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9)
19화
인간의 체형과 헌터 타입은 연관성이 있는 경우도 있고, 전혀 무관하기도 하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나는 나이트 타입이요’라고 써 붙인 수준이다.
탄탄하게 다져진 두꺼운 상체와 불룩 튀어나온 태양혈.
전신에 가득 두르고 있는 에테르의 기운과 손에 끼고 있는 너클(knuckle)형 디바이스까지.
얼굴과 팔 여기저기에 난 상처들을 보니 근접 전투형 헌터인 것 같다.
“나 참…….”
바보 아냐?
이것저것 분석할 필요가 없이, 상대방을 확인할 ‘가장 편리한 방법’이 있지 않은가.
나는 마음속으로 가장 편리한 방법을 사용했고, V1은 기다렸다는 듯 사내의 정보를 알려 주었다.
김관태 / 헌터 타입 – 나이트(전사) / 물리 등급 ‘B’ / 소속 : 타이거 길드(창원) / 고유 특성 : 광기(★★) #압도적인 힘# ONE ON ONE 달인 # 차력쇼 #서브 탱커>
“오…….”
생각보다 놈의 스팩이 괜찮다.
B랭크의 헌터라면 그 물리력은 성인 남자의 수백 배 이상일 터.
퉁퉁한 체격의 상인이 종이비행기처럼 날아간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지.
되려 힘을 죽였다고 봐야 할 거다.
콰직! 퍽!!
암시장을 순찰하던 직원 몇 명이 달려들었으나 그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김관태는 너클로 난도질을 하듯 묵사발을 내 버렸다.
그 기세가 얼마나 흉흉했던지 주변 사람들이 점점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김관태가 준비 운동이라도 한 듯 고개를 까닥거리더니 다시 상인을 향해 다가간다.
“돈 더 내놔.”
“크윽……. 이미 한번 거래를 했으면 끝이다……. 그게 이곳의 룰이야.”
“룰? 룰 같은 소리 하네. 이런 그지 같은 암시장이 무슨…….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걸 내 친히 보여 주지.”
김관태가 손바닥으로 상인의 뺨을 수차례 때린다.
돈을 돌려준다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는 계속 저럴 모양이다.
철썩.
상인의 입술이 터지고, 벌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숫제 푸르딩딩해진다.
거의 반은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저러다 죽는 거 아니야?
폭행을 멈출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때리면 때릴수록 김관태의 얼굴이 점점 험악하게 변해 간다.
고유 특성 감지 : 광기(★★)가 발동합니다.>
광기라.
좀 전에 순찰 돌던 놈들과 전투를 끝낸 상태라서 그런가.
상대가 누구건, 일단 피를 보면 더 흥분하는 그런 사이코인 것 같다.
‘광기’라는 이름답게 녀석은 매질은 더욱 혹독하게 이어졌다.
어이.
진짜 죽는다고.
보다 못한 나는 비수에게 물었다.
“안 도와줘?”
“응.”
“상인이 거래하다 죽는 것도 본인 책임인가?”
“아니.”
김관태를 바라보는 비수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 있다.
B랭크의 헌터를 비수가 제압하는 건 당연히 무리다.
하지만 비수는 특별히 사람을 부르려는 것 같지도 않다.
“일을 처리할 사람이 따로 있으니까.”
비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그만두시오.”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 재수 없는 구건이가 떠오른다.
음성 안에 담긴 ‘무언가’가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
그 힘은 ‘광기’ 상태인 김관태의 동작조차 멈추게 만들었다.
거참, 배우고 싶은 기술일세.
“넌 뭐야. 여기 책임자야?”
“책임자는 오직 아버지 하나요. 난 지금 같은 소란을 정리할 뿐이고.”
말이 ‘아버지’지, 실제로는 야차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
하얗게 센 머리를 짧게 친 50세 전후의 아저씨.
참전 용사가 나이가 들면 저런 느낌일까.
그 강직한 인상을 보니 그제야 기억이 난다.
야차와 거래를 할 때, 한쪽에 서서 내 거래를 지켜보던 사람이다.
“과연. B랭크 헌터를 제압하려면 그 정도는 나와 줘야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수가 뚱한 표정으로 묻는다.
“저 새끼가 B랭크라는 건 어떻게 알아?”
당연히 알지.
헌터 협회 정보를 해킹하는 V1이 내 눈에 결합되어 있는데.
그러나 그 사실을 곧이 말해 줄 수는 없었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흥. 시시하긴.”
졸지에 시시한 남자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상급 헌터와 암시장 관리인의 싸움이 벌어지는데,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스치기만 해도 죽어 버리는 내 쪽의 싸움과 달리, 저들은 제대로 된 ‘전투’를 펼치게 될 거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내게는 좋은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옆의 가게에 물어보니 희귀종인지도 모르고 몬스터를 싼값에 넘겼다던데. 그런 경우는 암시장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보상받지 못합니다.”
“크흐……. 처맞고 오줌 구멍이 줄줄 샐 때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보지. 개나 사람이나 매가 약인 건 매한가지니까.”
이쯤 되면 누가 암시장 쪽 사람이고 누가 헌터인지 헷갈릴 정도다.
저 자식은 헌터라는 놈이 하는 짓은 깡패나 다를 바가 없군.
“여기선 사람이 죽어도 정부가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래서 죽이려고 하셨소?”
“그래. 그래야 다음에 올 때 이 병신 새끼들이 사기 칠 생각을 안 할 테니까.”
“아니. 다음은 없소.”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나는 절로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관리인의 눈에서, 서슬 퍼런 한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늘 죽을 테니까.”
암시장 관리인이 전투태세를 취한다.
저 자세는 뭐지?
복싱도 아니요, 무에타이나 레슬링과도 거리가 먼 자세다.
상대를 정면에서 보는 게 아니라 90˚로 비껴 서서 바라보고 있다.
한쪽 어깨의 끝이 상대를 겨냥하는 느낌이다.
“지랄하네.”
김관태의 전신을 뿌연 빛이 감싼다.
나이트 타입 헌터들의 힘의 근원.
흰색의 에테르가 갑옷처럼 그의 몸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에테르로 무장을 한 김관태가 거칠 것 없는 동작으로 신형을 움직였다.
‘빠르다……!!’
이제까지 몬스터를 상대했을 때 가장 빨랐던 건 4성(★★★★) 난이도의 맹독 지네였다.
그러나 속도만 따지면 김관태 쪽이 더 빠르다고 느껴질 정도다.
눈 깜짝할 새에 그는 관리인의 가슴팍에 도달해 있었다.
휘웅-
서슬 퍼런 기운과 함께 김관태가 너클을 휘두른다.
그 너클은 유려한 움직임과 함께 얼굴에 꽂혔다.
관리인이 아니라, 김관태 자신의 얼굴로.
퍼억!
“??????????”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무슨 일이야?
주먹을 뻗은 건 분명 김관태인데, 얼굴이 묵사발이 된 것 또한 김관태였다.
자기가 자신의 얼굴을 때렸다는 말이다.
“와……. 난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비수의 말에 나도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뭘 어떻게 되받아치면 저런 구도가 나오는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관리인의 근접 격투술이 일반적인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점이었다.
“으…… 헙……!!”
깜짝 놀란 김관태가 두어 걸음 물러난다.
한 손으로 가린 그의 얼굴에서는 피가 주룩주룩 흐르고 있다.
그는 퉤, 하고 이빨 몇 개를 뱉은 뒤 다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과연, B랭크는 B랭크다.
저렇게 무참한 얼굴이 되고도 에테르의 기운이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김관태의 광기(★★)가 최대치로 발동합니다.>
근전투형 나이트는 온몸이 무기가 된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먹과 팔꿈치, 무릎과 다리, 심지어는 박치기까지 시도해 보지만, 관리인은 털끝만큼의 타격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도리어…….
콰직!
“크아아아아아아악!!”
김관태의 끔찍한 비명이 광장을 가득 메운다.
뒤돌려차기를 하던 와중 관리인의 수상쩍은 손동작에 대퇴부 관절이 꺾여 나간 것이다.
“으…….”
지켜보던 관리인 몇몇이 더는 볼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피는 물론이요, 새하얀 뼈가 피부를 뚫고 나와 있어 끔찍한 형상이었다.
힐러가 당장 도와주지 않는다면 평생 불구가 될지도 모르는 타격이다.
“으아아아!!”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내가 이내 혼절해 버렸다.
B랭크 나이트가 몇 합을 겨루지도 못한 채 쇼크 상태에 빠진 것이다.
죽지는 않을 테지만, 그를 건사해 줄 인간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가자. 죽으면 청소부가 와서 치울 거고, 살면 지가 기어서 나가겠지.”
심플하네.
나는 비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관리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러모로 정체가 궁금한 남자다.
암시장답지 않게 정직하게(?) 생긴 얼굴도 그렇고, 무엇보다 동작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예술에 가까웠다.
도대체 어떤 전투 방식을 익힌 걸까?
한번 확인해 보자.
현재 등록이 말소된 헌터입니다. 삭제 당일의 기록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중앙 데이터에 접속해야 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언제는 뭐 허락받고 했냐.
진행해.
중앙 데이터베이스 접속 중…… 접속 확인.>
소실된 데이터라 그런지 정보가 몇 개 없군.
이름은 오지호.
나이는 49세.
스스로의 능력을 기입하는 해시태그에는 그 어떤 특성도 보이지 않는다.
헌터 특유의 허세나 허영심은 없다는 이야기인데.
고작해야 삭제 당시의 물리 등급만이 확인 가능……??????
“뭐?”
내가 갑자기 멈추어 서자 비수가 고개를 갸웃한다.
“왜 그래?”
그러나 그녀에게 대답을 해 줄 경황이 없다.
눈을 두어 번 깜빡여 보아도, 세차게 손등으로 비벼 보아도 마찬가지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텍스트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말도 안 돼…….”
‘E’.
B랭크 헌터를 어린아이 손목 비틀듯 제압한 오지호의 등급은,
놀랍게도 ‘E’였다.
* * *
비수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는 와중에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오지호의 등급이 S일까 A일까 궁금했는데, 고작해야 ‘E’라니.
김관태는 물론이고 심지어 지금의 나보다 낮은 랭크다.
비상식적인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지금의 내가 오지호처럼 김관태를 무력화할 수 있을까?
그것도 털끝 하나 안 다치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가능해.’
물론 죽일 수야 있을 거다.
녀석은 근접 전투형이고, 엑사에 살짝 긁히는 정도로도 다른 생명체에게는 치명상이 되니까.
그러나 이쪽도 꽤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할 거다.
어쩌면 랭크 시스템이란 거, 생각보다 부정확한 게 아닐까?
랭크 시스템은 헌터 협회에서 수십 년 동안 데이터를 모아 제작한 가이드라인으로, 에테르의 양과 사용자의 특수 능력을 포함한…….>
의심스러워하는 나를 향해 V1이 설명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 없다고.
진 박사의 연구소에서 하루 종일 보던 게 헌터 관련 자료들이니까.
V1의 기록을 보니 오지호가 헌터 자격을 말소한 건 3년 전의 일이다.
3년 동안 그의 실력이 세 단계 이상 상승한 걸까?
나는 좀 전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불가능해.’
“왜 그렇게 말이 없어?”
“어……. 아까 본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지? 우리 관리인 삼촌 실력을 보고 눈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 없긴 해.”
비수가 자기 일처럼 콧대를 세운다.
그 기세등등한 얼굴 속에 오지호에 대한 호감이 느껴진다.
“암시장 사람들은 전부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맞아. 다 개새끼들이거든. 근데 관리인 삼촌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몇 안 되는 인간적인 사람이야. 말수가 적은 게 흠이지만.”
비수는 전처럼 시장의 이곳저곳을 통과하며 나를 안내했고, 야차는 처음 만났던 높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시발.
황제냐?
나는 아니꼬운 눈으로 야차를 노려보았다.
짐승의 갈기를 연상케 하는 거친 장발과 범을 닮은 부리부리한 눈.
보는 것만으로 기가 질리는 등빨까지.
정말이지 날것의 느낌이 가득한 놈이다.
야차가 내 모습을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실력이 많이 늘었군.”
“그걸 어떻게 알지?”
“지금까지 뒤지지 않은 걸 보면 알 수 있지.”
열 받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포이즌 던전을 돌면서 각종 능력치가 상승했으니까.
비수가 준 앰플 덕에 몬스터들을 손쉽게 사냥했으니, 야차의 덕을 봤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인정하기가 싫을 뿐이지.
“됐고, 거래나 시작하자.”
“그러지.”
야차가 거대한 몸을 일으키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야차와 거래를 재개할 때가 왔다.
그동안 포이즌 던전을 벌며 노가다를 뛰었던 거래.
거기에 더해서, 조금 전에 생각해 낸 특별한 거래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