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42
정도마신 41화
사령문도 네 사람의 처소는 사완악의 처소 바로 옆에 마련되었다.
그렇게 그들이 정유문의 임시 문도가 된 다음 날.
선선한 바람이 불고 화창한 날이었다.
“너 이 자식! 거기 안 서!”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에서, 한 뚱뚱한 사내가 화가 잔뜩 난 듯 소리를 지르며 한 소년을 쫓아 달리고 있었다.
사내는 소년이 점점 멀어지자 크게 외쳤다.
“소매치기입니다! 누가 저 녀석 좀 잡아 주시오!”
시장의 사람들은 흠칫하며 소년을 막아서거나 잡으려 했다.
하지만 도망가는 소년은 매우 잽싸고 민첩해서 사람들 사이를 한 마리의 쥐처럼 빠져나갔다.
“이 상놈의 자식아!”
사내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욕을 해 댔지만, 소년의 얼굴에는 오히려 웃음이 떠올랐다.
‘헷, 이거 왠지 대박 같은데?’
소년은 경험상 뚱뚱한 사내가 매우 부자라는 것을 알았고, 그런 사람이 저토록 화를 내며 끝까지 쫓아오려는 것을 보면 이 주머니에는 상당한 거금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머니도 확실히 묵직했다.
한 건 제대로 해낸 셈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헉!’
자신을 잡으려던 몇몇 사내들을 뿌리치고 어느 골목길로 돌아선 소년은 깜짝 놀라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바로 앞에 키가 장대같이 크고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흰자위가 가득한 큰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이 귀신같이 생긴 사람이 자신을 잡으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몸을 돌려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사내의 손은 어느새 갈고리처럼 소년의 어깨를 움켜쥐었고, 소년이 “아얏!” 하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 다른 손으로 소년의 품에서 주머니를 탈취했다.
그 손동작은 소매치기로 훈련을 받은 소년보다 더 빨랐다. 소년은 황급히 다시 손을 뻗었지만 귀신같이 생긴 사내는 소년의 손목을 낚아채 꺾어 버렸다.
“아아악! 아파요!”
“더 아프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라.”
사내의 음성은 목이 잔뜩 쉰 사람처럼 쇳소리가 가득했다.
소년은 사내의 음산한 외모와 목소리, 우악스러운 손길에 가슴이 섬뜩해져서 겁에 질린 얼굴로 더 이상 반항하지 못했다.
이 사내는 소년의 목덜미를 살짝 잡고 대로로 나갔다.
소년이 도망왔던 길로 조금 돌아가니, 그 뚱뚱한 사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사내는 소년을 데리고 그 뚱뚱한 사내에게 다가갔다.
“이걸 찾으시오?”
뚱뚱한 사내는 갑작스러운 음성에 뒤를 돌아봤다가 깜짝 놀랐다.
귀신같이 생긴 사내의 외모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그가 내민 주머니가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크게 반색했다가, 동시에 사내의 손에 잡혀 있는 소매치기 소년을 발견하고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너 이놈의 새끼!”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고개가 돌아갔다.
뚱뚱한 사내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두 번 더 소년의 뺨을 후려갈겼다.
귀신같이 생긴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뚱뚱한 사내는 조금 진정이 되는 듯 숨을 고르고 말했다.
“당신이 이 못된 놈을 잡아 준 것이오? 정말 고맙소.”
“별일 아니오.”
뚱뚱한 사내는 귀신같은 사내의 음성이 소름 끼친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 주머니에는 정말 값비싼 보석과 금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별일 아니긴. 내 어느 정도 사례를 하겠소.”
뚱뚱한 사내는 주머니에서 작은 금덩이를 꺼내 내밀었다.
하지만 이 무섭고 음침하게 생긴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오. 나는 정유문의 문도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정유문?”
뚱뚱한 사내가 눈에 이채를 띠며 그를 쳐다봤다.
귀신같이 생긴 사내, 그는 바로 사령문의 제사귀령이자 사완악의 수하가 된 가종후였다.
“당신이 정유문의 문도라는 말이오?”
“그렇소. 나는 정유문의 문도 가종후요. 정유문의 문도는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소.”
“허, 정유문이 과거와 달리 힘이 약해졌다고 들었는데…… 아, 미안하오. 소문이라는 것은 참으로 믿을 것이 안 되는 법인데. 어쨋든 정말 고맙소. 내 나중에 정유문으로 찾아가 문주님께 직접 사례를 하겠소.”
뚱뚱한 사내는 이어서 소년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이 녀석은 어떻게 할 것이오? 내게 넘겨주면 관아에 넘겨 버리겠소.”
관아라는 말에 소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런데 이때였다.
“그건 안 되겠는데.”
갑자기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가종후와 뚱뚱한 사내가 고개를 돌려 보니, 다섯 명의 험상궂고 건장한 장한들이 건들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뚱뚱한 사내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누, 누구시오?”
장한들 중 한 명이 말했다.
“그건 알 거 없고. 거기 소년이랑 그 주머니나 내놓으시지. 돈보다 목숨이 중요하다면 말이야.”
사내들의 손에는 도끼나 몽둥이 같은 무기들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들은 왈패 집단이고, 소년은 그들이 관리하는 소매치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뚱뚱한 사내는 침을 꿀꺽 삼키며 가종후를 바라봤다.
정유문이라면 무림 문파이니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사내들이 나타나자 무표정했던 가종후의 얼굴은 오히려 기쁜 듯 밝아졌다가, 잠시 후 다시 인상을 확 찌푸리는 것이었다.
가종후가 사내들을 향해 말했다.
“이건 내 일입니다. 끼어드는 건 너무 치사한 거 아닙니까?”
뚱뚱한 사내와 다섯 명의 왈패 장한들은 일순 어리둥절한 얼굴로 가종후를 바라봤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답은 왈패 장한들의 뒤쪽에서 흘러나왔다.
“우리끼리 너무 야박하구나. 너는 그 소매치기 아이를 잡았으니, 하나씩 나눠 가져야지.”
왈패 장한들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곳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한 명의 중년인이 목검을 들고 서 있었다.
가종후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를 잡았으니까 저것들이 나온 것 아닙니까?”
“그래. 고맙게 생각한다.”
중년인의 대답에 가종후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버럭 소리를 지르던 왈패 장한은 순간 깜짝 놀랐다.
중년인이 어떤 경고도 없이 갑자기 빠르게 달려와 목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왈패들은 길거리 싸움에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손에 들고 있는 무기로 동시에 중년인을 공격해 갔다.
하지만 중년인의 목검은 부드럽고 유려하게 곡선을 그리며 장한들의 공격을 흘려보내고, 다시 빠르게 휘둘러 장한들의 가슴이나 머리, 어깨를 찌르고 내리쳤다.
놀랍게도 그것은 사완악이 새롭게 보완한 정유검법의 초식들이었다.
장한들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는데, 그때 중년인의 검이 다시 그들의 손목을 내리치자 모두 무기를 떨어뜨리고 앓는 소리를 냈다.
“취향은 아니지만…… 확실히 뛰어난 검법이군.”
중년인은 작게 중얼거리다가 장한들을 보며 말했다.
“나는 정유문의 문도 만사무다. 더 혼나고 싶지 않으면 냉큼 꺼져라.”
중년인.
그는 바로 사령문의 제일귀령 만사무였다.
만사무와 가종후는 사완악의 군림혼혈공으로 내공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삼류 무사 따위가 그들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정유문?”
왈패들은 당황하며 만사무를 쳐다봤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정유문이 흑사방과 비무를 하여 이겼다는 소문을 떠올랐다.
“가, 가자!”
왈패들은 떨어뜨린 무기를 주울 생각도 못하고 부리나케 도망갔다.
만사무는 그들을 쫓지는 않았다.
뚱뚱한 사내가 놀라며 가종후에게 물었다.
“저분도 정유문의 문도인 것이오?”
가종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리고 소년의 목덜미를 놓아주며 말했다.
“저놈들은 너를 버리고 도망가는구나. 너는 위험한 순간에 저들에게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
소년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뚱뚱한 사내가 소년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바보 같은 놈! 그렇게 살다가는 정말 크게 혼이 날 거다. 언젠가 저놈들 대신 네놈이 죄를 뒤집어쓸지도 모르지. 오늘은 특별히 봐줄 테니 썩 꺼져라.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다른 마을로 가서 객잔 점소이라도 하면서 살아!”
소년은 충격을 받은 듯 말없이 돌아서서 떠났다.
가종후가 말했다.
“그럼 우리는 다른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소.”
“알겠소. 오늘 일은 정말 고맙소. 내 정유문의 은혜는 잊지 않겠소.”
뚱뚱한 사내와 헤어진 뒤, 만사무는 가종후에게 말했다.
“일부러 가로챈 건 아니다. 우연히 무기를 든 놈들이 서성이는 것을 발견했을 뿐.”
가종후는 한숨을 쉬고는 물었다.
“그래서 몇 개나 했습니까?”
“두 개 남았다. 너는?”
“저도 두 개 남았습니다.”
“그래. 어서 마치고 돌아가자.”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가종후의 말에 만사무도 크게 동의했다.
두 사람이 지금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는 이유는 바로 사완악의 명령 때문이었다.
사완악은 설린이 그들을 정유문의 임시 문도로 받아 주었을 때, 한 가지를 선언했다.
‘내일부터 이 녀석들은 선행을 베풀고 다닐 거야.’
그 말에 가종후가 물었다.
‘사, 사 공자님, 선행이라 하시면……?’
사완악이 말했다.
‘말했잖아. 설영충 사조님께 감화되어 문도가 된 사파인들이 정유문의 이름으로 많은 협행을 했다니까. 설린 문주가 사조님을 따라 너희를 받아 주었으니, 너희도 그들처럼 해야겠지.’
그리고 사완악은 명했다.
‘내일부터 너희는 정유문 근처를 돌아다니며 각자 다섯 개씩 선행을 한다. 선행은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지만, 공연한 시비는 피하도록 한다. 선행 뒤에는 반드시 정유문의 이름을 밝히고, 대가는 절대 받지 않는다. 정유검법의 기본 초식들을 가르쳐 줄 테니 그 외의 무공은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무기는 목검을 쓴다. 하루에 다섯 개를 채우지 못한 사람은 돌아오지 말도록.’
사령문의 네 사람은 그런 일을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일들을 해 본 적도 없었고, 내공도 금제된 터라 경공술이나 제대로 된 무공을 사용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지존의, 사령문의 전설인 영겁사령존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존께서 왜 이런 일을 명하시는 걸까요?”
만사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완벽한 신분을 만드시려는 것 같다.”
“완벽한 신분이요?”
“사령문의 존재는 정파에게 척결의 대상이다. 아마도 주군은 강호에서의 활동을 위해 정파인의 신분을 만드시는 것 같다.”
가종후는 문득 뭔가를 깨닫고 말했다.
“그래서 정유문을 선택하신 것이군요.”
만사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문제가 없는 명문대파는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어떤 입지를 갖기 어렵지. 반면, 정유문은 과거에 명성이 높았고, 유서가 깊지만 망해 가는 문파였지. 그런 문파에 구명(救命)의 은혜를 베풀어 문주도 어쩔 수 없는 권력을 잡으신 거다. 그리고 이제는 정유문의 평판을 높여서 정파인으로서 확실한 입지와 신분을 만드시는 것이지.”
가종후는 과연, 이라고 중얼거리며 말했다.
“지존께서는 겉으로는 가볍게…… 아니, 즉흥적으로 보이시지만, 속에서는 대계(大計)를 품고 계신 것이군요. 하지만 정파인의 신분이 왜 필요한 것일까요?”
만사무가 말했다.
“그것까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어떤 뜻이 있으시겠지. 다만, 지존께서 어제저녁 내게 한 가지 말씀을 하셨다.”
“무슨 말씀입니까?”
“기다리라고. 기다리면 반드시…….”
만사무의 눈이 번뜩였다.
“무적검천 사도준, 그자에게 복수할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말이다.”
가종후는 만사무에게, 대체 무적검천 사도준에게 어떤 원한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만사무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그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다만 가종후는 그가 복수를 위해서라면 영혼까지 바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제게도 어제저녁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만사무가 가종후를 힐끗 쳐다봤다.
가종후가 말했다.
“제가 영겁사령존을 기다려 왔던 마음과 시간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지요. 사령문을 지켜 온 제자들은 모두 각자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가종후의 눈은 충성과 믿음으로 빛나고 있었다.
만사무는 다시 고개를 돌려 묵묵히 걸으며 말했다.
“그래. 전설은 사실이었다. 그분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 될 분이다.”