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갓 뎀. 드럽게 빠르네.”
결국은 참지 못하고 누군가가 투덜거렸다.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차마 쪽팔려서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불평이었다.
천해선은 몬스터를 뚫어 가며 전진하고 있는 반면, 뒤따르는 헌터들은 그저 ‘쫓는 것’만으로도 헉헉대고 있었으니까.
1층부터 시작된 차원 간섭과 무더운 기운이 헌터들의 컨디션을 방해하고 있었지만, 그런 것을 빼더라도 천해선의 움직임은 따라잡기 버거운 수준이었다.
-키에에에에에엑!
“정말 끔찍하게 생겼군. 저놈은 뭐야?”
“크룬(Croon)이라는 놈이야. 난도는 9성(★★★★★★★★★)이고 물리 레벨이 S급인 놈이지. 게다가 기타 레벨도…….
화르르르륵.
-키에에에…… 꽥
“A급인 무서운 놈……이지만 뒤졌군.”
설명을 늘어놓던 헌터 한 명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닫았다.
크룬에 대한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해선이 녀석을 문어구이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발이 느린 헌터들은 천해선이 크룬을 해치울 때까지 도착조차 하지 못했다.
“갑니다.”
“잠깐만.”
사일리아가 천해선의 발을 막았다.
딱히 숨이 차거나 힘들어서가 아니다.
단지 다른 헌터들과 진도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힐러와 에스퍼가 있어. 다 오면 가자.”
“어. 그래.”
천해선은 별다른 이견 없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5분에 한 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천해선이 1층을 공략한 시간은 채 2분이 되지 않았다.
글자 그대로 파죽지세.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그의 옆에 마리아가 다가왔다.
“여기요.”
“아, 고마워요.”
천해선이 싱긋 웃으며 그녀가 준 물병을 받았다.
“급하죠? 지금.”
“네?”
그의 공략 속도가 빠르다는 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 ‘빠른 것’과 ‘급한 것’은 의미가 꽤 다르다.
천해선은 빠른 것과는 별개로 분명 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의 천해선이었다면 뒤처진 헌터들을 감안해 진격을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바로 그 점을 언급했고, 천해선은 순순히 인정했다.
“네. 좀 급하네요.”
“그동안 참아 온 것만도 대단해요. 마음 같아서는 납치된 날 곧바로 움직이고 싶었을 텐데.”
마리아가 천해선의 머리에 살포시 손가락 두 개를 얹었다.
샤르르…….
딱히 다치거나 체력을 소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치유력은 대상자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고마워요.”
새빨간 노을을 등지고 서로를 마주 보며 웃는 천해선과 마리아.
그 장면은 지켜보는 헌터들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곳이 영화 세트장이 아니라 던전의 1층이라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뿐.
“전부 도착했습니다.”
천해선이 취한 휴식은 채 1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아 덕분에 천해선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2층부터는 간격을 유지하며 진로를 뚫겠습니다.”
“좋아.”
“오케이.”
헌터 몇 명이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얼씨구? 반응이 좋아졌네?’
사일리아가 달라진 헌터들의 행동에 입을 비죽거렸다.
뒤따라오는 헌터들을 기다려 준 배려 덕분일까?
아니.
헌터들의 변화를 이끈 것은 단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던전을 단숨에 돌파하는 천해선의 무력에 순수한 감명을 받은 것이다.
당사자가 어떤 마음으로 전투를 진행했건, 그들의 눈에는 ‘쇼케이스’처럼 느껴질 만한 장면이었다.
갑자기 하늘을 날더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거대 독사를 소환하고, 정밀한 소형 에테르로 다수의 적을 격파한 뒤 9성 몬스터를 한 방에 불태워 버렸다.
천해선의 공격 방식은 ‘타입’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다채로운 것이었다.
같은 헌터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갑니다.”
오늘 하루 이 말을 몇 번이나 듣게 될까.
천해선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쏜살같이 내려갔다.
* * *
모든 세계의 종(種)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지역.
그런 지역이 있다면 어떨까.
결과는 허무하도록 단순한 것이었다.
적자생존(適者生存).
해당 지역에 터를 잡은 가장 강력한 생명체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본거지를 막론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여기 모인 생명이 어떤 경로로 이 장소에 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저 강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간단한 논리에 움직일 뿐이었다.
“하아…… 하아…….”
흰 허벅지를 그대로 드러낸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연신 신음 같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단정하게 정리한 앞머리가 풀어져 눈을 덮었고, 짧은 트레이닝 바지와 트랙 탑은 군데군데 찢어진 상태였다.
의사가 아니라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지금 극한의 탈진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입술은 갈라져 피가 나올 지경이었고, 요염했던 눈은 생기를 잃은 채 허공을 응시했다.
툭.
쌕쌕 숨을 몰아쉬던 그녀의 앞에 두툼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건 살점이었다.
어디에서, 무슨 동물에서 뜯어낸 건지도 불분명한 살점.
열두 번째 마인, 두덱이 그녀에게 명령했다.
-먹어라.
“하아…… 하아…….”
-그나마 인간계와 가장 비슷한 동물의 것이다. 먹는다고 죽지는 않을 거다.
“…….”
비수는 고개를 떨구고 눈앞의 살덩이를 바라보았다.
대충 구워 핏물이 뚝뚝 떨어져 있었고, 군데군데 털 같은 것도 보였다.
에테르를 골수까지 빼먹고 준다는 음식이 겨우 이런 것들뿐이었다.
다 말라비틀어진 과실.
목이 퍽퍽 메는 곡류.
비수는 한동안 살덩이를 바라본 뒤, 모처럼 싱긋 웃었다.
푹.
그녀는 손가락 하나로 살덩이의 정중앙을 찔렀다.
극한의 배고픔에 마음을 바꾼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세운 손가락은 가장 가운데 것이었다.
휙.
비수가 분풀이라도 하듯 팔을 크게 휘둘렀다.
자연스럽게 가운뎃손가락에 꽂혀 있던 살덩이도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투둑.
입가에는 요염한 웃음을 띤 채, 눈으로는 악에 받친 광기를 발산하며 비수가 두덱에게 말했다.
“난 원래 웰던만 먹어.”
-…….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 대목에서 목이 날아갔을 터.
그러나 두덱은 아무 말 없이 비수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마인들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동굴’ 안에 자신의 버프를 기다리는 키메라가 수십 마리나 쌓여 있었다.
스스로 자결을 한다면 모를까, 일을 마칠 때까지 마인들의 손에 죽을 가능성은 없었다.
-계속 그렇게 아무것도 안 먹으면 죽을 텐데.
“차라리 죽는 게 낫지.”
회복이 되기가 무섭게 에테르를 골수까지 빼먹는데 누구 좋으라고.
첫 번째 키메라가 각성했을 때는 좌절했고, 세 번째에는 절망을 했으며, 다섯 번째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고민도 했었다.
하나 그녀의 고민이 실행되지는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에 확고한 믿음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와 줄 거야.’
천해선을 비롯한 이레귤러들.
납치당한 자신을 반드시 구해 줄 거라는 믿음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키에에에에에엑.
동굴 속에서 끔찍한 포효 소리가 들려온다.
비수가 중간에 혼절한 까닭에, 각성을 하다 만 키메라가 발광을 하는 것이다.
그 포효가 자신을 갈구하는 것이라는 걸 비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밑바닥까지 에테르를 갈취당할 것이다.
“좀 쉬엄쉬엄하자. 말 안 듣는다고 죽이지도 못할 거면서.”
비수가 슬쩍 웃으며 두덱을 도발했다.
제공한 음식을 거부하는 것.
그것이 비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비협조’였다.
먹은 것이 없는 만큼 에테르의 회복도 더딜 테니 말이다.
-킥킥킥. 그 말이 맞다. 우리들은 당장 네년을 죽일 생각이 없지.
이번에는 다른 마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수의 정신을 장악했던 세 번째 마인.
‘해’의 자리에 있는 테르티였다.
“그래. 그러니까 좀 쉬게 놔두…….”
-하지만 다른 인간들은 어떨까?
“?”
테르티의 말과 함께 차원의 문 저편에서 누군가가 굴러떨어졌다.
“크윽.”
놀랍게도, 그건 인간이었다.
며칠 만에 인간을 발견한 비수의 얼굴에 반가움이 스쳐 지나갔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마인과 키메라가 전부였으니 그 반가움이 오죽했겠는가.
“이봐요. 괜찮아요?”
부리부리한 눈에 짙고 두꺼운 눈썹.
살짝 검은 피부를 보니 페르시아인처럼 보였다.
“#@#$…… 비수?”
번역 디바이스가 망가진 탓에 앞에 말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 확실한 건, 그는 비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헌터인가?’
그녀를 알아보는 걸로 보아 헌터일 가능성이 컸다.
두덱은 무어라무어라 페르시안에게 명령했고, 그는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곧 비수에게 다가왔다.
샤르르…….
그러고 곧, 따스한 치유의 기운이 비수의 몸을 감쌌다.
“그만…….”
그만두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가 도로 들어갔다.
어차피 한국말을 못 알아듣거니와, 만약 치유하지 않으면 이 사내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인간들은 어떨까?’
두덱이 앞서 했던 질문은 너무나도 명약관화했다.
비수가 아니라면, 마인들은 어떠한 인간도 종이 찢어 버리듯 서슴없이 죽여 버릴 것이다.
“빌어먹을…….”
비수는 입술을 씹으며 잠자코 치유를 받아들였다.
배고픔까지 없앨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전신에 따스한 활력이 돋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나 있던 상처가 사라지고 피부에 생기가 돌았다.
볼이 조금 패인 것만 빼고는, 완벽하게 이전의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어쨌거나 고마워요.”
비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슬쩍 옆으로 앉았다.
치유를 마친 사내에게 자리를 내어 준 것이다.
그러나 사내가 빈 공간에 엉덩이를 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두덱의 손이 등 뒤에서부터 사내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퍼억.
“꺄아아악!”
사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몸을 바르르 떨었다.
고통으로 희번덕거리는 눈이 비수를 향했고,
가슴팍에서 튄 핏방울이 비수의 뺨에 떨어졌다.
휙.
비수가 살덩이를 바깥에 버린 것처럼, 두덱 또한 사내의 몸을 같은 동작으로 던져 버렸다.
명백한 조롱의 의미이자, 경고의 의미였다.
-킥킥. 다음번에도 먹지 않으면 또 한 놈의 힐러가 죽는다.
“그만해, 이 개새끼야!”
비수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얄궂게도 몸 상태가 회복된 탓에 쉬었던 목소리가 앙칼지게 울려 퍼졌다.
핏발선 그녀의 눈망울에는 물기가 그렁그렁했다.
“한다고! 하면 될 거 아니야 씨발!”
-킥킥킥. 그래. 주는 거 잘 받아먹고 키메라를 잘 키우는 게 네 역할이다. 네가 비협조적으로 나올수록 무고한 인간이 죽게 된다는 걸 명심해라.
“쳐죽일 놈…….”
보이지도 않는 테르티를 향해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독한 욕설을 뱉는 것뿐이었다.
비수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입 안에 삼키며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굴 안에서는 그녀의 에테르를 갈망하는 포효가 연신 울려 퍼지고 있었다.
-들어가라. 먹을 건 다시 구해 준다.
두덱이 흐느끼는 비수의 몸을 일으키려 다가갈 때였다.
촤르르르륵.
귀를 간지럽히는 찰진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황금색의 창이 두덱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욱!!!
-크아아아아아!!!!!
불의에 습격을 당한 두덱이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요동을 쳤다.
“내 것까지 2인분으로 갖다줘. 웰던으로.”
“?!”
볼을 타고 흐르는 비수의 눈물이 두 배로 굵어졌다.
죽을 권리도 포기하며 기다려 온 남자가, 마침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 뒤질 준비해.”
천해선.
그가 지옥의 계단 7층에 입성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