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룰루랄라~”
“놀러 왔냐.”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비수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뭐, 이해는 간다.
깊은 유수를 무사히 통과하고, 2층의 보스 몹까지 격파했으니 신이 날 만도 하지.
크고 작은 부상이 있기는 했지만, 육철완과 강정현은 기어코 2층의 보스 몹까지 해치워 버렸다.
한국의 던전으로 치자면 족히 8성 이상은 받을 수 있는 마수였다.
하나 비수의 버프를 받은 두 사람은 기어코 3층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육철완과 강정현의 콤비네이션은 단순하면서도 강했다.
탱커인 육철완이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면, 강정현이 살상형 식물을 불러내 공격을 펼친다.
어떻게 보면 정석 중의 정석이라고 할수있는 전투 패턴.
하지만 정석이 괜히 정석이겠는가.
어떤 경우의 수가 나타나더라도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는 게 정석의 힘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보스 몹까지 잡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각자의 몫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강정현의 성장이었다.
아무래도 실전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게 녀석의 단점이었는데, 전투를 치루어 가면서 점점 요령을 터득하는 듯했다.
육철완과의 호흡이 점점 좋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어쩌면 두 사람은, 나중에 세계 최고의 듀오로 이름을 날릴지도 모른다.
“이번엔 내 차례네.”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나자, 첸이 다가와 묻는다.
“진짜 혼자 갈 거냐?”
“어.”
“네가 강하다는 건 저번에 붙어 봐서 안다만……. 쉽지 않을 텐데.”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녀석이 걱정을 다 해 준다.
하지만 나머지 동료들의 심정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1층과 2층의 난이도도 꽤 차이가 나지만, 3층부터는 정말 현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나라를 대표하는 길드들도 3층이 되면 슬슬 포기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니 말 다 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을 혼자서 돌파한다?
심지어 비수의 버프도 없이?
첸이 걱정을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 3층은 내 입장에서는 홈그라운드나 다름없으니까.”
“홈그라운드……?”
첸의 눈이 가늘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다들 여기서 기다려요. 4층의 문이 열리면 그때 부르러 올게요.”
“몸조심하세요, 헌터님.”
“빨리 데리러 와……!”
동료들의 격려를 받으며 아래층 계단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뚜벅 뚜벅.
‘지옥의 계단’ 3층은 여러모로 위험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층 자체의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프랑스의 헌터 프랑코가 입구 쪽에 수작을 부려 놓은 상태.
비수의 은신을 통해 미리 파악해 두길 다행이지, 하마터면 동료들 한둘은 치명상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뜨거운 열기가 이마에 올라온다.
그까짓 돈 좀 못 벌었다고, 국가 대항전에서 지기 싫다고 그런 극악한 짓거리를 한단 말인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놈을 향한 분노가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그 자식은 나중에 로이만큼 반병신을 만들어 놔야지.
그런 다짐을 할 무렵, 마침내 3층의 입구가 나타났다.
‘여긴가.’
미리 알고 있어서 그런 건진 몰라도, 입구에서부터 끔찍한 적의가 느껴진다.
천하의 ‘스텔스’가 가리지 못하는 것도 있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전신에 에테르를 활성화시켰다.
이 입구를 지나고 나면 ‘스텔스’가 발라진 끔찍한 몬스터가 나를 반겨 줄 것이다.
‘백사’.
물리 레벨, 기타 레벨 모두 ‘S’급으로 분류된 8성의 몬스터.
염동력 레벨이 높지 않아 8성으로 분류되었지만,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는 헌터들에겐 악몽과도 같은 놈들이다.
아마 프랑코가 백사를 무력화해 스텔스를 발라 놓은 것도 녀석이 에스퍼인 덕분일 터.
던전에서 몬스터를 처치하면 대부분은 리스폰이 되지만, 내버려 둔 녀석들은 그 위치에 그대로 남게 된다.
그 말은 곧, 죽이는 게 마땅한 극독성의 몬스터를 일부러 남겨 두었다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고오오오맙다. 시발놈아.’
나는 이를 앙다물고 입구 바깥으로 한 걸음을 옮겼다.
천하의 ‘스텔스’도 살의는 숨길 수가 없는 걸까.
소리나 형태를 감지할 수는 없었지만, 사방에서 저릿저릿한 무형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때, 날카로운 무언가가 내 몸을 이곳저곳을 사정없이 물어 버렸다.
콰악.
콰악.
“큭……!!”
‘호신강기’를 두른 몸인데도 불구하고, 백사의 이빨이 내 피부를 뚫고 들어온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이빨이 내 몸 안에 침투했고, 이빨로부터 치명적인 독이 밀려들어 오는 게 똑똑히 전해져 왔다.
스슥…….
슥.
“이제서야 모습을 보여 주는구만…….”
스텔스의 효과가 지워진 백사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정제된 쌀을 연상케 하는 새하얀 비늘과 청록색의 눈동자.
얼핏 보면 관상용 뱀이 아닌가 싶은 생김새지만, 놈들이 가진 악력과 치명적인 독으로 인해 근접 전투형 나이트들은 치를 떨곤 한다.
콰악.
‘갑자기 철완 아저씨가 떠오르네.’
수십 마리의 백사가 내 몸을 물어뜯고 있다 보니, ‘그리드’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 내던 육철완이 떠오른다.
이것이 죽기 전에 떠오른다는 주마등인가.
나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내 몸이 단단하다고 해도, 백사의 이빨을 견뎌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육철완은 분명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은 사실이 되었다.
나에게 호신강기를 뛰어넘는 ‘에테르 갑옷’이 있다면 모를까, 육철완이 예상했던 것처럼 백사는 내 피부를 짓이기고 구멍을 뚫었다.
충격도 충격이지만 꿀떡꿀떡 밀려들어 오는 맹독의 기운이 정말 끔찍하게 느껴졌다.
전방위적인 충격에 정신을 잃을 것 같지만 여기서 자빠질 수는 없었다.
조금의 시간만 지나면, 상황이 정리될 테니까.
부르르…….
한 마리.
꿈틀.
또 한 마리.
내 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백사들이 조금씩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져 나간다.
영롱한 청록빛의 눈동자는 어느새 흉측한 검붉은 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필경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당장에라도 쓰러져야 마땅한 헌터는 멀쩡하고, 오히려 백사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서 버둥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툭 툭.
몸에 붙어 있던 백사들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마치 내 자신이 뱀이 되어 허물을 벗은 느낌이다.
“아후……. 아프긴 아프네.”
‘백사’들은 모두 절명했지만, 놈들이 남겨 놓은 이빨 자국은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과연 녀석들의 이빨은 강했다.
‘호신강기’로 무장한 내 피부를 단숨에 뚫어 버릴 만큼.
프랑코가 ‘스텔스’를 바르지 않았다면 놈들의 공격을 피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굳이 피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녀석들의 이빨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와야, 효과적인 ‘공격’이 되기 때문이다.
‘건방진 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흑화해 죽어 버린 백사들을 보니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이빨이 피부를 뚫을 때까지만 해도 신이 나서 독을 뿜던 녀석들은, 내 몸 안의 혈액과 맞닿자마자 되려 중독이 되어 죽어 버렸다.
지나가는 헌터를 붙잡고 ‘백사가 중독사를 했답니다’라고 말한다면 필경 미친 소리로 치부해 버릴 것이다.
포이즌 몬스터 중에서도 상급의 독을 가지고 있는 백사가, 다른 독에 잠식당했다는 것을 믿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하늘 위에는 또 다른 하늘이 있는 법.
천하의 백사도 블랙 에테르의 치명적인 독성에는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역시 이 방법이 제일 심플하다니까. 다소 무식하기는 하지만.’
‘스텔스’를 바른 ‘백사’를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직접 놈들의 공격을 겪어 보니, ‘이레귤러’ 전원이 왔다면 최소 두세 명은 물리고 말았을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잔뜩 물려 주고, 강한 독성으로 제압하는 쪽이 수월했다.
수십 마리의 백사들이 몸을 물어뜯도록 내버려 둔다는 건 보통 강심장이 아니면 어려운 일.
그러나 헌터가 되기 전, 그러니까 투병 중에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는 참을 만했다.
그때는 정말 누나에게 죽여 달라고 사정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으니까.
‘인생에서 가장 무가치한 시간인 줄 알았는데,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인내심과 담력.
이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두 가지 요소는 아무래도 그때부터 만들어진 듯하다.
“어디 보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백사들을 한데 그러모았다.
내 몸 안에 가득 담긴 치유력 덕분에 물린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렇다고 대미지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이럴 때는 적당히 기력을 보충해 줄 필요가 있지.
촤악.
프라셀에서 돋아난 칼날로 백사의 몸을 가르자, 독으로 번들번들거리는 검은색 코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의 경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니 곁에 두는 것조차 꺼려지는 물건이지만 나에게는 훌륭한 도시락이요 영약이 된다.
샤르르…….
시간이 없으니 다섯 개는 바로 흡수하고, 남은 다섯 개는 품 안에 넣었다.
아마도 내 생각이 맞다면, 머지않아 남은 도시락을 모두 먹어야 할 거다.
좁은 입구를 나오자 울창한 밀림 지대가 나타났다.
무너진 신전과 하천에 이어 이번에는 밀림인가.
스읍.
코끝을 타고 자극적인 향이 밀려들어 온다.
울창한 숲에서 나오는 건지, 그 안에 숨어 있는 몬스터들에게서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일반 헌터들에게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장소라는 것.
아마 정상적인 호흡으로는 이곳에서 버티지 못할 거다.
대기 중에 밀도 높은 독성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물론, 나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괜히 3층을 나의 ‘홈그라운드’라고 칭한 게 아니다.
3층의 배경은 포이즌 던전과 매우 흡사했고, 서식하고 있는 마수들은 전부 포이즌 몬스터였다.
다른 장소는 몰라도 이곳만큼은 혼자가 편했고,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솔플’에 특화된 기술을 얻지 않았는가.
스콰마의 고유 스킬이 사용자의 블랙 에테르와 융합됩니다.>
신규 스킬 생성 : 독무(毒霧)>
숲속에서 살의 가득한 눈빛이 무더기로 느껴진다.
지금까지의 전장과는 달리, 마수들의 종류도 꽤나 다양해 보인다.
하나 지금은 녀석들을 일일이 상대할 시간이 없다.
무차별적인 말살.
그것을 위해 나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스스스스…….
몸 안의 에테르가 프라셀을 거쳐, 손바닥에 핀 아지랑이로 흘러들어 간다.
아지랑이 끝에서 흐릿한 기체가 점차 퍼지기 시작한다.
독으로 형성된 안개, 독무(毒霧)가 밀림 지대를 장악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초에 지나지 않았다.
-……!!
-키에엑!!
수풀 안쪽에서 기이한 외침이 들려온다.
외침?
아니 그건 차라리 비명 소리에 가깝다.
투두두두.
눈치 빠른 몇몇 놈들이 독무(毒霧)에 잠식된 수풀 지대를 탈출해 내 쪽으로 달려온다.
나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살기 위한 생존의 움직임이었다.
녀석들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것이다.
불청객을 죽이기 위해 자신들의 터전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데, 되려 그 공간이 사지가 되어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키에엑.
한차례 아비규환 같은 외침들이 지나고, 갑작스레 고요가 찾아왔다.
수풀을 탈출해 달리던 몬스터들도 곧 자리에 쓰러져 절명해 버리고 말았다.
‘기가 막히네…….’
어느 정도 위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독무(毒霧)가 퍼진 공간에 살아남은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었다.
보랏빛이었던 밀림의 색조차 검붉은 색으로 변해 버렸으니 말 다 한 수준이었다.
숲을 헤쳐 나갈 때 죽은 몬스터들의 수가 족히 수백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프랑코에게 이 광경을 보여 줬어야 했는데.’
단독으로 3층 던전을 돌파해 버린 내 모습을 보면, 놈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휴우.”
물론 이 기술에도 약점은 있었다.
워낙 대량의 에테르를 방사하다 보니, 시전하는 쪽에서도 에테르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밀림 지대를 장악했다고는 하나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숲의 저편에 있었다.
그 말은 곧, 보스 몹은 독무(毒霧)에 중독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미.
나는 미리 품 안에 두었던 ‘백사’의 코어를 꺼냈다.
바닥에 깔린 몬스터도 만만찮은 녀석들이었지만, ‘백사’의 코어만 한 것들이 없었다.
샤르르…….
“음. 좋아.”
인정하기 싫지만 나에게 이 블랙 코어는 아무래도 밥보다 더 좋은 영양분인 것 같다.
독무(毒霧)로 인해 고갈되었던 블랙 에테르가 상당 부분 회복이 되었다.
계단을 가로막고 있는 녀석을 해치우기 충분할 정도로 말이다.
수풀을 빠르게 헤친 나는, 곧 3층의 주인을 만나게 될 수 있었다.
“엥?”
너무나 뜻밖의 결과에 휘둥그레진 눈을 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