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77)
77화
개방동에서 차를 타고 30분.
고속도로를 나와 비현동에 들어서면 작은 단독 주택 단지가 나타난다.
“와아…….”
조수석에 앉은 누나가 연신 감탄사를 토해 낸다.
그럴 때마다 난 절로 솟아오르는 어깨를 가라앉혀야 했다.
그림을 그려넣은 듯 예쁜 건물들이 주변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잠시 후.
옆으로 길게 뻗은 모노톤의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끼익.
“다 왔어.”
“여, 여기라고?”
어찌나 놀랐는지, 누나가 말까지 더듬으며 되묻는다.
예전에 누나를 한번 데리고 왔지만, 그때는 건물이 올라가기 전이었다.
그러니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흰색으로 칠해진 외벽과 튀어나온 검은색 포인트가 결합 된 세련된 단독 주택.
이곳이 앞으로 나와 누나가 함께 살 집이었다.
달칵.
평소의 차분한 모습과 달리, 누나가 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우와!”
종종걸음으로 주택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더없이 흐뭇하다.
음, 그래.
뼈 빠지게 포이즌 던전을 돌아다닌 보람이 있구만.
연신 뛰어다니는 누나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날 줄을 모른다.
좁은 임대 단지에서 살다가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왔으니 그 기분이 오죽하겠는가.
나도 이렇게 좋은데, 날아다니는 기분이겠지.
한동안 운전석에서 내리지 않고 새로 이사 온 집과 누나를 함께 지켜본다.
눈부신 웃음과 새로 만들어진 집이 어울리니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태어나서 이런 행복을 느껴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나는 그 달콤한 기분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이야. 천해선이. 성공하셨네?”
그리고 곧바로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행복에 취해 뒷자리에 앉은 불청객을 깜빡한 것이다.
“술을 안 마셔도 취한 기분이겠어 아주. 그렇게 좋냐?”
“암. 좋지.”
“난 언제 이런 데서 살아 보냐. 부럽다아.”
비수가 양손으로 턱을 받치며 입을 비죽 내민다.
“정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군.”
“뭐?”
“자유를 찾고 싶어서 징징대던 게 얼마 전인데, 이제는 원룸도 성에 안 차신다?”
“치. 안 봤으면 몰라도, 이런 집을 봤는데 어떻게 안 부럽냐?”
비수의 투정이 단순한 농담은 아닌 듯하다.
주택과 누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부러움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가족도 없이 혼자 원룸에 사는 비수가 조금 마음에 걸렸던 걸까.
평소답지 않게 위로의 말이 나온다.
“흠흠. 너도 헌터 자격 따면 돈방석 앉는 건 시간문제야. 조금만 기다려 봐.”
“그래? 히힛. 그럼 너네 집 옆으로 이사 올까?”
“아니. 사실 망할 거야. 완벽히 망한다.”
비수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육철완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핫하하. 이러지 말고 우리도 나갑시다.”
소담하니 바닥에 들어찬 잔디밭에 네모난 돌이 줄지어 늘어져 있다.
비수가 개울가에 돌다리를 지나가듯 깡총거린다.
음.
방정맞은 성격만 아니라면 저것도 나름 그림 같은 장면일 텐데 말이야.
“와! 진짜 크다!”
“호호호. 그치?”
내부에 들어선 누나와 비수가 호들갑을 떨며 거실과 주방, 방안을 살핀다.
수중에 있는 모든 돈을 투자해서 만든 새집.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돈이야 금방 다시 모을 수 있다.
한평생 동생의 병을 뒤치다꺼리한 고생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소파에 함께 앉아 있는 육철완에게 슬며시 말을 꺼냈다.
“누나가 손이랑 다리에 가끔씩 멍이 들 때가 있었어요.”
“음?”
“집이 좁으니까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할 때 부딪치는 거죠. 음식을 할 때도 그렇고, 청소를 할 때도, 제 옷을 대신 꺼내 줄 때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주 부딪쳤어요.”
“하하. 그랬습니까.”
“저는 그런 게 특히 속상하더라구요. 가장 빛나도 시원치 않을 누나가, 저 때문에 여기저기 멍이 들고 그런 게…….”
아얏, 하고 나서도 금방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웃으며 돌아섰다.
내가 잠든 척을 하면 그제야 인상을 찡그리며 문지르곤 했지.
멍 자국이 난 손목으로 물수건을 빨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송화 씨가 저리 좋아하는 게 집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네?”
“천해선 헌터님의 그런 마음 씀씀이가 누나에게도 전달됐을 겁니다. 인테리어만 봐도 어떤 부분을 신경 썼는지 보일 테니까요.”
“……그런가요.”
육철완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린다.
그리고 곧, 2층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얏!”
“헐! 해선아. 누나가 방방 뛰다가 머리를 찧었어!”
“…….”
나와 육철완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고, 어색한 눈빛을 마주쳤다.
“좁아서…… 잘 다친 게 아니었나 봐요.”
“크흠. 큼.”
한차례 헛기침을 하던 육철완이 돌연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천해선 헌터님. 말이 나온 김에 첨언하자면, 최근 들어 위험한 일에 자주 엮이시는 것 같습니다.”
“음……. 아무래도 그렇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테네브라의 일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유지원을 만난 일이나 크라켄을 처치한 일은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최근 두 달간 일어난 굵직한 사건만도 세 건.
다시 말하자면 목숨이 위험한 일에 세 번이나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다.
“적당히 몸을 사리실 줄도 아셔야 합니다. 송화 씨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이런 비싼 집이 아니라, 천해선 님이 몸 건강히 잘 지내는 것일 테니까요.”
“네. 명심할게요.”
“물론 헌터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가끔씩 너무 호전적인 모습이 보여서 말입니다.”
육철완이 머쓱하게 웃으며 남은 맥주캔을 털어 마신다.
비단 최근의 일뿐만 아니라, 자이언트 트레져를 상대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다 보니 꽤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육철완의 말이 옳다.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오래오래 해 먹으려면 무엇보다 스스로의 안위를 잘 챙겨야 한다.
그때.
쿵쿵쿵, 하고 계단을 내려온 비수가 병에 꽂아 넣은 조화를 꺼내 무릎을 꿇는다.
“너 뭐하 냐?”
“너한테 프러포즈하는 거야.”
“뭐, 뭣?”
“천해선. 우리 같이 살자. 나 이 집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 끔찍한 헛소리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고, 육철완은 또다시 큰 웃음을 터트렸다.
오래오래 해 먹기는 개뿔.
* * *
사용자 정보>
Poisnr Class Level : 2 – Summoner>
보유 블랙 에테르 : 12,098BA>
신체 강화 능력 : ‘C’>
치유능력 : ‘S’>
염동력 : ‘S’>
보유 스킬 :독보(毒步) – level 2 / 교감(交感) – level 1 /사자후(獅子吼) – Level 1 /호신강기(護身罡氣) – level max>
크라켄의 코어를 흡수한 덕분에 블랙 에테르 지수가 천 단위 상승했다.
에테르의 상승은 근육이나 체력의 발달과 비슷한 점이 있다.
어느 정도 스스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직접 힘을 쓸 때가 아니면 실감이 안 날 때도 있다.
다음에 적독사를 불러낼 때는 키가 좀 더 커져 있으려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던 와중에 만나기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일찍 와 계셨군요.”
“제가 요즘에 차를 몰고 다녀서요.”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표혁규가 익살스러운 얼굴로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 회견 이후로 매일 전쟁입니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협회에 칼날을 들이대고 있고, 차기 부회장 선출 과정도 잡음이 심했습니다.”
표혁규는 ‘다른 헌터도 아닌 천해선 헌터님을 노렸다는 것에 대해 국민들의 분노가 대단하다’고 했다.
이거 참.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본의 아니게 혼란을 드리게 됐네요.”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그나마 지금에서야 자정 작용이 일어나 다행이지, 더 늦었으면 썩은 부분이 곪아 터졌을 겁니다.”
표혁규의 진중한 표정을 보니, 본 정체를 떠나 헌터 협회에 나름 애착이 있기는 한 것 같았다.
“말씀드린 건 어떻게 됐나요?”
“네. 우선 이번 크라켄의 출연 사건에 대해 ‘세계헌터수호기구(WHPO : world hunter protect organization)’ 쪽에 정식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코드는 ‘그린’으로 설정했습니다.”
코드 그린.
일전에 던전에서 몬스터가 외부로 튀어나왔던 코드 ‘옐로우’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수준이지만, 국제기구에서 규정한 경보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제는 말도 함부로 꺼내면 안 되겠어요.”
“그렇네요.”
우리는 서로 쓴웃음을 주고받았다.
최근 들어 이상한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는 터라, ‘이제는 몬스터가 땅속에서 튀어나오는 게 아니냐’고 농담 삼아 했던 말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글로리 길드는요?”
내가 웃음기를 지워서일까.
아니면 글로리 길드에 대한 감정을 짐작하고 있는 걸까.
표혁규가 신중한 얼굴로 변했다.
“특별히 징계가 내려진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글로리 길드에서는 정정 보도를 요구했지만, 유인원 부회장이 알력을 행사해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지극히 예상한 대로 됐네요.”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국내에서 가장 큰 무력 집단인 글로리 길드가 권력에 짓눌려 쭈구리처럼 있었다?
사정을 조금만 아는 이라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라며 비웃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타격이 없는 건 아닙니다. 내년에 신규로 확장 요청한 구역은 완전히 없던 일이 되었고, 기존에 할당된 구역도 일정 부분 축소될 가능성이 큽니다.”
“흐음.”
그제야 굳혀진 얼굴이 조금 풀린다.
길드에 있어 관할 구역은 곧 힘이요 권력이다.
이왕이면 폭상 망했으면 좋겠지만, 향후 글로리 길드가 그렸던 청사진이 상당 부분 일그러질 것이다.
구건이가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는 건 좀 아쉽네.
“곧 헌터 자격 시험일인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 할 수도 없는 일이긴 한데.”
“고민하시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표혁규 감독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헌터 자격 시험이 열리는 날, 한쪽에서는 또 다른 테스트가 열린다.
이른바 ‘다중 능력’ 테스트.
헌터들 중에서 메인 능력을 제외한 다른 능력이 생겼을 때 이를 입증하는 시험이다.
등록을 안 한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그렇게 될 경우 헌터 협회를 기만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
세상 사람들은 천해선이 단순한 ‘힐러’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협회 홈페이지에 내가 ‘힐러’만으로 등록되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
소속 헌터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도 못 하는 기관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협회에서는 응당 다중 능력 테스트를 하루빨리 봐 주기를 원한다.
보통은 헌터 입장에서도 자신의 부가 가치를 높이는 일인지라 마다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왜?’
협회가 뭐가 이쁘다고.
심지어 나는 길드에 가입할 일도 없으니 스스로의 가치를 높일 필요도 없다.
랭크 제한이 있는 장소들은 ‘S랭크 힐러’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런고로, 급한 건 내가 아니라 협회 쪽이라는 이야기다.
“협회 내에서 떠도는 이야기로는, 조만간 헌터님에게 공식적으로 연락이 갈 거라고 합니다.”
“왜요?”
“표면적으로는 거짓 발표에 대한 사과입니다만……. 아무래도 다중 능력 테스트를 진행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체면이 참 중요한가 봐요.”
“그들에게는 그런 모양입니다. 아 그리고…….”
“??”
“헌터님께 요청드렸던 포이즌 던전 클리어는…… 현 시간부로 종료할까 합니다.”
“왜요? 그건 협회 차원의 요청이 아닌데.”
바꿔 말하면, ‘그쪽’이 미안해할 일이 아닌데 말이야.
“최근 들어 포이즌 던전의 발생 빈도가 굉장히 줄어들었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표혁규가 은근히 눈을 빛낸다.
혹시나 짚이는 게 있는지 살피는 눈치다.
살짝 뜨끔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대처했다.
“그래요? 흠.”
포이즌 던전의 발생 빈도가 줄어든 게 아니다.
엄브렐라 인더스트리의 장비를 통해 던전이 나타나자마자 정리해 버린 것뿐.
표혁규를 나름대로 신뢰하고 있지만 모든 걸 오픈할 수는 없다.
안 그래도 이제 진 박사까지 엄브렐라 인더스트리에 합류한 상황이 아니던가.
어쨌거나 골드 코어를 대가로 한 거래는 무난하게 종료가 되었다.
알게 모르게 차고 있던 족쇄가 풀리는 셈이다.
“문자가 왔네요.”
딴청을 부리는 와중에 핸드폰이 울린다.
내심 잘됐다 싶어 화면을 보는데,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내 반응을 본 표혁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누구시길래……?”
오호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연락을 보내온 곳은 지금 아쉬울 게 아주 많은 인물이었다.
[헌터 협회 신규 부회장 배정대입니다. 통화 가능하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