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5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34화
천년 전쟁 (7)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 발록이 대체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뭐?”
부릅뜬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발록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이 지옥의 왕이 되어, 바꾸던가.”
“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왕이 되어 바꾸라니.
“뭘 바꾸라고? 하프에 대한 차별을? 경멸과 멸시의 시선들을?”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씨바, 대단한 인권 운동가 납셨네! 아니, 여기선 마권(魔權)인가?”
하프들을 위해서 지옥의 왕이 되라고?
왕이 되어, 차별받고 억압받는 불쌍하고 가녀린 하프들을 해방하라고?
지랄도 그런 지랄이 없다.
“내가 그딴 헛짓거리를 왜 해야 하는데?”
카닐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프를 벌레 취급하는 악마들의 모습에 화가 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프들을 위해 지옥의 왕이 될 이유는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의무도 없다.
“하프를 위해 왕이 되란 의미가 아니다.”
“그러면?”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게 있다면.”
쿠웅!
발록은 거칠게 발을 구르며 몸을 일으켰다.
5미터에 달하는 붉은 거인이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숨이 턱 막혔다.
“이 지옥에서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왕’이 되는 것 외에 없다는 말이다.”
구천지옥에서 강력한 ‘힘’이란 것은 절대적인 가치의 척도이자, 진리였다.
만약 하프들이 성체 악마처럼 강했다면, 그들은 차별받지 않았을 것이다.
약하면 기어라.
패배했다면 죽어라.
약자의 권리는, 고통받는 것뿐이다.
“그게, 지옥에 존재하는 유일한 규칙이다.”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어떤가, 왕이 되겠는가?”
발록의 시선을 피했다.
모든 대공을 죽여 지구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은 지금도 변치 않았다.
하지만, 왕이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옥에서 말하는 힘이란 건 단순히 개인의 무력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무력과 권력, 정치력, 지휘력.
그 모든 것이 ‘힘’의 범주에 속했다.
권력 없는 무력은 힘만 센 머저리에 불과했고, 무력 없는 권력은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모래성에 불과했다.
‘그리고.’
대공을 죽일 수 있는 짱짱쎈 힘과 권능 있다고 해서 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왕’이라는 것은 모든 힘의 정점에 올라선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칭호다.
혼자선 할 수도 없고. 될 수도 없다.
부하를 받아들이고 세력을 키우며 권세를 늘려야 비로소 왕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었다.
“안 해.”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강우는 가차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악마를 부하를 받아들일 생각도 세력을 키울 생각도 없다.
누군가를 부하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이 그 충성에 대해 책임과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대가 없는 충성?
조건 없는 복종?
‘가능은 하겠지.’
죽도록 두들겨 패고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죽여버린다고 협박을 하면 잠깐은 따르게 만들 수 있는 있을 것이다.
‘얼마 안 가 망하겠지만.’
공포에 의한 정치가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지구의 역사만 돌아봐도 알 수 있다.
왕이 왕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를 진심으로 ‘섬기는’ 존재가 필요하다.
섬기는 이 하나 없는 건 애초에 왕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그렇기에,
“왕이 될 생각 따윈 없어.”
“흐흐. 생각이 없다고?”
발록은 낮게 웃었다.
“아니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각오가 없는 거겠지.”
움찔.
강우의 어깨가 떨렸다.
“인간의 몸으로는 악마의 충성을 얻어낼 자신이 없나? 아니면 대공조차 넘볼 수 없는 힘을 쌓을 자신이 없나? 그것도 아니라면━”
차갑게 빛나는 발록의 눈이 강우를 응시했다.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책임질 자신이 없나?”
“…….”
굳게 입을 다문 채, 입술을 짓씹었다.
미칠 듯한 불쾌함이, 끈적하고 더러운 감정의 격류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카닐의 시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뒤틀리고, 비틀린.
네 개의 뿔을 강제로 잡아 뽑힌 채 눈을 까뒤집고 처참하게 죽어 있는 그 모습이.
“나, 는.”
시체를 만졌을 때 느꼈던 냉기(冷氣)가 독처럼 몸을 잠식한다.
춥다.
얼어붙을 듯, 한기가 밀려온다.
“그렇군.”
뭐가 그렇다는 건가.
발록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어딜.”
“내 오두막이다. 아직 시간은 일주일 남았으니까 말이야.”
“…….”
쿵, 쿵.
발록이 거대한 몸을 이끌고 동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5미터에 달하는 거체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됐을 때,
“…X발.”
강우는 돌벽에 등을 기댄 채 털썩 주저앉았다.
손으로 이마를 덮으며 입술을 짓씹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너무나 낯선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뒤엉켰다.
지옥에 떨어지기 전, 한국에 살았을 때도 겪어보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여기 사는 게 아니었는데.”
자조 섞인 실소를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터질 듯 복잡했지만, 이렇게 가만히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으니까.
* * *
“상위 악마가… 구역을 습격했단 말씀입니까?”
제파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하프들을 혐오하는 것은 어느 악마나 마찬가지였지만 직접 구역을 침입해 죽이려는 악마는 중하위 악마가 대부분이었다.
애초에 상위 악마쯤 되면 강력한 대공의 군세에 들어가서 한 자리 차지하려고 하지 의미도 없는 하프 사냥을 하기 위해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절 노리고 접근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강우 님을 말입니까?”
“예.”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놈은 이곳에 제가 살고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저를 찾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그런….”
제파르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면….”
잠시 생각을 이어가던 제파르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겠군요.”
그 상위 악마가 진짜로 강우를 찾아 이곳에 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그럴 위험성이 있는 이상 계속 이곳에 있는 건 너무 위험했다.
“예.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강우 님은.”
“물론, 저도 새로운 은신처를 찾을 때까지 동행하겠습니다.”
제파르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새로운 은신처를 찾을 때‘까지’라는 말에 담긴 뜻을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떠나실 생각입니까?”
“…….”
강우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도 이 마을에 더 남아 있고 싶었다.
아니, 계속해서 함께 살고 싶었다.
‘…안 돼.’
머릿속에 떠오르는 강렬한 유혹을 떨쳐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그가 겪어왔던 지옥의 모습과 너무나 다르다.
이곳은 춥지 않다. 외롭지 않다. 고통스럽지 않다.
그렇기에,
‘떠나야 해.’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파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강우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이제까지 이 보잘것없는 마을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악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온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강우 님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하루하루 공포에 떨며 살아가야 했을 겁니다.”
그렇게 말했다.
“…….”
강우는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제파르가 내민 손을 잡았다.
비대하게 근육이 부풀어 오른 왼팔과 달리, 그의 오른팔은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있었다.
“그럼 아이들에게 짐을 챙기라고 말해두겠습니다.”
“예.”
제파르가 밖으로 나갔다.
오두막에 홀로 남은 강우는 멍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3년.”
지난 3년 동안 사용했던 오두막.
지옥으로 떨어진 이후, 처음으로 ‘집’이라고 생각하게 된 장소.
‘고작 3년인데 말이야.’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지난 구천 년의 세월보다, 어째서인지 이곳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이 더욱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선명하게.
“…가야겠지.”
강우는 몸을 일으켰다.
발록은 일주일 후에 떠난다고 했으니 어쩌면 그와도 이제 헤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괜찮아.’
고작 몇 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오로지 살아남는 것 하나만을 생각하며, 지구로 돌아가는 것 하나만을 갈망하며 버텨온 수천 년의 시간.
질리도록 겪어온 그때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할 수 있을 거야.’
언제나 그렇듯.
그는 살아남을 것이다.
아무리 비참하고, 처참하고, 처절하더라도.
‘앞으로.’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에휴, 나도 짐이나 챙겨야겠다.”
그래도 3년이나 되는 시간을 이 집에서 보내다 보니 챙길 물건이 몇 개 있었다.
“아.”
배낭에 물건을 챙기던 강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낡은 컵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페르가 혈광초를 달인 차를 줄 때 사용한 컵.
낡은 컵을 배낭 안으로 넣으려다가, 손을 멈췄다.
“…이제 필요 없으려나.”
앞으로 이 더럽게 맛없는 차를 마실 일도 없을 것이다.
준비가 끝나면 곧바로 이주를 시작할 거고, 하프들에게 은신처를 찾아주자마자 떠날 생각이니까.
퍼석.
주먹을 쥐어 낡은 컵을 박살 냈다.
부서진 컵의 파편들이 차갑게 손을 찔렀다.
대충 손을 털며 배낭을 멨다.
-끼익.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가, 강우 님!”
“떠, 떠나신다는 게 사실인가요?”
페리안와 페르가 다가와 울상을 지었다.
강우는 희미하게 웃으며 두 악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음 은신처를 찾을 때까지는 같이 갈 거야.”
“그런….”
“흐윽, 흐아아앙!!!”
페르가 강우의 옷깃을 잡은 채 눈물을 터뜨렸다.
여섯 개의 눈동자에서 투명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훌쩍! 가, 가지 마요, 강우 니임….”
어째서인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페르의 외모가 흉측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너희도 빨리 짐 챙겨.”
“…예.”
“흐윽. 흑!”
페리안과 페르는 울상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동굴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그때, 동굴 입구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발록은 아니었다.
발록보다 훨씬 작은, 자기와 비슷한 키의 악마였다.
‘누구지?’
가늘게 눈을 뜬 채 입구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악마를 바라보았다.
그 악마의 몸은 마치 검은 장막을 몸에 두른 것처럼 어두워서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어, 어…?”
노랗게 빛나는 두 개의 눈동자뿐.
“강우 님!! 아, 악마가!!”
“이상한 악마가 나타났어요!!”
입구에 서 있는 악마를 발견한 어린 악마들이 손가락으로 악마를 가리키며 외쳤다.
“잠, 깐.”
무언가.
참을 수 없는 불길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찾았군.]동굴 입구에 선 악마가 가볍게 한 걸음 내디뎠다.
그리고,
-쩌저저저적!!
“아아아아악!!!”
“꺄아아악!!!”
끔찍한 비명 소리와 함께, 악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어린 악마들의 몸이 ‘조각나’ 무너져 내렸다.
“하아, 하아.”
강우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뒷걸음질 쳤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시끄럽게 이가 부딪혔다.
머릿속이 하얗게 불타올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덜덜덜.
다리가 떨렸다.
힘이 풀려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뭐, 야. 대체.”
[내 소개를 먼저 해야겠군.]동굴의 입구.
그곳에는━
[나는 죽음이다. 나는 종말이다.] [모든 분노한 자의 어버이이며, 분노 그 자체다.] [나는]절망이 있었다.
[사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