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9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97화
검황 천무진(1)
“넌 누구지?”
남궁진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강우는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시훈이 형이다.”
“김시훈의 형…? 김영훈인가? 아니, 그자는 분명 감옥에 갇혀 있다고 들었는데.”
“세상에는 피보다 진한 게 있지.”
“……?”
남궁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유적 표현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의형제라는 말은 아냐?”
“아, 그런 의미였군.”
남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네게는 관심 없다. 검황께서 원하는 건 검룡. 자리에서 비켜라.”
“걔가 누군지는 나도 관심 없는데 말이야.”
“…함부로 입 놀리지 마라.”
날카로운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남궁진은 김시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자가 다치는 것을 보기 싫다면 조용히 따라와라, 검룡.”
“너야말로 형님께 함부로 말하지 마라.”
검황이라는 칭호에 움츠려 있던 김시훈이 앞으로 나섰다. 검 자루에 손을 올리며 살기를 피워 올렸다.
물론, 검황 천무진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는 중국 최고의 플레이어이자 가장 거대한 세력의 수장이었다.
중국 주석조차 그의 앞에서는 눈치를 보는 현실인데 천검문 간부인 남궁진이 자신에게 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우를 위협하는 것은 경우가 달랐다. 그는 자신을 지옥 같은 삶에서 구해준 은인이었다.
은인이 위협받는 데 가만있을 정도로 그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호오. 검을 뽑겠다, 이건가?”
남궁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검룡이라고 떠받들어 주니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것 같군.”
남궁진은 다소 거친 방법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검황께서는 최대한 정중히 데려오라 했지만….’
솔직히 고작 이런 애송이 앞에서 예의를 차릴 필요도, 정중할 이유도 뭐가 있단 말인가?
오히려 폐황에게 무례를 저지르기 전에 자신이 직접 교육해 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남궁진은 허리에 찬 검 자루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앞서 검 자루에 누군가 손을 올렸다.
“뽑지 마.”
“무, 무슨….”
“너 그거 뽑으면 죽어, 인마.”
인지도 못한 사이, 강우의 손이 검 자루 위에 놓였다.
남궁진은 경악했다.
그는 내공이라는 고유 스탯을 지닌 전사 계열 플레이어였다.
일반적인 전사 계열 플레이어보다 기감이 훨씬 뛰어났다.
그런데 자신이 눈치도 채지 못한 사이에 검 자루에 손을 올리다니?
“크읏!”
남궁진은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당혹감과 경계심이 섞인 눈빛이 강우를 향했다.
“어떻게….”
방심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아, 미리 말해두는데. 네가 방심하거나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건 아니야. 그냥 네가 약한 거지.”
“…….”
“그러니까 괜히 방심했다고 자위하면서 헛소리할 필요 없어.”
남궁진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그는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감히 미개한 한국…!”
-우드드득!
“아아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순식간에 접근한 강우가 그의 손목을 비틀었다.
쥐고 있던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놈의 국가 감정 좀 섞지 마. 질리지도 않냐?”
강우는 한심스럽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나라가 그렇게 중요해? 그럼 세금이라도 더 내, 인마. 꼭 너 같이 뭣도 없는 놈들이 괜히 딴 나라만 가면 애국열사가 되더라.”
“이, 이 개자….”
“야, 그리고 상식적으로 다른 나라가서 ‘이 미개한 것들!’이라고 하면 그게 네 나라 이미지에 도움이 되겠냐? 응? 나라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지, 인마.”
“으아아아아!”
남궁진은 발작하듯 강우에게 달려들었다.
강우는 가볍게 몸을 틀어 무릎을 차올렸다. 남궁진은 배를 움켜잡고 바닥에 꼬꾸라졌다.
“커헉! 컥!”
“네놈!”
-촤앙!
남궁진의 뒤에 있던 사내들이 검을 뽑아들었다.
강우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뽑지 말라고 했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는 살기.
사내들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으으.”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살기가 아니었다.
‘죽는다’는 생각보다 ‘잡아먹힐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살기.
마치 거대한 포식자를 눈앞에 둔 개구리처럼 그들의 몸이 굳었다.
“너희도 바보 아니니까 싸워서 못 이길 거란 것 정도는 알고 있지?”
“크읏….”
사내들은 침음을 흘렸다.
3호대 대장 남궁진이 이렇게 무기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당한 상대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남궁진이 거칠게 기침했다.
“쿨럭! 쿨럭! 가, 감히 하, 한국….”
“아, 이 자식, 이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강우는 바닥에 쓰러진 남궁진의 뒷목을 잡아 들어올렸다.
“국가의 격은 국민이 정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핏대 세워도 제 살 파먹기밖에 안 된다니까?”
“…….”
“아, 이 표현은 좀 알기 힘들었으려나. 뭐,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국가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알려줄게.”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와 보면 알아.”
강우는 남궁진을 질질 끌며 어딘가로 향했다.
김시훈이 강우의 뒤를 쫓았다.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형님?”
“시훈아 여기 근처에 김치찌개 잘하는 집 없냐?”
“…예?”
김시훈의 눈이 동그래졌다.
갑작스럽게 김치찌개 잘하는 집은 왜 찾는단 말인가?
“저기 골목으로 돌아가면 하나 있습니다만….”
“좋아.”
강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남궁진을 끌었다.
앞으로 걸어가던 그는 고개를 돌려 멀뚱히 서 있는 사내들에게 외쳤다.
“야! 너희도 따라와!”
“…….”
사내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강우의 뒤를 따랐다.
-달칵!
“아주머니, 여기 김치찌개 7인분 주세요. 고기 많이 넣어서요.”
“에휴~ 알았어, 총각. 근데… 그 사람은 어디 다친 거 아녀?”
“아뇨. 좀 엄살을 부리는 겁니다. 그렇지?”
강우는 남궁진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의 몸이 움찔 떨렸다.
“조금만 기다려~”
푸근한 인상의 아줌마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새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김치찌개가 준비됐다.
“이, 이건 뭐냐.”
“김치찌개. 먹어 봐. 아주 기가 막힐 테니까.”
강우는 떨고 있는 남궁진의 등을 가볍게 쳤다.
남궁진의 표정이 구겨졌다.
“고작 이딴 잡탕을 주는 게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 이거냐?”
“잡… 탕…?”
강우의 눈이 커졌다. 강렬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강우는 공포의 권능까지 사용하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마치 프레스기의 짓눌린 듯 남궁진의 어깨에 강한 압박이 느껴졌다.
“끄아, 아아…!”
“잡탕이 아니라 김치찌개야. 자, 이제 고기 다 익었다. 먹어도 돼.”
“크윽….”
남궁진은 김시훈의 눈치를 살피며 김치찌개를 먹기 시작했다.
‘음…?’
맛있었다.
예전에 한 번 먹어본 김치는 시큼한 맛이 강해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찌개로 만드니 그 특유의 시큼한 맛이 무척 감미롭게 느껴졌다.
김치를 찢어 새하얀 밥 위에 올려두고 고기를 한 점 곁들여 먹으니 매콤한 맛과 감칠맛이 절로 입안 전체로 퍼졌다.
‘한국에 이런 음식이 있었던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신을 놓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는 천검문의 간부였고, 평소 먹는 음식들은 최고급 요리사가 만든 요리들뿐이었다.
그에 비하면 김치찌개는 싸구려 인스턴트에 가까운 맛이었다.
‘근데 왠지 모르게 계속 먹게 되는군.’
어느새 밥 한 공기가 사라졌다.
자신만이 아니었다. 함께 한국에 온 그의 부하 네 명도 조금씩 눈치를 보며 김치찌개를 먹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여기 3인분 추가요! 공깃밥도 한 개씩 더 주세요!”
“알았어, 총각~ 어휴. 다 잘 먹네!”
강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남궁진을 바라보았다.
“어때, 맛있지?”
“…크흠.”
“흐흐. 맛있나 보구만. 배 터질 때까지 마음껏 먹어도 괜찮아.”
강우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김치찌개를 한 입 먹었다.
“사실 난 한국에 대한 애국심은 별로 없는데 말이야. 그래도 김치찌개 하나는 인정해 줘야지. 안 그래?”
“그,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벌써 두 공기째 비워놓고는 무슨. 여하튼, 잘 알았지? 자국의 좋은 문화를 알려주는 것! 이게 바로 국가를 위한 거야, 인마. 괜히 미개하니 하등하니 거품 물면서 지랄하지 말고.”
“…….”
그 말을 끝으로, 강우는 김치찌개를 먹는 데 집중했다.
식사를 마친 다른 사람들이 질겁할 정도로 엄청난 양을 먹어치운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가자, 시훈아.”
“아, 예….”
“그럼 여기 계산하고 중국으로 돌아가. 그 검황인지 뭔지 시훈이 보고 싶으면 직접 오라고 하고.”
그 말과 함께 강우는 가게를 나섰다.
덩그러니 남겨진 남궁민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 처먹어 놓고 나보고 계산하라고?’
한국인의 따듯한 정이 그를 감쌌다.
* * *
“그래서… 김치찌개인가 뭔가만 신나게 먹고 돌아왔다고?”
거대한 방. 화려하다기보다 웅장한 느낌이 드는 의자에 삐쩍 마른 사내가 앉아 있었다.
툭 치면 부러질 것처럼 마른 몸이었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기세는 주변 전체를 압박하고 있었다.
검황 천무진.
중국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플레이어의 이름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천무진 앞에 무릎을 꿇은 남궁진은 공포에 전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숨 막히는 긴장이 방 안에 몰아쳤다.
“하, 하하.”
터져 나온 웃음.
“하하하하하하하!!”
-쿠르릉!
천무진의 웃음소리에 방 전체가 뒤흔들렸다.
“좋아! 재밌군! 아주 마음에 드는 놈이야!”
그는 한 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천무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궁진을 노려보았다.
“내가 분명 예의를 갖춰서 정중하게 대하라 하지 않았던가?”
“그, 그것이….”
“뭐? 또 꼴에 가서 갑질이라도 하고 싶었나? 천검문의 이름에 똥을 싸지르면서까지?”
“아,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천무진이 손을 뻗었다.
강력한 흡기(吸氣)에 남궁진이 천무진에게 끌려갔다.
그의 목을 거칠게 움켜잡은 천무진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국어 좀 할 줄 안다고 해서 보냈더니 세상모르고 설치고 다녔군.”
“커헉! 죄, 죄송….”
“파문이다. 무인의 격을 갖추지 않은 놈은 천검문에 필요 없다.”
“그, 그런!”
천무진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남궁진의 몸이 벽으로 튕겨져 나갔다.
“흐흐흐. 직접 오라고 했단 말이지….”
천무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월드 랭커로 인정받은 이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오라고 했으니 가야지.”
“한국으로 가실 생각인가요, 아버님?”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이 아름다운 목소리.
천무진은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국에서는 흔히 만두머리라고 불리는 중국풍 머리를 한 여인이 그에게 다가왔다.
늘씬한 몸매에 짙은 눈썹. 오똑한 코와 붉은 입술.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색기가 흘러나오는 여인이었다.
천소연.
검황 천무진의 친딸이자 천검문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력한 무인이었다.
“왜, 그 검룡이 엄청 잘생겼다더니 한번 보고 싶은 게냐?”
“호호호.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아버님.”
천소연은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으며 매끄러운 두 다리를 꼬았다.
“전 아버님보다 강한 사람 아니면 관심 없어요.”
“끄응.”
천무진은 곤란하다는 듯 침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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