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82
정도마신 181화
사완악의 말에 천기자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자네는 그러지 않을 걸세. 그리고 복수를 위해 나를 죽이지도 않을 테지.”
“왜 그런 이상한 착각을 하고 있지?”
천기자는 연비려를 힐끗 바라본 후 말했다.
“자네에게도……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지.”
“…….”
“자네는 좌충우돌 멋대로 행동하는 듯 보여도…… 누구보다 영민하고 심기가 깊은 사람이지. 자네는 이곳에 올 때부터 어쩌면 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네. 그래서 비려와 함께 온 것이 아닌가? 나를 만났을 때 분노를 참기 위해서 말이네.”
사완악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천기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완악은 백신형이 자신에게 이 장소를 알려 주었을 때, 그에게 혹시 천기자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물론 백신형 역시 진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그럴 리는 없다고 했지만, 사완악은 마음 한편에는 일말의 의혹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연비려와 동행했다.
홀로 천기자를 만나게 된다면 스스로를 제어할 자신이 없었지만, 여동생이 보는 앞에서 여동생의 사부를 죽일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사완악은 천기자가 이 모든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 자체에 더 큰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볼수록 재수 없는 늙은이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네에게는 여러모로 미안하네. 하지만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게. 내 진짜 죽음은 이미 다가오고 있으니.”
“무슨 뜻이지?”
“우선 나를 따라오게. 장원 안쪽에 자네에게 보여 줄 것이 있네. 내 제자들에게도 모두 말하지 못한 진실들도 있지. 그것을 보고 난 이후에는, 나는 자네가 나에게 요구하는 그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사완악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일어났다.
“내가 요구하는 무엇이든 들어 준다고? 그럼 만약…….”
이때 천기자가 사완악의 말을 빠르게 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 해도 말일세.”
“사, 사부님!”
연비려는 자신도 모르게 천기자를 불렀다.
사완악의 입에서는 황당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천기자가 자신이 할 말을 다시 한번 예측했기 때문이고, 죽음을 말하는 상황에서도 저 담담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북망산 깊은 곳에 진법과 장원을 세우고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둔 것이 있다는 말에 흥미가 일어나는 것도 사실.
게다가 제자들도 알지 못하는 진실이라니?
과연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사완악은 천기자를 조용히 응시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좋아. 우선 확인은 해 주지.”
천기자는 연비려에게 말했다.
“만나서 반가웠다. 네 새로운 사제의 이름은 허곤이다. 너는 곤이와 함께 지객당에서 기다리거라.”
연비려는 놀란 듯 빠르게 말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하지만 천기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된다. 이 일은 아무리 내 제자라 해도 함부로 알려 줄 수 없는 일.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너희 앞에서 죽음을 위장하고 이런 곳에 장원을 지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니라.”
“하지만…….”
연비려는 힐끗 사완악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만약 자신이 없으면 사완악이 천기자에게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두려웠던 것이다.
그 눈빛을 본 천기자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말거라. 네 오라버니가 나를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니.”
사완악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나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하는군.”
천기자는 사완악의 말을 무시하며 다시 말했다.
“날 믿거라, 비려야.”
“…….”
연비려는 순간 사부님은 이미 저를 속이지 않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연비려와 사완악의 관계를 속인 것 이외에, 사부의 말이 틀린 적이 한 번도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따라오게.”
천기자는 짧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장원의 안쪽으로 느릿느릿 걸어가기 시작했다.
“갈수록 더 재수 없어지는 늙은이군.”
사완악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연비려의 어깨를 살짝 두들겼다. 연비려는 그것이 마치 자신에게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오라버니도 조심하세요.”
“내가 조심할 일이 뭐 있어?”
“풋. 맞아요. 오라버니가 위험할 일은 없죠.”
사완악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조용히 천기자의 뒤를 따랐다.
* * *
천기자는 장원에 있는 몇 개의 거처를 지나 마지막 전각에서 멈춰 섰다.
“이곳일세.”
“딱 보면 아니까 어서 들어가.”
전각은 특이했다.
여러 개의 방이 아니라 공터처럼 하나의 큰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의 중앙에는 큰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몇 개의 지도와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목함(木函)이 있었다.
사완악은 방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뭐 대단한 건 없어 보이는데?”
천기자는 탁자 앞으로 다가가서는 사완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군.”
“뭘?”
“우리 천의문의 예언에 관해서 말일세. 내가 마음대로 자네의 어머니를 속이고, 자네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하지만. 자네 생각에 내가 읽은 천기가 정말 잘못되었다고 보는가?”
“…….”
묵묵부답인 사완악을 보며 천기자는 말을 이었다.
“수호성과 천살성은 강호에 주기적으로 나타났네. 그때마다 천의문은 언제나 천기를 통해 그들의 출현을 대비했고,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네. 그리고 이번에도, 결국 내가 읽은 대로 역사상 가장 무서운 천살성이 탄생하고 말았지. 그 과정에 있어서도 내 생각은 크게 틀리지는 않았네. 자네가 사대악인의 제자로 자라며 수호성이 봉인되어 있을 때는 천살성인 현종 역시 소림사의 제자로 정의롭게 자라고 있었고, 자네가 악에 물들지 않고 본모습을 찾아갈수록 그 역시 내면의 악이 깨어났으니까.”
사완악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사실 이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놀라운 부분이었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는, 천기자의 예언은 분할 정도로 틀린 부분이 없다는 것.
사완악은 팔짱을 낀 채 천기자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글쎄. 그렇다고 당신이 나에게 한 일들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당신이 읽은 천기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결과적인 것일 뿐이지. 만약 그 천기가 틀렸다면 내 인생과 또 내가 악으로 물들며 생기는 희생자들을 어떻게 책임진단 말이지?”
“그것은 아까 호랑이의 얘기로 설명했다고 생각하네. 나는 이 세상이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반드시 피하고 싶었네. 자네를 비롯해 소수를 희생시켜서라도, 이 중원이 피로 물드는 것은 막아야 했네.”
“…….”
“물론 자네의 입장과 자네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하네. 그런데 우리는 그전에 한 가지 사실을 되짚어 봐야 하네.”
“뭘?”
천기자는 탁상 위의 지도 몇 장을 뒤적이며 말했다.
“어째서 그것이 가능하냐는 것일세.”
“무슨 소리야?”
“이상하지 않은가? 어째서 세상에는 천살성이나 수호성 같은, 규격 외의 존재가 나타나는가? 자네의 중단전에 있는 그 빛의 힘.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자네에게 주어진 힘이고, 자네라면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도 이제 느끼고 있겠지.”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천기자의 말이 옳다.
이 중단전에 자리 잡고 있는 신비롭고 상서로운 기운은, 사완악이 기연을 통해 얻은 사존의 힘을 능가할 정도였다.
즉, 이미 인간의 힘이라고 볼 수 없는 능력을 사완악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공도 그러하네. 자네가 익힌 사령문의 무공이나 저 마교의 무공, 또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일부 무공 역시 마찬가지일세.”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때 천기자의 두 눈동자에는 지금까지 담담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분노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인세에 나타나면 안 되는 기운들이 존재하고, 또 그것을 천기를 통해 정확히 읽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말일세. 정말 하늘이, 신이 존재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의 강력한 힘을 지닌 천살성이 나타나는 것을 방관한단 말인가?”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당신이 하고 있으니 할 말이 없어지는군.”
천기자가 어조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이러한 의문을 느낀 것은 천의문의 역사상 가장 뛰어나셨던 십이대 장문인이셨네. 바로 자네 이전에 사존의 힘을 이어받았던, 전대 영겁사령존을 제압하신 분이지. 전대 영겁사령존 역시 인간의 힘을 벗어난 자였으니까.”
“그래서?”
“그때부터 천의문의 장문인은 한 가지 사명을 갖게 되었네. 이 세상의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힘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런 힘이 나타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사완악은 의아한 얼굴로 천기자를 바라봤다.
“그런 방법이 있다고?”
천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선대부터 오랜 연구와 조사 끝에 몇 가지 결론을 얻었네. 하지만 이상한 일이지. 나와 내 사부님이 그 일을 진행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전무후무한 희대의 천살성이 나타났으니까.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천살성의 기운이 수호성의 기운을 이긴 적이 없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네.”
사완악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마치 하늘이 자신의 기운을 없애려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군.”
천기자의 눈이 빛났다.
“바로 그것일세. 세상을 멸망시키고 다시 시작해서 자신의 힘을 유지하려는 것처럼, 천살성의 기운이 갑자기 강해진 것일세. 바꿔 말하면 그 천살성을 제압하면 천의문의 오랜 숙원을 이루어 세상에 다시는 그런 기운이 나오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일세. 그래서 자네에게 몹쓸 짓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그 천살성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것일세.”
사완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결국 그 계획은 틀어졌고, 이제 그 대단한 천살성을 상대로 어쩔 생각이지? 천살성과 수호성의 봉인이 깨어났을 때를 대비한 계획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천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탁자 위에 있던 작은 목함의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
그걸 본 사완악의 눈에는 이채가 떠올랐다.
목함 안에는 하나의 은색 반지가 있었는데, 그 반지에는 신비로운 문양이 새겨져 있어 한눈에 보아도 매우 비범한 물건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반지의 이름은 봉신환(封神環)이네.”
“봉신환?”
“그래, 신력을 봉인할 수 있다고 알려진 보물이지. 그리고 나는 이 반지에 하나의 힘을 봉인할 것이네.”
천기자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봉신환을 자신의 검지에 끼고, 서서히 내공을 일으켰다.
“천황무위대라고 들어 보았나?”
사완악은 순간 정도맹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황제의 세력은 아니지만, 황실에 존재하는 신비의 세력.
“들어 본 적 있군. 어떤 종류의 내공도 무력화시키는 무공을 지닌 자들이라던가.”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생각.
사완악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당신이 설마 천황무위대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