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6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45화
넥타르(Nectar) (1)
인류의 종말을 두 눈으로 목도한 지 일주일.
강우는 크나큰 심적 충격을 받고 방구석에 처박혀 한설아의 품속에 안긴 채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간신히 잊어가고 있었던 지옥에서의 트라우마가 두 배로 증폭되어 그를 덮친 것이다.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덜덜 몸을 떨며 방구석에 틀어박히게 된 강우. 물론 한설아는 그런 강우의 모습을 반기며 싱글벙글 그를 달래주었다.
그렇게 끔찍한 트라우마도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을 무렵.
“아이참, 마왕님. 죄송하다니까요.”
리리스가 그를 찾아왔다.
물론, 쿠로사키 유리에의 몸(이제는 리리스의 것이 되었지만)으로.
“…….”
가늘게 뜬 눈으로 그녀를 째려보았다.
리리스는 강우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윙크했다.
“다시는 마왕님 앞에서 촉수를 보여드리지 않을게요. 네? 유리에 씨한테도 얘기해뒀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진짜지?”
“그럼요. 마왕님이 싫어하는 일을 제가 할 리가 없잖아요.”
“이제까지 존나 했잖아.”
“아잉.”
“으디서 귀여운 척을.”
눈살을 찌푸리며 리리스의 이마에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하아. 알았어. 앞으로는 진짜 그러지 마라?”
언제까지고 이렇게 방구석에 처박힌 채 살 수는 없는 노릇.
잊고 있었던 트라우마가 한 번에 밀려들어 온 탓에 자신도 꽤나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앗. 벌써 언니를 용서해 주시는 건가요?”
한설아가 강우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하며 아쉽다는 듯 물었다.
이내 뚱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조금 더 언니를 혼내주셔도 괜찮은데….”
“어머. 언니한테 무슨 말이니?”
리리스가 가늘게 눈을 뜨며 한설아의 몸을 더듬었다.
“꺄악! 이, 이상한 데 만지지 마세요~!”
“지난 일주일 동안 마왕님을 독점했으면 이젠 사랑하는 언니에게 양보해야 하지 않겠니?”
“읏….”
“자자, 어서 비키렴. 아니면 저번처럼 또 마왕님을 납치해서 숨기게?”
“그, 그 얘긴 이제 안 꺼내기로 했잖아요!”
한설아가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쳤다.
리리스는 호호 웃으며 한설아가 껴안고 있던 강우를 잡아 끌어냈다.
한설아는 아쉽다는 듯 강우를 바라보았지만, 리리스의 말마따나 지난 일주일 동안 강우를 독점한 참이었다.
더 이상 고집을 부렸다가는 전과 같은 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그나저나 결국 발록이랑 유리에는 어떻게 됐어?”
“뭐, 그때 보시지 않았나요? 요즘 아주 둘이 딱 달라붙어 다니고 있어요.”
리리스는 한설아에게 받아든 강우를 무릎 위에 올린 채 뒤에서 끌어안으며 답했다.
“…뭐 이렇게 번갯불에 콩 튀겨먹듯 애인이 생기냐.”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발록에게 여자라니.
평소 뇌까지 근육으로 차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발록의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호호. 제가 만든 육체가 워낙 예뻐야죠.”
“…….”
다시금 그때의 마경(魔境)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급속도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차.
리리스는 입을 앙, 벌려 강우의 귀를 가볍게 깨물었다.
“꺼흑!”
“이제 그때 일은 잊어주세요.”
“끄응.”
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나저나 발록 놈한테도 짝이 생겼는데 축하 파티 정도는 해줘야겠지?”
“축하 파티요?”
“엉. 이번 기회에 유리에를 다른 애들한테 소개도 하고 말야.”
“으음. 굳이 그 근육 돼지를 위해 그런 것까지 해줄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 발록 애껴욧.”
이리저리 트롤짓을 많이 하기는 해도, 가장 오랜 기간 그에게 충성을 바쳐온 부하였다.
거진 천년 만에 짝을 만났는데 축하 파티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
“호호호. 마왕님도 참.”
리리스는 꺄르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사람을 한 번 모아볼게요.”
“아, 그럼 음식은 제가 준비할게요!”
한설아가 의욕적으로 손을 들었다.
“임자 음식이면 믿을 만하지.”
“후훗. 강우 씨가 좋아하는 거로 잔뜩 만들어 드릴게요.”
“내 축하 파티 아닌데.”
“아… 하지만 어차피 발록 씨는 음식 맛을 거의 못 느끼지 않으신가요?”
“그건 그렇지. 걔는 술만 좋아하더라고.”
맥주의 경우 맛보다는 향이나 톡 쏘는 감각이 더 크기 때문에 발록이 좋아하는 술이었다.
“맥주를 통으로 구해야 할 것 같은데….”
발록의 덩치를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마시는 500cc잔으로는 어림도 없다.
생맥주 통 하나를 원샷 때려버리는 놈이니 준비해야 할 술의 양이 상당했다.
‘그렇다면.’
강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카톡으로 동영상 파일 하나를 보냈다.
“음? 방금 무슨 동영상을 보내신 거예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설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화면을 훔쳐보았다.
“설아 너도 한 번 볼래?”
강우는 씩 웃으며 동영상을 켰다.
어두운 새벽 거리.
가로등에 비친 붉은 머리칼의 여인.
-뭐야 이건…?
-내, 내꺼 아냐!!
-네 주머니에서 떨어졌는데?
-아, 아니 그, 그그그러니까!
아아.
그녀와 만든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 되는 아름다운 기억.
“기억할게… 언제까지나.”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녀를 기억하며, 그녀를 추억하며.
소중한 앨범의 한 페이지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얼마 전에 고친 현관문이 다시 폭발하듯 튕겨 나갔다.
“오강우 이 씹━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
붉은 머리칼이 휘날린다.
순식간에 방문을 열고 들어온 차연주가 침대에 걸터앉은 강우의 턱주가리를 시원스럽게 올려쳤다.
뻐억!
“떠흐억!”
천장이 닿을 때까지 떠오른 강우의 몸이 시원스럽게 바닥에 처박혔다.
차연주는 씨익, 씨익, 거친 숨을 내뱉으며 쓰러진 강우의 몸을 자근자근 밟았다.
“이! 미친! 새끼가! 오랜만에 연락한다는 게! 앙?!”
“여, 연주야!”
“왜!!”
붉게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음….”
방금 전 동영상을 본 한설아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강우 씨는….”
변명할 말을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건 솔직히 맞아도 싸다.
“…죄송해요, 강우 씨.”
한설아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후욱, 후욱. 그래서, 뭔데 갑자기 그딴 개같은 동영상을 보낸 거야?”
한동안 신명 나게 강우를 두들겨 패던 차연주가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물었다.
“오랜만에 우리 연주 얼굴 좀 보고 싶어서.”
얻어맞은 곳을 쓱쓱 문지르고 있던 강우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차연주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뭐, 뭐뭐무무머뭐?!”
머리끝까지 붉게 달아오른 차연주는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한 채 뒷걸음질 쳤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홱. 고개를 돌리며 꼼지락꼼지락 몸을 꼬았다.
“하~응! 우리 동생 귀여워서 어떻게!”
리리스가 눈을 번쩍이며 차연주에게 점프했다.
“악! 저, 저리 안 떨어져?!”
차연주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몸을 퍼덕였다.
“아! 놓으라고, 리리스!”
“어머머, 언니라고 불러야지?”
“이익!”
“자자. 어서 언니라고 불러 보렴? 응? 우리 이제 한 가족이잖니?”
“…….”
으득.
거칠게 입술을 깨물었다.
“저, 저리 비켜. 어, 어… 언니.”
“꺄아! 내 동생들은 하나 같이 너어~무 귀엽단 말이야!”
리리스는 비명을 지르며 차연주의 뺨에 연달아 키스를 퍼부었다.
차연주가 다시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는 것이 보였다.
“거기까지 해요, 리리스 언니.”
한설아가 난처한 표정으로 차연주에게 달라붙어 키스를 퍼붓고 있는 리리스를 떼어냈다.
“…….”
강우는 한 걸음 떨어져 세 여인들을 바라봤다.
‘그 일 이후에 이렇게 셋이 모인 건 처음인가?’
리리스가 하도 바쁘고, 차연주가 다른 층에 사는 탓에 저 셋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없었다.
‘뭔가 실감이 안가네.’
강우는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세 여인을 바라보았다.
하나하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들.
콩깍지가 씐 탓에 어느 정도 보정이 들어가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그녀들은 굉장히 아름다운 편에 속했다.
“크흑.”
울컥. 어깨가 떨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옥에서 개처럼 구른 보람이 있었어.’
저런 여인들과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동시에 연인이 되다니.
끔찍했던 과거가 희미해질 정도로 뜨거운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나저나 진짜 보고 싶어서 부른 거 맞아?”
간신히 리리스의 품에서 빠져나온 차연주가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엉. 뭐, 다른 이유도 있지만.”
“끄응. 역시. 뭔데?”
“술을 좀 준비해 줬으면 좋겠어.”
“술?”
“엉. 이번에 발록한테 애인이 생겼거든. 그 축하 파티를 좀 하려고.”
“헤에. 발록한테 여친… 뭐? 지, 지금 뭐라고 했어 씨발? 그 덩어리한테 여친이 생겼다고?!”
차연주는 입을 쩍 벌린 채 강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누, 누군데?!”
“쿠로사키 유리에라고.”
“…엥? 그거 그 리리스 몸주인 아냐?”
“엉. 좀 일이 있었어.”
강우는 쿠로사키 유리에에 대한 일을 짧게 설명했다.
“와… 리얼? 발록이 한눈에 반해서 달라붙었다고?”
“호호. 그때 그 근육 돼지의 표정을 우리 동생한테도 보여줬어야 했는데.”
“아! 왜 촬영 안 했어 언니? 존나 보고 싶은데!”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이씨, 나 놀릴 때는 쥐새끼처럼 촬영하더만 넌 왜 이번에는 가만있던 거냐?”
“어… 음.”
당연하지만 그녀에게 촉수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으! 개궁금하네 진짜! 아, 발자하크는 영상 가지고 있지 않을까? 걔 연구실이었다며?”
“보지 마.”
“엥? 왜?? 재밌을 것 같은데.”
“그냥 닥치고 보지 말라고.”
다시 한 번 떠오른 악몽의 풍경에 강우는 두 눈을 손으로 덮었다.
“후우. 여튼 그래서 축하 파티를 할 생각인데. 발록 놈이 워낙 술을 많이 처마시니까 대량으로 맥주를 구해줄 사람을 찾고 있던 거야.”
“…그게 왜 난데.”
“너 술 존나 많이 마시잖아.”
“어쩔.”
차연주는 팔짱을 끼며 흥, 고개를 돌렸다.
“뭐… 구해다 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거봐라.”
“아가리 씨발.”
“죄송.”
“크흠. 뭐 여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어차피 마셔도 안 취하지 않아?”
“그건 그렇지.”
강우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인의 신체를 가지게 되어 여러모로 장점이 많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알콜로 인해 취하는 감각까지 없어졌다는 것이다.
“마셔도 그냥 분위기에 취해 마시는 거니까….”
사실상 무알콜 맥주를 마시는 것과 같다.
차연주 또한 공감한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허공에 허리 흔드는 격이지.”
“무슨 비유가 씨발.”
달리지도 않은 게.
“앙? 지금 무슨 생각했냐?”
“암 생각도 안 했는디요.”
“헹. 뭐 사실 너나 무알콜 맥주나 거기서 거기 아냐?”
“…뭔 소리임?”
씨익.
차연주가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사실 암것도 없는데 그냥 대강 있다는 느낌만으로 하… 꺄아아악!”
바람처럼 달려든 강우가 차연주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너어어는!! 너어어어어는 진짜!!!”
“푸하하핳핳핳!!”
“그만 처 웃어 이 나쁜년아!”
“히히히! 아까의 복수다 이 짜식아!”
차연주와 강우가 투닥거리며 엉켰다.
“…느낌 없는 거 아닌데. 귀엽기만 한데.”
둘의 대화를 듣던 한설아가 불만스럽다는 듯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하아, 하아.”
“으… 진짜 근데 아쉽긴 하네. 술 마시고 취한 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
차연주가 한스럽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
“어머. 전에 레이라 씨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리리스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신들의 음료, 넥타르를 마시면 신격을 지닌 존재도 취하는 게 가능하다고 해요.”
““…진짜?!””
차연주와 강우의 눈이 동시에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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