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0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86화
이브 (1)
“넷… 그런 괴물이 넷이나 더 남았단 말씀이신가요?”
리리스는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어.”
한설아가 잘라준 사과를 집어먹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이상이라고요?”
“아카르트가 살바토르를 ‘다섯 번째 종’이라고 부르는 게 서열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권속이 된 순서를 말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아.”
“그런 의미에서 세 번째나 네 번째가 오히려 더 약할 수도 있고, 여섯 번째가 더 강할 수도 있는 거지.”
직접 그들을 만나지 않은 이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뭐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끝이 없으니… 일단 서열로 생각해서, 살바토르 윗급이 넷 남았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지.”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대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최소한 방심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대비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 대비한다고 해도 딱히 이쪽에서 뭘 할 순 없으니까.
“하아. 그나저나 빛을 타고 넘어온다니… 대체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리리스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우의 정보원 역할을 맡고 있는 그녀의 입장에서 아카르트 권속들이 지닌 능력은 지나치게 까다로웠다.
“이 정도로 제 능력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에요.”
“뭐가 한심해. 나도 빛을 타고 오는 건 관측할 방법이 없는데.”
“그래도 이번에 어느 정도 아카르트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어 다행이네요.”
“권속의 숫자를 안 것만으로 꽤 큰 소득이지.”
물론 숫자 외에 다른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놈들은 계속 이 세계를 노리고 기어들어 올 거야.”
권속 둘이 죽었다고 포기할 거란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구원… 이 목적이라 하셨나요?”
“엉.”
“진짜 영혼을 다른 세계에서 환생시키는 걸까요?”
“글쎄? 잘 모르겠지만… 아마 내 생각에는 진짜 환생시키는 게 맞을 것 같긴 해.”
놈들은 악마교처럼 악의(惡意)나 일신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순백의 광인(狂人).
투명할 정도로 순수하고, 올곧은 신념에 따라 그들은 움직인다.
만약 진짜 영혼을 다른 세계에 환생을 시킬 수 없는데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세계로 보내는 걸까요?”
“그건 모르지. 워낙 다양한 세계가 있으니까.”
이제까지 마주한 다른 세계만 하더라도 다섯이 넘었다.
“뭐, 어떤 세계로 보내건 중요하지 않지. 중요한 건 그 새끼들이 내 영역에 침범해 멋대로 날뛰고 있다는 거야.”
“후훗. 그렇죠. 싹 다 죽여 버려야 해요.”
리리스는 살기로 눈을 번들거리며 말했다.
인간의 문화와 상식에 꽤나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악마.
그들이 목적이 사람들의 구원이건 뭐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면 싱가포르 때 일은 뭐였을까요?”
“좀비 사태 때?”
“예. 그것도 결국 아카르트의 권속이 한 짓이잖아요.”
광명교의 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좀비 사태는 어딜 어떻게 봐도 구원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글쎄… 솔직히 같은 아카르트의 권속이 했다기엔 너무 연관성이 없는 사건이라.”
“위키 홀릭의 일까지 생각하면 더 그렇죠. 그건 여러 세계에서 무작정 납치해서 감옥 같은 곳에 가두는 거였잖아요.”
“그건 좀 예상가는 게 있어.”
사과를 모두 먹어치운 강우는 책상 아래 있는 미니 냉장고에서 콜라를 한 캔 꺼냈다.
“뭐 마실래?”
“전 맥콜로 주세요.”
“세상에.”
아직 미각이 뒤틀려 있구나.
“맥콜 없는데.”
“어머? 그럼 지코로 주세요. 예전에 마셔봤는데 맛있더라고요.”
“그거 단종됐어.”
“뭐, 뭐라고요?”
리리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맥콜에 지코라니.
악마의 미각은 난해하구나.
“일단 캔커피나 마셔.”
“후훗. 마왕님이 입으로 먹여주시면 안 될까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녀의 입술에 캔커피를 툭 가져다 댄 후 말을 이었다.
“어쨌든, 내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위키 홀릭은 ‘권속’의 후보를 찾고 있었다고 생각해.”
“권속의 후보요?”
“응. 거기에 있던 갇혀 있던 놈 중에 아카르트의 추종자로 변한 놈을 하나 봤거든.”
아마 진리의 사원이란 것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아니었을까.
“그럼 일단 위키 홀릭의 일과 뒤에 일어난 두 일은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지. 뭐… 솔직히 나도 좀비 사태를 일으켜 사람들을 학살한 게 구원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놈들은 나를 특정해서 노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지.”
두 사건 모두, 자신을 노리고 아카르트의 권속이 날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노린 것은 어디까지나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이었다.
“즉, 아카르트의 권속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최대한 많은 숫자의 인간들을 휘말리게 만드려 하고 있어.”
“그렇다면… 이번처럼 대중에게 퍼지는 이상 현상 위주로 조사를 하면 되겠네요?”
“부탁해.”
“후훗. 제게 맡겨주세요.”
캔커피를 비운 리리스는 강우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 몸을 돌렸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마왕님.”
“엉.”
“오늘도 시훈 씨 병문안을 가실 건가요?”
“아니. 어제 갔으니까 오늘은 내 할 일 좀 하려고.”
“호호. 시훈 씨가 외로워하겠네요.”
“제수씨가 있으니까 뭐 괜찮겠지.”
리리스가 문을 닫고 나갔다.
방에 홀로 남은 강우는 끄응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었다.
“그나저나.”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심연을 빠져나와 마해와 완전히 융합한 이후 처음으로 심연을 해방했다.
물론, 완전히 해방한 것은 아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수는 없으니까.’
어디까지나 살바토르와 다른 전도사들이 뿜어내는 아카르트의 빛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심연만을 해방했다.
과거 만마전이 있을 때로 치면 문 하나를 연 것 정도일까.
이제 더 이상 ‘문’으로 막혀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정확한 비교는 할 수 없었지만 얼추 비슷할 것이다.
“걱정했던 것보단 별 후유증은 없네.”
아니, 오히려 후유증은커녕 아카르트의 권속들과 싸우며 한 번 더 육체의 성장이 이뤄진 것 같았다.
손가락은 한층 굵어졌고, 몸에 자리 잡은 단단한 근육은 보기 좋게 부풀어 올랐다.
“이럴 거면 진작 사용할 걸 그랬나?”
솔직히 개문을 사용했을 때보다 리스크가 없는 것 같았다.
이성이 날아가지도, 심연에 잡아먹히지도 않았다.
‘아니, 아니지.’
잠시 생각을 이어가던 강우는 이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마해가 완전히 정착하지 않은 육체로 심연을 해방하는 것은 유리창도, 범퍼도, 문짝도 없는 자동차에 탄 채 액셀을 밟는 것과 같은 미친 짓이다.
이번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성장을 위해 몇 년간 심연 속에 갇힐 수도 있는 위험이 있는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심연을 해방했기 때문에 성장을 한 건지 살바토르와 싸웠기 때문에 성장한 건지 알 수 없으니까.’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카르트의 빛에는 마해를 무너트리는 힘이 있는 만큼 마해가 자극을 받기 쉬웠으니까.
그렇게 심연 해방에 대한 생각을 접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을 때,
-띠링.
[수호자님❀(*´︶`*)❀! 전달해 드릴 정보가 있습니다!]“응?”
눈앞에 푸른색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오랜만이다 너?”
꽤나 오랜만에 이브의 메시지를 받은 듯한 기분.
[그동안 티탄의 율법을 정비하고 있어 연락을 드리지 못했어요!]“정비를 했다면… 혹시 티탄의 율법을 복구할 방법을 찾은 거야?”
[아뇨. 망가진 기능 중에서도 쓸 수 있는 기능을 최대한 끌어올렸을 뿐입니다.]“쯧.”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한 번 망가진 티탄의 율법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아카르트가 눈을 까뒤집고 균형이니 뭐니 세계를 멸망시키려 할 리도 없었다.
“그나저나 전달 사항이 뭐야?”
“뭐?”
생각지 못한 소식에 강우는 놀란 표정으로 크게 눈을 떴다.
[아, 물론 접근할 수 있다 하나 일부 권한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미 망가진 율법이기에 큰 기능은 기대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흐음. 그래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뭔데?”
티탄의 율법=시스템이니 과연 어떤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을지 흥미가 돋았다.
[지금 단계에서는 레벨과 무관한 새로운 특성의 개화가 가능합니다!]“오?”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새로운 특성을 개화시킬 수 있다니?
상당히 탐이 나는 능력이었다.
“그 특성 개화라는 건 나한테도 쓸 수 있는 거지?”
[예! (❁´▽`❁)!] [하지만 특성의 종류나 등급에 관한 것은 랜덤하게 이뤄져요!]“오오오오.”
절로 흘러나오는 탄성을 내뱉었다.
랜덤이라고 해도 이미 최고 레벨에 도달한 그에게 새로운 특성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는 건 반길 만한 소식이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특성도 늘릴 수 있지 않은가.
‘연주나 시훈이의 특성을 늘려주면.’
성장의 벽에 가로막힌 그 둘에게 힘을 더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의 기능 모두 당장은 사용하시지는 못해요(。•́︿•̀。).]“그건 또 왜?”
[현재 망가진 티탄의 율법은 자체적으로 에너지 수급이 불가합니다. 플레이어 화와 특성을 개화하기 위해서는 ‘티탄의 힘’이 필요해요.]“…….”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티탄의 율법 자체를 티탄이 만든 것이니 그 힘이 필요하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무슨 수로 티탄의 힘을 구할 수 있는지였다.
“바울리를 이용하면?”
[바울리의 모든 육체와 영혼은 마해에 잡아먹힌 상태입니다. 따로 힘을 끌어내어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ŏ﹏ŏ)。]“젠장.”
존나 도움 안 되는 아버지 새끼.
“아니, 뭐야? 그럼 지금 결국 율법의 기능을 사용할 방법이 없는 거잖아?”
리모컨은 있는데 건전지가 없으면 뭐 하는가.
그냥 겉만 번지르르한 고물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수호자님의 프랑소와 같네요!]“뭐?”
[매일 같이 날밤을 새우며 하시면서 아직까지 2세 소식이 없다니….]“일부러 안 만드는 거야 이 새끼야.”
아직 정식으로 결혼도 안 했는데 뭔 아이인가.
나중에 결혼하고 천천히 만들어도 충분하다.
“씹새가?”
[~(˘▾˘~)(~˘▾˘)~]대체 저 빌어 처먹을 이모티콘 어디서 가져오는 거야.
[일단 다시 본론을 말씀드리면.]이모티콘이 사라지며 다시 글귀가 떠올랐다.
[아카르트의 권속을 처치하시면 그 힘으로 율법의 기능을 사용하실 수는 있어요.]“음? 그럼 살바토르를 죽인 건?”
[그때는 율법을 정비 중이라 따로 힘을 흡수하지 못했어요.]결국 지금 당장은 사용할 수 없다는 건 똑같았다.
‘아카르트의 권속이라.’
놈들을 뭐 추적해서 잡을 수도 없는 일이니, 사실상 티탄의 힘을 수급할 방법이 없다.
“에휴.”
강우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어, 잠깐?”
방 한쪽 구석에 모아 놓은 황금빛 천칭 모양의 목걸이들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