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4)
34화
3.
10만.
그 숫자가 회의실 내에 공개되자 각 길드의 대표들은 저마다 침음을 내뱉었다.
그들의 반응이 얼추 이해가 가는 게, 10만이라는 숫자는 에덴에서 이미 수도 없는 오크들을 처리했던 나에게도 꽤 신경 쓰이는 숫자였기 때문이다.
10만이라는 숫자는 절대로 무시할 만한 숫자가 아니다.
특히, 오크의 경우에는 더더욱.
“아시다시피 오크들은 팔에 부족의 문신을 새깁니다. 그런데 저희 정보원들이 이번에 확인한 오크들의 문신 종류만 하더라도 7개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화면에는 고성능의 카메라로 꽤 멀리서 촬영한 듯한 사진들이 띄워져 있었는데, 유선호 장관의 말대로 분명히 다른 7개의 문신이 정리되어 있었다.
내 기억에 없는 걸 봐서는 내가 에덴에서 알던 오크 부족들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저 오크들 역시 에덴의 오크들과 그다지 습성이 다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오크들은 기본적으로 부족 생활을 하는 아인종으로 분류됩니다. 같은 동족이라 할지라도 부족이 다르면 철저하게 적대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디멘션 오프닝 이후, 꽤 일관된 모습을 보여 주었던 아인종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번에는 7부족이 결집하였습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지요.”
유선호 장관의 말대로 오크는 극단적인 배타성과 호전성을 보유한 아인종이다.
그래서 쉽사리 뭉치지 못하는 아인종이었지만, 그런 오크들이 하나로 뭉치는 경우가 딱 한 가지 존재했다.
“확인된 정보에 따르면 오크들을 이끄는 것으로 보이는 특수 개체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특수 개체 말입니까?”
“허.”
대표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직까지 지구에는 등장한 적이 없던 모양인데, 나는 그 특수 개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에덴에서 몇 번 상대한 적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오크들을 지배할 힘을 지닌 존재.
오크들의 무분별한 투쟁심을 끌어모아, 전란이라는 비극을 만들어 내는 괴물.
“제가 왔던 세계에서는 그 개체를 대군주라고 불렀었습니다.”
대군주.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고, 그러자 스크린에 집중되어 있던 시선들이 모두 나에게로 향했다.
“다른 오크들과는 모든 부분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며, 부족이란 구분을 무너뜨리는 만드는 놈입니다. 대군주가 나타난 순간, 오크들은 본능적으로 그 개체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지구에서 대군주를 다시 조우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 당시에만 총 네 마리의 오크 대군주가 등장했던 것에 비해 지구는 한 마리인 듯하니, 그나마 다행인 것 같기는 하다.
“시우 님. 혹시 그것에 대하여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유선호 장관의 요청에 어깨를 살짝 으쓱이면서 말을 이어 갔다.
“뭐, 크게 특이한 건 없습니다. 다른 오크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뛰어난 힘을 지녔고, 존재만으로도 오크들을 집결시키는 능력을 지녔다, 이 정도?”
유선호 장관은 이런 내 대답에 귀를 기울이려 했지만, 일전의 최 대표와 싸웠던 이 대표란 사람이 마이크를 켜면서 말했다.
“이곳은 지구입니다. 김시우 각성자가 왔던 세계에도 오크란 놈들이 있을 수야 있겠지만, 지구의 오크들과 전혀 별개의 종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냥 대놓고 나에게 시비를 걸겠다는 뉘앙스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피식 웃은 다음, 가볍게 손을 모으면서 답했다.
“그럴 수야 있겠죠. 하지만 저들이 보여 주고 있는 습성 자체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기에 드렸던 말씀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대형 길드들에서는 각자 연구소를 설립하여 몬스터들에 대한 연구를 지원해왔습니다. 지구에 귀환하게 되신지 얼마 안 되신 걸로 아는데, 원래 이런 일은 전문가에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한마디로 이쪽은 본인들이 자신 있는 분야니 귀환자 주제에 깝치지 말고 빠져라, 이 소리다.
꽤 재밌는 소리였기 때문에 나도 그 장단에 맞춰서 놀아 주기로 했다.
“전문가에 맡기는 걸 좋아하셔서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전문가들에게 맡기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전문가들 솜씨가 영 형편없던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주제를 알면 좀 닥치고 계시라는 말을 빙빙 돌려서 전해 드리는 중인데, 이해가 잘 안 가십니까?”
이곳이 이능관리부가 아니고, 유선호 장관만 없었다면 진작에 파투를 냈을 것이다.
“개인적인 말씀들을 나누시는 건 좋으나, 우선적으로 몬스터 웨이브에 집중해 주십사 합니다.”
유선호 장관의 제지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 보여도 나는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저들과 악연을 이어 나갈 시간은 차고도 넘치니, 잠시 접어 두도록 하자.
“시우 님께서 저 특이 개체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듯한데, 그렇다면 혹시 해결법도 알고 계시는지요.”
“간단합니다. 저 대군주라는 개체만 죽이면 됩니다.”
구심점이 되는 대군주만 죽이게 되면, 대군주 휘하의 병력은 알아서 분열한다.
오크 대군을 상대하는 건 꽤 껄끄러운 일이다. 다른 종족들에 비해 압도적인 힘과 전투력을 자랑하는 놈들이라, 정면으로 맞부딪치게 되면 고전할 수밖에 없다.
에덴에서는 한 명의 병사도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택했던 전략이었기도 했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효과적이었다.
대군주의 대가리를 박살 내는 순간, 오크들이 미쳐 날뛰며 서로를 죽이기 시작하더라.
“흐으음.”
유선호 장관은 내 말에 침음을 삼켰다.
“그 특이 개체는 10만 오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특이 개체를 죽이면 몬스터 웨이브가 끝난다고 쳐도, 중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돌파하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육로를 통해 접근하면 그렇지만, 꼭 육로로 접근할 필요는 없죠.”
오크들을 곤죽으로 만들면서 전진하는 건 나에게도 꽤 피로한 일이었다.
“하늘을 이용하면 됩니다. 마침 지구에는 헬기라는 아주 좋은 수단도 있구요.”
“특임대를 구성하여 헬기를 통한 공중 강습 작전을 펼치시겠다는 말씀이신지요?”
“정확합니다.”
그 말에 여태껏 잠자코 있었던 한 남성이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특이 개체를 죽인다고 해서 몬스터 웨이브가 멈출 거란 확신도 없는데, 확신할 수 없는 가능성에 저희 쪽 헌터들을 투입하란 뜻으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남자의 말에 술렁거리던 회의실 내부가 숙연해진 걸 봐서는 이 자리에서 발언권이 가장 강한 사람인 모양이다.
기껏해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그러나 그의 양복에 달려 있는 호랑이 모양의 배지만 보더라도 그의 정체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길드 서열 1위인 대호 길드의 대표.
나는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보게 될 것 같은 그 남자의 얼굴을 눈에 담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가 언제 그쪽 헌터들을 투입하겠다고 했습니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돌발 상황들 때문에 정부 측에 여력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유 장관님께서 이 자리를 마련…….”
“저만 갑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였던 걸까.
회의실에는 다시 한번 침묵이 내려앉았고, 나는 똥 씹은 표정의 길드 대표들을 향해 웃으면서 말을 맺었다.
“제 힘을 일부러 과장했다거나 조작을 했다는 소리가 들려서요. 이번 기회에 확실히 증명해 둘 생각입니다. 혹시 불만 있으신 분들은 지금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넝쿨째 들어온 영업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4.
회의를 통해 총 두 가지의 플랜이 세워졌다.
「플랜 A. 각성자 김시우의 주도하에 공중 강습 작전을 실시하여, 특이 개체 대군주를 제거하여 몬스터 웨이브를 파훼한다.」
「플랜 B. 플랜 A가 실패할 경우에 대비하여 대호 길드를 위시한 대형 길드들이 구 휴전선 일대에서 방어선을 형성, 재편된 30기계화보병사단과 협력하여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낸다.」
내가 없었다면 상황은 아마 플랜 B대로 흘러갔을 거다.
옛날이었다면 저 기계화보병사단만으로도 든든했겠다만, 대한민국이 지녔던 현대식의 무기 대부분이 디멘션 오프닝> 때 파괴되었다던가.
게다가 상성도 별로 좋지 않았다고 했다.
게이트를 통해서 등장했던 몬스터들이 지구의 현대식 화기에 알 수 없는 저항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정도면 차원의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일이 벌어질 리가 없지.
아무튼.
상황이 워낙 급박했던 탓에 나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파주에 위치한 어느 항공 대대로 향했다.
현장에서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내가 타고 갈 헬리콥터의 급유도 끝나 있었고, 잔뜩 긴장한 표정의 조종수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정말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오래간만에 높은 공기 쐴 생각에 기분이 좋네요.”
참고로 에덴에서는 헬기 대신 드워프들이 조련한 그리폰을 타고 날아갔다.
상당히 거친 놈이라서 탑승감이 좋지 못했는데, 그에 비해 헬기는 감지덕지지.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면서 헬기의 차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내 손에서 피어오른 새하얀 불꽃이 순식간에 차체를 뒤덮더니.
우우우웅-!
[액티브 스킬 축성 Lv. ???>을 사용합니다.] [해당 물체에 일정 시간 동안 강력한 축복이 깃듭니다.]“정말 그것만으로도 비행 몬스터들을 쫓아낼 수 있는 겁니까?”
“효과가 꽤 좋을 겁니다. 아무리 굶주린 괴수라고 하더라도 죽을 자리를 찾아 들어오진 않거든요.”
조종사들이 저렇게 긴장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구 휴전선 너머, 즉 잃어버린 땅에는 와이번을 비롯한 다양한 비행 몬스터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우 님. 이 늙은 놈이 염치 불고하고 또 부탁을 드립니다. 부디 꼭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주십시오.”
전국에서 이상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능관리부에서는 그중에서도 몬스터 웨이브를 1순위 위협으로 보고 있었다.
내가 이곳을 빠르게 정리해야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대형 길드들도 다른 지역으로 분배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내 어깨에 꽤 많은 짐이 올려진 기분이긴 한데, 이 정도의 중압감은 괜찮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적어도 한 차원계의 운명을 짊어지는 것보다야 가볍지.
나는 유선호 장관한테 가볍게 말해 준 다음, 내 뒤에서 붉게 상기된 얼굴로 대기하고 있던 오늘의 카메라맨을 바라보았다.
“세명 형제님. 준비되셨습니까?”
“예, 예! 교황님! 제가 반드시 카메라에 담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민수 씨네 촬영팀에 속한 설세명 씨.
예전 여주 어비스 던전에서 처음으로 조우했던, 선천적으로 마기에 저항력을 지니고 있던 그 운 좋은 일반인 되시겠다.
그라운드 제로>의 경우에는 마력 오염으로 인해 촬영을 제대로 못 했지만, 휴전선 북쪽 지역인 잃어버린 땅>은 촬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게이트의 마력에 의해 불모지가 된 게 아니라,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몬스터들에 의해 불모지가 된 지역이라서 그렇다던가?
그래서 그냥 세명 씨를 데려왔다.
촬영이 가능하다는데 그걸 굳이 포기할 필요는 없지.
경쟁이 시작되려는 시기에 홍보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혼자서 오크 10만 마리를 상대했습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잃어버린 땅에 들어가 봤습니다> 같은 자극적인 타이틀을 어떻게 참아?
나는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세명 씨를 향해서 슬쩍 말을 건넸다.
“크게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교황님의 옆이 가장 안전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몸을 떠시는지.”
“그건 이 영광스러운 사역에 함께하게 되어서 그렇습니다!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군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리멘께 이 한 몸 다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좀 다른 의미로 몸을 떨고 있는 거였나?
여주 어비스 던전부터 살짝 맛이 간 민수 씨조차도 ‘세명이가 지금 제정신은 아닙니다’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긴 한가 보다.
“리멘께서도 세명 형제님의 자발적인 봉사에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자, 그럼 가 봅시다.”
“예!”
그렇게 나는 세명 씨와 함께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내가 옛날에 보았던 영화나 드라마에서 몇 번 나온 적이 있던 헬리콥터.
아까 전에 이곳 대대장이 UH-60인가 뭔가 하는 명칭을 말해 주긴 했지만, 나에게는 블랙호크>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헬리콥터였다.
헬리콥터 내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여유가 있었다.
조종석에만 달랑 두 명이 앉아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만 보자, 아까 저 조종사들이랑 통성명을 했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아, 맞다.
“한승우 준위님? 신경석 준위님?”
“……예.”
“예.”
어째 분위기가 스스로 사지에 걸어 들어가는 사람의 분위기 같다.
적당한 긴장은 괜찮지만, 과한 긴장은 언제나 화를 불러온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하여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두 분 모두 자제분들이 있으신가요?”
그러자 곧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이제 막 유치원에 입학한 딸이…….”
군인들이 빨리 결혼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모양이다.
나는 둘의 대답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오늘 아빠 일찍 퇴근한다고 미리 연락해 두세요. 가는 데 20분, 처리하는 데 3분, 돌아오는 데 20분. 넉넉잡아 1시간이면 충분하니까. 나라를 위해서 고생하시는 분들인데, 가끔은 편한 일도 있어야죠.”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