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5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35화
천년 전쟁 (8)
“━아.”
사고가 정지한다.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쿵, 쿵.
심장이 터질 듯 거칠게 뛴다.
“사, 탄…?”
구천지옥을 다스리는 일곱 대공.
그중 ‘분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악마.
“사탄이 왜….”
주춤, 주춤.
뒷걸음질 쳤다.
전력을 분석하고, 적의 힘을 파악할 필요도 없다.
필사(必死).
싸우면, 죽는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너를 찾아 왔지.]사탄은 검은 장막이 둘러진 듯 어두운 팔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닌,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지는 듯한 음산한 목소리.
“날, 찾아왔다고?”
사탄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입술을 짓씹었다.
사탄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사탄’이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고민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튀어어어어어어어!!!!!!”
하프들을 향해 외쳤다.
“가, 강우 님!”
“이, 이게 대체.”
“닥치고 지금 당장 튀라고!!!!”
아직 혼란에 빠져 있는 하프들의 등을 떠밀었다.
곧 하프들이 몸을 돌려 우르르 동굴 뒤편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강우 또한 하프들의 뒤를 따라 달렸다.
“제파르!! 비상 탈출구 위치 어디야!!”
전에 제파르에게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비상용 탈출구를 만들어뒀다는 얘기를 들었다.
“저쪽입니다!!”
“빨리!!!”
강우는 정신없이 달리며 뒤를 살폈다.
뒤를 쫓을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여유가 넘치는 건지 사탄은 그 자리에 선 채 지그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기랄!!!”
머릿속이 복잡했다.
수많은 생각이 뒤엉켜 터질 것만 같았다.
‘저게, 대공이라고?’
발록이 처음 자신의 계획에 들었을 때 왜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대공(大公)이라는 존재는, 그 존재만으로 재앙(災殃)이나 다름없었다.
‘이길 수 없어.’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됐다.
대공은 이길 수 없다.
애초에 싸워 이기라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절대자(絶對者)로 군림하기 위해 태어난 악마.
그것이 대공이라는 존재였다.
‘저런 대공이랑 싸우려고 했던 거야?’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생각 외에는 들지 않았다.
발록이 속으로 얼마나 자신을 비웃었을까.
타오르던 전의(戰意)도, 지구로 돌아가겠다는 갈망(渴望)도 대공과 마주친 순간 모조리 꺼져 사라져 버렸다.
“하아! 하아! 이, 이쪽으로!”
제파르가 동굴 끝에 파놓은 구덩이를 가리켰다.
“빨리 기어들어 가!!!”
“가, 강우 님은…….”
“너희 다 들어가고 나갈 테니까 빨리 처 나가라고!!”
걱정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페르의 등을 밀었다.
하프들이 하나둘씩 구덩이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허억, 허억.”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뒤를 살폈다.
여전히 사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빨리, 빨리, 빨리!’
초조함에 속이 타들어 갔다.
“다 나갔습니다!”
뒤에서 들리는 제파르의 외침에 강우도 구덩이로 기어들어 갔다.
동굴 밖으로 나가니 뾰족한 암석이 솟아 있는 대지가 보였다.
“이쪽입니다!”
제파르가 동굴 반대편에 만들어 놓은 도주로를 가리켰다.
강우와 하프들은 도주로를 따라 복잡한 암석 지대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어?”
[여기 있었군.]또 다른 악마와 마주쳤다.
등 뒤에 돋은 여덟 장의 검은 날개.
병적일 정도로 창백한 피부에 새파란 입술.
오만(傲慢)에 가득 찬 눈빛이 강우를 향했다.
“루, 시퍼…?”
제파르가 창백하게 질린 목소리로 그 악마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오만의 대공 루시퍼.
사탄에 이어 또 다른 대공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왜, 왜…?”
사탄에, 루시퍼라니.
악의적으로 조작된 예능 방송에라도 출현한 기분이었다.
구천지옥에 수백, 수천 년을 살더라도 만날 일이 없다던 대공이 왜 둘이나 여기 있단 말인가.
“흐음, 네가 오강우란 인간이냐?”
루시퍼는 턱을 살짝 들어 올린 채 오만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에 숨길 수 없는 실망감이 떠올랐다.
“바알과 똑같은 행보를 걷고 있다 해서 찾아와 봤거늘… 실망스럽군.”
후들후들 다리를 떨고 있는 강우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 기랄.”
딱딱딱.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시끄럽게 이가 부딪혔다.
‘정신 차려.’
멍청하게 얼을 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했다.
주변을 살피던 강우는 다급하게 왼팔을 들어 올렸다.
‘파공의 권능.’
둥그런 공 형태의 마기가 높게 솟은 암벽을 향해 쏘아졌다.
-쿠르르릉!
굉음과 함께 높게 솟은 암벽이 루시퍼를 향해 무너져 내렸다.
“튀어!!!”
이딴 걸로 대공을 죽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강우는 암벽이 무너져 내리는 즉시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하아, 하아!! 가, 강우 님.”
페르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이 보였다.
강우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는 그녀를 끌어안고는 미친 듯이 달렸다.
“허억, 허억!”
평소였다면 이 정도 달린 것으로 지칠 리는 없었지만, 뒤에서 대공이 따라오고 있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전신에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제발, 제발…!’
지옥에 떨어진 이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신까지 찾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복잡하게 얽힌 암석 지대를 빠져나오자 탁 트인 붉은 황야가 보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붉은 황야를 가득 뒤덮고 있는 악마의 군단이 보였다.
“오, 저게 그 소문의 인간인가?”
“푸히히히힛!! 뭐야? 바알을 생각하고 왔더니만 그냥 마기 좀 가지고 있는 인간이잖아?”
새하얀 뼈로 만들어진 휠체어에 탄 악마와, 뒤룩뒤룩 살찐 악마가 강우를 바라보며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벨페고르에… 마몬…?”
제파르는 아연한 표정으로 악마 군단의 선두에 서 있는 두 악마를 바라보았다.
나태의 대공, 벨페고르.
탐욕의 대공, 마몬.
구천지옥을 지배하는 일곱 대공 중 두 대공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아니.
‘두 대공’만이 아니었다.
[흐음. 역시 네놈들도 왔나.]저벅, 저벅.
사탄이 느긋한 걸음으로 오른편에서 나타났다.
“사탄은 그렇다 치고… 벨페고르에 마몬이라. 꼴에 힘을 합친 모양이군.”
펄럭!
왼편에서 날아온 루시퍼가 마몬과 벨페고르를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푸히히힛!!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우리 잘~나신 사탄 님과 루시퍼 님을 상대할 수가 없거든요!”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힘을 합쳐야지.”
마몬과 벨페고르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사탄과 루시퍼를 노려보았다.
“…….”
강우는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었다.
아니, 정확히는 도망가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의미 없다 표현하는 것이 옳으리라.
“대공이… 넷, 이라고?”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구천지옥의 정점에 선 일곱 악마 중, 무려 네 명의 악마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대체, 왜?”
덜덜덜.
두 다리가 애처롭게 떨린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에 멍청하게 볼을 잡아당겼다.
눈앞에 펼쳐진 악몽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많이도 끌고 왔군.]사탄이 고개를 돌리며 벨페고르와 마몬의 뒤에 늘어선 악마 군단과 홀로 서 있는 루시퍼를 쭉 둘러보며 말했다.
“너야말로.”
루시퍼가 피식 웃으며 사탄을 노려보았다.
그와 동시에, 높게 솟은 암석의 틈에서 수천의 악마들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착! 착! 착!
하늘을 날아온 악마들이 루시퍼의 뒤에 착지했다.
[흐음. 역시, 대공의 눈까지 숨기는 건 어려운가.]사탄은 고개를 주억이며 장막처럼 두른 어둠을 넓게 펼쳤다.
검은 잉크를 쏟은 것처럼 넓게 펼쳐진 장막 속에서 사탄의 군세가 몸을 일으켰다.
드넓은 황야에 네 대공의 군세가 집결했다.
군단을 소환한 사탄은 느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선 오붓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불필요한 ‘반쪽짜리’들은 제거해 두도록 할까.]멍하니 굳은 채 서 있는 강우를 바라보며 노란 눈동자를 빛냈다.
아니, 정확히는 강우의 주변에 모여 있는 하프들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자, 잠━”
강우가 다급하게 그를 말리기도 전에, 사탄은 가볍게 발을 박찼다.
순간이동을 하듯 사라졌던 그의 몸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린 악마의 뒤편에 나타났다.
전신에 나무를 연상시키는 듯한 잔가지가 돋아 있는 악마였다.
사탄은 손을 뻗어 어린 악마의 머리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그리고,
“어, 어? 내, 내 몸이….”
쩌적, 쩌저적.
어린 악마는 마치 거미줄처럼 금이 가고 있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뒷걸음질 쳤다.
투명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 살려, 주세요.”
어린 악마의 시선이 향한 곳은 강우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강우를 바라보며, 애원하듯 손을 뻗었다.
“죽고 싶지 않….”
쩌저저저적!!
애타게 뻗은 손끝부터 전신이 깨진 유리처럼 산산이 박살 나 무너져 내렸다.
“어차피 필요한 건 저 ‘인간’ 하나니깐.”
루시퍼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튕겼다.
탁구공만한 검은 구체가 떠올랐다.
총알처럼 쏘아진 검은 구체가 하프들의 가슴에 적중했다.
“아아아아아악!!!”
“아, 아파!! 아파아아아!!”
콰드드득!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검은 구체에 맞은 하프들의 몸이 처참히 우그러져 박살 났다.
“아, 으.”
처참한 학살을 바라보며 강우는 입술을 짓씹었다.
압도적이었다.
비참하게 죽어가는 하프들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대공’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도, 도망, 쳐야.”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제까지 계속 도망쳤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다르다.
“이, 이 틈에… 나, 나라도.”
하프들을 미끼삼아, 도망쳐야 한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하아, 하아.”
자신은 죽는다.
“꺄아아아아악!!”
“가, 강우 님!!”
“살려 주세요!!!”
하프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사탄과 루시퍼의 손에 잔혹하게 죽어가면서, 그들은 애타게 강우를 찾았다.
구해달라고,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개소리하지 마.’
이 상황에서 어떻게, 무슨 수로 저들을 살린단 말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지금 대공과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우는 하프들의 비명을 무시하며 몸을 돌렸다.
한시라도 빨리.
하프들이 모두 뒤져나가기 전에, 혼자라도 이곳에서 도망치기 위해.
그때,
-쿠우우우우웅!!!!
유성이 떨어지듯, 하늘에서 붉은 거인이 떨어졌다.
“…어?”
뒤돌아 도망치려던 강우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돌렸다.
뚜둑, 뚜둑.
발록은 여유롭게 몸을 풀며 사탄과 루시퍼의 앞을 가로막았다.
“대공이라는 놈들이 여기까지 와서 한다는 게 하프들을 학살하는 건가?”
쯧쯧,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대공이란 이름도 이젠 똥통에 처박힌 모양이군.”
발록은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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