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자격 미달?”
“테스트?”
“즉시 귀구욱?”
언급하는 하나하나가 이 자리에 모인 헌터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도발의 여파는 당사자가 아니라 온전히 천해선에게 쏟아졌다.
그 살기 등등한 눈빛을 피해서, 천해선이 사일리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나 뭐 잘못한 거 있냐?”
“응?”
“왜 이런 시련을 나에게 주는데? 저 헌터들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테스트는 원래 네가 하기로 했잖아?”
사일리아가 배시시 웃었고, 천해선이 눈을 가늘게 떴다.
“테스트 장소가 저런 용광로라는 말은 없었는데.”
“일부러 열 받게 한 거야. 그래야 테스트에 진심으로 나올 거 아냐?”
“오냐. 고오오오맙다.”
천해선은 고개를 저으며 사일리아의 앞으로 나섰다.
전개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그녀의 말은 옳다.
어중간하게 이야기했다면 테스트 자체를 거부하는 헌터도 나올 것이다.
각 나라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헌터들인데, 감히 누가 누구에게 ‘테스트’를 운운한단 말인가?
게다가 급하게 부를 때는 언제고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하면 돌아가라니.
천해선의 말마따나 지금 헌터들의 심장은 용광로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오냐, 그깟 테스트가 뭔지 본때를 보여 주마’라는 생각을 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들 앞에 선 남자는 테스트란 말을 꺼내도, 그리고 이행해도 되는 헌터였다.
“천해선입니다.”
휘잉.
이미 단단히 빈정이 상한 터라 대답은커녕 썰렁한 바람만 불어올 뿐이었다.
천해선은 마음속으로 사일리아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린 뒤, 머쓱하게 웃었다.
“기분 나빠도 이해해 주세요. 시간이 워낙 촉박해서요.”
“그 테스트가 뭔지 들어 볼 수 있겠나?”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목소리.
질문을 꺼낸 자는 예전에 마리아가 소개시켜 주었던 네덜란드 헌터, VAN이었다.
그나마 이 자리에 모인 헌터들 중에서 가장 호의적이라 할 수 있는 사내였다.
“간단해요. 1분 동안 그냥 버티면 됩니다.”
“……버틴다?”
“네. 여기 계신 힐러분들이 서로 치유를 해 주셔도 좋고, 그냥 숨을 참고 있어도 됩니다. 1분 동안 버티면 저희와 동참할 수 있는 거로 간주합니다.”
“허…….”
그나마 호의적이었던 VAN조차 미간을 찌푸릴 만한 테스트였다.
이곳에는 태산처럼 거대한 몬스터도 때려잡는 S급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어떠한 극독이나 폭격에도 견딜 만한 인재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데, 고작해야 1분을 버티면 통과한다는 말인가?
“……잔말 말고 바로 시작하지.”
내내 신경이 바짝 서 있던 파블로가 천해선을 재촉했다.
“네. 시작하겠습니다. 각자 편한 자세로 견뎌 주시면 됩니다.”
일부는 분개했고 일부는 의아해했다.
무엇을 어떻게 견디라는 말인가?
그 답을 얻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러서.”
천해선이 고개를 뒤로 돌리자, 일행들이 일사불란하게 뒤쪽으로 피신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초월급인 사일리아뿐만 아니라 잉센조차 저어만치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도대체 뭘 할 거길래 저렇게 멀리 달아나는 걸까?
여기 모인 헌터들보다 한 차원 위라 여겨지는 초월급 헌터들까지 말이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테스트를 받는 헌터들의 마음속에 긴장감이 돌았다.
“농도를 치사량까지 올리지는 않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천해선의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이 전력으로 그 기술을 펼친다면 반드시 사망자가 생기고 말 것이다.
천해선은 눈을 감고 천천히 정신을 집중했다.
“카운트 시작.”
뒤편에 있던 육철완이 스톱워치의 버튼을 눌렀다.
스스스스스스스.
“?”
“!!”
곧, 천해선의 전신에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검은 기운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헌터들은 저 기류가 절대로 마주쳐서는 안 되는 위험한 물질이라고 직감했다.
‘독무(毒霧)’
스스스스스스.
천해선의 몸에서 발산되는 희뿌연 안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본래는 시커먼 안개였을 ‘독무’의 색이 바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독무에 담긴 블랙 에테르의 농도를 떨어트리기 위함이었다.
천해선이 진심으로 독무를 사용한다면, 그가 서 있는 반경 일대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뭐…… 뭐야?”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희뿌연 안개에 경험 많은 헌터들조차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안개는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상급 던전의 몬스터에게서나 볼 수 있는 스킬을 같은 헌터에게서 보게 될 줄이야.
그러나 모인 헌터들의 수준이 수준인 만큼, 에스퍼 계열 헌터들이 일행의 앞으로 나왔다.
“실드!”
실드니, 배리어니, 호고마쿠(ほごまく)니 하는, 각 나라의 언어로 된 에테르 방어막이 펼쳐졌다.
“오…….”
어떤 공격이든 몸으로 때워야 하는 나이트들의 얼굴에 만족감이 떠올랐다.
만약 이 에스퍼들의 배리어가 희뿌연 안개를 막을 수만 있다면, 그들은 손을 대지 않고도 코를 풀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치이이익…….
“?!”
그러나 천해선이 확산시킨 독무가 배리어에 닿자마자, 이름도 다양한 보호막들이 순식간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배리어는 마치 불에 타들어 가는 창호지처럼 힘없이 바스러져 버렸다.
한 명의 배리어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수십 장으로 겹겹이 쌓인 보호막을 독무는 유유자적 깨부수며 전진할 뿐이었다.
단 5초.
천해선의 ‘독무’가 모든 배리어를 파괴하는 데는 단 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빠득.
에스퍼들 중 몇 명이 부서져라 이를 갈았다.
천해선이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는 몰라도, 자신들 또한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S랭커들이었다.
그런 에스퍼가 모여 만든 배리어가 단 수 초 만에 함락당하는 장면은, 헌터들에게 굴욕감을 주기 충분한 것이었다.
“물러서.”
에스퍼가 통하지 않았다면 이제는 나이트들의 차례.
그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스킬로 다가오는 ‘독무’를 베어 나갔다.
후우우웅!
쐐애애액!
안개뿐 아니라 주변의 공기마저 가를 듯한 파공음이 들려온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 풍압만으로 독무가 날아가 버릴 법도 하거늘, 희뿌연 안개는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유유자적 전진을 계속했다.
“突風(돌풍)!!!!!”
중국에서 온 에스퍼가 바람을 이용한 자신의 비기를 펼쳐 들었다.
곧 건물 하나는 가볍게 날려 버릴 만한 광대한 바람이 일었다.
후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으앗!”
저 멀리 떨어진 이레귤러 헌터들이 공중에 뜰 만큼 압도적인 스케일이었다.
하나 유감스럽게도, 천해선읜 ‘독무’는 그 자리 그대로에 있었다.
아니, 이전처럼 천천히 공포스러운 전진을 계속했다.
화르르르륵.
독무는 거대한 화염에 타 버리기는커녕 되려 불꽃을 삼켜 버렸고,
번쩍!!
눈부신 전격은 독무를 지나 바닥에 꽂힐 뿐이었다.
그저 천천히, 그리고 보란 듯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할 뿐이었다.
“……!”
“미쳐 버리겠군.”
사정이 이쯤 되나 헌터들 수백 명의 얼굴에 낭패감이 떠올랐다.
정녕 천해선이 발동한 스킬 하나를 막지 못한단 말인가?
헌터들은 물론이요, 뒤쪽에서 바라보던 이레귤러조차 눈이 휘둥그레지는 순간이었다.
‘작정하고 나서면 저렇게 되는 건가.’
온갖 저항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독무’를 보며, 첸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몬스터나 마인을 상대할 때의 천해선과 같은 ‘인간’을 상대할 때의 천해선은 또 달랐다.
천해선이 죽이기로 마음먹은 대상이 ‘인간’이 되는 순간, 그는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테스트를 지켜보던 강정현도 육철완에게 비슷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해선이 형이 마인이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하하. 내 생각도 그렇다.”
육철완이 슬쩍 웃으며 강정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실은, 육철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천해선의 몸속에 자리 잡은 독성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천해선은 막 헌터 자격을 취득할 때부터, 같은 인간들이 견디기 어려운 극독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동족’ 사이에서 최고 포식자가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얼마나 지났어?”
“이, 이십 초 정도……?”
“!”
엄청 느리게 다가오는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처럼 스멀스멀 확장해 오는 ‘독무’에 헌터들의 무의식이 가상의 시계를 빨리 돌려 버린 것이다.
“흥. 까짓거 숨 좀 참으면 그만이야.”
한 나이트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헌터들 전원이 숨을 참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앞의 수상쩍은 안개는 결국 기체일 뿐이다.
호흡을 하지 않는다면 체내에 들어올 일은 없고, 대다수의 헌터들은 1분 정도 숨을 참는 건 일도 아니었다.
스스스…….
안개가 가까이 오자 미약한 소리가 들려온다.
뱀이 바닥을 스쳐 갈 때 나는 것처럼, 은밀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모든 헌터들이 숨을 참았다.
“흡.”
마침내 희뿌연 안개가 헌터들의 전신을 덮어 버렸다.
생각보다 안에 있어도 시야를 가지리는 않았다.
애초에 천해선이 설정한 농도가 워낙에 약한 탓이다.
그러나 겨우 그 정도의 농도로도, 헌터들을 궁지에 몰아넣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윽……!’
독무 안에 있는 헌터들 대부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적으로 눈이 멀어 버릴 듯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크윽……!”
어떤 헌터는 귀를 틀어막았고, 어떤 헌터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바지 뒤를 움켜잡았다.
단 몇 초의 시간 만에 현장의 모든 헌터들은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이건 숨을 참는다고 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기관지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버틸 수 있는 차원이 아니었다.
기체가 통할 수 있는 모든 기관에 ‘독무’의 극독이 자리 잡았고, 전투복 아래 피부들도 점차 상태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읍……!”
치유를 주겠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힐러들이 나서서 주변 일대에 치유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한 명의 대상자가 아닌, 구역 전체에 스킬을 발동하는 광역 치유 능력.
S랭커 힐러들만이 가능한 고급 기술이었다.
샤르르.
한두 명이 아닌 수십 명의 힐러들이 광역 치유를 겹겹이 둘러쌓았다.
이 정도면 죽은 사람도 살아 돌아오지 않을까 착각이 들 법한 치유량이었다.
“우웩!”
그러나.
애석하게도.
천해선의 ‘독무’는 백약이 무효했다.
‘독무’에 중독된 몸이 ‘치유’로 일순간 정화되나 싶더니, 이내 다시 중독 상태에 빠졌다.
‘독무’ 안에 갇혀 있는 한, 힐러들의 치유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털썩.
버티지 못하고 가장 먼저 쓰러진 타입은 아이러니하게도 힐러들이었다.
광역 치유를 하는 동안 에테르가 급격히 소진되어 몸의 면역 기능이 빠르게 망가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테스트를 통과하는 게 아니라 제 발로 독무 지대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누, 누가 빨리 옮겨…… 켁!”
난리 통 속에서 힐러를 구하려 했던 나이트 하나가 피를 토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힐러 한 명의 몸을 붙잡은 뒤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후웅!
‘독무’에서 빠져나온 두 헌터가 바닥을 뒹굴었고, 그들은 마침내 지옥 같은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기사도가 좋네요.”
힐러를 구한 나이트를 보며 강정현이 감동한 듯 말하자, 첸이 콧방귀를 뀌었다.
“저게 기사도라고?”
“네? 아닌……가요?”
“저게 어딜 봐서 남을 구하려는 얼굴이야? 곧 죽을 거 같아서 빤스런한 얼굴이지.”
“헤에.”
강정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생존자(?) 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첸의 말처럼, 나이트는 힐러의 안위를 생각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힐러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는 듯 안도의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곧 무더기로 테스트에 탈락하게 될 거다. 네 말대로 기사도라는 가면을 쓴 상태로 말이야.”
파앗.
탁!!
조소를 가득 머금은 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독무’ 속에서 대규모의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