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0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10화
강우, 설아랑 교미한 거야? (1)
이른 아침.
-콰앙!
부서질 듯한 기세로 문이 열렸다.
“흐응! 흐응!”
에키드나는 흥분에 찬 콧바람을 뿜었다.
그녀는 등에 한 보따리 짐을 싼 채 강우의 방 안으로 달려들어 왔다.
“강우! 강우! 아침이야! 일어나!”
오늘은 그의 파티원들과 함께 바람도 쐴 겸 휴가를 즐기는 날이었다.
소풍 가는 날 초등학생처럼 들뜬 에키드나는 아직 출발시각이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호들갑을 떨며 강우의 방문을 열었다.
“음, 뭐야. 몇 신데?”
강우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 옆에 놓인 시계를 보니 6시를 막 넘긴 시간이었다.
“…출발은 10시라고 했잖아.”
“흐응! 빨리 준비해야지!”
“4시간이면 이사도 갈 수 있겠다.”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사실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4시간은커녕 5분 만에 황성 통째로 다른 곳에 옮길 수도 있다.
‘뭐, 그래도 보기는 좋네.’
이렇게 흥분에 차 있는 에키드나의 모습을 보니 이번 휴가를 결정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우는 이불을 젖히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굳건히 솟은 프랑소와가 이불 속에서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어, 시발.’
좆됐….
“흐음. 무슨 일인가요?”
그의 옆에서 자고 있던 한설아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강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녀 또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한설아는 지금 상황을 파악했는지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떴다.
“응?”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에키드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두 사람을 살폈다.
이내 상황을 알았다는 듯 탁, 손바닥을 쳤다.
“강우.”
“어, 어?”
강우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마치 딸에게 그렇고 그런 장면을 들킨 부모와 같은 반응.
그런 미묘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에키드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아랑 교미한 거야?”
어머머, 얘가.
전체연령가에서 무슨 소릴 하는 거니.
“…….”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흘렀다.
“꾸륵.”
“우읍!”
질퍽이가 폴짝 튀어 올라 에키드나의 얼굴에 들러붙었다.
그러고는 ‘뒤는… 맡길게’라는 대사가 어울릴 법한 비장한 표정으로 강우를 돌아보았다.
‘질퍽이, 이 새끼.’
사랑한다, 인마.
“임자, 빨리!”
“예!”
강우는 침대에서 뛰쳐나오듯 내려와 바닥에 흩어진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실로 번개와 같은 속도.
음속에 가까운 그의 움직임에 작은 소닉붐이 방 안을 뒤흔들 정도였다.
“우으!”
에키드나는 얼굴에 달라붙은 질퍽이를 잡아 바닥에 팽개쳤다.
철퍽.
사명을 다한 질퍽이의 몸이 바닥에 부딪혀 넓게 퍼졌다.
“자, 그럼 가볼까. 어이구, 짐을 뭐 이렇게 많이 쌌어?”
옷을 입은 강우는 태연한 발걸음으로 에키드나에게 다가갔다.
에키드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가늘게 눈을 뜨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교미 정도는 누구나 할….”
“자자자. 더 이상 그 얘기는 그만하고.”
자꾸 그러면 ‘검열’ 당해버리고 만다고.
“XX가 뭐라고 그렇게….”
봐봐 이거. 벌써 당해 버리고 말았잖아.
강우는 에키드나의 어깨를 잡아 몸을 돌리며 방 밖으로 나갔다.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한설아가 그를 지나쳐갔다.
“아, 아침 식사 준비하러 갈게요, 강우 씨!”
그녀는 방에서 호다닥 튀어나가며 외쳤다.
강우는 에키드나의 팔을 잡고 질질 끌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그래. 뭘 그렇게 많이 준비했는지 보기라도 하자.”
“흐응! 이번에 바비큐 파티? 그것도 한다고 해서 잔뜩 준비했어!”
에키드나는 방금 전 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지 거대한 보따리를 들어 바닥에 내려놓으며 자랑을 시작했다.
강우의 입에서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 * *
“와… 형님 말씀대로 엄청난 경관이군요.”
김시훈은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하늘 높게 솟은 거악(巨嶽)이 자리 잡은 장소.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가득 피어난 꽃들이었다.
반딧불처럼 몽환적인 푸른빛을 띠는 꽃들은 거악의 정상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찬란한 광경.
아니, 사실 에르노어 대륙인들도 함부로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강우가 이번 피크닉의 장소로 뽑은 곳은 ‘칼데산’이라 불리는 화산이었다.
가파른 지형과 이곳에 서식하는 강력한 몬스터 때문에 대륙인들 사이에서는 금지(禁地)라 불리는 지역이지만 강우의 입장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때, 죽이지?”
강우는 씩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은은한 마력을 띤 채 푸른빛으로 빛나는 꽃들.
산의 정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선선하게 부는 바람.
무심코 낮잠을 자고 싶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까지.
자기가 골랐지만 정말 피크닉을 즐기기 기가 막힌 장소였다.
“어디서 이런 장소를 알아내신 겁니까?”
김시훈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전에 산탄젤로 쪽으로 날아가면서 봤거든.”
그때야 우리엘의 일이나 고통의 성좌에 대한 일 때문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지만 휴가가 결정되니 자연스럽게 이곳이 떠올랐다.
“하하, 정말 좋네요.”
김시훈이 밝은 웃음을 터트리며 기지개를 켰다.
강우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으음. 그런데 평범한 장소는 아닌 것 같군요.”
발록이 한쪽 무릎을 꿇어 푸른빛으로 빛나는 꽃을 만지며 말했다.
그는 어차피 파티원들만 모인 피크닉이니 편하게 악마의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좀 신기하긴 하지?”
강우는 발록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처럼 마력을 띤 꽃이 넓게 펼쳐진 장소는 에르노어 대륙 어디서도 찾기 힘든 장소였다.
아니, 애초에 마력을 띤 꽃이라는 것 자체를 여기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뭐, 어쨌든 별 상관없는 일이지.”
“그건 그렇죠.”
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강우에게 딱히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이곳에 무슨 비밀이 숨어있든 그의 힘으로 감당하지 못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어때 임자, 마음에 들어?”
“예. 너무 아름다워요.”
한설아는 칼데산의 장관에 압도된 듯 멍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이자 강우는 씩 웃었다.
‘깜짝 공개한 보람이 있네.’
이런 반응을 원해서 일부러 이번 피크닉 장소가 어디인지 얘기하지 않았다.
파티원들에게는 그냥 끝내주는 장소가 있으니 준비만 하라고 했을 뿐이다.
“…음?”
그때, 강우의 시선에 에키드나가 보였다.
아침부터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에키드나의 표정은 딱딱했다.
마치 이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뭐지?’
에키드나라면 사실 어디를 가건 자신과 함께라면 싱글벙글 웃음꽃을 피웠을 것이다.
그런데 저런 표정이라니.
‘내가 뭐 실수라도 했나?’
나름 자신이 있던 장소 픽이었는데 반응이 영 시원치 않자 당혹스러움이 앞섰다.
‘아니 여기가 어때서.’
솔직히 이만한 장관이 펼쳐진 장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에휴….”
그때, 귓가에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차연주였다.
“왜 그런지 모르겠냐?”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았다.
“뭔데.”
“쯧쯧, 이래서 만년 동정 새끼는 안 돼요.”
이년이?
“아니, 여기가 뭐 어때서.”
억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피크닉하기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피크닉이 방해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전날 이곳에 와서 몬스터도 한 번 싹 쓸어 놓기까지 했다.
“정말 실망이에요, 강우 씨.”
이제는 레이라까지 나서서 그를 질책했다.
강우는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전 강우 씨를 믿었는데…. 휴가라고 해서 기대가 많았는데….”
“아니.”
나한테 대체 왜 그래.
“대체 뭐가 문젠데.”
“저는 강우 씨가 휴가 얘기를 했을 때부터 파티원들 하나하나 이걸 준비했거든요.”
레이라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온 배낭을 주섬주섬 뒤졌다.
그녀가 꺼낸 것은….
“…수영복?”
“예!”
쿵.
레이라는 거칠게 발을 구르며 외쳤다.
“이 맴버로 피크닉이면 상식적으로 당연히 바다 아닌가요?!”
이글거리는 눈빛이 그를 향했다.
“자! 눈이 달려 있으면 보세요, 강우 씨!”
말이 좀 심하십니다, 레이라 씨.
“설아 씨! 리리스 씨! 이 두 분이 있는데 어떻게 산에 온다는 병신 같은 선택을 하실 수 있는 거죠?”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레이라 씨.
“어? 나는?”
차연주가 자신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넌 빠져 있어.
“아, 아아.”
강우는 등골을 타고 흐르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거대한 깨달음을 얻은 듯, 주먹을 쥐었다.
레이라의 손에 들린 수영복을 보았다.
사이즈를 보니 한설아의 것이다.
‘그리고.’
비키니다.
중요하니 두 번 말하겠다.
비키니다!
‘내가 이런 실책을 하다니.’
강우는 고개를 떨궜다.
반론할 말이 없었다.
푸른빛을 내는 신비로운 꽃?
따스하고 온화한 날씨?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머저리였어.’
조금만 생각해도 도달할 수 있는 간단한 진리에 왜 도달하지 못했단 말인가.
강우는 분하다는 듯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다.
“하아. 기대가 많았는데, 실망이에요 강우 씨.”
레이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뇨.”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예?”
레이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지금 다른 곳으로 옮기실 생각이신가요?”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방법도 있지만, 더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이곳에 호수를 만들 겁니다.”
“…예?”
벙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레이라를 지나치며, 강우는 땅에 손을 뻗었다.
찬란한 황금빛이 그의 몸에서 폭발했다.
-크그그그그긍!!!
대지가 갈라진다.
뒤틀리고, 짓이겨진다.
지진이 난 듯 두 쪽으로 쪼개지는 거악의 중심.
그곳에서.
-푸슈우우우우우!
화산의 안에 잠겨 있던 온천수가 강우의 힘에 의해 억지로 끌어 올라왔다.
유황 연기가 짙게 깔리며 엄청난 양의 온천수가 솟구쳤다.
‘이제 여기서.’
최상급에 도달한 신격의 힘을 발휘했다.
온천수에서 유황을 제거하고, 물의 온도를 시원할 정도로 낮췄다.
그 뒤에 갈라진 산을 다시 하나로 합치자.
“그렇지.”
완벽한 호수가 만들어졌다.
물론 그 안에 생물은 하나도 살지 않는 거대한 물웅덩이였지만, 무슨 상관이랴.
“어떻습니까, 레이라 씨?”
강우는 씩 웃으며 레이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레이라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벙진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발걸음을 옮겨 강우에게 다가왔다.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짝!
강우와 레이라의 손뼉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차연주는 그런 강우의 모습과 난데없이 산 정상에 생긴 거대한 호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잊고 있던, 잊으려고 노력했던 사실 중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서러운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왜 씨발… 저런 병신새끼한테….”
한동안 차연주의 흐느낌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