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1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20화
수라(修羅)의 마음을 지니고 (1)
“어… 음.”
강우는 뚝뚝 눈물을 흘리며 마치 모든 것이 끝났다는 듯이 울고 있는 엘룬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김시훈의 앞길에 검은 어둠이 드리워진 이유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씨바 내가 그 어둠이니까요.’
그와 김시훈의 앞길에 어둠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 당연했다.
“어둠, 이라뇨?”
김시훈이 딱딱히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엘룬이 젖은 눈가를 손으로 닦으며 답했다.
[두 분이 걸어가야 하는 길에는 끝없는 어둠이… 드리워져 있어요.]“…위험하다는 말씀입니까?”
[그 정도가 아니에요!]엘룬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미래는… 저는 본 적조차 없어요. 종말(終末)을 예언했을 때보다 더 심하다고요!]“…….”
[구원자님들이 앞으로 얼마나 끔찍한 절망을 헤쳐나가야 할지 상상하면… 저는….]엘룬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가녀린 어깨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아마 단순히 김시훈과 강우의 미래를 걱정해서 이토록 슬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구원자의 숙명, 종말의 위기를 막아야 하는 그 중대한 숙명이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는 사실에 절망하는 것이리라.
[이대로라면….]세계는 멸망할 것이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유일한 희망이라 할 수 있는 구원자는,
결국 끝없는 어둠에 집어 삼켜질 테니까.
엘룬은 아득한 절망에 몸을 떨었다.
세계수가 썩어버렸을 때보다 더욱 큰 충격이었다.
사실상 이 세계에 미래는 없다는 것을 고지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
김시훈은 굳게 주먹을 쥐었다.
입술을 깨문 그의 표정은 어딘가 사납게 느껴졌다.
“성좌들을 죽여도, 그렇다는 겁니까.”
씹어뱉듯 말했다.
지난 전쟁으로 악의 성좌들을 죽이며 그래도 어느 정도는 드리워진 어둠이 걷혔으리라 생각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종말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바뀌지 않았다.
변하지 않았다.
아직 그와 강우의 앞길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
자신과 형의 앞길에 많은 위험과 어둠이 도사리고 있으리란 것은 이미 각오해둔 상태였다.
각오했음에도, 엘룬의 입을 통해 절망적인 미래에 대해 들으니 가슴에 서늘한 한기가 흘렀다.
기억이 떠오른다.
사탄의 손에 죽었던 알렉과, 레이날드.
라키엘의 손에 타락한 루드비히까지.
사악한 어둠에 집어 삼켜졌던 영웅들을 마음에 새긴다.
‘어쩌면 언젠가….’
떨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엘룬을 바라보고 있는 형의 모습이 보였다.
‘형도.’
부서져라 주먹을 쥐었다.
끔찍한 악몽을 지워내듯 고개를 저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삽시간에 방안을 짓눌렀다.
[흐윽…. 흑.]‘아니.’
강우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이거 뭐 어째야 하는 거야.’
미래 예지에서 보인 그 어둠이 사실 접니다,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일단 이 초상집 같은 분위기 좀 어떻게 해야겠는데.’
마치 의사에게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들 같다고 해야 할까.
김시훈은 제쳐두고 레이라, 차연주 등 동료들의 표정도 몹시 어두웠다.
“아, 아으. 아, 안 돼.”
한설아의 경우는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잘못 건드리며 터질 것처럼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세계수를 부활시키기는커녕 그 전에 무슨 사단이 날 것 같았다.
아니, 다른 것보다 그의 정체가 들킬 위험이 있었다.
“후우.”
강우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몸을 일으켰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엘룬을 향해 다가갔다.
‘정체를 밝힐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건….’
꿀꺽.
마른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가늘게 어깨가 떨렸다.
머릿속에 떠올린 방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 속에 무거운 돌덩어리가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통하리라는 확신은 있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엘룬의 모습이라면, 이 방법에 분명 넘어오리라.
하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강우는 입술을 짓씹었다.
지금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수라(修羅)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각오를 다지고, 발걸음을 옮겼다.
“엘룬 님.”
[…예?]눈물을 흘리던 엘룬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강우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 강우 님?]엘룬이 당황한 표정으로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강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창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을 열자 서늘한 밤공기가 흘러나왔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별 한 점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하늘이 펼쳐졌다.
당연한 일이다.
에르노어 대륙에는 마석을 이용해서 전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 마도구가 이미 넓게 보급되어 있었다.
특히 이곳은 아르난 제국의 수도였다.
서울의 밤하늘이 어둡듯, 집집마다 불이 밝혀진 아르난 제국의 수도 또한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강우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엘룬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밤하늘이… 어둡네요.”
[아, 예….]엘룬은 강우가 뭘 하려는 지 알 수 없다는 듯,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강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마치 엘룬 님이 예언한 제 미래처럼요.”
[…….]엘룬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강우와 시선을 맞췄다.
강우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우우웅.
찬란한 황금빛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강우, 님…?]강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찬란한 광휘(光輝)가 하늘로 쏘아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을,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을,
눈부신 빛이 밝힌다.
[이건….]“자, 어떻습니까?”
강우는 활짝 웃으며 찬란한 빛이 밝게 타오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빛이 보이십니까?”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엘룬은 가볍게 입을 벌린 채 멍한 시선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하늘에서 오롯하게 타오르는 빛을 눈에 담았다.
아름답다고,
느꼈다.
[…….]무심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방금 전 어둠만이 가득한 미래를 예지한 이후, 눈물을 쏟으며 절망에 빠졌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째서인지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하하.”
강우는 밝게 웃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 엘룬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가, 강우 님.]엘룬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뺨이 희미하게 붉어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엘룬 님.”
강우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나니까요.”
[…….]엘룬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시한부 선고가 떨어진, 필연에 가까운 죽음이 확정된 영웅은 그 아득한 운명 앞에서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런데 자신은 어떤가.
구원자가 죽고 세계가 종말을 맞이할 거라는 절망에 휩싸여 꼴사납게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세계수를 수호하고, 구원자를 바른길로 인도해야 하는 안내자가.’
바른길로 인도하기는커녕, 혼자 좌절에 빠져 희망을 저버리려고 했다.
[…죄송합니다, 구원자시여.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네요.]엘룬은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지금은 어두운 미래에 절망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눈앞의 위기를 넘어서는 것이 중요했다.
[그럼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여러분을 인도….]“아, 잠시만요.”
강우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제지했다.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되겠습니까?”
[예? 무슨 일이라도….]“별일 아닙니다. 잠시… 각오를 다지고 싶어서요.”
강우는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그런 그의 말에, 엘룬은 짧은 탄성을 흘렸다.
강우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하셔도, 강우 님도 두려우셨던 거야.’
그런 그의 마음도 모르고 자기 할 말만 하려고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예, 알겠습니다.]엘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갔다.
김시훈이 그의 뒤를 따라오려 했지만, 손을 저어 그를 막았다.
-탁.
“…….”
문을 닫고 나온 강우는 발을 박차고 복도를 달렸다.
자신의 방으로 뛰어들 듯 들어간 그는, 문을 잠갔다.
“으, 어.”
고통을 호소하듯, 온몸을 거칠게 비튼다.
“ㄴㅁ;ᅟᅵᆼ하ᅟᅥᆷㄴ이ㅏ험닣.”
뜻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괴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씨발, 씨발, 씨바아아아아알!!!”
강우의 포효가 방안을 울렸다.
-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나니까요.
“우웁!”
자신이 내뱉은 말이 머릿속에 재생됐다.
미칠 듯한 역겨움에 저녁으로 먹은 김치찌개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강우는 자리에 주저앉아,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손가락을 비틀었다.
“아….”
공허한 눈빛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야동을 보다 모니터에 비친 자신을 얼굴을 본 사람처럼,
끝없는 자괴감과 자책감에 시달리는 눈빛이었다.
“죽고 싶다.”
그냥.
다 필요 없으니까.
“…죽고 싶어.”
어째서인지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각오했지만, 역시 이 고통은 익숙해지기 힘들다.
“어흐윽.”
영웅이 되는 길은, 지나치게 어렵다.
아득하게까지 느껴졌다.
자괴감에 짓눌린 흐느낌은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
* * *
“후우, 그럼.”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온 강우는 다시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는 바로 출발하는 겁니까?”
그의 물음에 엘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되도록 빨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세계수가 썩어들어 가고 있는 지금, 한시라도 빨리 세계수의 뿌리에 박힌 검은 가시를 제거해야 했다.
강우는 파티원들을 돌아보았다.
“바로 가시죠, 형님.”
“흐으, 갑자기 이게 뭔 일이야.”
“흐응! 나는 강우가 간다면 어디든 따라갈 거야!”
파티원들은 갑작스러운 출정에도 개의치 않다는 듯 각자 무기를 꺼내들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방안에 내려앉았다.
강우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출발하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엘룬이 파티원들을 돌아보며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럼, 바로 세계수로 향하는 문을 열겠습니다.]“신격이 불안정하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십니까?”
[구원자님들도 목숨을 걸고 계신걸요. 세계수를 수호하는 사명을 지닌 제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엘룬은 단호히 말하며 양팔을 벌렸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거대한 녹색 빛이 허공에 녹아들었다.
[읏….]엘룬의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신성을 조종했다.
그리고.
-쩌적.
[…어?]유리에 금이 가듯, 허공에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 사이로 숨 막힐 정도로 거대한 검은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쿠구구구궁!!
“꺄아악!”
“뭐, 뭐야 이건?!”
황성 전체가 뒤흔들렸다.
강우는 멍하니 서 있는 엘룬을 데리고 다급히 발을 박찼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 저도 모르겠….]엘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쩌저저저저적!!
방 안에 만들어진 균열이 활짝 열린 창가를 넘어 밤하늘에 이어졌다.
수 킬로에 달하는 거대한 균열이 수도의 하늘을 덮었다.
그리고.
-쿠구구구궁!!
벌어진 균열의 틈에서 검게 썩은 나무뿌리가 뻗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