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지르르르!
맹독 지네가 온몸을 떨며 격한 분노를 표한다.
엑사가 이동형(Booster)으로 변하고 난 뒤부터, 몸을 스치기는커녕 내 발끝조차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멍청아.”
급기야 나는 녀석의 등허리를 뛰어다닐 정도로 여유를 찾았다.
탁탁탁.
-지르르르르!
맹독 지네가 격하게 몸을 좌우로 뒤틀었고, 나는 녀석의 등을 박차고 더 높이 도약했다.
언제까지 이놈의 상대를 해 줄 수는 없다.
나야 그렇다 쳐도, 비수에게는 타임아웃이 있었으니까.
상반신의 길이만 족히 2m는 넘는 녀석이다.
녀석의 대가리를 밟고 도약하면 지면보다 훨씬 더 높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어디 있냐……!’
공중에 뜬 상태로 블랙 에테르를 두 눈에 몰아넣는다.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지만, 소득은 있었다.
사막 저 너머에서,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는 물체가 보였기 때문이다.
동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특유의 빛깔.
마침내 희귀초를 찾은 것이다.
“심 봤다!!!”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저놈을 찾기 위해 포이즌 던전을 몇 개를 돌았던가.
나는 공중에 뜬 상태로 엑사의 에너지를 최대한 방출했다.
피융.
결과적으로 공중에서 또 다른 도약을 한 셈이다.
인간 로켓처럼 빠르게 쏘아져 나간 나는 희귀초의 앞까지 단숨에 도착했다.
문제가 있다면, 착지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쿵!!
“윽……!!”
상체부터 처박히다 보니 입은 물론이요, 코와 귀속으로 모래가 침투한다.
‘독보’를 처음 사용할 때도 그렇고, 새로운 기술(?)을 처음 시도할 때는 확실히 시행착오가 있는 모양이다.
-지르르!!
멍하니 나의 에어쇼(?)를 감상하던 맹독 지네가 급하게 땅속으로 몸을 파묻는다.
내가 추락한 곳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알아챈 걸 테지.
눈과 코가 따끔거리지만, 모래보다 이 녀석이 먼저다.
반짝.
넓디넓은 모래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희귀초.
동영화보다 잎사귀가 조금 더 풍성하고, 고고한 빛을 띠는 은색의 식물.
은영화(銀永花)다.
동영화보다 한 단계 더 수준 높은 희귀초라는 걸 자랑이라도 하듯, 영롱한 빛깔을 띠며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조심히 갈무리했다.
그 순간,
콰직.
“윽……!!”
미칠 듯이 달려온 맹독 지네의 뿔이 옆구리를 뚫는다.
조금만 안쪽으로 찔렸어도 내장이 터져 나갔을 거다.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피했겠지만, 은영화를 갈무리하느라 독보를 시전할 시간이 없었다.
‘뒤지게 아프네…….’
허용 범위 이상의 고통은 정신을 흐릿하게 만든다.
각성을 하기 전 통증에 시달릴 때 늘상 경험하던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았지만 여기서 정신을 잃을 수는 없다.
그나마 녀석이 날 깨문 게 아니라 뿔로 들이받아서 다행이었다.
내 피를 마시는 순간, 녀석은 나보다 먼저 황천길을 걸었을 테니 말이다.
푸슈슈슈슈.
보라.
저 단단해 보이는 뿔조차 내 피가 닿으니 먼지처럼 산화하고 있지 않은가.
-지르!!!
맹독 지네가 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친다.
한차례 피를 토한 나는 V1에 명령했다.
“다시…… 살상형으로.”
살상형(Dagger) 형태로 전환합니다.>
키링 키링.
둘로 나누어졌던 엑사가 하나로 합치며 예전의 단검 형태로 변화한다.
고통으로 정신이 나갈 것 같으면서도 신기한 기분이 든다.
사용자의 의사에 맞춰서 형태를 변화하는 헌터 디바이스라니.
진 박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괴물 같은 과학자였다.
스윽.
손을 내밀자 엑사가 자석이라도 달린 듯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엑사에 주입된 블랙 에테르가 내 의지에 따라 반응하는 것 같다.
오호라.
그렇다면?
옆구리가 너덜너덜해서 독보를 사용하기 힘든 상황.
설령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저렇게 지랄 발광을 하는 맹독 지네의 곁에서는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번 해 볼까.’
한 손은 옆구리를 짚은 채, 다른 한 손으로 엑사를 들어 머리 뒤로 넘긴다.
암살자가 살수를 펼치는 것처럼.
나는 맹독 지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쉬이익!
눈부신 하얀색 칼날.
‘백몽(白夢)’ 상태의 엑사가 맹독 지네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간다.
‘빠르다……!’
던지는 것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속도다.
엑사는 블랙 에테르를 양분 삼아 글자 그대로 ‘비행’을 하고 있었다.
-지르!
뿔이 사라져 버린 맹독 지네가 달려드는 엑사를 향해 대가리를 흔든다.
그러나 엑사는 맹독 지네의 공격을 유려하게 피한 뒤, 뒤쪽에서 맹독 지네의 목을 그어 버렸다.
-지르르…….
쏟아지는 잠에 저항이라도 하는 듯 맹독 지네가 다리를 허우적거린다.
그러나 천하장사도 눈꺼풀은 들 수가 없는 법.
녀석은 대가리를 처박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헉…… 헉…….”
자가 치유가 된다고는 하나 꽤 큰 부상이다.
만약에라도 근처에 비슷한 몬스터가 있다면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저 녀석의 코어를 흡수한다면 단번에 낫겠지만…….’
4성 몬스터의 코어를 흡수하면 얼마나 많은 블랙 에테르가 쌓이게 될까.
군침(?)이 도는 일이었지만 지금 당장 녀석을 죽이면 포이즌 던전이 소멸하게 된다.
출입 허가를 낸 적이 없는 던전이 닫히게 되면 헌터 협회에서 조사가 진행되겠지.
잠깐의 격통을 피하자고 헌터가 될 기회와 맞바꿀 수는 없다.
아까 등을 공격당했을 때 코어를 좀 남겨 놓을 걸 그랬나.
던전의 입구를 도착할 때가 되어서야 정상적인 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중상을 입었고, 맹독 지네는 뿔을 잃었다.
유일하게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건 딱 하나.
고고한 빛을 내뿜고 있는 은영화 한 송이였다.
* * *
너덜너덜하던 옆구리가 완전히 회복되었다.
특별히 치유 능력을 발동한 것도 아닌데.
이쯤 되면 내 몸이야말로 몬스터에 가깝지 않을까?
다만, 온몸에 힘이 빠져 ‘독보’를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민간인과 다를 바 없는 속도로 오다 보니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
“어?”
입구 앞에서 고개를 묻고 쭈그려 앉아 있는 인영이 보인다.
비수다.
두 시간 반이 지나면 돌아가겠다더니,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야! 너 왜 안 나가고 그러고 있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세 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해독제의 유효 기간이 이미 끝난 뒤다.
“……왜 이렇게 늦게 오는데?”
비수가 내 얼굴을 보더니 툴툴거린다.
그러나 도발적인 눈매 사이의 눈동자에 핏줄이 바짝 서 있다.
중독 증세다.
“부상을 당해서 빨리 올 수가 없었어.”
“그러기엔 너무 멀쩡해 보이는데?”
비수가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음. 이건 좀 억울한데.
이미 자가 치유가 완료되었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하자가 없어 보일 거다.
구멍이 뚫려 버린 옷 사이로 뽀얀 피부가 드러나 보인다.
“설명은 나중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보니 일은 다 끝낸 것 같은데.
독을 마시면서까지 여기서 기다리는 이유가 뭐야?
나는 부리나케 비수를 둘러업었다.
“꺅! 뭐 하는 거야?”
“잔말 말고 있어.”
안색도 파리하고, 목소리도 갈라져서 나온다.
나는 비수를 업은 채 던전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뽀리.”
-꾸왕!
말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는 듯, 뽀리가 내 몸 안의 독을 잔뜩 집어삼켰다.
비수를 치유를 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이렇게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익숙한 독도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끄윽.
뽀리가 트림을 하며 날개짓을 한다.
소화라도 시키는 건가.
저런 모습을 보면 인간의 행동과 정말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으음…….”
중독 증세가 심해졌는지 비수의 의식이 흐려진다.
해독제가 있다고는 하나, 이런 위험한 곳을 수시로 드나들다니.
암시장에도 나처럼 치유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긴 한 걸까.
새삼 야차의 비정함을 느끼며 손끝에 치유력을 집중시켰다.
샤르르르…….
블랙 에테르도, 독도, 치유력도 고갈되다 보니 몸속이 텅 빈 느낌이다.
돌아오는 길에 고블린을 흡수하면 좋았으련만.
출발할 때 녀석들을 모두 불러 모은 게 되려 안 좋은 수가 되어 버렸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여분의 블랙 코어를 포션처럼 남겨 두어야 한다.
이번 던전에서 얻은 값진 교훈이었다.
“후암~”
비수의 치유가 끝났다.
미리 마신 해독제 덕분인지 중독 증세가 심하진 않았고, 그녀는 낮잠이라도 잔 것처럼 개운한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신세 좋아 보인다?”
“그러게 빨리 왔어야지.”
“먼저 간다고 하더니 왜 기다리고 있었던 건데?”
“그야……네 모습이 안 보이니까…… 에잇.”
비수가 우물쭈물하더니 갑자기 팔꿈치로 내 가슴팍을 때린다.
“아얏!”
바보 아냐?
물리 레벨 ‘D’로 만들어진 신체를 뭐로 보는 거냐.
비록 블랙 에테르가 거의 고갈되었지만 신체를 보호할 정도는 남아 있다.
비수는 눈물을 찔끔하며 팔꿈치에 입김을 불었다.
“시바. 온몸이 무쇠로 되어 있나…….”
“크크크.”
“다음부터는 빨리 와. 나한테는 던전 밖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으니까.”
“…….”
아.
그런 건가.
암시장에서 몸담고 있는 비수에게 ‘평범한 바깥세상’ 같은 건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날을 바짝 세우고 돌아다닌 거였나.
“노력해 볼게. 운전은 할 수 있겠어?”
“해야지. 아무리 힘들어도 너한테 핸들을 잡게 할 순 없잖아.”
“불법 면허 주제에 으스대기는.”
“걸어갈래?”
“가시죠. 베스트 드라이버님.”
비수와 나는 눈을 마주치며 피식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건 찾았어?”
“당연하지.”
나는 품 안에서 오늘의 소득을 꺼내 보여 주었다.
“우와!!!!!”
비수의 눈이 세 배는 커진 것 같다.
사실 비수가 아니라 누구라도 놀랄 만한 물건이다.
달빛을 받아 고귀하게 빛나는 은영화는 세상 어떤 보석보다도 기품 있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최상품 중의 최상품이야. 잘하면 억 단위를 넘길지도 모르겠어.”
“그래야지. 고생한 게 얼만데.”
비수가 제 일처럼 기뻐하며 힘껏 액셀을 밟는다.
부아아앙.
운전 솜씨는 나무랄 데가 없는데 이놈의 과속은 정말이지 적응이 안 된다.
내가 시전하는 ‘독보’에 비하면 오히려 차 쪽이 느린데.
왜 조수석에만 앉으면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거지?
* * *
두 달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비수가 알고 있는 ‘멀쩡한’ 포이즌 던전은 총 열다섯 곳이었고, 나는 그중에서 은영화 한 송이, 그리고 동영화 다섯 송이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희귀초를 거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가 원한다고 해서 언제나 야차를 만날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뭐 그렇게 잘난 양반이라고 예약까지 해야 돼?”
“내가 말했잖아. 암시장을 처음 입장한 사람이 야차를 만난다는 자체가 천운이었다고.”
뭐, 희귀초의 성분을 밖으로 추출하지 않는 한 꽃이 시들 일은 없다고 하니 큰 상관은 없었다.
나와 비수는 정해진 날짜, 그러니까 헌터 자격 시험 이틀 전에 암시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이래저래 눈치가 보였을 텐데, 누나는 한껏 아쉬운 얼굴로 비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언제라도 좋으니 다시 놀러 오렴.”
“그럴…… 게요. 언니.”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 담겨 있다.
누나의 눈매는 언제나처럼 서글서글했지만, 비수의 시선은 땅에 박혀 있었다.
땅바닥을 향해 눈물이 똑똑 떨어졌고, 누나는 안쓰러운 미소와 함께 그녀를 안아 주었다.
아마 누나가 했던 인사만큼 쉽게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비수는 야차의 손아귀에 있는 사람이고, 이렇게 오랫동안 바깥세상에 있을 기회는 흔한 게 아닐 테니까.
“가자.”
“……응.”
나라고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헌터로서의 능력조차 제대로 개화하지 못한 상태다.
언젠가 충분한 힘과 부를 손에 넣는다면, 그때는…….
“다 왔어.”
암시장을 보고 마음을 정리한 것일까.
비수의 목소리는 처음 만난 그때처럼 차갑게 변해 있었다.
지하철 입구를 지나고 보니 예전에 돌아다녔던 광장이 보인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뻗어 나간 초거대 시장.
이곳의 모든 사람이 야차에게 세를 낸다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암시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곳은 일상의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이름이 있는데, 너무 조용한 거 아니야?
휘융.
라고 생각하는 순간, 커다란 물체가 나와 비수 사이를 빠르게 통과한다.
물체?
아니, 그건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암시장에서 거래하는 상인 하나를 집어 던진 것이다.
“쿨럭……!!”
날아간 상인은 꽤 후덕해 보였다.
체중이 적잖이 나갈 것 같은데, 저 남자를 집어 던졌단 말이지?
“아얏!”
상인을 집어 던진 남자가 나와 비수 사이를 헤집고 통과한다.
내 어깨가 욱신거릴 정도니, 비수에게는 꽤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새끼 봐라?
“좋은 말로 할 때 내 돈 내놔. 아니면 1분당 하나씩 네 사지가 뜯겨 나가게 될 거야.”
그렇지.
이래야 암시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