
강우는 고민에 잠긴 눈빛으로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이대로라면, 그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서는 성좌들을 불러올 수 없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흐아아아아압!!”
앤두인을 둘러싸고 있던 수백의 마물들이 거대한 빛의 폭발에 휩쓸려 잿더미가 되었다.
앤두인은 손에 들고 있는 메이스를 바닥에 쿵, 찍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하아.”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전장.
마물의 손에 유린당하고 있는 신의 사도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에 뜨거운 감정이 차올랐다.
“여기서….”
고개를 떨궜다.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어.”
“앤두인 님….”
그의 목소리를 들은 화신이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순간적으로, 전장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앤두인은 메이스를 부여잡으며 덜덜 떨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우리가 여기서 쓰러진다면, 그 다음은 아무 힘없는 대륙인들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욕심을 낸 것은 사실이다.
김시훈이 활약할수록, 점차 교단을 향해 차가워지는 대륙인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멍청한 선택이었다.
그 둘과 협력하여, 천사와 함께 공격했어야 했다.
이토록 악의 무리가 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미… 후회하기엔 늦어버렸지만.’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늦었다는 것은 안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지켜야 한다.’
피가 흐르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몸을 돌려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의 어깨에는, 대륙의 운명이 걸려 있었으니까.
수많은 목숨과 희망이 걸려 있었으니까.
“평화의 신 루메리아여.”
앤두인은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마주 잡고, 간절한 목소리로 기도했다.
“부디 내게 이 어둠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우우우웅.
찬란한 빛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거대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전신에 퍼졌다.
“아, 아아.”
앤두인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루메리아의 힘이 거침없이 끓어올랐다.
빛에 휩싸인 앤두인은 두 발을 굳게 디디며 몸을 일으켰다.
“앤두인, 님….”
“오, 오오.”
두 눈을 크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는 교단의 신도들이 보였다.
앤두인은 부서져라 메이스를 잡았다.
신합회라는 이름 아래 모였지만, 서로 다른 신들을 모시는 교단이 쉽게 힘을 합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들은 분명 서로 다른 신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
앤두인의 말에 화신들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쿵!
앤두인이 거칠게 발을 굴렀다.
눈부신 빛이 그의 몸에 감돌았다.
“우리들의 목표는 같습니다.”
대륙을 구하고, 악을 세상에서 몰아내는 것.
“여러분… 부디, 부디 서로 손을 잡아주세요.”
간곡한 앤두인의 목소리.
서로 눈치를 살피던 화신들이 이내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앤두인 사제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잠시 잊어버렸습니다.”
화신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앤두인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그는 메이스를 굳게 움켜쥐며, 몸을 돌렸다.
“하나 되어!”
손에 쥔 메이스를 높게 올렸다.
“싸워라!”
악의 무리에 뒤덮인 전장에, 그의 포효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에르노어를 위하여!”
앤두인은 거대한 빛을 뿌리며 마물이 뭉쳐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우와아아아아아!!”
서로 다른 신을 섬기는 신도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