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06
정도마신 105화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좋은 대답이구나.”
그러곤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너 같은 인재가 있어서 든든하구나. 현재 강호는 매우 평화로워 보이지만, 앞으로 정말 큰 위험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모든 것을 말해 줄 수는 없구나. 하지만, 그때가 되면 강호는 너의 힘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고, 더 강해지거라.”
현종은 노파의 의미심장한 말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노파는 그 의문을 풀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러곤 땅에 내려놓은 지팡이를 주워 퉁소를 안에 갈무리하며 몸을 돌렸다.
“나는 이만 가 봐야겠다.”
현종은 그녀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그래, 훗날 인연이 되면 다시 보자꾸나.”
노파는 그 말을 끝으로 훌쩍 몸을 날려 경공을 펼치며 사라졌다.
현종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할 정도의 위험이라는 말씀이신가…….”
* * *
설린은 태어나 가장 빠른 속도로 평야를 가로질러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눈앞의 광경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바뀌었고, 스치는 바람 소리는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귓가에 가장 크게 들리는 것은 쿵쾅거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였다.
그녀는 승광신법을 극성으로 펼치는 사완악의 품에 안겨 있었기 때문이다.
‘사 공자님의 경공은 더 빨라졌구나. 역시 대단해.’
설린은 사완악이 얼마나 뛰어난 천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자신의 무공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만큼, 사완악은 그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을 게 분명했다.
또한 무림공적인 사완악이 강호로 당당하게 돌아왔다는 것은, 온 강호와 적이 되어도 이길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비웃겠지만, 사완악이라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지금도 한 시진가량 설린을 안고 경공을 극성으로 펼치고 있는데도, 사완악의 호흡은 일말의 흐트러짐도 없이 안정적이었다.
“다 도착했군.”
사완악은 말과 함께 설린의 눈에도 한 마을이 들어왔다.
사완악은 마을의 객잔으로 향했고, 밖에서 휘파람을 불자 객잔 주인이 기다렸다는 듯 두 마리의 말을 끌고 나타났다.
사완악은 객잔 주인에게 손톱만한 황금 구슬 열 개를 건네주었다.
객잔 주인은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아무 말도 없이 말을 남겨 두고 객잔으로 들어갔다.
설린은 이 모든 것이 사완악이 정도맹에 오기 전부터 준비해 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갖고 계시던 금덩이가 아니군요?”
“그건 이미 다 써 버렸으니까. 대신 그때보다 더 많은 금을 갖고 있지.”
사완악의 주머니에는 손톱만 한 황금 구슬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설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다 어디서 났어요?”
“그냥 주웠어.”
“말도 안 돼. 이렇게 많은 황금을 어디서 주워요?”
“이 정도로 놀라면 안 돼. 가종후한테 맡겨 둔 상자에 훨씬 많이 있거든.”
“정말요?”
“난 태어나서 거짓말 해 본 적 없어.”
물론 사완악은 언제든 필요하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의 말은 진실이었다.
북해빙궁의 창고에는 전대의 영겁사령존이 모아둔 금은보화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하나의 커다란 보물 상자에는 수천 개의 황금 구슬이 수북하게 채워져 있었다.
다른 보석과 달리 금은 바로 돈처럼 사용이 가능했고, 사완악은 때마침 기존에 지니고 있던 금덩이가 떨어졌기에 가종후에게 그 보물 상자를 챙기도록 명했다.
“여기서부터는 말을 타고 가지. 쉴 필요는 없지?”
“그럼요.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걸요.”
사완악과 설린은 곧바로 말을 타고 어둠 속을 내달렸다.
두 사람은 밤새 길을 달렸고, 해가 뜨고 날이 밝아져서야 새로운 마을을 찾아 객잔에 들러 잠을 청하기로 했다.
“정도맹을 탈출하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인지 몰랐네요.”
말은 쉽다고 했지만 사실 이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설린도 잘 알고 있었다.
정도맹에 걸어 들어와 문지기들의 혈도를 모두 짚어 버린 뒤, 감시를 피해 구금되어 있는 자신을 데리고 도망치다니.
천하에 사완악이 아니라면 누가 이토록 담대하게 행동할 것이며, 이런 엄청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낼 수 있을까.
설린은 사완악과 함께 아침을 먹으며 말했다.
“사 공자님과 이렇게 다시 식사를 하게 되다니, 감회가 정말 깊네요.”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동감이야.”
설린은 사완악 특유의 그 가벼운 웃음을 보자 사완악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지내셨는지 말씀해 주실 차례예요.”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사실 아주 단순해. 무공을 익히면서 지냈어.”
“무공이요?”
“기연을 얻었다고도 할 수 있지. 내 한 몸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무공을 얻었으니까.”
한 몸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무공.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면 쉽게 할 법한 말이지만, 그것이 무림공적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그 의미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설린은 그 진위여부는 더 묻지 않고,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설린의 물음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라…….”
“혹시 복수를…… 하실 생각이신가요?”
사완악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는 해야지.”
설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완악의 복수 대상이라면 천기자의 제자들, 혹은 정도맹의 무인들이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강호에는 전례 없던 피 바람이 불어올지도 몰랐다.
그때가 되어서도 설린과 정유문은 사완악과 함께할 수 있을까?
그 짧은 순간에 설린의 머릿속에는 수십 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때, 사완악이 다시 말했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하려고.”
“네?”
“협객이 되겠다는 소리야.”
“아…….”
설린은 사완악이 협객으로서 이름을 날리고 싶어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복수인가요?”
“그럼 내가 태산에서 싸웠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모두 죽일 줄 알았어?”
“그, 그건 아니지만요.”
“두고 봐. 내 생각이 맞는다면 꽤 통쾌한 장면을 보게 될 테니까.”
설린은 사완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사 공자님의 계획은 이상해 보일 때가 많아도 결국에는 깊고 큰 뜻이 있었으니까.’
설린은 그저 사완악의 복수 방식이 그녀가 우려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에 큰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때였다.
객잔의 문이 부서질 듯 왈칵 열리며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그들은 허리에 칼을 차고 있었고, 인상은 매우 사납고 눈빛에서는 흉악한 빛이 번들거렸다.
사완악은 그들을 보고는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설린에게 중얼거렸다.
“나쁜 놈들 같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설린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끝을 흐렸다.
반면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단호히 말했다.
“아니,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지. 정상적인 놈들이 저렇게 남들에게 겁을 주듯 눈에 힘주고 다닐 리가 없잖아.”
설린도 그 말에는 크게 동감했다.
“부디 나쁜 짓을 해 줘야 될 텐데.”
“예?”
“그래야 말 나온 김에 바로 협행을 시작하지.”
사완악이 눈을 찡긋하며 말하고 있을 때, 두 사내 중 하나가 점소이를 불러 네 개의 요리와 여섯 병의 술을 시켰다.
그들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우며 술을 마셨다.
“계속 지켜보고 있으시게요?”
“응. 느낌이 오거든.”
사완악은 식사가 끝났음에도 그들이 술에 취해 얼굴이 불콰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웃고 떠들며 술을 다 마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객잔을 나가려 했다.
점소이가 당황하며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소, 손님!”
두 사내가 힐끗 고개를 돌렸다.
“뭐냐?”
점소이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직 값을 치르지…….”
쾅!
점소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두 사내 중 뺨에 긴 흉터가 있는 사내가 객잔의 문을 주먹으로 때리며 눈을 치켜떴다.
객잔의 사람들이 겁먹은 얼굴로 두 사내와 소년을 바라보았다.
“뭔 소리야?”
“예?”
“아까 분명히 돈을 냈잖아. 어?”
이때 점소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검상의 사내가 허리의 검을 몇 차례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이때 주방장이 나와 점소이에게 눈짓을 보냈다.
두 사내를 그냥 보내라는 뜻이었다.
점소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알았었나 봅니다.”
그러자 옆에 음흉하게 생긴 다른 사내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멍청한 녀석.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봐주마.”
“가, 감사합니다.”
두 사내는 마치 큰 인심을 썼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거지새끼들이 봐주긴 누가 누굴 봐줘? 밥에다 술까지 처먹었으면 돈을 내야지.”
멈칫.
순간 객잔 안에는 찬물을 끼얹은 듯한 고요함이 감돌았다.
다시 서서히 돌아서는 두 사내의 동작에서는 짜증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흉터의 사내는 점소이 옆에 어느새 한 명의 청년이 눈처럼 하얀 백의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방금 네가 한 말이냐?”
“그럼 누가 있을까?”
“네놈,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지껄이는 소리냐?”
“그러는 너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
“뭐, 뭐라고?”
두 사내는 물론 객잔 안의 다른 손님들과 점소이마저 입을 떡 벌렸다.
도대체 이 백의장삼의 곱상하게 청년은 누구이기에 이런 식으로 객기를 부린단 말인가?
이때 두 사내는 사완악의 허리에도 한 자루의 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위아래로 그를 신중히 살펴보았다.
‘혹시 명문대파의 제자인가?’
고급스러운 옷에 곱상한 얼굴.
게다가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기 마련인데, 이 녀석의 얼굴에는 두려움의 느낌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두 사내는 이내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사완악에게서 어떤 내공의 기운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두 사람은 야차쌍도(夜叉雙刀)라 불리는 사파의 유명한 고수들이었다.
그들에게 야차라는 별호가 붙은 것은 심성이 흉악하고 손속이 잔혹할 뿐만 아니라, 무공을 모르는 민초들에게도 자비가 없었고, 이곳저곳에서 크고 작은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공만큼은 일류 고수이고, 자신보다 강한 사람은 귀신같이 파악해서 시비를 걸지 않았기에 강호에서 한 번도 위기에 빠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야차쌍도는 사완악이 그저 겉멋에 빠진 객기 가득한 청년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꼬마야, 정의로운 협객 노릇을 하고 싶은가 본데, 우리로 말할 거 같으면…… 컥!”
하지만 그때, 긴 흉터의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숙였다.
사완악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발을 뻗어 그의 복부를 찌르듯 차 버렸던 것이다.
“이놈이 감히!”
음흉하게 생긴 다른 사내가 화들짝 놀람과 함께 분노하며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칼을 뽑아 그대로 사완악의 어깨를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