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40
정도마신 139화
현종은 멍하니 나화연을 바라봤다.
“설린 문주가 내 것이 된다고…….”
나화연은 현종이 반쯤 넘어왔다는 것을 확신하며 말했다.
“그녀뿐만이 아니죠. 당신이 원하는 것은 여자든, 돈이든, 권력이든, 얼마든지 얻을 수 있게 될 거예요.”
현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나는 소림사에서 원로원과 방장 사형의 명을 따르는 입장이었다. 그것이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았지. 만약 내가 마교에 입교한다면, 어느 정도의 위치가 되는 거지?”
나화연은 씩 웃으며 답했다.
“이해해요. 당신 같은 사람이 누군가의 아래에 있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죠. 당신은 교주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두고 계시니…… 신뢰를 얻으신다면 호법의 위치까지도 올라설 수 있을 거예요.”
“호법이 대단한 자리인가?”
“그럼요. 직분상으로는 교주님 바로 아래의 권한을 갖고 있는 엄청난 위치죠. 지금 내가 당신에게 매우 공손한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현종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직분상이라는 말은 실제로는 다를 수 있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호법이라 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있어요. 칠대마가의 가주들과 교주님 직속 부대의 대주, 마교의 규율을 책임지는 집법당주 정도가 있겠군요.”
“현재 마교에는 호법이 몇 명이나 있지?”
“지금은 사대호법이라고 부르지요. 당신이 교주님께 충성을 맹세한다면 오대호법이 되겠지만.”
“호법들과 칠대마가의 가주들은 강하겠군.”
“물론이에요. 그들은…….”
나화연은 문득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언제부터인가 현종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교에 관한 정보만을 묻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다른 사항들은 당신이 마교에 입교하고 말씀드리도록 하죠. 저와 함께 교주님을 알현하러…….”
그런데 이때 현종이 그녀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아쉽군. 조금 더 말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화연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설마, 지금 나를 속인 건가요?”
현종은 마치 사완악의 능청스러운 웃음을 따라 하듯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내가 언제 마교의 사람이 되겠다고 말한 적이 있나?”
“그, 그건 아니지만……!”
“중원의 정보를 마교에 전달한다는 자가, 마교의 정보를 알아서 흘려주니 고마운 일이로군.”
“감히…….”
나화연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군.”
“글쎄. 네 말대로 내가 호법의 위치까지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칠대마가의 가주나 같은 호법 정도는 와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건 네놈이 교주님의 은혜로 마공을 연마했을 때의 이야기지. 지금의 너 정도는…… 나와라!”
그녀의 명령과 함께 돌연 하늘에서 열 명의 흑의인이 뚝 떨어지듯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범상치 않은 기운을 지니고 있었고, 정유문을 침공했던 마교도들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지닌 듯했다.
하지만 현종은 그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표정의 아무 변화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교주님께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한다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거절한다면…… 평생 중 노릇만 하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될…….”
마접단의 단주, 나화연은 문득 말을 멈추었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오직 자신을 쳐다보는 현종의 호랑이 같은 눈빛과,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가공할 기운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이런 기운이…….’
나화연은 사완악과 현종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두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대비가 있었기에 현종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하지만 틀렸다.
현종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공은 그녀가 예상했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내공보다 더 무서운 것은, 두 눈에서 뻗어 나오는 혁혁한 안광이었다.
나화연은 태어나서 이런 눈빛을 지닌 사람을 딱 한 번 본 적 있었다.
바로 오백 년 만에 탄생한 마교의 오대 교주.
오직 그뿐이었다.
“교, 교주님…….”
나화연은 자신도 모르게 손발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와 함께 나타난 열 명의 흑의 고수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마치 호랑이 앞에 선 초식동물처럼 현종의 눈빛 앞에서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설린 문주가 내 것이 된다고?”
현종의 손은 금빛으로 은은하게 물드는 순간.
파앗!
뇌성(雷聲)이 일어나며 그의 장심(掌心)에서 전광과 같은 기세가 쏟아져 나갔다.
“컥……!”
열 명의 흑의 고수 중 하나가 입에서 피분수를 뿜으며 고꾸라졌다.
“돈, 여자, 권력?”
“끄악!”
이번에는 두 명의 흑의 고수가 다시 쓰러졌다.
그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를 뿐, 현종의 대력금강장력에 어떤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얼마나…….”
“……!”
“……!”
이번에는 비명조차 없었다.
현종의 손에서 금빛 장력이 반월의 형태로 날아가 흑의 고수들의 목을 베어 버렸던 것이다.
나화연과 남은 흑의 고수들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벌벌 떨면서도 피하거나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흑……!”
나화연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현종의 손이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를…….”
현종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 현종을 얼마나 우습게 본 것이냐.”
나화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마치 금강야차를 만난 악귀처럼 현종의 힘과 눈빛 앞에서 온몸에 힘이 빠지고 감히 저항할 수 없는 공포심을 느꼈다.
현종은 오른손으로 그녀의 목을 움켜쥔 채, 왼손으로는 대력금강장법을 펼쳐 남아 있는 흑의 고수들을 모두 쓰러뜨렸다.
“나는 소림수호승. 소림사와 강호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자다.”
공포에 질린 나화연의 음성이 가느다랗게 새어 나왔다.
그녀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 제발, 살려…….”
하지만 나화연의 음성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고개와 사지가 힘을 잃고 축 널브러졌다.
절명(絶命).
이미 숨이 끊어진 것이다.
현종이 오른손을 가볍게 떨쳐 내자 나화연의 몸은 흑의 고수들의 시신들 위로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열 명의 흑의인들과 나화연.
나름 마교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그야말로 한순간에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만약 사완악이 지금의 장면을 보았더라면, 현종의 무공이 일 년 전과는 또다시 달라졌음에 매우 놀랐으리라.
현종은 나화연의 얼굴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다 중얼거렸다.
“마교…… 이제 시작일 뿐이다.”
* * *
호북성의 도시 영안.
천기자의 다섯 번째 제자, 연비려는 사완악이 너무나 의아하고 이상했다.
사완악은 그녀를 둘러메고 정유문에서부터 쉬지 않고 경공을 펼쳤다.
연비려는 처음에는 너무나 빠른 그의 승광신법에 경악했고, 점차 익숙해진 후에는 자신을 내려 달라고 수없이 말했다.
비록 어깨에 둘러멨다고 하지만 남자에게 안겨 있는 것과 다름없었고, 사완악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완악은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연비려는 문득 수치심이 밀려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때부터였다.
자신이 소리 내어 운 것이 아닌데도, 사완악은 어떻게 알았는지 우뚝 멈춰 서서 내려 주는 것이 아닌가?
연비려는 화가 나 자신도 모르게 사완악의 뺨을 때렸는데, 그녀는 그러면서도 사완악이 당연히 맞을 거라는 상상을 하지 않았다.
한데 기이하게도 사완악은 연비려의 손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뺨을 맞았다.
연비려는 깜짝 놀라 손을 입가에 가져가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왜 안 피했어요?”
하지만 사완악은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을 뿐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았다.
“못 따라오면 다시 업고 가겠다.”
사완악은 오직 그 한마디만 내뱉고는 다시 경공을 펼쳤다.
연비려는 얼떨결에 그 뒤를 따랐는데, 사완악은 처음과 달리 그녀의 속도에 맞춰 나아갔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가 있는 망망장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장원 앞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연비려는 사완악의 행동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마치 누군가의 목숨이라도 걸린 것처럼 쉬지 않고 달려왔던 그가, 망망장 앞에 도착하자 그저 대문의 현판만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는 것이었다.
연비려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제 어머니를 만나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멍하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사완악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나를 알지 못한다. 나를 누구라고 소개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당연히 그렇겠죠. 어머니는 강호에서 은퇴한 이후, 사부님을 제외하면 외부의 사람과는 누구와도 사귀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알기로 어머니는 사대악인과도 어떤 인연이 없어요. 그래서 당신이 어머니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을 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사완악이 말했다.
“그렇다. 나는 그녀와 반드시 할 말이 있다.”
“대체 그게 무슨…….”
연비려는 말을 멈추었다.
사완악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연비려는 사완악의 그런 얼굴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이 아닌 것은 확실해. 만일 그랬다면 이 사람의 성격상 이미 장원으로 쳐들어가 난동을 부렸을 테고, 누구도 막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대사형이 순순히 이곳을 알려 준 이유가 있겠지.’
연비려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제가 친구라고 말씀드리죠.”
일순, 사완악의 얼굴에서 하나의 근심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정말 당신은 알 수가 없는 사람이군요. 따라와요.”
연비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장원의 문을 두들겼다.
처음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세 차례 더 두들기자 끼이익 문이 열리며 한 노인이 나타났다.
“누구십니까? 엇! 아가씨?”
노인은 연비려를 바로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연비려가 웃으며 말했다.
“태 할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예. 한동안 오기 어렵다고 하시더니, 무슨 일로 갑자기 방문하셨습니까?”
“반갑지 않으신가 봐요?”
연비려가 샐쭉한 표정으로 말하자 태씨 성의 노인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리가요! 너무 반가워서 그렇지요. 하하하. 마님께서도 아주 기뻐하실 겁니다.”
이때 태 노인이 눈을 번뜩이며 사완악을 힐끗 바라봤다.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연비려가 말했다.
“제 친구예요. 같이 어머니를 뵐 일이 있어서 왔어요.”
태 노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아가씨. 마님께서는 외부인을 만나기 싫어하신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일이라 그래요.”
“흐음…….”
태 노인은 사완악을 위아래로 살폈다.
사완악은 이 태 노인이라는 자가 상당히 뛰어난 고수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절정의 수준.
적어도 일개 장원의 노복이나 할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 노인은 사완악에게서 무공을 익힌 흔적을 전혀 찾지 못했다.
그는 안심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가 함께 오셨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알겠습니다. 우선 마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