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91)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92화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뭐가 있어 (1)
“이제까지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드려 죄송합니다.”
앤두인이 다시 한 번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강우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된 거구만.’
왜 갑자기 그들이 이렇게 나오는지,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신들이 신격의 격하나 소멸을 각오하면서까지 너도 나도 화신을 만든 것부터,
어떻게 모시는 신이 각자 다른 화신들이 규합할 수 있었는지도.
‘제 밥그릇이 뺏길 위기니까.’
김시훈은 지금 명실상부 대륙의 희망이 되었다.
강우의 손으로 직접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신들의 입장에서도, 그 신을 섬기는 신도들의 입장에서도 반길 수만은 없는 소식일 것이다.
‘간단하게 비유하면 그건가.’
경찰을 비유로 들어보자.
만약 한국 경찰이 해결하지 못하는 범죄를 외국에서 온 경찰 조직이 착착 해결하고 있다면 여론이 어떻게 될까?
‘생각할 것도 없지.’
한국 경찰의 무능함을 욕하며 개편을 요구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 에르노어 대륙의 상황이 바로 딱 그런 상황이었다.
이제껏 악마의 손에서 대륙을 구하겠다는 명목으로 세를 불리던 교단들은 루시퍼의 태동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애초에 그 모든 것이 강우의 손에서 계획된 일이었으니까.
그들이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김시훈이 나타난 그 일을 해결해 버렸다.
이윽고 김시훈은 교단을 아득히 넘어서는 명성을 거머쥐었다.
김시훈의 명성이 커질수록, 대륙인들이 교단에 대해 품은 불신감도 점차 커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한 신보다, 실질적인 위협에서 그들을 구해주고 있는 영웅이 더욱 신뢰가 가는 것은 당연했다.
‘다른 세계의 신에게 대륙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고?’
말만 번듯한 개소리다.
그들은 자신의 밥그릇이, 이제까지 쌓아 올린 권력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손을 잡고 힘을 규합해 밥그릇을 위협하는 외세(外勢)를 몰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강우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도.
루시퍼가 재림했고 악의 성좌가 풀려난 상황에서도.
욕망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악마들이 그러한 것처럼.
어쩌면 인간의 본질은 악마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신들이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설 줄은 몰랐네.’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신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화신이 죽는 것만으로 신격의 격하나, 최악의 경우 소멸까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신들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교단의 권익을 지켜줄 필요가 있을까?
‘종말에서 세계를 지키기 위해?’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희망찬 생각이다.
차분히 생각을 이어갔다.
애초에 그들은, 왜 그토록 종말을 두려워하는가.
‘신격이라는 게… 신앙과도 연결점이 있는 건가.’
이제까지 신격이라는 것은 그저 티탄에 의해 주어진 강력한 힘, 정도로 생각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신들은 티탄에 의해 창조됐을 때부터 신격을 지니고 탄생했다.
다른 누군가의 신앙으로서 신격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심지어 강우 자신도 다른 누군가의 신앙과는 상관없이 신격을 손에 넣었다.
‘이건 잘 모르겠네.’
아무리 자신이 광휘의 신이 되었다고 해도, 신도가 있거나 교단이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신성이라는 규격 외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뿐.
‘어쨌든.’
중요한 것은 신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화신을 만들 정도로 신합회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과, 신합회가 자신과 김시훈을 배척하려고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주….’
강우의 입가가 올라갔다.
굶주린 맹수와도 같은 눈빛이 번들거렸다.
‘잘됐네.’
안 그래도 적당한 스카우터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신들의 화신이라니.
어설프긴 하나 신성을 다룰 수도 있을 테니 스카우터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엘은 사납게 뜬 눈으로 앤두인을 노려보았다.
“지금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알아서 하겠다고?”
파직, 파지직.
우리엘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솟아오르며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흉포한 기세를 뿌리며 앤두인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엘.”
미카엘이 손을 들어 우리엘을 막았다.
“진정하세요.”
“하, 하지만…!”
우리엘은 답답하다는 듯 입술을 짓씹으며 앤두인을 노려보았다.
미카엘은 우리엘의 어깨를 잡아 뒤로 당기며,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앤두인을 비롯한 화신들을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 신합회의 뜻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앤두인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미카엘의 시선이 강우를 향했다.
강우 또한 착잡한 표정으로 앤두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깊은 한숨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강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신들의 의지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실제로, 저희는 어디까지나 외부인이기도 하고요.”
“너무 섭섭지 않게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디까지나 김시훈 님과, 오강우 님을 생각해서 결정한 일입니다. 이제까지 너무도 많은 짐을… 두 분에게만 짊어지도록 했으니까요.”
“그렇군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토록 많은 화신(化神)들이 모인 것을 보니 제 마음도 무척 든든합니다. 안심하고 여러분에게 저희들의 사명을 맡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앤두인은 밝게 웃으며 강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앤두인과 손을 마주 잡고, 환하게 웃었다.
“아, 참.”
강우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악의 무리들이 어디에 몸을 숨기고 있는지 정보를 얻었습니다.”
“예?”
“그, 그게 사실입니까?”
앤두인과 미카엘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특히 산탄젤로에 보관되어 있던 유산이 루시퍼의 손에 탈취 된 후, 악의 무리가 어디에 몸을 숨겼는지 전력으로 쫓고 있던 미카엘은 더욱 경악에 빠졌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악의 성좌들과 싸우며 그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허….”
“악의 무리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겁니까?”
앤두인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쪽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기습을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전술적으로 기습이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이점을 가져 온다.
두 배, 세 배가 넘는 전력 차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교단에 몸을 담고 오랜 시간 악마와 싸운 경험이 있는 앤두인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예. 모르고 있습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곳은 적진입니다. 섣부르게 다가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카엘이 침음을 삼켰다.
“강우씨 말이 맞습니다. 일단은 조사단을 파견해서 적의 전력을 파악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악의 무리들이 습격에 대비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앤두인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따져 물었다.
미카엘은 순간 고민에 잠겼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전력조차 파악되지 않았는데 기습을 하는 건 무모합니다.”
“…….”
앤두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온화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기습은 나중으로 미루죠.”
앤두인은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
강우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빛의 수호자님, 일단 그러면 그 악의 무리가 위치한 곳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앤두인의 눈빛에 담긴 욕망을 읽는다.
그런 그의 눈을 바라보며,
강우는 활짝 웃었다.
“예, 물론이죠.”
물론 알려줘야지.
‘그래야.’
널 써먹을 수 있으니까.
강우는 작게 웃었다.
성좌들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면, 앤두인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생각할 것도 없다.
‘나는 거짓말 안 했다?’
사실이다.
자신이 악의 무리가 있는 곳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것도,
위치가 탄로 났다는 것을 성좌들이 모른다는 것도,
섣부르게 다가가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도.
모두 조금의 거짓도 담기지 않은 순수한 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그곳으로 가겠지.
김시훈에게 빼앗긴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니까.
잃어버린 교단의 권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니까.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찬란한 영광을, 손에 거머쥘 수 있는 기회니까.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뭐가 있어.’
진실만으로도,
이토록 쉽지 않은가.
‘아니, 한 가지 안 알려준 게 있기는 하지.’
공간을 격리시키는 결계가 있는 이상, 그들에게 기습은 통하지 않는다.
기습의 이점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하지만, 뭐.’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지.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게, 거짓이 되는 건 아니잖아?’
강우는 낄낄 웃었다.
“악의 무리가 위치한 곳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인다.
준비해온 지도를 펼쳐, 성좌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장소를 가리켰다.
“이곳입니다.”
* * *
거대하게 솟은 산악 사이.
휑하니 비어 있는 협곡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리리스, 준비됐어?”
“아,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마왕님.”
리리스는 바닥에 복잡한 마법진을 그리며 답했다.
강우는 돌 위에 걸터앉아 산을 타고 협곡으로 향하고 있는 교단의 병력들을 바라봤다.
“아주 바글바글 끌고 왔구만.”
에르노어 대륙에서 교단의 힘은 황제와 비견될 정도로 강력하다.
당연했다.
신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던 지구의 역사에서조차 강력했던 것이 종교의 힘이었는데, 에르노어 대륙에서는 그 신이 화신과 사도를 통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끼쳤으니까.
신의 존재가 이미 증명되어 있으니, 의심을 품는 자도 없었겠지.
‘뭐, 신에 대한 개념이 차이가 크겠지만.’
에르노어 대륙에서 신이란, 거룩하고 위대하며 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사실상 신이라기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초인에 가깝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어쨌든.
“쟤들이 도착할 타이밍에 맞춰서, 딱 결계를 부숴줘.”
“예, 마왕님.”
리리스가 방긋 웃으며 답했다.
성좌들이 숨어 있는 결계는 공간 자체를 격리시키는 힘이 있기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도, 볼 수도 없다.
교단과 성좌들의 전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타이밍에 결계를 부숴야 한다.
“마왕님, 정말 ‘파이몬의 눈’은 필요 없으세요?”
파이몬은 과거 강우가 잡아먹은 악마 중 하나였다.
그의 눈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기에, 굳이 먹지 않고 리리스에게 건네주었다.
그의 눈은 마기의 흔적을 추적하여, 적들의 정확한 전력을 수치화해서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써먹기 딱 좋은 물건이었다.
“필요 없어.”
강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 쓰기 좋은 물건인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더 정확하거든.”
강우의 능력을 따라올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리리스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았어요.”
“자, 준비 끝났으면 어서 여기 앉아. 같이 구경이나 하자고.”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았나.
강우는 옥수수와 비슷한 식재료를 찾아 직접 튀긴 팝콘을 와작 씹으며 협곡으로 진군하고 있는 교단을 내려다보았다.
“호호. 이렇게 마왕님과 단둘이 있으니 너무 좋네요.”
리리스는 정작 싸움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 듯, 강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몸을 밀착했다.
강우는 실소를 흘리며 교단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단은 협곡에 거의 도달해 있었다.
‘슬슬 됐구만.’
강우는 리리스가 준비한 마법진에 발을 올렸다.
거대한 마기를 일으켰다.
-쩌적.
결계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깨진 듯, 허공에 거미줄과 같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무, 무슨?!”
저 멀리서, 앤두인이 내뱉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점차 크게 벌어지는 공간 사이로 무수한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강우는 즐겁다는 듯 돌 위에 걸터앉아 마물과 싸우고 있는 교단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자.’
이제.
‘서로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