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39
정도마신 138화
설린은 고개를 저었다.
소림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운 소림수호승이 자신의 마음대로 환속하여 정유문의 문도가 되겠다니?
“현종 스님. 어째서 이런 억지스러운 말씀을 하시는 거죠? 제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 걸까요?”
순간 현종의 눈빛에서 열기가 일렁였다.
“무엇이 억지입니까? 정유문의 문도가 되는 것마저 완악은 되고 저는 안 되는 것입니까?”
설린은 답답한 듯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현종은 설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완악이 천기자에 의해 사대악인의 제자가 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설린은 이미 천의문이 어째서 사완악에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모두 전해 들은 상태였다.
그녀는 사완악을 생각하자 안타까운 듯 말했다.
“제가 사 공자님이었다면 누군가에게 인생을 도둑맞은 기분이었겠죠. 참으로 안타깝고 화가 나는 일이에요.”
그러자 현종은 억눌렀던 감정이 치솟기라도 하는 듯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제 인생은 어떻습니까?”
“네?”
“저 역시 소림수호승을 선택하여 된 것이 아닙니다. 완악과 마찬가지로 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소림사 원로원의 공동 제자였고, 제 의지와 상관없이 불제자가 되었지요. 어째서 설린 문주는 완악만을 안타깝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설린은 사대악인과 소림사는 다르지 않냐고 말하려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현종의 입장에서는 결국 똑같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현종이 그동안 강건한 모습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가슴에 큰 고민과 괴로움을 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 대한 동정심이 일어났다.
다만 이때 설린은 한 가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현종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게 기이한 열기를 띠고 있었고, 마치 맹수의 눈빛처럼 가슴을 섬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종은 어느새 설린의 바로 앞에 다가와 그녀의 양 어깨를 잡고 있었다.
“예전에 제게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까?”
“무, 무슨…….”
“저를 보고 있으면 승려가 아니라 마치 한 나라의 대장군 같다고 하셨지요.”
“아…….”
설린의 머릿속에 기억이 떠올랐다.
과거 사완악과 함께 현종을 처음 만났을 때, 객잔에서 술을 마시며 했던 말이었다.
현종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승려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강호로 나가 무명을 떨치며 마음껏 살아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러한 마음을 일깨워 준 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설린은 현종의 불꽃처럼 타오르는 눈을 마주하자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그의 숨결은 너무 뜨거웠고, 마치 무언가를 망가뜨리기 직전의 사람 같았다.
“우, 우선 이것 좀 놔주세요.”
하지만 그녀의 양 어깨를 잡은 현종의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완악이 있어도 설린 문주는 자주 위험에 빠졌습니다. 가종후에게 납치되었을 때도, 남궁준휘가 음모를 꾸몄을 때도, 정도맹의 무인들이 찾아왔을 때도, 오늘 마교도들까지. 하지만 제가 함께 있다면 정유문이 위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완악이 정유문과 설린 문주를 구했던 것처럼, 저 역시 어떤 위험에서도 당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순간, 설린의 몸이 멈칫했다.
“저를 지킬 수 있다고요…….”
“내가 완악보다 못할 것 같습니까?”
설린은 달빛에 비친 현종의 수려한 이목구비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현종 스님. 놔주세요. 아파요.”
“…….”
현종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설린은 그런 현종의 손끝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알고 계시잖아요.”
“무엇을…… 말입니까?”
“저는 사 공자님을 사모하고 있어요.”
“……!”
설린은 동상처럼 몸이 굳어진 현종에게 미안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는 현종 스님을 좋은 친구로 생각해요. 오늘 이후로도 그 마음은 변치 않을 거예요. 하지만 당분간은 서로 시간이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요.”
“…….”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정도맹에 가서 이곳에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말씀해 주세요. 급하게 서신을 보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현종 스님께서 직접 가셔야 정확한 사안들을 전할 수 있겠죠.”
“…….”
현종은 그것이 우회적인 축객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종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
“완악의 마음은 확인해 보았습니까?”
“사 공자님은…….”
설린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제게 마음이 없으시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도 상관없습니까?”
“네. 상관없어요.”
“…….”
현종과 설린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차마 말로 꺼내지 못한 복잡한 감정들이 서로 간에 오고 갔다.
현종이 말했다.
“정도맹에서 설린 문주에게 무공을 가르친 한 달의 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설린이 말했다.
“저 역시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답답하고 우울했던 생활 가운데 유일하게 웃을 수 있었던 날들이었지요. 왜냐하면…….”
설린은 보다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현종 스님은 제게 정말 좋은 친구니까요.”
“…….”
현종은 마지막 선고를 받은 죄수 같은 표정으로 설린을 멍하니 바라봤다.
설린은 그의 시선을 살짝 피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침묵이 지났을까?
현종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정도맹에 다녀오겠습니다.”
“…….”
“좋은 친구로서 다시 뵙지요.”
설린은 현재 그녀의 마음이 어떻든지 간에 아무런 내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수고해 주셔서.”
현종은 얼굴을 바라보다 조용히 미소 지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친구끼리는 서로 돕는 것이니.”
설린은 현종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오늘의 일 때문에 앞으로 어색해지지 말자는 말씀이겠지.’
설린이 말했다.
“그럼요. 현종 스님도요.”
“예.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현종은 설린을 자신의 두 눈동자에 담을 것처럼 한 차례 더 바라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훌쩍 신법을 전개했다.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멀어지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설린은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깊은 한숨과 함께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정유문을 떠난 현종은 한 줄기 바람처럼 정도맹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후련함과 후회스러움이 번갈아 일어나고,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헷갈릴 만큼 복잡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현종은 자신이 가는 길을 가로막으며 나타난 한 사람으로 인해 신법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로 이 밤에 그토록 급한 발걸음을 하고 계시는 거죠?”
놀랍게도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은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미모의 여인이었다.
하지만 현종은 그녀가 누구든 관심 없다는 듯 말했다.
“비키시오.”
현종의 음성은 평소와 달리 매우 차가웠다.
그러나 여인은 오히려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천하의 소림수호승 현종 스님도 실연의 아픔을 어쩌지는 못하나 보군요.”
여인의 말에 현종은 매우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여인은 도대체 누구인데 자신이 소림수호승이라는 것으로도 모자라 조금 전 설린과 있었던 일까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현종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알고 계시오?”
여인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것 외에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예를 들면…… 당신이 달마동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거나, 설린 문주가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요. 만약 그녀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면, 당신의 자존심이 더욱 상했겠죠.”
현종은 싸늘하게 굳어진 안색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달마동에서의 면벽 수행에서 현종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그러한 성과를 방장 사형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현종의 깨달음은 내공과는 상관없고, 오직 무술의 원리에 관한 것이었기에 사완악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었다.
또한 설린에 관한 이야기 역시 이 여인은 마치 현종의 마음속을 정확하게 들여다본 것 같았고, 심지어 어떤 부분은 현종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을 꼬집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묘한 색기와 신비로움을 지닌 여인은 현종의 눈빛을 보고는 두려운 듯 말했다.
“당신의 눈빛은 정말 무섭군요. 사완악, 그 사람보다 더 대단한 기운을 지니고 있어요.”
현종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완악을 만난 적이 있는 것인가?”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우리 마교는 당신과 사완악, 두 사람을 아주 유심히 살피고 있었으니까요.”
“마교?”
현종의 두 눈이 다시 한번 번뜩였다.
“마교의 사람이었나?”
그녀는 현종에게 정식으로 인사했다.
“저는 마접단(魔蝶團)의 단주(團主), 나화연이라고 해요.”
“마접단?”
접(蝶)은 나비를 뜻했다.
악마의 나비?
나화연이라고 밝힌 여인이 말했다.
“마교에서 중원의 정보를 담당하는 곳이죠.”
현종은 나화연을 응시하며 물었다.
“그래서 내 앞에 나타난 목적이 무엇이지?”
나화연은 말했다.
“우리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말했잖아요. 마교에서는 당신과 사완악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고요. 당신은 마교에 매우 적합한 인물이에요.”
현종이 고개를 살짝 꺾으며 조소를 머금고 말했다.
“내가 소림수호승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다니.”
나화연이 말했다.
“당신은 소림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진정한 강함을 추구하고,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려야 할 사람이죠. 정말 한 번뿐인 인생을 고작 승려 따위로 만족할 수 있나요?”
“…….”
“그런 사람이었다면 설린 문주를 마음에 품지도 않았겠죠?”
현종은 나화연을 노려보고 있었으나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강호는 어차피 마교의 힘을 이길 수 없어요.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오백 년 만에 탄생한 교주님은 천하를 뒤엎을 힘을 지니고 계시죠. 그리고 오랜 시간 힘을 길러 온 칠대마가와 무력 단체들은 설령 교주님이 안 계시다 하더라도 정도맹을 쓸어 버릴 수 있어요.”
현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너희가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면, 어째서 나를 섭외하려 하지?”
나화연은 선선히 그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당신과 같은 질문을 호법 중 한 분이 교주님께 물으셨죠. 교주님께서 답하시길, ‘천하를 일통하는 것은 쉬우나 다스리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인재가 필요하다.’라고 하셨어요. 현종, 당신은 이 천하를 다스리기에 아주 적합한 인재예요. 우리가 사완악이 아니라 당신을 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무공에 있어서 두 사람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나, 한 나라의 왕이 되어야 한다면 사완악은 당신의 발끝도 따라갈 수 없어요.”
“…….”
나화연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설린 문주 역시 당신의 것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