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꽈르르르르릉.
[크아아아아악!]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비명이 두덱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비수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철옹성처럼 단단한 마인의 방어벽을 처음으로 무너뜨린 것이다.
“잘했어! 첸! 이대로……!!”
그러나 비수의 얼굴은 곧 절망으로 물들어 버렸다.
그녀의 눈에 얼굴을 쳐박고 쓰러진 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이런…….”
희망의 빛이 잠깐 비췄기 때문에, 그녀가 느끼는 절망은 더욱더 큰 것이었다.
이곳에 남겨진 멤버라고는 자신과 첸 둘뿐.
그나마 유일한 전투 요원인 첸이 빈사 상태가 된 이상, 두덱을 저지할 인물은 없었다.
“비는……!”
비수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좀 전에 보았던 황금 벌의 흔적을 쫓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비’는 이미 자신의 생명을 다한 뒤였다.
두덱에게 유효타를 입히기 위해, 스스로 벼락검과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큭…….]비수의 귀에 마인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방금의 일격으로 뒈져 버렸다면 좋았으련만.
유감스럽게도 마인을 소멸시킬 정도의 타격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방금의 기운도 네년의 짓인가?]“……내가 왜 대답을 해야 하지?!”
비수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대답했고, 두덱은 뱀처럼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뭐. 좋아. 안 그래도 널 데려가서 이것저것 확인할 생각이거든. 솜털 하나하나. 세포 하나하나 구석구석 뜯어봐 주지.]마인의 말에 비수는 피가 식는 기분을 느꼈다.
이대로 마계로 끌려가 시험체로 쓰인단 말인가?
바닥 밑에 지하가 있다더니, 기껏 암시장을 빠져나온 비수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두덱이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비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그 어떤 구조의 손길도 보이지 않았다.
“……앓느니 죽지.”
[?]갑자기 비수의 표정이 더없이 환하게 바뀌었다.
안 그래도 화려한 얼굴이 눈부신 표정을 만나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비수는 방금, 죽기로 작정했다.
“엿이나 먹어.”
두덱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린 뒤, 비수가 혀를 깨물었다.
콰악.
입에서 피비린내가 막 느껴질 무렵, 비수는 아찔한 충격에 힘을 뺄 수밖에 없었다.
어느 틈에 다가온 두덱이 그녀의 목을 조른 것이다.
“켁……!!”
[우리에게 선택받은 이상,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놔…… 이 개새…….”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입에서는 거품이 새어 나왔다.
비수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외치고 있었다.
누가 와서 첸과 자신을 도와주기를.
어서 이 빌어먹을 마인에게 한 방 먹여 주기를.
그러나 점점 흐려지는 시야 안에 다른 헌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새카맣게 물들어 버린 두덱의 눈동자와,
-꾸.
나직한 울음소리만 들려올 뿐.
‘울음소리?’
멀어져 가는 의식을 부여잡는 작은 울음소리가 있었다.
천해선이 풀어놓은 ‘비’의 날갯짓과는 다른, 예전부터 들어왔던 익숙하고 친근한 울음소리.
그건 바로……
-꾸르르…….
‘뽀리?’
그제야 비수는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언제나 천해선의 어깨에만 올라타 있던 뽀리가, 최근 들어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무게도 느껴지지 않고 딱히 울지도 않았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쿠르르…….”
그런데 좀 이상하다.
원래부터 뽀리의 울음소리가 이렇게 컸었나?
항상 포효인지 옹알이인지 의심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던 뽀리였다.
한데 지금은, 뽀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팍!!
이상한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비수의 목을 움켜쥐던 두덱이 용수철처럼 뒤로 튀어 나간 것.
심지어 두덱의 가슴팍에는 기다란 세 줄의 상처가 나 있었다.
한눈에 봐도, 벼락검으로 인한 상처가 아니었다.
“설마…….”
비수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를 돌아보았다.
분명 이쪽에서 울음소리를 들었는데, 어느새 그녀의 어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크르르…….”
대신, 머리 위로 굵고 낮은 음성이 들렸다.
이제는 예전의 귀여운 느낌이 전혀 남지 않은 수준이었다.
“맙소사……!”
비수의 매끄러운 눈매가 두 배로 커졌고, 벌린 입은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았다.
암시장과 포이즌 던전을 비롯해 세상 희한한 일을 많이 목격한 비수였지만, 지금과 같은 경험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펄럭펄럭.
앙증맞던 날개가 하늘을 뒤덮을 만큼 자라 있었고, 손가락을 쓸어야 겨우 느껴졌던 뿔이 거목처럼 솟아올라 있었다.
한눈에 다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흑룡(黑龍)이 비수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너 정말…… 뽀리 맞아?”
그러자 벼락검보다 더 큰 포효가 땅을 울렸다.
“크와아아악!”
비수는 깜짝 놀라 귀를 틀어막았다.
“아오씨! 깜짝이야! 놀랐잖아!”
“크워?”
뽀리의 반응에 비수는 한편으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생김새는 그야말로 천지 차이이지만, 정신은 온전히 예전의 뽀리와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놈이 여기에 어떻게…….]비수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절로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 두덱의 목소리에 흉악함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비수는 궁금한 것을 참지 못했다.
“너, 얘가 누군지 알아?”
[모를 수가 없지. 저놈은 우리 일족과 전쟁을…….]거기까지 대답한 두덱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뽀리의 전신을 스캔했다.
[과연…… 그런 건가.]“너 혼자 북 치고 장구 치지 말고 말 좀 해 보지?”
두덱의 눈동자가 다시 새카맣게 물들었고, 비수가 찔끔하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차라리 잘됐어. 이 도롱뇽의 목을 베어 그날의 앙갚음을 하면 되겠군.]두덱이 양손을 뻗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바람이 휘몰아쳤다.
휘오오오오오.
“저런 미친놈…….”
비수가 사색이 된 얼굴로 욕설을 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첸에게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큰 쐐기가 몇 개씩 생겨났기 때문이다.
‘첸을 상대할 때는 진심이 아니었던 거구나.’
운좋게 첸의 기술에 ‘비’가 날아들어 유효타가 된 것일 뿐, 이제 보니 첸과 두덱 사이엔 아득한 격차가 있었다.
쐐기 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벅차했던 첸이 아닌가.
처음부터 두덱이 전력을 다했다면 첸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스윽.
두덱의 손가락으로 뽀리를 가리키자, 주변을 살벌하게 지키고 있던 쐐기들이 일제히 쏘아져 나갔다.
‘이런……!’
쐐기의 기세가 워낙 흉흉하다 보니 비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하나 뽀리는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크흠.”
콧방귀를 뀌었다.
콰아아아아아.
뽀리의 브레스가 쐐기를 향해 날아든다.
자신의 피부색만큼이나 검고 탁한 브레스.
만약 이 자리에 천해선이 있었다면, 그는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독무(毒霧)’가 왜 저기서 나와?’라고 말이다.
퍼석.
퍼석.
“!!!”
눈을 의심케 할 만한 장면이었다.
첸이 죽을 둥 살 둥 막아 낸 쐐기가 브레스 한 방에 허무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바람의 응결체를 녹에는 게 정녕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하나 뽀리의 브레스는 검고, 진득했으며, 독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두덱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으나, 그는 머지않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흑룡이 강하다고는 하나 이 정도의 격차가 날 수는 없었다.
자신은 마계을 지배하는 열두 명의 마인 중 하나였으니까.
브레스 한 방에 쐐기가 박날 나게 된 건 이곳이 ‘영계’이기 때문이었다.
저 흑룡에게는 필시 이곳이 홈그라운드일 터.
세계를 뛰어넘을 때 페널티를 적용받는 마인과 인간의 입장과는 다른 것이다.
[쉽지 않군.]첸에게 받은 충격이 큰 것은 아니나, 어쨌든 영계로 넘어온 시간이 적지 않다.
두덱은 선택을 해야 했다.
이대로 저 흑룡과 사생결단의 결투를 벌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휘오오오.
갑자기 두덱의 몸 뒤에서 강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저건……?’
비수는 눈을 부릅뜨고 그 회오리를 노려보았다.
규모는 작지만, 저건 그녀가 봤던 ‘문’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차원의 문……!’
이곳 영계로 넘어올 때 탐사대가 수시로 드나들었던 문.
비수의 눈이 갑자기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눈앞의 회오리는 그 차원의 문과 너무나 닮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왜 진작부터 인지하지 못했을까?
랭킹전 때도.
차원의 문을 통과할 때도.
헌터들을 제각각 다른 곳으로 날려 보냈을 때도.
항상 저 빌어먹을 회오리가 있었다.
비수는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면 바로 회오리에 대한 것부터 언급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나 그녀의 허리는 어느새 두덱의 손에 잡힌 채였다.
“꺅!”
허리가 으스러지는 통증에 비수가 그만 비명을 터트렸다.
[어차피 내 목적은 네년 하나다.]흑룡의 목을 베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그러기엔 전장이 너무 불리했다.
마계에서 싸운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지금은 괜한 호승심을 부릴 때가 아니다.
임무를 받아 이곳에 왔으니 주어진 역할을 해결하면 그뿐.
쉽게 말해 비수를 들고 튈 생각이었다.
두덱은 재빨리 회오리 쪽으로 신형을 옮겼다.
그의 몸이 막 회오리를 통과하려는 순간,
콰직.
두덱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머리를 찧고 뒤로 물러났다.
[큭……?]분명 자신이 불러낸 회오리가 눈앞에 있었다.
이곳만 통과하면 마계로 진입할 수 있거늘, 이해할 수 없는 벽이 자신과 회오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결계…… 네놈이……!!]“크흠.”
뽀리가 다시 콧방귀를 뀌었다.
놀라운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뽀리의 한쪽 날갯죽지 위에, 비수가 비스듬히 매달려 있었다.
[네놈…… 단순한 독룡이 아니라는 말인가…….]이곳에 온 뒤 처음으로.
두덱이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뽀리는 더 이상 두덱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녀석의 커다란 몸 주변에 백색의 빛무리가 일렁이기 시작했고,
팟.
비수를 태운 뽀리의 몸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 * *
“일단 다른 사람들을 찾아봐야겠어요.”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손바닥 위로 ‘비’를 몇 마리 띄워 올렸다.
“그건…… 천해선 님의…….”
마리아가 주저하면서도 나의 행동을 만류한다.
이 ‘비’가 내가 가진 메루스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비’ 한 마리에 들어가는 메루스의 양이 많은 것은 아니나, 최근 들어 바깥으로 보냈던 ‘비’들이 돌아오질 않고 있었다.
녀석들을 재흡수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메루스의 손실로 이어지기에, 마리아가 걱정을 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당연히 안 괜찮지만, 나는 티 나지 않게 웃으며 ‘비’들을 띄워 보냈다.
비이.
황금색의 벌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동료들을 찾기 시작한다.
거리가 얼마가 되든 방향만 알면 금방 팀원들과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육철완이 내 쪽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런 엄청난 회오리는 이번 탐사에서…… 아니, 제 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 표면에는…….”
“네. 영물들의 사체가 있었죠.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어요. 이렇게 평화로운 대지에 영물들이 씨가 말랐으니…….”
마리아가 우리의 대화를 이어받았다.
“아무래도…… 영계에서 자연적으로 발동한 회오리가 아닌 것 같아요. 영물들을 그렇게 잔혹하게 죽인 것도 그렇고…… 특히나 그 보랏빛깔은…….”
-크르르르…….
“!!!!”
마리아가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와 육철완은 반사적으로 전투 태세에 돌입했다.
그녀가 떠올린 보라색 빛깔.
그것은 특정 세계의 생명체를 대표하는 색상이었다.
“마물……!”
한 무리의 마물들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전에 봤던 것보다 덩치가 좀 더 커 보이고, 발톱이 길었다.
사일리아가 상대했던 마물이 저 중에 한 놈이었을까?
-크으…….
놈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 가지 장면을 기억해 냈다.
‘비’가 내게 보내 준 마물들의 사진.
놈들은 그 사진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무리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키메라의 모습까지 말이다.
“……?”
마리아의 고운 얼굴이 기묘하게 꿈틀거린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다가, ‘그’만의 인상착의를 하나둘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손가락에 낀 반지와, 유달리 튀어나온 태양혈 등.
무리의 한 중간에는, 키메라로 변한 구건이가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마리아의 표정.
그 변화의 끝에는, 비통한 절규만이 남고 말았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