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11
정도마신 110화
어지간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기로 유명한 철심검수 곽도성이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완악……!”
곽도성은 정도맹 비무 대회 때 사완악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백의장삼의 청년은 사완악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사완악의 모습을 똑똑히 보면서도 두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그의 상식으로는 눈앞의 상황이 정말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네, 네가 어떻게……!”
사대악인의 제자로 정도맹주 양천상을 시해하고 자취를 감춘 사완악.
물론 그가 강호로 다시 돌아올 수는 있다.
아니, 정도맹은 사완악이 언젠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그에 대한 경각심을 늦춘 적도 없었다.
사완악과 긴밀한 관계인 설린을 정도맹에 구금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으니까.
또한 그가 사령문의 후예라는 것이 정도맹 수뇌부 사이에서는 퍼져 있었고, 모종의 세력을 준비하고 있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런 방식의 등장은 아니어야 했다.
더 은밀하게 돌아와 어딘가에 숨어 있거나,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정도맹에 전쟁을 선포하거나, 혹은 어디선가 대혈겁을 일으키거나, 아무튼 조금 더 악마스러운 모습이어야 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해맑은 얼굴로 나타나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힐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곽도성은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검을 뽑으며 외쳤다.
“무림공적인 네놈이 감히 다시 돌아왔단 말이냐!”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곽도성을 바라봤다.
“감히 다시 돌아왔냐니? 너희는 나를 찾고 있는 거 아니었나?”
“그야 당연하다!”
“거봐, 그럼 돌아오면 좋은 일이지, 감히는 무슨 감히냐?”
“다, 닥쳐라!”
곽도성은 사완악의 언변에 말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은 대체 뭐가 이리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것이지?’
곽도성은 매우 혼란스러웠으나, 명색이 철심검수라 불리며 집법당의 부당주를 맡고 있는 무인답게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었다.
“정도맹의 허가 없이 문파로 복귀한 설린 문주, 그리고 무림공적 사완악! 두 사람은 우리를 따라 정도맹으로 가야겠소. 특히 사완악, 당신은 무기를 버리고 우리가 혈도를 제압할 때 아무런 반항도 하지 마시오. 순순히 따른다면 죗값을 물을 때 참작될 것이오.”
사완악은 뜻 모를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정도맹이 무슨 권한으로 우리 문주님에게 오라 가라 한단 말이지?”
곽도성이 호통 치듯 말했다.
“그게 모두 당신 때문이라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인가!”
사완악은 곽도성을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그럼 내 혈도를 제압해서 데려가라.”
“뭐라?”
곽도성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사완악은 전혀 저항할 생각이 없다는 듯 양팔을 벌렸다.
“반항하지 않으면 참작한다며? 알았으니 데려가라니까?”
“진심인가?”
“그래.”
사완악은 어떤 내공의 기운도 끌어 올리지 않고 가만히 서서 곽도성을 바라봤다.
그 순간 곽도성의 눈에는 다시 혼란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소악마라 불리는 사완악이 이리 순순하게 나오다니?
‘이럴 리가 없다! 이자는 분명히 투항하는 척하다가…….’
이때 사완악이 곽도성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내가 갑자기 공격이라도 할까 봐 무서워?”
곽도성과 다른 두 무사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사완악이 혀를 찼다.
“쯧쯧. 집법당의 부당주씩이나 되는 자가 반항하지도 않겠다는 상대의 혈도를 제압하는 것도 무서워해서야.”
그 말에 곽도성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선뜻 발걸음이 떼어지지도 않았다.
천하 팔대고수였던 맹주조차 사완악의 손에 목숨을 잃었는데, 곽도성과 두 명의 수하가 함께 힘을 합해 봤자 이란격석(以卵击石)에 불과했다.
‘심지어 나는 저자에게서 내공의 기운조차 느낄 수 없다.’
사완악 같은 고수에게서 어떤 기운도 느낄 수 없다는 건, 곽도성의 수준으로는 사완악의 실력을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때 사완악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설마 나보고 스스로 혈도를 봉하라고 하지는 않겠지? 고작 그런 깜냥으로 이곳을 찾아왔나? 내가 없었다면 우리 문주님에게는 아주 기세등등했겠지만.”
곽도성은 일언반구 대꾸도 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굳게 다물었다.
사완악은 흥미를 잃은 듯 말했다.
“당신의 별호에서 철심(鐵心)이라는 글자는 빼는 게 좋겠군. 나는 할 일이 바쁘니 그만 돌아가라. 정도맹으로 돌아가서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할 테니. 아, 그리고 우리 문주님께서는 맹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시니 그냥 가면 돼.”
곽도성은 설린에게 물었다.
“설 문주는 정녕 무림공적 사완악의 편에 서겠다는 소리요?”
설린이 답했다.
“정유문은 사 공자님을 무림공적으로 선포한 사안에 대하여 항의할 생각입니다.”
사완악은 미소를 머금고 중얼거렸다.
“겁쟁이 주제에 정도맹 이름으로 협박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하는군.”
철심검사 곽도성은 사완악의 한마디 한마디에 평생을 쌓아 온 무인의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으나, 가까스로 평정심을 지키며 말했다.
“당신과 싸워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오. 하지만 나의 자존심보다 당신의 존재를 빨리 알려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 물러나는 것이오.”
사완악이 손을 휘휘 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알았으니까 빨리 돌아가. 정말 바쁘다니까.”
“……가자.”
철심검사 곽도성은 치욕을 간신히 참아 내는 얼굴로 수하들과 함께 정유문을 떠났다.
그가 떠나고 설린은 사완악에게 괜찮겠냐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사실 그녀 역시 사완악이 이렇게 당당하게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과연 괜찮은지에 대한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언제나처럼 씩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우리도 움직여 볼까?”
* * *
길성객잔(吉誠客棧).
정유문이 있는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한 객잔의 이름이었다.
복이 있고 진실하다는 이름처럼 길성객잔은 이 도시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집이었다.
객잔의 주인은 왕주보라는 사람이었고, 길성객잔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가게를 운영하며 이쪽 세계에서는 수완이 좋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사완악은 설린과 함께 그 왕주보가 기거하는 크고 아름다운 장원에 방문했다.
“정유문의 문주님께서 이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왕주보는 하인이 전해 준 뜻밖의 소식에 의아한 얼굴로 나타났다.
그는 여러 가게를 운영하는 만큼 세상 돌아가는 많은 정보에 밝았다.
근래 하북성 전체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정유문이니 같은 도시 안에 있는 왕주보는 누구보다 정유문의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다.
다만 그와 정유문 사이에는 지금까지 어떤 관계도 없었고, 설린과도 초면이었다.
그런 설린이 한 명의 청년과 함께 갑작스럽게 방문해 왔으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정유문의 문주인 설린이라고 하고, 이쪽은 정유문의 문도이신 사완악 공자님이십니다.”
“사완악 공자…….”
순간, 왕주보의 안색이 기묘하게 변했다.
설린이 말했다.
“왕 장주님을 찾아온 이유는 사 공자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흠…….”
왕주보는 설린과 사완악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는데, 이때 그의 손이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한 차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고 사완악에게 말했다.
“말씀해 보시지요.”
사완악은 별다른 표정 없이 바로 말했다.
“정유문에서 길성객잔을 사고 싶어서 왔는데.”
왕주보의 미간이 살짝 움직였다.
“길성객잔을 정유문에서 사겠다는 소리요?”
“맞아.”
왕주보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잠시 후 이유를 물었다.
“이유가 무엇이오?”
사완악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장사하려고 사는 거지.”
“장사라…….”
왕주보는 그 말을 곱씹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길성객잔을 팔지 않을 것도 당연한 일 아니오?”
“장사가 잘 돼서?”
“그렇소. 길성객잔이 일 년에 남기는 이문은 내가 운영하는 다른 가게 세 군데를 합친 것과 비슷하오.”
사완악이 말했다.
“매우 비싸게 사 줄 수 있는데?”
왕주보는 고개를 저었다.
“길성객잔은 앞으로도 수입이 떨어질 일이 없는 가게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파는 장사치가 어디 있겠소?”
“흐음. 하지만 나는 반드시 그 객잔을 사고 싶은 걸. 내가 원하는 위치와 크기에 아주 적합하거든. 얼마를 주면 팔 수 있지?”
사완악은 말과 함께 품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냈다.
그 주머니 안에는 손톱만한 황금 구슬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을 본 왕주보의 눈에 놀람이 나타났다.
그는 보석을 알아보는 눈이 뛰어났고, 구슬들은 모두 상급의 황금으로 보였다.
이 정도라면 길성객잔 열 개도 살 수 있을 만한 값어치였다.
하지만 곧바로 승낙할 수는 없는 일.
“도대체 이렇게까지 많은 돈으로 길성객잔을 사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사완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객잔이 도시 중심에 있기 때문이지. 내게는 그 점이 아주 중요해. 꼭 도시 중앙에 있는 큰 객잔을 사고 싶으니까. 어때? 충분하지?”
왕주보가 물었다.
“만약 내가 이만큼의 황금으로도 팔지 않겠다면 어쩌실 생각이오?”
문득, 사완악은 왕주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때 왕주보의 표정은 매우 긴장한 듯 굳어져 있었다.
사완악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별 수 있나? 다른 객잔을 알아 봐야지.”
왕주보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는 사완악과 눈을 마주치고는 침을 꿀꺽 삼키고, 예의에서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남아 있는 찻물을 한입에 들이켰다.
“알겠소. 그럼 팔겠소. 대신 조건이 있소.”
“조건?”
“내가 생각하는 길성객잔의 가치만큼만 받겠소.”
“왜? 더 받으면 좋은 거 아닌가?”
“나는 어떤 거래나 장사를 할 때도 합당한 이치에 맞는 것을 좋아하오.”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야 좋지.”
설린은 웃돈 때문이 아니라면, 왕주보가 이렇게 빠르게 결정을 바꾼 것이 의아하여 물었다.
“갑자기 생각을 돌리신 이유가 있을까요?”
왕주보는 손가락을 두 개 펼치며 대답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소.”
“두 가지요?”
“하나는 정유문에서 길성객잔을 사겠다고 했기 때문이오.”
설린은 기억을 더듬으며 물었다.
“저희가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왕주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하북성에서만 열 개의 가게를 갖고 있소.”
“그게 상관이 있나요?”
“그 열 개의 가게 모두 흑사방에게 많은 관리비를 납부해야 했소. 하지만 지금은 아주 소액의 관리비만 지급하고 있소.”
“아!”
흑사방은 하북성을 주름잡던 방파였다.
그들은 기루나 객잔, 그 외 여러 가게와 장사꾼들에게 보호를 명목으로 돈을 착취해 왔다.
왕주보 역시 그 피해자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사완악이 흑사방의 두 방주를 죽이고, 흑철야왕에게 전권을 넘김과 동시에 그들에게 큰 패악질을 못 하게 만든 것은 정유문의 사람들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이때 왕주보가 다시 말했다.
“사람들은 흑사방의 두 방주가 싸워 일 방주가 통일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하오. 만약 그랬다면 흑사방의 횡포는 더 심해졌을 테니 말이오. 그들은…… 사실 여기 정유문의 사 공자님의 손에 정리당한 것이 아니오?”
사완악은 재밌다는 듯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