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해선아!”
“아저씨!”
“이런…… 발…… 이!!”
서로와 서로가 멀어지면서 목소리가 끊기기 시작한다.
다행히 영물들처럼 몸이 찢겨 나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날아가는 와중에도 기가 막힌 심정이었다.
영계에서 스킬을 발동하다 보니 위력이 반감되었다고는 하나, 쏟아진 물리력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의 위력을 고스란히 인간계에 적용한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쓸어 버렸을 것이다.
하나 회오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기승을 부렸고, 나를 포함한 모두를 빙빙 돌리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다.’
눈앞의 전경이 일순간 황금색으로 물든다.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회오리에 염동력이 먹혀들 리 만무.
나는 몸 안에 있는 메루스를 몽땅 끄집어 오른팔에 집중시켰다.
화륵.
본래의 ‘독염’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판세를 바꾸려면 이것밖에는 없었다.
황금색과 검은색이 섞인 불꽃을 회오리에 욱여넣을 찰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텅.
텅.
마치 한 명 한 명 골라서 솎아 내기라도 하듯, 회오리 밖으로 동료들이 하나씩 튕겨져 나간 것.
“?!”
그 기괴한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질 무렵, 나 또한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회오리 바깥으로 튕겨져 나갔다.
파박.
날아가는 와중에 ‘독보’를 사용해 공중에서 자세를 잡았다.
‘스카이워크’를 사용하면서 재빨리 주변을 살펴보니, 이미 떨어져 엎어진 덩치 큰 헌터 한 명이 보였다.
빙그르르.
한편으로, 균형을 잃고 곤두박질치는 여리여리한 체형의 헌터도 보였다.
“마리아!”
나는 이를 악물고 독보를 최대 출력으로 전개해 마리아의 몸을 낚아챘다.
“흐읍.”
경황이 없어 힘이 들어가다 보니 마리아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다친 곳이 없어 보여 다행이었다.
탁.
나는 마리아를 안은 상태로 쓰러진 동료의 옆에 착지했다.
“철완 아저씨!”
“으음……. 괜찮습니다.”
떨어질 때 충격이 있었는지 육철완이 고개를 가볍게 털었다.
마리아가 내 팔에서 내리자마자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죠? 다른 헌터들은 어디로 간 걸까요?”
“저도 모르겠어요. 다만 서로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이런 평지에서도 전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회오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신이 농간이라도 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대체 무슨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면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확실한 건, 그 주체가 우리의 편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 * *
휘리리릭.
“쳇!”
제아무리 뛰어난 밸런스를 갖춘 인간이라도 이런 바람에 휘날리다 보면 자세를 갖추기 어려운 법이다.
사일리아는 욕설을 씹어뱉으며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뭉클.
“?”
그런데 어디선가, 그의 몸을 사뿐히 받쳐 주는 커다란 이파리가 나타났다.
“이게 뭐야?”
그 이파리의 끝을 따라가다 보니, 놀랍게도 자그마한 체형의 어깨와 맞닿아 있었다.
‘아…… 맞아.’
저 녀석이 바로 ‘기타 능력자’였지.
이파리가 받쳐 준 덕분에 사일리아는 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파리의 보호를 받고 있는 존재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잉센!”
“난 괜찮아!”
잉센이 ‘초월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에스퍼 계열은 기본적으로 몸이 약하다.
잉센이 무사한 걸 확인하자 딱딱하게 굳었던 사일리아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아직까지 발견된 사상자는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탁.
탁.
이파리가 그들을 안전하게 바닥으로 인도해 주었다.
잉센이 강정현에게 다가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사일리아는 잠시 동안 강정현을 응시한 뒤 들릴 듯 말 듯 한 인사를 전했다.
“신세 졌다.”
강정현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잉센에겐 그녀의 발음이 확실히 들렸다.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잉센의 눈이 두 배로 커질 만큼, 그녀가 다른 헌터에게 고맙다고 하는 건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강정현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다른 헌터들은 어디로 간 거죠?”
사일리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도 우리처럼 각자 튕겨져 나갔겠지. 어째서 우리 셋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일리아의 시선에 잉센이 헛기침을 말문을 열었다.
“다행히 회오리 자체에 큰 살상력은 없었어. 영물들이 죽기는 했지만, 아마도 힘이 약한 종이었을 거야.”
잉센의 말에 두 명의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퍼인 잉센이 멀쩡한 걸 보면 확실히 회오리만으로 다치게 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우리를 이곳에 날려 보내는 것.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마치 간택이라도 하듯 우리 셋을 같은 장소에 보냈잖아. 만약 회오리에 특별한 목적이 있다면, 아무래도 힘을 분산시키려는 것 같아.”
“힘을 분산시킨다라…….”
서로의 힘이 시너지를 못 내도록 인원을 찢어 놓는다.
잉센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너무나도 인간적인 방법이었다.
인간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면서, 지성까지 소유한 존재……?
[정답이야, 친구.]사일리아는 순간적으로 피가 식는 기분을 느꼈다.
제대로 인지도 못 하는 사이, 알 수 없는 존재가 그들의 곁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번쩍.
사일리아가 반사적으로 카테나를 휘둘렀지만,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어느 틈에 그 존재는 수 미터 밖으로 이동해 있었다.
“너는……!”
동공이 존재하지 않는 기괴한 눈.
인간보다 족히 1m는 커 보이는 신체.
하얗다 못해 송장처럼 푸른 기운이 느껴지는 피부색.
결정적으로,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보랏빛 기운.
잉센이 신음과도 같은 목소리를 토해 냈다.
“마인……!”
* * *
“이런…… 같은…… 이 ……놈아…… 그만……!!”
‘적어도 살아는 있군.’
몸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저렇게 욕지거리를 뱉을 수 있다니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
첸은 그런 생각과 함께 공중에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릭.
검무는 비단 땅에서만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후좌우 360도 어디서든 검을 뻗을 수 있는 것이 그만의 검무였고, 검을 뻗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균형 감각이 남다르다는 이야기였다.
첸은 날렵하게 신형을 움직여 한 팔로 비수의 허리를 안았다.
“꺅!”
“가만있어.”
저 가녀린 팔에 어찌나 강한 힘이 깃들어 있는지, 첸은 비수를 안은 상태로 몸의 방향을 틀어 바닥에 내려왔다.
“고마워 첸. 하마터면 뒈질 뻔했네.”
첸은 비수의 인사에 대답하는 대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날아간 시간을 어림짐작해 보면 원래 있던 곳과 제법 거리가 있을 것이다.
왜 하필 여기일까.
그리고 왜 하필 자신과 비수뿐일까.
“단순한 우연……? 아니면…….”
휘이잉.
“읏…….”
비수는 반사적으로 양팔을 움켜잡을 수밖에 없었다.
소름 끼치는 한기가 등골을 타고 올랐던 것.
음울한 바람이 한차례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갔고, 곧 바람과 비슷한 목소리가 그들을 불렀다.
‘……어느 틈에.’
첸이 눈을 치켜뜬 채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본디 바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법.
그러나 첸과 비수는 바람을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존재의 주변에서, 보랏빛 일렁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넌 뭐야 개자식아. 네가 우리를 여기로 보냈냐?”
비수의 앙칼진 목소리에 눈앞의 존재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네 이름이 비수냐?]“그래. 어쩔래.”
비수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지만, 첸의 얼굴은 조금 더 사납게 변했다.
어쩐지 놈이 말한 뉘앙스가, 비수에게 특정한 목적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선택받은 자라는 게 무슨 소리지?”
첸이 ‘보검’의 손잡이에 슬쩍 손을 올리며 물었다.
[모든 것이 너희에게는 축복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 우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평범한 인간들은 누릴 수 없는 혜택이지.]“우린 별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맞아. 네 낯짝을 보아하니 곧 뒤질 것 같은데, 만담은 저승사자하고나 하라고!”
성질 더러운 사람이라면 울컥했을 법한 반응이었지만, 눈앞의 존재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는 그저, 담담히 자신의 말을 이어 갈 뿐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축복은, 우리 일족의 손에 최후를 맞이한다는 거겠지. 비루한 인간 중에서도 그나마 인정받은 ‘처형’ 대상이라는 거다.]“!”
비수가 질겁을 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반대로 첸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꽤나 비슷한 면이 있네.”
첸이 칼집에서 보검을 꺼내 들었다.
“나도 널 보자마자 죽여 버리고 싶었거든.”
빙긋.
첸의 대답에 눈앞의 존재가 다시 뱀 같은 미소를 지었다.
마계를 지배하는 열두 명의 마인.
차원의 이동과 바람을 다루는 서열 12위, 두덱(Duodec: 열두 번째).
[그때 만난 벌레도 네놈처럼 시건방지기 짝이 없었지.]“……누굴 만났다는 거지?”
[기억 안 나나? 네놈 일행들 중에서 양팔이 날아간 놈이 있을 텐데.]“!!!”
내내 침착함을 유지하던 첸이 처음으로 표정 변화를 일으켰다.
그럼.
천해선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힌 마인이 바로 이놈이란 말인가.
“몽땅 끄집어서 줘.”
파지지직.
아직 전투는 시작도 안 했거늘, 첸의 검에서는 벌써부터 스파크가 튀었다.
“알았어.”
첸의 말에 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을 집중했다.
천해선도 감당하지 못한 상대를, 우리 둘이서 이겨 낼 수 있을까?
마음속 불안함을 억지로 외면한 채, 비수가 가지고 있는 모든 버프를 첸에게 몰아주었다.
파지지지직.
출수를 하기도 전부터 보검의 표면에 오색찬란한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보통의 상대라면 긴장을 하는 것이 당연.
그러나 두덱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과연.]“과연은 얼어 죽을.”
그 말을 신호로 첸이 두덱을 향해 뛰쳐 들었다.
본래 ‘벼락검’은 흰색이고, 첸이 전심전력을 다할 경우 프라니움의 빛깔처럼 변하게 된다.
사일리아와 대련을 할 때조차 최후의 보루로 아껴 두었던 비기를, 첸은 처음부터 꺼내 들었다.
“하압!”
꽈르르르릉.
첸이 검을 휘두르자 오색의 전격이 튀어나와 두덱을 덮쳤다.
[…….]두덱은 피할 생각도 없이 슬쩍 한 팔을 들어 올렸다.
언뜻 보면 자살행위에 가까운 일.
하나 두덱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다.
쾅!!!!!!!!!!!!
평소 같았으면 비수의 입에서 ‘해치웠나?’라는 말이 나왔을 터.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때와 비교해 모든 동료들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녀석은 천해선을 이겨 본 상대가 아니던가.
“!”
비수의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처음 벼락검을 맞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두덱은 꼿꼿이 자리에 서 있었다.
휘릭.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는 듯, 첸이 공격을 멈추지 않고 검무를 이어 갔다.
캉! 캉!
슬쩍슬쩍 피하거나, 한 팔로 막아 내거나.
보는 사람이 넋을 잃고 쳐다보게 되는 검무였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두덱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몸이 뭐로 되어 있는 거야?’
연이어 파상 공세를 이어 가는 와중에도 첸은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소재로 만들어진 검이다.
제아무리 단단한 광물도 단칼에 쪼개지는 명검이거늘, 두덱에게는 조금의 상처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철과 철이 부딪치듯, 둔탁한 타격음만이 전해질 뿐.
하나 이런 전개조차, 첸의 예상 범주 안에 있었다.
화려한 검무는 이다음 수를 위한 사전 동작이었을 뿐.
휘익.
첸은 천해선에게 배운 환격을 사용해 두덱의 등 뒤로 침투했다.
전력을 담은 일격을 옆구리에 꽂아 넣으려는 찰나.
갑자기 두덱의 목이 180도로 꺾였다.
“!”
인간이라면 당연히 불가능한 기괴한 모습이었다.
상체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반대로 꺾인 두덱의 머리는 정확히 첸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두덱의 동공 없는 흰자가 검게 물들었다.
콰직.
천해선의 팔을 날려 버린 쐐기가 첸의 옆구리를 뜯고 지나갔다.
초인적인 반사신경이 아니었다면 이미 몸이 반으로 갈라졌을 터.
공중으로 피를 흩뿌리며 첸이 초원 위를 나뒹굴었다.
“첸!!!!!!!!!!”
비수가 비명을 지르며 첸에게 달려갔다.
단 일격.
그동안 첸이 공격했던 횟수가 무색하게, 첸은 단 일격에 빈사 상태가 되고 말았다.
“으음…….”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신음 소리가 첸에게서 흘러나왔다.
기분 탓일까.
첸의 몸이 조금씩 차갑게 식어 가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느껴 보는 압도적인 실력 차.
절로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를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해선아…… 마리아…….’
겁에 질린 비수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