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24
정도마신 123화
제갈공은 속내와 달리 겉으로는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정도맹의 고수들은 제갈공의 말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여겨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사대악인이 온다는 사완악의 말이 거짓이라 해도 상관이 없었고, 진정 나타난다면 사완악과 합세할 위험도 없었다.
그야말로 제갈세가의 사람다운 묘안(妙案).
사완악 역시 제갈공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맞는 말이군. 좋아, 그렇게 하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약속해 줘.”
“무슨?”
“당신들이 사부들과의 관계가 끝나면, 날 무림공적으로 선포한 것을 취소해 주는 것으로.”
제갈공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오해가 풀리는 것이니, 반드시 그리해 줄 것이다.”
“믿어도 되지?”
“물론이다. 제갈세가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사완악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독왕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하독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독왕의 소매가 펄럭이며 은빛의 가루가 사완악을 향해 날아갔다.
사완악은 아무런 반항 없이 가만히 서 있다가 순간 움찔했다.
은빛의 가루가 사완악뿐만 아니라 그 옆에 서 있던 설린에게도 뿌려졌기 때문이었다.
사완악은 저절로 반응하려는 자신의 손을 제어하며 힐끗 설린을 바라봤다.
설린 역시 가루를 뒤집어쓰며 상황을 인지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저 평온했다.
사완악 혼자 독공에 당하는 것보다, 위기를 함께 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편안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오히려 설린은 사완악의 생각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사 공자님은 만독불침지체인데 독왕의 독도 막아 낼 수 있을까? 그보다 사 공자님은 무슨 생각이실까? 사 공자님의 사부님들이 이곳에 온다니?’
설린은 그러한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물론 사완악이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지만…….
그녀의 직감상, 사완악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무엇을 위함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사완악과 설린이 은빛 가루를 완전히 뒤집어쓰자, 독왕 당온추가 말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당온추는 자신이 하독한 만큼, 직접 사완악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사완악의 손목을 낚아챘다.
무림고수에게 있어 손목을 잡힌다는 것은 반신을 제압당한다는 의미와 같았다.
상반신을 마비시킬 수 있는 맥문(脈門)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사완악은 당온추가 자신의 맥문을 움켜쥐어도 안색이 굳어질 뿐, 조금도 반항하지 못했다.
당온추는 사완악의 맥문을 통해 그의 내부를 검사해 보고, 설린에게도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두 사람에게서는 확실히 내공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큭!”
사완악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당온추의 소매에서 암기라고 볼 수 있는 작은 비수 하나가 쏘아져 나와 사완악의 어깨를 파고든 것이었다.
설린은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독왕 당온추는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
“호들갑 떨지 마시오. 생명에는 아무 지장이 없으니. 이깟 부상은 무인에게 아무것도 아니지.”
당온추는 그리 말한 뒤 사완악의 어깨에서 비수를 뽑아 거두었다.
핏물이 사완악의 백의장삼을 빠르게 물들였다.
“사람을 시켜 지혈하도록 하시오.”
독왕은 그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설린은 누구를 부를 틈도 없다는 듯, 손으로 자신의 옷을 찢어 사완악의 어깨를 감아주었다.
사완악은 옅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괜찮아. 그는 내가 중독되었는지 확인한 거뿐이야. 일부러 빗겨 찔렀어.”
당온추는 원래 자리로 돌아와 상현 진인에게 말했다.
“확실히 중독되었습니다.”
정도맹의 고수들도 눈앞의 상황을 보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정유문의 장원에는 적막한 침묵이 감돌았다.
정도맹의 고수들은 그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사완악을 감시하며 사대악인을 기다렸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사완악의 입에서 그런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이때, 소림사의 원로 중 한 사람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한 시진은 이미 충분히 지났다. 네놈의 사부들은 정녕 이곳에 오는 것이냐?”
사완악이 말했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한참 지난 것은 아니지. 인간이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딱딱 시간을 맞추겠어? 사부들이 안 오면 당신들이 나를 가만둘 리가 없는데 내가 뻔히 들통 날 거짓말을 할 리도 없잖아?”
“음……!”
정도맹의 고수들은 사완악의 말에 딱히 반박을 하지 못했다.
사대악인이 오지 않는다면 사완악은 죽는다.
고작 한 시진을 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또한 사완악의 당당하고 태연한 태도 또한 어느 정도 신뢰가 가게 만들고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하북팽가의 가주가 결국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그런데 그때였다.
“아, 비키라니까! 지금 이게 다 무슨 짓이야!”
“당신들 누구예요? 왜 정유문에서 이러고 있는 거죠?”
“아니, 이 거지들이? 뭐 하는 거야?”
돌연, 정유문의 장원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도맹의 고수들은 의아한 얼굴로 밖을 힐끗 바라봤는데, 이때 사완악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드디어 왔네.”
용두방주 방욱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이놈들이 뭘 하는 거야?”
정유문의 장원은 백 명의 사결 제자가 포위하고 있었고, 일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도 정유문에 올 리는 없었다.
하지만 밖에서는 점점 고성이 높아지더니, 돌연 두 개의 비명이 들려왔다.
“윽!”
“무, 무공을 익혔다! 어서 막…….”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진 개방 방도는 말을 멈추고 말았다.
자신이 쓰러지자마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정유문의 장원으로 돌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방의 방도들은 그 사람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반대로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사 공자님!”
선두에 서서 달려오는 것은 제 삼귀령, 천화였다.
그리고 그 뒤를 수십 명의 사람들이 따라 들어왔는데, 그들은 모두 평범하거나 해진 옷을 입고 있는 일반 백성들이었다.
천화는 사완악의 오른팔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 말했다.
“다치셨어요?”
그 말의 앞에는 ‘어떻게’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다. 시간 맞춰 도착했구나. 잘했다.”
“하마터면 붙잡힐 뻔했지만요. 지존…… 아니, 사 공자님께서 탈정미혼술을 전수해 주셔서 다행이었어요.”
사완악은 천화의 말에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천화는 본래 사령문의 무공 중 일소수심공(一笑囚心功)을 익혔었다.
그것은 여인이 익히는 섭혼술로, 미색을 이용해 남심을 흔드는 심공이었다.
정확히는 사완악이 채보령에게 전수 받은 탈정미혼술의 하위 무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완악은 북해빙궁에서 천화에게 사령문의 문주에게만 허락되는 탈정미혼술을 전수해 주었다. 언젠가 귀령들에게 임무를 맡겨야 할 때,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천화는 일소수심공을 완숙한 경지까지 익힌 상태였고, 타고난 색기(色氣)가 있어 탈정미혼술을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천화가 개방의 추격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묵영과 가종후가 필사적으로 시간을 끌었던 것과, 위기의 순간 탈정미혼술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시킨 일은 다 했지?”
“그럼요.”
“좋다.”
사완악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려 정도맹의 고수들을 바라봤다.
거기에서는 아주 기이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도사님들, 그리고 스님들은 누구십니까? 우리 설린 문주님과 사 공자님이 큰 위험에 처했다는 게 당신들 때문입니까?”
구파일방은 대부분 도문(道門)이기에 사십오 인 중 대다수가 도사 복장을 하고 있었고, 소림사의 원로들은 당연히 승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더욱 의아한 얼굴로 따지고 들었다.
“도사님이랑 스님들이 왜 칼을 들고 이러고 있답니까?”
무당파의 장문인, 태극신검 상현 진인의 얼굴에는 일순 난감함이 떠올랐다.
정도맹의 일행은 모두 일문의 장로나 장문인들이었다.
그들이 문파에 있을 때, 황실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반인들은 그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설령 마주친다고 하면, 마치 신령님을 본 듯 공손하게 허리를 숙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들은 도끼눈을 뜨고 천하의 무당파 장문인에게 언성을 높이고 있었고, 소림사의 원로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만약 무공을 익힌 무사들이 그랬다면 손짓 한번으로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렸겠으나……
‘이들을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다들 난감해하고 있을 때, 하북팽가의 가주 팽일해가 크게 외쳤다.
“그만! 다들 그만하라!”
산만한 덩치에 큰 대도를 쥐고 있는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일순 좌중은 압도되었다.
소림사나 무당파의 장문인보다, 기골이 장대한 팽일해가 그들에게는 훨씬 무서워 보였다.
팽일해가 다시 외쳤다.
“당신들은 지금 이것이 무림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무림…….”
“무공을 익히는 사람들?”
아무리 일반인이라 해도 대부분 무림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가 곧 끄덕였다.
“맞다, 정유문도 무림 문파였지.”
팽일해가 말했다.
“알아들었으면 모두 물러서라! 우리는 저 사완악이라는 자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니!”
하지만 팽일해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 하나가 외쳤다.
“도대체 그 해결할 일이 뭔데 그럽니까?”
팽일해는 하북팽가의 가주가 이런 말에 대꾸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무림에서 큰 죄를 지은 사람이다. 온 무림의 추격을 받는 무림공적이지. 그러니 괜스레 나서서 다치지 말고 비켜서라. 당신들을 해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칼에는 눈이 없는 법이니까.”
팽일해는 눈을 크게 뜨며 사람들을 노려봤다.
그는 이러한 방법이 일반인들에게는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당연히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물러서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팽일해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말을 외친 사람은 허름한 옷의 한 중년인이었다.
“우리 사 공자님이 어떤 분인데 무림에서 죄를 짓는단 말입니까? 무슨 죄를 지었는지 들어나 봅시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렇소!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 우리 설린 문주님과 사완악 공자님이신데,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오?”
팽일해가 당황하여 말했다.
“그는 사대악인의 제자로, 무림에서는 수많은 원한이…….”
그러자 한 노인이 팽일해의 말을 잘랐다.
“사대악인? 그건 또 뭔 소리요? 제자라면 사 공자님의 스승이란 말인데. 그럼 참 좋은 분이 틀림없을 거 아니오?”
문득, 사십오 인의 절대고수들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들은 정말 무림에 대해서는 조금도 모르고 있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막연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때였다.
“설린 문주님! 사 공자님!”
새로운 사람들이 정유문의 장원으로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