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28
정도마신 27화
하루의 일정은 단순했다.
낮에는 말을 타고 이동하고, 저녁에는 객잔에서 숙박했다.
설린과 구휘는 객잔에 도착하면 최대한 빠르게 잠에 들고, 새벽 일찍 일어나 정유검법을 수련했다.
사완악은 그들을 지켜보며 가르침을 주고, 두 사람에게 서로 비무를 하며 수련을 하도록 했다.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났을 때, 설린은 웬일인지 늦은 밤까지 잠에 들지 못하고 달빛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무슨 고민 있나?”
설린은 갑자기 들려온 사완악의 음성에 살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사 공자님도 안 주무셨군요.”
“아, 생각할 게 조금 있어서. 달빛이 좋잖아?”
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어서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주변이 환했다.
“저는 확실히 재능이 없나 봐요.”
“응?”
“정유검법이요. 아버님이나 할아버님은 당신들께서 현조부님의 후손인 것을 부끄러워하셨는데,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꼬마에게 밀린 것 때문인가?”
설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휘아가 어리기 때문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 아이는 정유문에 온 지 일 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동안에도 검술의 기초적인 움직임만을 배운 게 전부였죠. 그래서 처음에 사 공자님이 비무를 하라고 하셨을 때, 저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구휘는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정유검법의 초식을 빠르게 익혀 나갔다.
그리고 불과 보름 만에 설린은 구휘와의 비무에서 열세를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정유문의 문주로서 강해지고 싶어 하는 설린에게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사완악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재능은 둘 다 없는데?”
“예?”
“설 문주나 꼬마나 재능은 없다고.”
설린은 민망한 듯 입술을 삐죽였다.
“눈물 나게 솔직하시네요?”
사완악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도 황 총관님이나 관 호법님보다는 괜찮아. 두 분은 정말 심각하던걸. 만약 내가 그렇게 똑같은 것을 계속 물어봤다면 우리 사부님들은 날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
설린은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사 공자님의 사부님들은 틀림없이 대단한 분들이겠죠? 그럼 사 공자님도 무공을 배우실 때 혼난 적이 있나요?”
사완악이 씩 웃으며 말했다.
“물론 없지. 난 사부님들께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쳤으니까.”
“……괜한 질문을 했군요. 사 공자님은 지금 제 기분이 어떤지 절대 모르실 거예요.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과연 제가 강해질 수 있을까요?”
이때 사완악은 설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확실히 기분이야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로 강해지고 싶은데?”
“글쎄요. 현조부님만큼은 아니어도, 정유문의 문주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이요.”
사완악은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게 얼마만큼 강한 건데?”
“그건…….”
설린은 의외로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언제나 막연히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때 사완악이 다시 말했다.
“나는 사부들보다 강해지고 싶었어. 설 문주는 얼마만큼 강해지고 싶지?”
설린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사실은 제가 얼마만큼 강해지고 싶다고 해도, 제 재능으로는…….”
사완악이 돌연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흑사방주보다 강하면 되나?”
“예?”
“하북성에서 흑사방을 아무도 건들지 못한다며? 거기 그 흑철야왕인가 뭔가 하는 사람보다 강한 정도면 정유문 문주의 체면이 서나?”
흑사방의 세 방주는 모두 무공이 뛰어났지만, 그중에서도 흑철야왕은 절정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특출했다.
설린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불가능하다는 건 알지만 꿈같은 이야기네요.”
그러자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난 또 엄청 강해지고 싶어 하는 줄 알았네.”
설린은 황당한 표정으로 사완악을 쳐다봤다.
“겨우 그 정도라면 뭐, 내가 가르쳐 준 정유검법만 수련해도 충분할걸.”
“절 놀리시는 거죠?”
“내가? 왜?”
“저보고 재능이 없다고 하셨으면서, 흑철야왕보다 강해질 수 있다니요.”
사완악이 고개를 갸웃했다.
“재능이 없긴 한데, 그 아저씨를 이길 정도는 된다는 이야기지.”
설린은 사완악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가 진심으로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 공자님은 정말…… 내가 흑철야왕보다 강해질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거구나.’
설린은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녀는 오늘 아침의 비무 이후,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한없이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하지만 사완악의 입에서 확신에 찬 말을 듣자,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고마워요.”
사완악은 그녀가 왜 고맙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설린이 하늘을 보더니 말했다.
“내일 일어나서 수련을 하려면 어서 자야겠네요. 사 공자님도 더 늦기 전에 주무세요.”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두 사람은 객잔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각자의 방으로 헤어지기 전, 사완악이 말했다.
“아 참. 아침에 비무 말이야.”
“네?”
“검술의 이해도는 설 문주가 꼬마보다 나아. 나중에 꼬마 녀석의 손바닥을 보면 알 거야. 나는 오늘 푹 잘 예정이라 내일은 알아서들 해.”
“손바닥이요?”
“그럼 이만.”
사완악은 별다른 설명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설린은 다음 날, 사완악이 말하고자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 * *
“문주님, 일어나셨습니까?”
구휘는 설린을 보자 씩씩하게 인사했다.
“응, 나도 일찍 일어났는데 휘아는 더 부지런하구나.”
“헤헷, 아닙니다! 사 공자님은 아직 안 나오셨어요.”
“오늘은 우리끼리 수련하라고 하셨다.”
“아, 그런가요?”
구휘는 조금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설린은 어제저녁 사완악의 말이 떠올라 구휘에게 말했다.
“휘아야, 손바닥을 좀 보여 줄래?”
“손바닥이요? 왜요?”
구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양손을 펴서 설린에게 보였다.
설린은 그런 구휘의 오른손바닥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너…….”
구휘의 손바닥은 굳은살이 가득했다.
그것은 결코 하루 이틀 사이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오직 오랜 시간 검을 수련해야만 생기는, 돌처럼 크고 딱딱한 굳은살이었다.
설린은 일 년 전, 길거리에서 배가 고파 쓰러져 있던 거지 소년의 여린 손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새하얀 살결에 가늘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구휘는 일 년 동안 오직 기본적인 검술 동작만을 수련했고, 설린은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정유검법을 익혔다.
‘검술의 이해도는 설 문주가 꼬마보다 나아.’
설린은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함이 밀려왔다.
‘나는 재능을 운운할 자격도 없었구나.’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고서 말했다.
“휘아야, 시작하자.”
* * *
세 사람은 관도(官道)를 따라 순조롭게 하북성을 벗어나 산서성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산서성의 객잔에 들렀을 때, 그들에게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태령촌? 글쎄, 처음 듣는 마을인데?”
육사괴의 은거지가 있다는 산골 마을 태령촌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설린은 산서성에 있는 하오문의 지부를 찾아갔지만, 육사괴의 정보를 처음 주었던 하오문조차 아직 그것에 대해 조사 중인 상태였다.
산서성까지 왔지만 태령촌을 찾을 수 없으니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때, 구휘는 길거리에서 한 늙은 점쟁이를 발견했다.
그는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피부는 검버섯이 가득했으며 머리숱이 적은 백발에, 치아도 몇 개가 빠져 있어서, 나이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혹시 태령촌은 어느 마을의 옛 이름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연세가 많으신 분들 중에 아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죠.”
구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 노인에게 가서 구리 동전을 주며 태령촌에 대해 물었다.
설린은 하오문조차 모르는 것을 길거리 점쟁이가 알 리 없다고 생각했으나, 뜻밖에도 노인은 태령촌이라는 이름을 듣자 반응을 보였다.
“태령촌? 혹시 양태산의 그 마을을 말하는 것이냐?”
노인의 음성은 심하게 갈라져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느껴졌다.
구휘는 반색하며 말했다.
“저는 태령촌이라는 이름만 아는데, 아무도 어떤 마을인지 모르더라고요. 어르신이 아시는 태령촌은 어디인가요?”
점쟁이 노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구휘를 바라보다가 혀를 찼다.
“쯧쯧, 태령촌은 이미 불타 없어진 곳이야. 원래는 양태산 중턱에 있는 화전민(火田民)들의 마을이었지.”
구휘는 설린과 사완악을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물었다.
“불타 없어졌다고요? 언제요?”
“아주 오래전이지. 이십 년도 넘었어. 그리고 양태산은 산세가 험준하고 인근에 다른 마을도 없어서, 태령촌은 바깥의 사람들과 왕래가 거의 없는 곳이었지. 사람들 기억 속에 없을 수밖에.”
이때 사완악이 짓궂은 표정으로 불쑥 물었다.
“그런데 노인장은 어떻게 알지?”
노인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사완악을 쳐다봤다.
이때 사완악의 눈이 순간적으로 푸르게 물들었다.
노인은 잠시 눈을 끔벅이다가 말했다.
“점쟁이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보고 듣게 된다네. 산서성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점괘를 보며 살았으니 남이 모르는 것을 알 때가 있는 법이지.”
사완악은 본래의 검은 눈동자로 돌아와서 어깨를 으쓱하고는, 품에서 은자 한 닢을 꺼내 노인에게 주었다.
“점을 보고 싶은 건가?”
사완악이 그럴 리 없다는 듯 말했다.
“난 누군가 나를 예측하거나 강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점괘 따위는 필요 없어.”
점쟁이 노인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운명이란 거스르기 어려운 것이네.”
사완악은 미소를 지었다.
“점쟁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애초에 운명 같은 걸 믿지도 않는걸. 이건 태령촌을 알려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야. 받을 거야, 말 거야?”
점쟁이는 손을 뻗어 은자를 받았다.
그는 은자에 대한 답례로 한 가지 사실을 더 알려 주었다.
“태령촌의 사람들은 나무에 붉은 매듭을 달아 길을 표시했다고 들었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매듭은 남아 있겠지.”
사완악은 설린, 구휘와 함께 객잔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구휘는 매우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사 공자님?”
“응?”
“그런데 만나려는 사람이 누구기에 이미 이십 년 전에 불타 없어진 마을로 가시는 건가요?”
사완악과 설린은 잠시 서로를 마주 봤다.
“이제 말해 줘도 되지 않을까?”
그 말에 구휘가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설린을 쳐다봤다.
“말해 주시다니요? 혹시 제게 뭐 숨기는 거라도 있으신 건가요?”
설린은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휘아야, 실은…….”
설린이 귓속말처럼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사 공자님은 육사괴의 은거지를 찾아가는 거란다.”
“아하…… 예? 예에?”
구휘의 눈이 점차 휘둥그레졌다.
“누, 누구요?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거죠?”
하지만 사완악과 설린은 미동 없는 표정으로 구휘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구휘가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돼요! 무, 문주님! 이거 총관님이랑 호법님도 알고 계시는 건가요?”
“당연히.”
설린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모르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