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8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66화
몽마(夢魔)의 우리 (3)
“빌어처먹을.”
절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없었던 길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있었던 길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여긴 대체 어디야.”
“…저도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발록은 주변을 살피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제길.’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게이트의 내부 자체의 구조가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움직이는 미로였다고?’
게이트의 내부 구조가 실시간으로 바뀐다는 건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흐음. 어쩔 수 없군요.”
발록이 거칠게 주먹을 쥐었다.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거대한 마기가 그의 주먹에 응축됐다.
“통로 전체를 날려버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잠깐.”
주먹을 내지르려는 발록을 막았다.
확실히 통로 전체를 부숴버리면 실시간으로 움직이건 말건 길을 찾을 수야 있겠지만.
“놈들이 도망칠 수 있어.”
플레이어를 삐쩍 마른 미라로 만들어버린 괴물이 도망쳐서야 여기에 온 의미가 없다.
“끄응.”
“일단 조금만 더 걸어보자고. 정 안되면 그냥 통로째 박살 내 버리고.”
“예, 알겠습니다.”
발록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우의 뒤를 따라 복잡하게 얽힌 통로 내부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이런 씨발!
-니새끼들 때문이잖아!
-개소리!
통로 저편에서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록.”
“예.”
강우와 발록은 망설임 없이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개자식들이!”
“한번 해보자는 거냐?!”
“하! 얼마든지!”
이제까지 지나쳐왔던 좁은 통로가 아닌 넓이가 100미터 정도 되는 큰 공동에 두 진영으로 나눠진 사람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각각 숫자는 20여 명 정도로 비슷했다.
그들은 무기를 꺼내든 채 잔뜩 분노한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애초에 니 새끼들이 유물에 욕심만 내지 않았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어!”
“헛소리하지 마라! 유물을 먼저 찾은 건 우리야!”
“먼저 퍼즐을 푼 건 우리지!”
뭔지 모르겠지만 서로 존나게 싸워대고 있다.
“헬리아의 딜도 새끼들이!”
“뭐라고? 이슈왈다의 전동 오나홀들이 어디서 씨발!”
딜량 무엇.
‘지랄 났네, 지랄 났어.’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걸쭉한 욕설을 내뱉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이슈왈다라고?’
분명 들어본 기억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때 그 김태호인가 뭔가 하는 놈이잖아.’
자신을 이슈왈다의 7성 사도라 밝혔던 청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진리의 사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의 번개를 내뿜으며 금빛 원숭이들을 상대했던 또 다른 ‘지구’의 존재.
‘쌉트롤러 새끼.’
김태호가 조심성 없이 움직이다가 라잔의 어그로를 끌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뒷골이 당겼다.
‘리리스가 말한 신원불명의 시체들이란 건 이놈들이었나?’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저들도 지구에 사는 지구인이라 하지만, 엄연히 강우가 살고 있는 지구와는 다른 ‘외계(外界)’의 존재들이었으니까.
지문이나 DNA 정보로 조회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하! 이거 말로는 해결이 안 되겠군!”
“처음부터 말로 할 생각도 없었던 놈들이! 이슈왈다의 사도 새끼들이 추악하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뭐라고?”
“네놈들이 탑 저층의 주민들을 협박해서 몰래 돈을 받아먹고 있다는 걸 누가 모를 것 같냐?”
“하! 그러는 너희도 애초에 사람 좀 썰어서 이 유물의 정보를 얻은 것 아닌가?”
“닥쳐! 그건 정당한 거래였다!”
“지랄. 다섯 명을 담근 게 어디 정당한 거래냐?”
“그, 그 정보는 어디서….”
“빌어먹을!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여기 갇힌 이상 살아서 나가기는 글렀다고!”
양 진영의 감정이 격해지며 거친 욕설이 난무했다.
‘유물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두 진영 다 만만치 않은 개새끼들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뭐, 이슈왈다는 그 트롤러 새끼가 속해 있던 곳이라는 점에서 이미 대충 예상하고 있었지만.
‘뭐, 그건 내가 상관할 바 아니고.’
저들이 주민들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건, 사람을 죽여서 정보를 얻어내건 그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곳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사실.
애초에 이곳이 어디인지 몰랐다면 여기 갇힌 이상 살아서 나가기는 글렀다는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아아.”
강우는 목을 가다듬으며 앞으로 나섰다.
“싸움을 멈추세요, 여러분.”
최대한 공손하게, 예의 바른 태도로 말했다.
“앙?”
“뭐야 저 꼬맹이 새끼는?”
양 진영의 시선이 강우에게 향했다.
강우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도 이곳에 갇힌 사람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서로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진심을 담아,
호소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할 때입니다!”
“…….”
“…….”
강우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썩어갔다.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 그를 노려보더니,
“빌어먹을 이슈왈다의 개새끼들!”
“하! 이거 더 이상 말이 안 통하겠군!”
다시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강우는 다급히 외쳤다.
“여러분! 폭력은 아무것도 낳지 않습니다!”
그렇다.
폭력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서로 힘을 모아,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덤벼 이 새끼들아!”
“헬리아여! 제게 태양의 힘을!”
화르르륵!
거친 불꽃이 타오른다.
“이슈왈다의 심판을 받아라!”
파지지직!
그에 호응하듯 푸른 뇌전이 사납게 튀어올랐다.
“여러분! 제발 싸움을 멈춰주세요!!”
“크윽! 죽엇!!”
“이 개자식들!”
쿠웅! 쿵!
무기를 꺼내든 사람들이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사납게 뒤엉켰다.
맑은 쇳소리와 함께 불과 전기가 휘몰아쳤다.
“여러분! 폭력을 멈….”
“뒤져 이 씨발새끼들!”
“크윽! 이 새끼가!”
“여러….”
아니.
이 씹새끼들이?
“그만 싸우라고오오오오오!!!!”
간신히 이어져 오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며 파괴적인 충동이 끓어올랐다.
-뻐억! 우드득!
순식간에 달려들어 맨 앞에서 싸우고 있는 두 놈의 무릎에 로우킥을 날렸다.
다리가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이며 끔찍한 비명과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어?”
“뭐, 뭐야?”
한창 싸움을 하던 사람들은 두 눈을 부릅떴다.
서로 무기를 휘두르던 것을 멈추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으아아아아아!”
강우는 폭력적인 함성을 터트리며 서로 뒤엉켜 싸움을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왜! 왜! 씨발 내 말을 안 듣는 건데!!!”
너무 화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다!
“커헉! 쿨럭!!!”
“아아아악! 내, 내 파아아아알!!”
“내가! 씨발! 싸우지 말라고! 했잖아!!”
퍼걱! 우드득! 빠악!
양 떼 속에 들어간 늑대처럼 사납게 날뛰며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거칠게 두들겨 팼다!
뼈가 아작나는 소리와 처참한 비명 소리가 공동에 울려 퍼졌다.
“크학! 죄, 죄송….”
“어? 뭐라고?”
“죄송합… 쿨럭!”
“왜 제대로 대답을 안 해!!!”
우드득!
갈비뼈가 작살나는 소리와 함께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끄아아아아악!!”
고통에 찬 비틀린 괴성이 울려 퍼졌다.
“쿨럭! 쿨럭! 카흑….”
“자! 모두 복명복창을 실시한다! 폭력은!”
“아, 아파…. 주, 죽을 것….”
“폭력으으으으으은!!!”
“아아아아악! 죄, 죄송합니다! 그, 그만 때리세요!! 포, 폭력으으으으은!!”
“나쁘다!”
“나, 나쁘….”
“목소리가 작잖아 이 새끼야아아아아!!”
“커헉!! 컥! 나, 나쁘다아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폭력은! 나쁘다!!”
“폭력으으으으은!! 나쁘다아아아아아아!!”
“그걸 아는 새끼가 왜 계속 싸워어어어어!!!!!!!”
뿌드득. 쿠직.
“아.”
뒤졌네 이거.
“후우.”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실수로 하나가 죽긴 했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물어볼 사람은 많으니까.’
강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쓰러진 채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눈에는 선명한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역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폭력만큼 확실하게 공포를 각인시키기 편한 건 없다.
엔간한 미친놈으로 보였을 테니 외모가 어려 보인다고 해서 얕잡아 보일 일도 없을 것이다.
“심문이라면 제가 하겠습니다, 마왕님”
“아니, 괜찮아.”
다가오는 발록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심문은 역시 공포를 각인시킨 대상이 직접 하는 것이 좋다.
“자자, 여러분. 집중!”
짝짝짝!
손뼉을 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흠칫!
“허억!”
“사, 살려주세요!”
아무것도 아닌 박수소리에도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머리를 바닥에 박은 채 덜덜덜 몸을 떨었다.
강우는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다.
“이곳이 어딘지 알고 계십니까?”
대충 아무 사람 하나를 골라잡아 손가락 위에 발을 가볍게 올리며 물었다.
“히익! 아, 압니다!! 알고 있습니다아아악!!”
손가락을 짓누르는 압박을 느낀 사내가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긴 어디죠?”
“여, 여긴 악마가 만들어 낸 고, 공간입니다!”
“…악마?”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악마가 만들어 낸 공간이라니?
‘악마가… 있다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분명 구천지옥의 악마들은 바알과의 마지막 전쟁에서 대부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설사 살아남은 악마가 있다고 해도 왜 뜬금없이 다른 지구에서 요상한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잡아 죽인단 말인가?
“저, 저흰 아무 죄 없습니다! 유물을 찾기 위해 던전에 들어온 것뿐이라고요! 그런데 저 이슈왈다의 개들이 함정을 발동시켜서…!”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떨며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드득!
강우는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밟고 있던 발에 힘을 더했다.
손가락이 기묘한 각도로 꺾이며 부러졌다.
“아아아아아악!!”
“누가 뭘 어째서 들어왔는지 좆도 관심 없으니까 묻는 말에만 답해.”
“꺼흐으윽. 예, 아, 알겠습니다…!”
사내는 부러진 손가락을 부여잡으며 뚝뚝 눈물을 흘렸다.
“허. 이게 악마의 짓이었다니… 믿기 어렵군요.”
“그러게. 이런 독립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악마가 있던가?”
“으음. 잘 생각이 안 나는군요.”
발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강우는 쓰러진 사내의 허리를 가볍게 툭툭 쳤다.
“어떤 악마가 만든 공간인지 아냐?”
“끄윽… 소, 손가락이….”
“아, 이 새끼 이제 묻는 것도 대답을 안 하네?”
“히익! 마, 말하겠습니다! 말하겠습니다아아!”
머리를 바닥에 처박은 채 절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강우는 가볍게 혀를 차며 사내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곳은… 몽마(夢魔)의 우리라 불리는 곳입니다.”
“…뭐?”
몽마(夢魔).
그 단어를 듣자마자, 등골을 타고 쫘악 소름이 끼쳤다.
“자, 잠깐. 몽마라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예상하고 싶지 않았던,
끔찍한,
공포(恐怖).
“예! 서, 서큐버스들이 남자의 정기를 빨아먹기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
강우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뭐라고 씨발!!!”
마음속 깊은 곳에부터 터져 나오는 절규!
“여기가 서큐버스의 둥지였다고…?”
덜덜덜.
굳건히 대지를 딛고 있던 그의 두 다리가 애처롭게 떨리기 시작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